# 5. 세상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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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난리 통에 얼마나 시간이 흘렀던 것일까..
아직도.. 눈가에.. 눈물이 맺힌 채 깨어난 공길이는
떠지지 않는 눈을 비비며, 주변을 살핀다.
간밤에 그 난리에 찬바람 앞에서 몇 시간을 울며 불며 서있던 터인지
몸은 천근만근이라 일으키진 못하고
한참을 두리번 거리던 길이는
늘상 눈뜨면.. 곁에서 곤한 잠에 빠져 있던 장생이
없는.. 텅빈 낯선 방안이 왠지 모르게
을씨년 스럽기만 하다.
얼마나 그렇게 시간이 흘렀을까..
자신이 누워있는 곳이 일년에 한 두 번
손님이 올 때나 사용하고 거의 잠궈두는 별채란 걸
알고 순간 당황하는데.. 거의 쓰지 않는 곳이라
두 서너달에 한번 청소하러 들어왔던 곳이라
몇년을 살아온 집인데도.. 그리 낯설게 느껴졌던
것이리라..
'헌데.. 내가 왜.. 여기 누워있을까?
장생이가 많이 다쳤을텐데..
장생인 어디있는 걸까? '
황망히 몸을 일으켜.. 이리저리 둘러보며.. 장생을 찾아봤지만.
그래봐야 장생은.. 보이질 않고..
끼이익... 스산한 소릴 내며..갑작스레
열린 문. 순간 열린 문으로 찬 겨울바람과 함께
느글느글.. 음흉한.. 웃음을.. 지은.. 둘째 녀석이.. 들어온다.
놀라서 바들바들 떨고, 목이 다 쉬도록 울다가 혼절했던 길이가..
이제 막 정신이 들어 몸을 일으킨 길이가..
무에 정신이 있었겠는가..
어제 밤 이후론.. 줄곧 머릿속이 정리가 되질
않는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만 끊임없이
공길의 머릿속을 멤돌뿐.
갑작스런 둘째 녀석의 출현에
공길은.. 재빨리 머리를 굴려 보지만..
'도대체 왜?
무엇때문에.. 이곳에서 자신은 혼자 깨어난 것이며
왜 저 둘째녀석이 이곳에 들어온 것인가?
이 상황이.. 정리가 되질 않는다.
당장.. 뛰쳐나가 찬 기운이라도 쐬면
이 엉망인 머릿속이 개운해 지려나?
헌데.. 이놈의 몸이 잔뜩 물먹은 스폰지마냥
내 뜻데로 움직여 지질 않는다..
아... 장생아..
지금 내 머릿속에 명쾌하게 떠오르는 건
오로지 너뿐인데..
너 마져도 내 곁에 없구나..'
그런 공길을 보며..
가뜩이나 밉살스러운 얼굴에 보기에도
기분나쁜 웃음이 퍼지는 둘째녀석.
그런 녀석과 눈이 마주치자,
공길이.. 어여.. 몸을 일으키려는데..
우악스런.. 손으로.. 길이의.. 가녀린.. 어꺠를.. 꽉.. 움켜잡은.
. 둘째 녀석이..
공길의 귀에 대고 내 뱉는 말이라니..
"이눔아.. 누가.. 너더러.. 그리... 고우라 했더냐?
사내라면.. 사내답게.. 생길 것이지..
곱디 고와. 꺾고 싶게.. 품에 안고 싶게.. 만든 것도.
니 탓이고, 우리집 종으로 들어온 것도 니 운명이니
날 원망 마라.. 내 너하나쯤 어찌해도
아무도 나한테 뭐라 할 수 있는 이 없으니..
억울해도 어쩔수 없지 않겠느냐? "
이.. 무슨.. 청천 벽력같은..
온몸에.. 힘이 쭉 빠져..
휑한 눈으로 둘째녀석을 바라보는 공길이..
말문이 막힌다.
그런 길이를 보며 계속 지껄여대는 녀석.
" 니 눈.. 니 그런 눈길이 자꾸만 내 맘을
흔들어 대질 않았더냐..
아무리 분칠한 여인네 들을 안아도..
머릿속에 너만 떠오르니..
젠장.. 내 사내인 너에게 마음이
동 할줄.. 누가 알았겠느냐..
아무튼.. 내 오늘은 기필코..
네 녀석을 내 것을 만들어야 겠다!
공길아! 네 녀석은.. 착한 녀석이 아니더냐..
상전을 좀 즐겁게 해주는 일인데..
무에 그리 황망한 얼굴이더냐.
내 말만 잘 들으면..앞으로 너 살긴 쉬울 터니이
너무.. 죽을 상 마라!"
말끝에.. 달려드는 둘째녀석을
버둥거리면서도... 어떻게든.. 그 자의 손에서 벗어나려 애 쓰며..
울부 짓는.. 길이..
애처롭게.. 갈라진.. 목소리로. 장생을 찾아보지만..
피 쏟으며.. 쓰러졌던.. 장생이.. 그리 쉽게.. 나타나 줄 리 만무하고.
본채에서 뚝.. 떨어진.. 별채에 작정하고..
가둬놨는데..
그 방 앞을 뉘가 얼씬거리겠소...
그 억샌 손길에.. 얇은.. 홑겹 저고리가 찟겨 나가고..
이리저리. 피하려.. 발버둥치는.. 길이를..잡으려 마구 휘둘러 대는 주먹에
고운 입술은 어느새 찟겨져 붉은 피가 흘러 내리니..
이미 그 짐승 같은 놈은.. 사람 정신이 아니였다.
오직.. 그 자의.. 머릿속엔.. 지 눈 앞에..
쓰러져 울부 짓는..
이.. 고운 녀석을.. 아무도..
손대지 않은.. 이.. 순결한.. 녀석을
제 것으로 만들어야 겠단.. 욕정 뿐 이였으니..
욕정에 눈이 벌게 함참을 실갱이를 하다,
제 놈도 지쳤던 겐지.. 길이 위로.. 확.. 쓰러진 채.. 둘째놈 이..
잠깐.. 힘을 빼고 방심한 사이..
이미.. 이리저리.. 맞고.. 찟겨..
그 하얀 살이.. 불그락 푸르락... 찟겨진 옷사이로..
애처롭게.. 드러난 길이가..
있는 힘을 다해.. 짐승 같은 그를 밀쳐내고.. 방밖으로 뛰쳐 나왔소!
휘청거리면서 맨발로 정신없이.. 뛰쳐나온.. 길이..
그 엄동설한에..
밤새 하얗게 쌓인 눈길을.. 맨발로 달려.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어디로든.. 저자 없는 곳으로 데려다 주오...
어디든 좋으니... 내.. 벗..
장생이 있는 곳으로 데려다 주오. '
마음속으로 수십 수백 번.. 외쳐대며...
무작정.. 그 .. 넓은.. 대감댁을 뛰기 시작했는데...
왜 그리.. 방은 많고..
왜 그리.. 넘어야 할 문턱은 많은지..
순간.. 눈앞에서 놓친.. 먹이에.. 황망해 하던 둘째 녀석이..
정신을 차리고 뒤에서..
" 저놈 잡아라~~"를 외쳐 대고..
뭔 일인가.. 내다보는.. 노비들..
눈앞에 나타난 상처 입은 짐승처럼
가엽은 길이의 몰골을 보며..
다들.. 애써.. 고개를 돌려 외면하는데..
눈물 범벅에... 하얀.. 살이.. 벌겋게.. 얼어버린.. 길이는..
애타게..장생을 불러댄다..
"장생아.... 장생아... 어딨는 거니...
제발..제발.. 나 좀.. "
그 소리가.. 닿았을까... 그 마음이.. 닿은 겔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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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 모진 매로..
만신창이가 된 채.. 겨우 거적 대기만 깔아놓은
곳에서 잠들어 있던 장생의 귀로
길이의 애타는 소리가 들려온다.
겨우겨우.. 눈만 뜬채.. 힘겹게..
종이 문을 밀치고 밖을 내다본 장생의 눈에..
애처로운.. 길이의 모습이.. 들어온다..
그 모습에.. 순간.. 무슨 힘이 났던 건지..
그 몸으로 벌떡.. 일어나.. 뛰쳐나온 장생...
얼어버린.. 가엽은 몸을 제 품안에 꽉 끌어안는데...
꽁꽁 얼고.. 여기저기 찢겨버려
밤새 한 뼘은 작아져 버린 듯한
애처로운 길이를 ..
품안에서 서럽게 울고 있는 길이를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으려는 듯 꽉 안은체
서있던 장생의 마음이..
지켜주지 못했단.. 죄책감에 무너져 내린다.
그 순간,
바위처럼 단단하던 장생의 눈에..
모진 매에도.. 비명소리 한번 내질 않았고,
온갖 상전들의 괴롭힘에도 눈물은 커녕
쳇! 웃음한번 밷어내고 툭툭 털어버리던 그의 눈에
굵은 눈물이 주루륵 흘러내린다.
"길아. 너.. 이 꼴이.. 무슨 일이냐..
이 더러운 노무 .. 집구석.. 나가버리면..
너랑 나.. 사지육신 멀쩡한데 굶어 죽기야 하겠냐..
내 몸뚱이.. 맞아.. 피터지고..
곪는 건.. 하나.. 무서울 꺼 없다만..
니가.. 다치는 건.. 죽기보다.. 싫다!
이 길로.. 나가자..
너랑 나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떠나
다신 돌아오지 말자“
길이의 어깨를 한품에.. 꼭 껴안고..
온 몸으로 얼어버린 길이의 몸을 녹이려 애쓰는 장생이..
둘은.. 날개 꺾인.. 새들이..
서로에.. 의지해.. 힘겹게 날아오르듯..
그 둘을 만나게 했고.. 어린 시절을 함께 보냈던..
단 한번도.. 살가운 아버지 소리 한번
내 부른적 없었던 공길의 아비의 집.
양반님네 집에서
박차고.. 나온다..
녀석들의.. 모습이.. 비장해 보이기 까지 했던 걸까..
간밤의 몰매로 찢어진 입가에 말라버린 핏덩이가
그대로 붙어 있는 장생이나,
거친 놈의 손길에 얻어맞아 여기저기 불그락 푸르락
가련한 공길이나 ....
상처 입을 데로.. 상처입은.. 녀석들의 모습에..
누구도... 차마 붙잡을 수 없었던 걸까..
길이와.. 장생이. 문밖을 넘어서는 걸 보면서도..
어느 누구하나..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막아서려는 이 없었으니
이렇게 하여...녀석들은..
난생처음. 틀에서 벗어나..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어떻게든 둘만 함께 할 수 있다면,
행복할 것만 같던 둘에게
세상이란 모진 곳이 더 큰 시련을 안겨 줄 거란
사실은 모른 체
멀리 멀리..새로운 세상을 찾아
떠나는 녀석들의 발걸음은
나는 듯 가볍기만 하고.
꼭 잡은 두손은 영원히 놓지 않을 줄 알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