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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슬과 인생

최영호 |2009.01.29 15:06
조회 70 |추천 0

(시드니 주변의 해안)


                     [벼슬과 인생]


아래 글은 1984년 검사로 임관되어 25년째 검사생활을 하고 있는 어느 검사님이 함께 근무했던 먼저 세상을 떠난 동료검사님을 그리며 쓴 글입니다.

http://blog.naver.com/everpower108/40048826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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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처음 만난 것은 1990년 9월 전주지검에서 였습니다.


의정부지청에서 전주로 발령이 나서 심난한 마음으로 출근하여 부임신고를 하고, 함께 근무하게 될 검사들과 인사를 하다보니 그는 초임검사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첫 인상은 넉넉하고, 수더분하며 성실해 보였습니다.


그 시절은 참 어려웠습니다. 사건은 많은데, 일하여야 할 평검사는 겨우 다섯 사람, 그것도 초임검사 두 사람이니 어려움이 참 많았지요.


같은 직장에 근무하면서도 서로 너무 바빠 자주 어울릴 수도 없었지만, 그래도 사무실에서 만큼은 마치 형제처럼 살았습니다.


그는 고향이 강릉으로 낯설고, 물 설은 전주로 발령받아 와, 총각으로 전주 시내의 한 여관방을 얻어 생활하고 있었지요.


그래도 다행스러운 건, 같은 초임검사인 유xx 검사가 전주 출신으로 오지랍이 넓어 함께 어울리면서 외롭고 힘든 객지생활을 잘 견디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검사직을 사직하고, 전주에서 변호사 개업을 하게 됐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힘든 전주지검 생활에, 비록 초임이지만 크게 한몫하고 있던 검사 한 사람이 사직하여 구멍이 뚫린데다가 때마침 전주교도소 탈주사건이 터지고, 원광대 입시부정사건이 발생하여 정말 힘들었습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 당시 대검찰청 연구관이던 김xx, 권xx 두 분이 서울에서 전주까지 2개월씩 보근을 나왔겠습니까?


그는 변호사로서 전주에서 적응하면서 대구 출신의 처녀와 결혼까지 하고, 전주에서 신혼살림을 차렸지요. 우리가 그의 신혼집 집들이도 갔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리고 전주생활을 접고, 고향 가서 변호사를 하겠다고 전주를 떠난 사람이 그 다음해에 다시 검사로 복직했을 때, 검사직을 떠날 때 아쉬웠던 만큼 우리 모두는 정말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바람결에 들려오기를 미국으로 유학을 다녀오고, 근무처에서 인정받는 검사생활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전국 각지로 뿔뿔이 흩어지면, 다시 같이 근무하기 쉽지 않은 검사라는 직업 때문에 직접 만나 함께 어울리기는 어려웠지만 안부전화를 하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얼마 전 제천지청에 근무하는 박xx 검사가 검사 노릇을 잘 하고 있는지 물을 겸 통화를 하다가 김검사가 휴가 차 고향인 강릉으로 가던 도중에 큰 교통사고를 당해 인사불성이라는 소식을 전해 듣고, 안타까운 마음과 비통한 마음으로 지켜 볼 뿐 어쩔 도리가 없었지요.


그런데 어제, 수많은 사람들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진정으로 쾌차하기를 빌었는데도 그런 보람도 없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영원히 떠났다 하니 젊은 인생이 아깝고, 가여워 무어라 표현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어린 자식과 사랑하는 아내를 두고 어찌 눈을 감았을까 생각하면 참으로 어이없고 가엾습니다!


아무리 생자필멸이라고 마음을 곧추 세워 봐도, 입 안에서는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자문하는 소리가 뱅뱅 돌 뿐, 답을 만들어 낼 수 없으니 안타까워 할 뿐입니다. 영면하기 빕니다.


고륙과 이별했던 단주역에 다시 돌아와(還至端州驛前與高六別處)

                          -장열(張說)


그대 옛집은 강이 나뉘는 어귀      (舊館分江口)

처연히 혼자 지는 해 바라본다.      (悽然望落暉)

만났을 때 나그네 밥을 나누었고     (相逢傳旅食)

이별할 땐 나그네 옷을 바꾸었었다.  (臨別換征衣)


생각하면 산천은 바로 옛날 거기인데 (昔記山川是)

슬퍼하나니, 사람은 지금 그 아니다.  (今傷人代非)

가고 오면서 나는 늘 이 길인데      (往來皆此路)

생사 다르매 함께 오지 못했구나     (生死不同歸)


- 이 글은 제가 2002. 8. 20. 검사게시판에 올리고, 또 다른 포탈사이트 다른 블로그에 올려두었던 글입니다.


올린 지 상당히 오래된 글인데, 갑자기 네이버 제 블로그에 다시 올린 이유가 있습니다. 얼마 전에 그 블로그를 검색하다가 어떤 덧글이 하나 붙어있어 깜짝 놀랐습니다.


덧글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안녕하세요. 우연히 아버지 이름을 검색하다가 이 글을 읽게 됐습니다. 저는 저희 아버지 김xx 검사님의 아들 김ㅇㅇ 이라고 합니다. 저희 어머니가 이 글을 보면 얼마나 우실까 걱정이 되어 보여드릴 순 없을 거 같습니다만..... 아버지의 동료분이셨다니 이렇게 우연히라도 글을 읽게 돼서 너무너무 기쁩니다.”


저는 이 덧글을 읽고 오랫동안 먼저 돌아간 사람을 생각하고, 애도했습니다. 그리고 김xx 검사가 고인이 된지 상당한 시간이 지났는데, 아들이 아버지의 이름을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는, 그 마음의 언저리로 돌아가 보니, 참으로 애잔한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어머니가 우실지 모른다고 걱정하여 알려주지 않겠다고 하는 그 마음 또한 애잔함을 더하게 합니다.


한편, 고인이 된 사람의 아들과 블로그로 인해서 소통하게 된 것이 너무 기뻤습니다.


아들 뿐 아닙니다. 국내의 어떤 유명한 회사의 직원으로 근무하는 분은 어린 시절 김xx 검사로부터 야학을 받았다고 하면서 이제는 성공했기에 그분을 만나 회포를 풀려고 했는데, 사망했다는 소식을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고 슬퍼하던 차, 제 글을 읽었다면서, 진정으로 고인을 위로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아들의 덧글, 제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의 덧글을 읽고 다시 한번 산다는 것이 진정 무엇인지, 사람과 사람간의 소통과 인연이 무엇인지 골똘히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경위로 맺어졌던 간에 인연은 참으로 소중하다는 생각을 해 보면서, 비록 악연이라고 할지라도 사람은 중하므로, 선연으로 바꾸도록 노력하는 것이 사람들의 본분이 아닐까 다짐하면서, 다시 옛날 썼던 글을 이 블로그에 올립니다(2008. 8. 12. 강영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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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검찰의 중견간부에 대한 정규인사가 있었습니다.

그 얼마 전에는 검사장들의 인사가 있었고, 다음 달 중순에는 법원의 인사가 있을 예정입니다.


지금 용산재개발지구의 사고와 관련하여 일부 사람들은 검찰이 사건을 편파적으로 수사하느니 어쩌니 하고 있지만, 그 사건을 담당한 몇 사람의 검사 중에는 발령을 받고도 임지로 가지 못하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대부분의 검사들은 한동안 그 지역에 정을 붙이고 젊음의 일부를 바쳤던 동료들을 떠나보내는 환송식을 하고 있을 겁니다.


20여년 근무하였던 검찰을 떠나 변호사라는 직업을 가진지 10년이 다되어 가지만, 아직도 친정인 검찰의 인사를 보고 있노라면 파란만장한 젊은 검사들의 여정이 눈에 선합니다.


어떤 분들은 서울지역을 벗어나지 않고

줄창 동기들 중 선두자리를 지키면서 영전에 영전을 거듭하지만

순환보직의 원칙과 함께 서울지역은 자리가 적다보니 대부분의 검사들은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입니다.


경상도에서 3년, 전라도에서 2년, 다시 경기도에서 2년

그동안 고생 많았다 서울에서 3년....


10년 정도 지나다보면 부장검사 승진이 시작되는데...

한번 물먹고 두 번째 부장검사로 승진되었다하더라도

다시 경기도 1년, 경상도 1년, 전라도 1년.....

재수없으면 결재권이 있는 부장검사가 아닌 고검검사로...


그사이 자라난 아이들은 어느덧 중학생이 되어

가족들과도 헤어져 주말부부로....


벼슬이 무엇인지.....

세상은 천 가지 좋은 일에도 한 가지 잘못이 보이면

한 사람의 잘못으로 천명의 검사 전체를 향하여 침을 뱉고 배를 가릅니다.


춥고 배고프지만

명예와 긍지로 먹고 살려는 그들을 향하여

격려와 배려보다는 손가락질하고 팔뚝질하는 사람이 더 많은 세상....


여러 번에 걸친 개업의 유혹을 뿌리치고

무슨 기준인지 알 수 없지만

거역할 수 없는 나랏님의 발령대로 세월에 몸을 맡기다보면

어느덧 머리칼은 안개를 안고, 아내의 얼굴에도 주름살이.....


인사철마다 가슴앓이를 하면서도....

가족들을 달래고 꿋꿋이 임지에 들어가

이사람 저사람 입방아를 찧더라도 아랑곳하지 않고

정의감과 사명감으로 공평하고 엄정한 수사에 젊음을 바치는

수많은 검사님들.....


오늘 새로운 임지를 향하여 정든 근무지를 떠나는

눈시울 뜨거운 정 많은 검사님들에게 찬사를 보냅니다.

그들의 맑고 신선한 영혼에 경의를 표합니다.


강부장님의 건투를 빕니다......

(‘09. 1. 29. 최영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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