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많이 바빠?
그녀는 많이 바쁘답니다
내가 어서 전화를 좀 끊어주었으면 하는
그녀의 바람이 전화기 이쪽까지 느껴지지만
나는 모른척 다른 말을 합니다
컬러링 바꿨더라
나는 컬러링 바꿨더라 그 말 뒤에 생략된 이야기를 그녀가 알아주길 바랍니다
컬러링 바꿀 시간은 있으면서 주말 내내 나한테 전화할 시간은 없었니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응 바꿨어
무심한 대답과 탁탁탁 자판 두들기는 소리만 들려줄 뿐
나는 나와 통화를 하면서도 계속 다른 일을 하는 그녀가 절망스러워
하마터면 전화기를 던져버릴 뻔 하다가
그래도 이대로 끊을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간신히 마음을 가라앉혀서 물어봅니다
너 많이 바쁜 것도 알고 다 아는데 그래도 계속 이렇게 지낼 수는 없잖아
전화도 잘 안되고 얼굴도 못 보고 넌 이렇게 지내는 게 괜찮니
이럴 게 아니라 내가 지금 너네 집으로 갈까 아니면 내일 회사로 갈까
내가 뭘 어떻게 할까
근데 그녀가 대답합니다
여전히 탁탁탁 자판소리를 내면서
당분간 그냥 좀 내버려두라구요
그냥 좀 있어달라 그녀가 내게 바라는 것은 그 뿐이랍니다
걸고 싶어도 전화를 걸지 않는 것
보내고 싶어도 메세지를 보내지 않는 것
보고싶어도 찾아가지 않는 것
그만 헤어져줄까
넌 내가 헤어져주면 그게 제일 좋겠지
난 생각만으로도 서러워지는 그 말을 꾹꾹 삼키며
알았어 일해
전화를 끊습니다
오늘 내 앞에 바쁜 것은 그녀의 시간이 아니라
그녀의 마음인 것을 알고 있으므로
당신의 다 식어빠진 마음 앞에서
그래도 난 이렇게
사랑을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