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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 님을 떠나 보내며

김재엽 |2009.02.18 18:41
조회 1,415 |추천 0

김수환 스페파노 추기경께서 우리 곁을 떠난지도 벌써 이틀이나 흘렀다. '한국 최초'의, 가톨릭 교회 역사상 '최연소' 추기경으로 서임되셨던 그 분은 이제 향년 87세의 현존 '최고령' 추기경으로 선종하셨다.

 

뉴스에서 처음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다른 많은 이들처럼 필자 역시 슬픈 탄식을 질렀다. 가족 모두 가톨릭교를 믿는 집안에서, 베드로라는 세례명을 쓰고 있어서 개인적으로도 충격과 아쉬움이 컸던 것이다. 비록 매주 1번씩 주일미사에 나가는 것을 제외하면 내세울만한 신앙생활이 없는 '불량신자'지만, 김 추기경의 선종 소식을 들은 그날 밤 곧바로 명동성당을 향해 떠났다.

 

10시가 넘은 늦은 밤중에, 그것도 추위가 심해서 '혹시 헛걸음하는 것 아닐까'하는 걱정도 되었지만, 한낫 기우일 뿐이었다. 오히려 도착했을 때의 명동성당은 김 추기경의 명복을 비는 연도 소리, 기자들, 그리고 목자를 잃은 슬픔에 잠긴 교우들로 가득 차 있었다. 주위에서는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보였다. 잠시 후 시간이 허락되자, 필자는 다른 이들과 함께 추기경님께서 평안히 안치된 유리관 앞으로 다가가서는 절을 하며 마지막 인사를 올렸다.

 

비록 직접 알현할 기회는 없었지만, 필자는 김 추기경께서 집전하셨던 미사에 두차례 참석한 적이 있었다. 첫 번째는 1998년 5월 명동성당 100주년 기념식 미사였는데, 이 자리에서 김 추기경은 자신이 30여년 동안 맡아 온 서울대교구장 직책을 정진석 대주교(현재 추기경)께 물려주셨다. 그리고 2002년 7월, 필자가 학부시절 다녔던 서강대학교의 설립자 겸 초대 이사장이셨던 테오도르 게페르트 신부님의 장례미사였다. 게페르트 신부는 바로 김 추기경께서 일본 유학시절 자신의 '영적 스승'으로 존경했던 은사였다.

 

필자 역시 본격적인 조문행렬이 시작된 어제부터 명동성당을 향해 이어진 사람들의 모습에 큰 감명을 받았다. '한 사람을 기리기 위해 저토록 많은 이들이 모여들다니...' 다시금 생전의 김 추기경님에 대한 우리 사회의 존경을 생각하게 되었다.

 

문득 필자는 4년 전 선종하셨던 요한바오로 2세 교황님을 떠올렸다. 김 추기경과 교황 두분 모두 같은 연배(교황이 김 추기경보다 2살 위)였고, 2차대전 시절에 청년기를 보냈다. 교황은 나치 독일의 첫 침략을 받은 폴란드에서, 김 추기경은 일제 강점시절 말기에 학병으로 징용되어 태평양전쟁에서 싸워야 했다. 또한 폴란드와 소련 공산주의(교황), 박정희-전두환 시대의 군부 권위주의 정권(김 추기경)에 맞선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였다. 사형제 및 인간복제, 낙태 등에 반대하는 생명수호에 끝까지 노력하였던 것도 공통점이다. 그리고 선종 직후 종교와 국경을 초월한 만인의 존경, 추모를 받고 있는 점 역시 흡사하다.

 

만년에는 힘든 시간을 겪기도 하셨다. 지난 2004년의 17대 총선을 앞두고 여당 주요인사들과의 접견 자리에서 "한미관계가 걱정된다"는 취지의 언급이 있자, 소위 진보측 언론과 정치인들은 김 추기경의 민주화 공적을 폄하하고 그를 '사회발전의 걸림돌'이라며 인신공격을 퍼붓기도 했던 것이다. 게다가 경제위기, 남북한관계의 냉각, 용산 유혈참사를 비롯한 사회갈등의 와중에 선종하셨다는 점에서 더더욱 떠나는 길의 마음이 편치 못하셨을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김 추기경의 선종 소식에 깊이 슬퍼하고 있다. 아마 두 가지의 이유 때문일 것이다. 첫째, 그분이 생전에 던졌던 사랑과 실천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째, 앞으로 김 추기경처럼 존경받는 어른을 다시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아쉬움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 분의 빈자리는 너무도 크다.

 

김 추기경님께 바쳐지는 애도와 추모의 물결을 접하면서, 필자는 '이것이 바로 영원한 삶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육신은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 분께서 남긴 사랑과 교훈이 많은 이들의 마음 속에 살아 숨쉬면서 보다 좋은 세상을 만들도록 이끌어 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우리가 그 분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이상, 김 추기경은 '대한민국의 수호성인'으로서 영원히 살아계실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비통한 동시에 기꺼이 그 분을 주님의 품으로 보내드릴 수 있을 것이다. 4년 전 요한바오로2세 교황의 장례미사 당시 울려퍼졌던 Santo Subito(이미 성자이시다)라는 환호를 김 추기경께 다시 올리고 싶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시 한번 진심으로 김 추기경님의 명복을 빈다. 하느님, 당신 외아들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김수환 스테파노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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