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라
김수환 추기경님이 이 세상을 떠나기 직전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다.
큰 별이 지상에서 그 빛을 거두어 하늘로 가셨는데... 정말 슬프다....
이제 더 이상 이렇게 큰 분을 이 땅에서 만날 수는 없으리라. 이분 만큼 누구를 공경하고 사랑한 적이 있었던가.
황량한 세상에 온몸으로 사랑을 가르치신 큰 별... 희망처럼 품고 있던 빛나던 별이 진, 내 안은 춥고 어둡다.
애달프다. 눈물이 앞을 가린다.
노환으로 고통을 받으시면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미소와 인간미를 잃지 않으셨다고
정진석 추기경은 애도문에서
『 추기경께서 마지막 순간까지 세상을 향해 외치셨던 메시지는 인간에 대한 사랑과 그리스도의 평화와 화해였다 』 고 발표했다.
자비로우신 하느님,
친히 주님의 일꾼 김수환 추기경을 거룩한 교회의 목자로 세우셨으니 인자로이 굽어보시어,
말과 모범으로 신자들을 보살피다가 세상을 떠난 김수환 추기경이
마침내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소서. 아멘.
사랑하는 추기경님, 편히 가시옵소서.
곡절 많고, 상처 많은 이 세상 그만 잊으시고 ...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드시옵소서. 하느님 그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소서....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고 주어진 현실과 병고를 기꺼이 받아들이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고통을 받아들이는 데는 많은 인내가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평소의 삶이 겸손하고 가난해야 합니다.
겸손과 인내는 다른 말로 하면 사랑입니다.
사랑은 하느님에 대한 믿음에서 나오는 것이지요.
주변에서도 건강에 대한 확신을 가지라고 권유해 주시는 분이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래 사는 것’보다 ‘기쁘게 잘 사는 것’이 더 소중한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 김수환 추기경
가족사진 (1944.1) -앞줄 가운데 추기경의 이모님과 어머니(안경 쓰신 분), 뒷줄 왼쪽 부터 셋째 형님(필수) 내외, 추기경, 넷째 형님(동한, 당시 신학생), 큰 누님, 작은누님 "우리 아버지는 내가 국민학교 일학년 때 돌아가셨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에 대해서는 기억이 별로 많지 않은데, 마음씨 착한 전형적인 충청도 양반이셨다. 우리 어머니는 본시 성품이 곧으신 분이셨고 거짓이나 불의와는 일체 타협할 줄 모르는 분이었다. 특히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에는 '아비 없는 자식' 이라는 말을 들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고 그만큼 자식들 교육에 엄격하셨다. … 나는 우리 어머니가 낳은 여덟 명의 아들 딸 중 막내였다. 위의 형이나 누이들은 가난과 잦은 이사 때문에 공부를 시키지 못하셨는데 내 바로 위의 형과 나만은 그런 궁핍 속에서도 공부를 꼭 시키고 싶으셨던 것 같다. … 어머니는 자식들의 교육에는 엄하셨지만 먹는 것, 입는 것은 마치 부잣집처럼 먹이고 입히셨다. 그 대신 사치란 있을 수 없었고 심지어 엿이나 과자 같은 군것질도 할 수 없었다" (<샘이 깊은 물>, 1984.11)
1969년 4월 추기경 서임식에서 교황 바오로 6세로부터 추기경 반지를 받음 (로마 베드로 대성전)
1951년 9월 15일 김수환 추기경이 사제 서품을 받고 어머니 서중하 여사와 함께 촬영한 기념사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즉위식(1978.10.22)
마더 데레사 수녀 방한 (1981.5.3~6)
조선교구 설정 150주년 기념 신앙 대회(여의도, 1981.10.18)
장익 주교 수품 및 춘천교구장 착좌식(춘천 죽림동 성당, 1994.12.14)
서울대교구 사제 서품식(올림픽 체조 경기장, 1994.7.12)
제44차 세계 성체대회(1989.10.4~8)
시성 청원 "지극히 공경하올 교황 성하, 자모이신 성교회는 복자 안드레아 김대건 신부와 바오로 정하상 외 101위 한국 순교자들을 전세계 모든 그리스도 신자들이 성인으로 받들어 공경할 수 있도록 성하께서 친히 성인 명부에 올려 주시기를 청원하는 바입니다"
명동을 떠나며(1998.6.22)
"송별 미사 강론에서 저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저는 참으로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사도 바오로와 같이 저도 여러분을 위해서라면 피를 흘리고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습니다' "
희수(喜壽) 축하식(혜화동 주교관)
무심한 몇 개의 선이 순진무구한 하나의 얼굴로 흰종이 위에 그려져 있다.
그대로 동심의 세계다.
기차는 아직도 어디론가 설레는 가슴을 안고 떠날 수 있는듯 하다. 추기경님의 내면 세계가 이토록 간결하고 담백하리라.
추기경님이 85세 때 유성 파스텔로 그린 드로잉 자화상 ‘바보야’와 '기차'의 모습.
평화신문에 '추기경 김수환 이야기' 연재를 마치고, 눈부신 아침 햇살을 받으며 서울 혜화동 주교관 마당을 산책하는 추기경님의 뒷모습.
고단했던 삶의 뒤안길을 뒤돌아 보며
하느님 사랑과 은총에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사진 출처 :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