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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이영주 |2009.02.26 20:20
조회 127 |추천 0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 2008)

감독 : 데이빗 핀처

 

 

 

 

‘사랑은 타이밍’ - 동서고금의 진리

 

 

개봉 전부터 유명한 영화였다. 아카데미상 거의 모든 부분에 노미네이트되었다고 하고 (난 별로 동의가 되지 않았지만) 세기의 미남배우 브래드 피트가 나이를 넘나들며 그 외모에 걸맞은 연기를 불태운다고도 하고. 암튼 시끌벅적했다. 시간에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무엇보다도 "만약 누군가의 시간이 거꾸로 흐른다면?"이라는 이 영화의 가정 자체가 매혹적이었다.

그래서 비가 추적거리며 내릴듯 말듯 오락가락하던 13일의 금요일, 책읽고 토론하기로 모였다가 땡땡이나 치자는 언니들의 유혹에 주저없이 이 영화를 추천했다.

 

역시 시간은 매혹적인 소재였다. 80살 외모의 갓난쟁이로 태어난 벤자민 버튼이 나이가 들수록 한 해 한 해 젊어져가는 과정을 무리없이 소화한 분장기술의 승리에 감탄도 했고, 그렇게 거꾸로 젊어지는 브래드 피트의 눈부신 외모에 넋을 잃기도 했지만(브래드 피트가 잘생겼다는 걸 이번 영화에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ㅋ;;), 무엇보다 시간의 역주행이라는 소재로 더없이 효과적으로 보여지는 사랑의 유한성에 탄복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늙은 어린이 벤자민과 첫눈에 통한 데이지가 한 사람은 젊어지고(어려지고) 한 사람은 늙어가며(성숙해지며)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는 과정을 통해 "영원한 사랑"을 이야기한다고 읽을 수도 있다. 결국 어려지다 못해 갓난아이로 죽어가는 벤자민을 안고 있는 늙은 노파 데이지를 보며 시간도 어쩌지 못하는 "불멸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거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좀더 깊이 생각해 보면 벤자민과 데이지가 서로에 대해 가지고 있는 애틋한 마음이 통할 수 있었던 시기는 벤자민이 49살, 데이지가 43살이 되어 다시 만났을 때이다. 그들은 봄날처럼 짧지만 아름다운 그 시절을 만끽하고 아이를 낳는다. 그리고 다시 헤어진다.

더 이상 데이지와 딸 케롤라인 곁에 머무를 수 없다며 떠나는 벤자민을 원망했던 데이지도 10여년이 흐른 후 주름 가득한 노년기에 접어드는 자신을 눈부시도록 빛나는 청년의 외모가 되어 잠깐 찾아온 벤자민을 보고 "당신이 옳았다"고 인정한다.

사랑은, 아니 연애는 시절인연이 맞아야 가능하다. 그리고 그 인연의 순간은 화양연화다. 그러나 어리석은 우리들은 그걸 잘 모른다. 그래서 "지금이 아니라 나중에"라고 미루다가 인연을 놓치기도 하고, 이미 시절인연을 벗어난 인연을 붙잡고 놓지 않으며 집착하기도 한다. 결정적으로 시절인연을 만났을 때 이 순간이 유한하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해서, 아직도 시간이 많은 줄로만 알고(사랑은 영원하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사랑하고 있는 지금 충분히 사랑하지 못한다.

"영원한 사랑", "불멸의 사랑"은 없다. 그것을 깨닫고 인정할 때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의 사랑에 충실할 수 있고 충분히 후회 없이 사랑할 수 있다. 벤자민과 데이지의 만남과 헤어짐, 나이듦과 젊어짐의 교차는 사랑은 시절인연, 즉 타이밍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벤자민 버튼과 같은 사람은 영화 속에나 소설 속에나 존재한다. 그러나 벤자민과 데이지의 화양연화는 우리 모두에게 있다. 현재 사랑하고 있다면 충분히 후회없이 사랑하라. 이것이 이 영화가 주는 어쩌면 단순하고 어쩌면 식상하기까지 한 교훈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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