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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를 즐겨라

안샘 |2009.02.28 00:38
조회 189 |추천 0
 

    스트레스를 즐겨라  

적절한 수준으로 조절하면 건강에 오히려 이롭다

      요즘 경제 뉴스를 계속 읽다가는 스트레스로 머리에 쥐가 날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끔찍한 상태에 이르는 더 확실한 방법이 있다. 스트레스가 뇌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의학 전문지 기사를 읽으면 된다.   그런 글들은 스트레스가 신경세포(neuron)를 파괴해 지금부터 몇 년 또는 몇 십 년 안에 알츠하이머병이나 파킨슨 병이 남은 신경세포마저 쉽사리 파괴해 버린다고 말한다.   심장병이나 다른 스트레스 관련 질병으로 이미 사망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세계는 실직, 자산 감소, 파산, 끝 없는 두 개의 전쟁(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으로 확실한 불확실성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그런 암울한 시대가 단기적으로 끝날 듯하지도 않다. 따라서 스트레스의 부정적인 면은 알 만하다. 그렇다면 스트레스의 긍정적인 면은 어떤가? 그에 관한 이야기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지난 수년 동안 우리는 스트레스가 언제나,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믿었다. 가벼운 건망증부터 중증 치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문제의 원인이 스트레스라고 생각했다. 이처럼 뇌 속에서 일어나는 문제 외에 여러 다른 신체 질병도 스트레스 탓이라 했다. 심지어 자발적으로 스트레스가 심한 상황에 뛰어드는 사람에게 ‘아드레날린(사람을 흥분시키는 부신 호르몬) 중독자’라는 조롱 조의 별명도 붙였다. 물론 스트레스는 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 특히 스트레스 때문에 화를 내고 우울해지거나 위스키 다섯 잔을 들이켜 스트레스를 풀려 할 때가 그렇다.   그러나 그와 반대되는 상식적 명제는 무시됐다. 때로는 스트레스가 우리 몸에 이롭기도 하다는 사실이다. 기초심리학 교과서에 나오는 정설이다. 스펜서 래서스가 쓴 ‘심리학: 개념과 연관성(Psychology: Concepts and Connections)’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 “일부 스트레스는 건강에 이로우며, 우리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당면 문제에 집중하는 데 필수적이다.”   하지만 지난 몇 년 동안 과학계에서는 그런 이야기가 전혀 나오지 않았다. “일반인들은 늘 스트레스가 해롭다는 한결같은 이야기만 들었다”고 존스 홉킨스 대학의 발달심리학자 재닛 디피에트로는 말했다. “안타까운 일이다. 대다수 사람은 낮거나 중간 수준의 스트레스를 받을 때 일의 성과가 가장 좋기 때문이다.”   위험이나 불확실성 또는 변화에 맞서는 인체의 호르몬 작용을 ‘스트레스 반응(stress response)’이라고 한다. 스트레스 반응은 원시 시절 인간의 생존을 위해 생겨났다. 지금도 스트레스가 우리 삶을 압도하지 않도록 제어만 한다면 스트레스 반응은 우리의 생존에 도움이 된다.   단기적으로 스트레스 반응은 우리에게 정력적으로 활동할 힘을 준다.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을 감당해 내도록 우리 몸의 시스템을 활성화한다”고 캘리포니아대(UCLA)의 정신과 교수 주디스 올로프가 말했다. 장기적으로 스트레스는 우리가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일을 더 잘하도록 의욕을 북돋워준다.   약간의 스트레스는 우리의 ‘복원력(resilience)’을 강화해 나중의 더 많은 스트레스에 대비하게 해준다. 극심한 스트레스도 어느 정도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 듯하다. 그래서 일부 심리학자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만이 아니라 ‘외상 후 성장(PTG: 외상이나 사고의 결과로 나타난 긍정적인 삶의 변화)’으로 불리는 현상도 연구하기 시작했다. 올로프는 이렇게 설명했다. “생화학적, 과학적으로 스트레스가 나쁘다는 편견이 있다. 그러나 사례나 임상적인 증거를 보면 일부 사람에게는 스트레스가 오히려 이로웠다. 스트레스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을 좀 더 균형 잡힌 접근법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다. 그런 연구가 많이 실시돼야 한다.”     나쁜 스트레스쪽으로만 연구하면 우리는 바로 그 스트레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역설에 빠지게 된다. 과학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스트레스’를 물었을 때 대부분은 애초에 그런 스트레스는 없다고 말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스트레스가 이롭다고는 절대로 말하지 않는다”고 한 연구자가 말했다. 다른 과학자는 스트레스가 이로울지도 모르지만 그 정도가 미미하고, 단기적이며, 실험 쥐에게서나 보인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스트레스를 받으면 더욱 일을 잘하는 사람은 어떤 까닭일까? 예를 들어 혼란 속에 뛰어들어 질서를 바로잡는 일을 좋아하기 때문에 경찰이나 응급 전문의가 되는 사람들 말이다.   그런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거꾸로 이용하지 않는가? 그러나 연구자들은 그게 아니라 그런 사람들은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다고 대답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일을 더 잘한다’는 얘기는 헛소리”라고 피츠버그대 의과대학원의 심리신경면역학자이자 병리학자 겸 정신병학자인 브루스 라빈이 말했다. 의도적으로 스트레스를 찾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일을 더 잘한다고 믿는 사람 중 일부는 어린 시절 학대를 당했거나 태아 시절 아드레날린과 코르티졸(부신 피질에서 생기는 스테로이드 호르몬의 일종)에 과도하게 노출돼 지속적인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런 불행을 겪지 않았다 해도 그런 사람들은 “일부 심리학적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그렇다면 그것이 병리적인 현상일까? 스트레스를 받으면 일을 더 잘한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실제로 병에 걸린 걸까? 라빈은 잠시 생각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물론 그렇다. 그렇게 말할 수 있다.” 스트레스 연구의 개척자가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너무도 기가 막혀서 무덤 속에서 벌떡 일어날지 모른다.   한스 셀리에는 1930년대에 캐나다 몬트리올 대학에서 스트레스 과학의 기초를 닦았다. 그는 ‘도움이 되는’ 스트레스를 확신한 나머지 ‘유스트레스(eustress: 삶에 동기를 부여하는 ‘좋은’ 스트레스라는 의미)’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었다. 그는 스트레스를 ‘삶의 소금’으로 간주했다. 우리의 삶에서 변화는 불가피하기 때문에 변화를 걱정한다는 사실은 변화를 창의적으로 더욱 주의 깊게 사고한다는 현상의 이면일 뿐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런 창의적인 사고는 전전두피질(prefrontal cortex)이 잘 발달한 뇌에서만 가능하다. 따라서 스트레스가 우리를 인간답게 만들어주었다는 얘기다. 그것이 역설적으로 셀리에가 쥐를 대상으로 연구한 뒤 내린 결론이었다. 셀리에에게는 과학적인 첨단 실험 기술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결국 그게 행운이었다.   젊은 시절 그는 쥐에게 내분비 추출액(호르몬)을 주사하면 어떻게 되는지 연구했다. 그는 손재주가 없었다. 그래서 주사를 놓다가 쥐를 떨어뜨려 실험실 바닥에서 도망 다니는 쥐를 빗자루를 들고 쫓았다. 그의 쥐 거의 전부(심지어 무해하다고 추정되는 식염수를 주사한 쥐들도 포함)가 궤양, 부신 확장, 면역 장애 증상을 보였다.   그러나 셀리에는 이것을 실험의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고 무엇인가 새로운 발견이라고 판단했다. 사실 셀리에의 쥐들은 그가 주사한 화학물질에 반응한 게 아니었다. 쥐들은 주사바늘을 다루는 그의 서툰 손에 반응했다. 셀리에는 주사를 놓다가 쥐들을 떨어뜨리거나 이곳저곳을 찔러대거나 귀찮게 했다. 쥐들은 그것을 끔찍하게 싫어했다.   결국 셀리에는 주사를 잘 놓지 못해 쥐들에게 과도한 스트레스를 준 셈이다. 셀리에는 그런 쥐들이 보인 반응을 ‘일반 적응 증후군(general adaptation syndrome)’이라고 불렀다. 스트레스 반응이 애초에 발달한 이유, 즉 사느냐 죽느냐의 상황에서 생존에 도움을 주려고 스트레스 반응이 생겼다는 사실을 시사한 표현이었다.     쥐로서는 굶주린 야윈 고양이를 만나는 일보다 더 큰 스트레스 요인은 없다. 쥐가 그런 고양이를 만나면 쥐의 뇌는 위험을 인식하자마자 호르몬을 대량 분비한다. 처음에는 아드레날린, 그 다음은 코르티졸이다. 그러면 근육에 에너지를 모으는 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뇌의 여러 부위를 활성화해 일시적으로 특정 기억 기능을 향상하고 감각의 인지를 미세 조정한다.   이렇게 무장한 쥐는 고양이가 자신을 힘으로 압도하거나 지력으로 능가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탈출을 감행한다. 그러나 고양이도 마찬가지로 고대하던 먹잇감을 보면 스트레스 호르몬이 분비돼 뇌를 흥건히 적신다. 이런 화학물질의 연쇄반응을 우리는 ‘스트레스’라고 부른다. 쥐의 경우 자극은 대개 고양이나 손재주가 없는 과학자 같은 상대의 물리적 위협에 국한된다.   그러나 인간의 경우 거의 모든 것이 스트레스 반응을 촉발한다. 교통체증, 파티 준비, 실직, 심지어 취직도 맹수의 공격만큼이나 우리 뇌에 스트레스 호르몬을 많이 분비시킨다. 심지어 미래의 변화 가능성도 우리 뇌의 경보기를 울린다.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말했듯이 “우리는 생각한다. 고로 걱정한다.”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다. 우리 중 다수는 스트레스 호르몬의 스위치를 ‘켜기’로 젖혀 놓고는 그냥 그대로 두는 경향이 있다. 어느 시점이 되면 뇌의 신경세포들이 호르몬의 자극에 지쳐 긍정적인 효과가 부정적으로 바뀐다. 그 결과 셀리에의 쥐들이 당한 것과 똑같은 건강 문제가 발생한다. 신경세포가 오그라들어 서로 신호를 전달하지 않고, 학습과 기억 능력, 합리적인 사고에 관여하는 해마 부위와 전전두피질의 뇌조직이 위축된다.   “단발성의 경우 스트레스는 일부 사건을 더 잘 기억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록펠러 대학의 신경내분비학자 브루스 매큐언이 말했다. “그러나 만성적으로 스트레스가 지속될 경우 다른 것들을 기억하는 능력을 떨어뜨리고 정신적 유연성을 해친다.”   이런 만성적인 효과는 스트레스 요인이 사라지면 저절로 없어진다. 시험 준비를 하는 의과대학생들은 벼락치기 공부를 하는 동안 내측전전두피질(medial prefrontal cortex)이 수축되지만 시험이 끝나고 한 달 정도를 쉬면 정상 상태로 돌아간다. 그러나 우리는 스트레스가 심한 사건을 겪은 뒤 반드시 한 달간의 휴식을 취하지는 않는다.   또 충분히 쉰다 해도 우리는 그 시간을 또 다른 걱정(“시험은 끝났지만 점수가 어느 정도 나올까?”)을 하느라 허비한다. 그런 걱정은 원래의 스트레스 요인만큼이나 생화학적으로 우리 건강에 해롭다. 스트레스가 우울증·알츠하이머병과 관련이 있는 이유는 신경세포가 스트레스 호르몬에 수년 동안   노출되면 극도로 취약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살면서 끊임없이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는 현대 인간은 결국 우울증이나 치매에 걸릴 수밖에 없다는 말인가? 하지만 우리 대다수는 그런 병에 걸리지 않는다. 그 이유가 뭘까? 캘리포니아대(어바인) 심리학자 살바토레 매디는 1970년대와 80년대에 일리노이 벨 전화회사가 해체 위기에 처했을 때 그 직장에 다니던 직원 430명을 대상으로 연구를 했다.   직원 대다수가 심적으로 큰 고통을 당했다. 업무 성과가 형편없었고, 이혼하는 사람이 많았고, 심장마비·비만·뇌졸중에 걸린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직원 전체의 3분의 1은 아무 탈이 없었다. 그들은 건강을 잘 유지했고, 직장에서 살아남거나 해고당해도 곧바로 다른 일자리를 얻었다. 그런 사람들의 성장 환경이 평화롭고 안락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배경을 조사해본 결과 결코 그렇지 않았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직원 중 다수는 꽤 힘든 어린 시절을 겪었다. 학대나 정신적 외상은 아니라 해도 “아버지가 군인이라서 이사를 자주 다녔거나 부모가 알코올 중독자인 경우가 많았다”고 매디가 말했다. “그들은 그런 어린 시절을 겪으며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그러나 그들의 부모는 그들이 집안의 희망이며, 그들이 자랑스럽다고 말해주면서 그들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었다. 그들도 부모의 그런 생각을 받아들였다. 그런 요인이 그들을 강건하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어린 시절 받은 스트레스가 그들에게 오히려 이로운 영향을 끼쳤다는 뜻이다. 스트레스가 그들에게 어려움을 극복해 낼 어떤 힘을 주었다는 얘기다.     더욱 최근에는 스탠퍼드대의 로버트 사폴스키가 알파 메일(alpha males: 동물 집단의 우두머리 수컷, 사람으로 말하면 강한 이미지의 남성을 가리킨다)들을 대상으로 유사한 현상을 연구했다. 그는 “완전히 미친 듯이 날뛰는 알파 메일들”을 많이 봤다. 상대방을 공격해서 스트레스를 푸는 유형을 말한다.   그러나 그와는 다른 유형도 발견했다. 우두머리이면서도 점잖은 알파 메일들을 말한다. 이런 알파 메일은 싸움에 잘 휘말리지 않는다. 싸울 때는 승산이 확실한 싸움을 고른다. 그들도 성난 유형의 알파 메일만큼 지배욕이 강하고, 똑같은 스트레스 요인에 노출된다. 권력 투쟁, 구애의 좌절, 가끔씩 아랫것들을 질책해야 할 필요성 등이 그런 요인이다.   그러나 그들의 호르몬 수치는 오랫동안 높이 유지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스트레스로 의한 뇌 장애를 겪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사폴스키는 그들을 경관이 뛰어난 샌프란시스코 남쪽 빅서(Big Sur) 휴양지에서 온천물에 느긋하게 몸을 담근 ‘미니멀리스트 선사(禪師)’에 비유한다. 물론 농담이다.   사폴스키의 연구 대상은 인간이 아닌 개코원숭이였기 때문이다. 신경생물학 분야의 연구는 아직도 스트레스에 반응하는 방식의 개인적 차이를 거의 밝혀내지 못했다. 연구자들은 스트레스의 효과가 긍정에서 부정으로 변하는 전환점을 확인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전환점이 사람마다 다른 이유를 거의 알지 못한다. (그들이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는 이롭다고 말하기를 원치 않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라고 라빈이 말했다. “실제로 개개인마다 그 수준이 다르게 마련인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를 가려낼 방법이 없다.”) 따라서 이 분야의 연구는 개인마다 스트레스를 달리 경험하는 데도 불구하고 스트레스를 보편적인 현상으로 파악하는 경향을 띤다.   “만약 스트레스에 아주 유연하게 반응하는 쥐나 생쥐, 또는 실험접시에서 배양된 신경세포가 있을 경우 패턴을 망가뜨리는 골칫거리로 보는 연구자가 너무도 많다”고 사폴스키가 말했다. “이런 예외적인 사람의 긍정적인 사고방식과 태도를 어떻게 설명해내느냐가 현재 이 분야의 최대 과제다.”   매디의 연구가 보여주듯 이 설명의 많은 부분은 어린 시절의 경험에서 나온다. 사폴스키의 개코원숭이도 마찬가지일 가능성이 크다. 사폴스키는 어떤 동물을 난폭한 알파 메일보다는 ‘선사’ 같은 지배자로 만드는 요인 중 일부는 그 동물의 어린 시절이 어땠는지에 좌우된다고 생각한다.   다 큰 원숭이가 주변의 갈등과 긴장을 알아채면서도 침착을 유지한다면, 다시 말해 “불안을 가라앉히고 충동적 행동을 억제한다면” 그건 오래전 그의 어미가 그에게 보여준 행동일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어 새끼 원숭이가 어미에게서 몇 걸음 떨어지면 어미가 새끼를 자기 곁으로 데려오느냐 같은 요인들이 중요하다.   즉, 넘어져 다치더라도 혼자서 깨쳐나가도록 놔두는 한계점을 말한다. 사폴스키는 이렇게 말했다. “성격이 느긋해 새끼가 행여 다칠까 안달하지 않고 새끼에게 혼자서 시행착오를 통해 주변 환경을 탐구하도록 허용하는 어미를 둔 수컷은 도발 충동을 잘 억제하는 침착한 ‘선사’가 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어린이를 적응력이 뛰어나고 정서적으로 안정된 성인으로 커 나가게 하려면 적절히 통제된 약간의 스트레스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왜 어떤 사람은 스트레스에 유연하게 반응하고 더욱 일을 잘하느냐는 설명은 유전자에서도 찾아진다. 과학자들은 뇌에서 ‘행복 호르몬’이라 불리는 신경전달물질 세로토닌의 처리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발견했다. 일부 유전자는 과거에 정신적 외상을 겪었는지 여부에 따라 우울증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이 유전자는 일상적인 스트레스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그러나 앞으로 스트레스와 직접 관련이 있는 유전자가 확인될 가능성이 크다. 사폴스키는 이렇게 말했다. “그런 유전자가 수십 개 정도 발견되면 짝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 받은 뒤 완전히 우울증에 빠지는 사람과 그냥 한두 주 동안 가볍게 앓고 지나가는 사람을 미리 알아볼 수 있다고 확신한다.”   X, Y 염색체도 사람들이 스트레스에 반응하는 방식에 관여한다. 그러나 그 역할이 어느 정도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남성과 여성 모두 스트레스를 받으면 아드레날린과 코르티졸수치가 올라간다. 그러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의 행동은 성별에 따라 다르다. “여성은 애인이나 친구들에게 하소연할 가능성이 크며 그럴 경우 옥시토신(배려와 친교에서 활성화되는 ‘사랑의 호르몬’)이 분비돼 스트레스 반응을 억제한다”고 UCLA의 심리학자 셸리 테일러가 말했다.   “스트레스 요인이 생길 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면 초기의 호르몬 반응도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는 증거가 있다.” 스트레스 호르몬 반응이 없으면 뇌에 장기적인 해가 가해질 위험이 적다. 이는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그런데도 1990년대 중반까지 그런 사실이 스트레스 심리학자들의 레이더에 들어오지 않았다.   테일러는 그때까지 대다수 스트레스 연구는 동물이든 사람이든 거의 다 수컷과 남성을 상대로 실시됐다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유전자와 환경이 상호 영향을 미치는 모호한 영역인 자궁이 있다. 임신부가 받는 스트레스가 나중에 자녀의 발육에 해롭다는 연구 결과는 많다. 그러나 그 증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1998년 캐나다 퀘벡주를 휩쓴 진눈깨비 돌풍 사고를 이겨낸 약 150명의 임신부(일부는 최장 40일까지 전기 없이 생활해야 했다)를 대상으로 한 ‘프로젝트 아이스 스톰’ 연구를 보자. 지난해 말 연구자들은 그 여성들이 낳은 아이들의 만 5세 때 지능지수(IQ)와 언어 능력이 평균보다 낮았다고 보고했다.   돌풍과 그로 인해 임신부가 받은 스트레스가 “우리가 조사한 모든 발육 분야에서 자녀에게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고 연구자들은 말했다. 하지만 모든 임신부가 스트레스를 너무 겁낼 필요는 없다. 진눈깨비 돌풍은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마주치는 스트레스 요인과는 다르다. 그리고 이 연구의 대상이 된 여성들이 반드시 모든 여성을 대표하지도 않는다.   돌풍이 발생한 당시 퀘벡주에서 오도가도 못한 신세가 된 사람들은 형편이 어려운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그들의 자녀는 순전히 가난 때문에 5세의 나이에 지능지수와 언어 능력이 낮았을 가능성이 크다. 스트레스와 아동 발육에 관한 많은 연구는 이런 식의 결함이 있다고 존스 홉킨스의 디피에트로가 말했다.   아울러 “스트레스가 아기들에게 해롭지 않다는 연구에 자금이 지원된 경우가 거의 없다”고 그녀는 지적했다. 디피에트로 자신은 아주 드문 예외다. 2년 전 그녀는 임신기간의 중반 이후에 중간 수준의 스트레스를 받은 여성이 낳은 아기가 발육 면에서 평균 이상이라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언어 능력과 인지력 점수가 높았다.   곧 발표될 논문에서 그녀는 중간 수준의 스트레스를 받은 여성이 낳은 아기가 생후 2주가 지났을 때 스트레스를 전혀 받지 않은 여성들이 낳은 아기보다 신경전달 속도가 더 빠르다는 증거를 보여줄 예정이다(뇌가 더 성숙했다는 얘기다). 이런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그러나 디피에트로의 이론은 흥미롭다. 스트레스에 찌든 어머니의 ‘내부 환경’(태아가 감지하는 심장 박동, 혈압 등의 신호)은 계속 유동적이기 때문에 그런 끊임없는 변화가 태아의 뇌를 자극해 사고 능력을 촉진한다는 가설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많은 여성이 분주한 생활에서 흔히 부닥치는, 낮거나 중간 수준의 스트레스는 태아의 발육에 이로울 뿐 아니라 어쩌면 ‘필수적’일지 모른다고 디피에트로는 생각한다.     이 가설은 논란이 많다. 그러나 그의 주장이 옳다면 스트레스가 태아에게 영구히 피해를 준다는 이론이 복잡하게 뒤엉킬지 모른다. 스탠퍼드의 사폴스키는 스트레스 강의를 할 때면 결함 있는 신경세포에 관한 ‘침울한’ 연구를 이야기한다. 그중 일부는 본인이 직접 실시했다. 그러나 그의 강의는 낙관적으로 결론을 맺는다.   야생 동물을 관찰한 덕분이다. “우연히 어떤 개코원숭이가 웅덩이의 물을 보면서 반이 빈 게 아니라 반이 찼다고 생각한다면 인간인 우리는 당연히 그럴 수 있어야 합니다”라고 그는 한 강의에서 말했다. 우리가 스트레스를 잘 다룰 능력을 갖추고 태어나진 않았다 해도 “우리 자신은 스스로 달라질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우리 인간은 전후 맥락을 고려해 올바른 판단을 할 정도로 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우리 자신이 달라질까? ‘선사’ 개코원숭이와 맞먹는 인간이 그 출발점인지 모른다. 바로 불교 승려를 말한다. 그들의 정신적 안정과 마음의 평정은 전혀 신비로운 게 아니라 생물학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경지다. 뇌는 새로운 세포를 만들어내서 변화할 수 있다. 명상이 이 과정을 촉진하는 듯하다.   명상을 수년 동안 수련한 승려들은 학습·행복감과 관련 있는 뇌 부위의 활동이 활발하다. “우리의 마음은 생각보다 훨씬 유연하다”고 매사추세츠대 의과대학원 ‘의학, 건강, 사회 마음챙김 센터(Center for Mindfulness in Medicine)’의 사키 산토렐리 소장이 말했다. 이곳에서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명상이 스트레스 극복에 도움을 준다. 심지어 명상이 뇌에 이미 가해진 손상을 복구하거나 보충할 가능성도 크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승려가 되기를 원하거나 될 수도 없다. 게다가 그런 명상 훈련소에서 8주를 보낼 만큼 여유가 있는 사람도 많지 않다. 그러나 스트레스를 제어하는 방법을 쉽게 배울 길이 있다. 이 기사를 쓰려고 윌리엄스 라이프스킬스 프로그램에 등록했다. 듀크대 정신과 교수 레드퍼드 윌리엄스의 연구에 기초한 ‘축소판’ 인지 개조 프로그램이다.   이길 수 있는 싸움을 선택하는 ‘선사’ 개코원숭이처럼 인생을 살도록 가르치는 과정으로 하루 반 만에 끝난다. 그 과정을 시작하기 전에 윌리엄스는 “득도는 아니라 해도 분명히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 과정에서 갈등을 분석하는 기준을 배웠다. 이것이 내게 얼마나 중요한가? 내가 화를 내야 하나? 문제 해결에서 내가 무언가 할 수 있나? 그런 고생을 할 가치가 있나? 등등. 결국 윌리엄스가 옳았다. 그 과정을 마친 뒤 마음이 훨씬 차분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지만 어떻게 보면 내가 의지로 그렇게 느꼈을지도 모른다. 윌리엄스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그의 프로그램이 효과가 있기를 원했다. 바로 이것이 모든 스트레스 관리 전술의 문제점이다.   그런 전술이 실제로 효과가 있기를 바라야 하고 그것을 위해 기꺼이 전념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으면 실패한다. 그러나 그렇게 자신을 채찍질하면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게 된다. 운동이 어떤 사람에게는 스트레스를 줄여주고 어떤 사람에게는 더욱 스트레스를 받게 만드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사폴스키가 스트레스에 찌들어도 명상을 할 생각은 없다고 말한 이유도 그것이다.   그는 “하루 30분 명상을 해야 한다면 나는 뇌졸중에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방법이 잘못된 마음 상태에서 행해지면 오히려 스트레스를 가중시킨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동물 실험이 있다. 한 유명한 실험에서 과학자들은 작은 우리에 쥐 두 마리를 넣어 각각 쳇바퀴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했다.   첫 번째 쥐는 원할 때마다 운동을 하도록 했다. 두 번째 쥐의 쳇바퀴는 첫 번째 쥐가 운동을 하면 같이 돌 수밖에 없도록 연결해 놓았다. 운동을 하기 싫어도 해야 한다는 의미다. 대개 운동은 명상처럼 스트레스를 줄여주고 뇌 신경세포의 성장을 촉진한다. 첫 번째 쥐의 뇌는 새로운 신경세포가 많이 생겼다.     그러나 두 번째 쥐는 뇌 세포를 많이 잃었다. 뇌에 당연히 이로워야 할 운동을 했지만 한 가지 결정적인 요인이 없었다. 스스로 통제하는 자유였다. 자신이 원하는 ‘운동’ 일정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것을 운동이라고 인식하지 못했다. 단지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로서 운동을 경험했을 뿐이었다.   이 실험은 스트레스에 관한 까다로운 문제를 제기한다. 심리학자들은 오랫동안 인간의 스트레스 처리에서 가장 큰 요인 중 하나가 우리가 삶에서 얼마나 통제력을 갖느냐는 점이라는 사실을 잘 알았다. 대개 우리는 스스로를 통제한다고 느낄 때는 스트레스를 극복한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고 느낄 때는 굴복하고 만다.   명상을 아무리 많이 하고, 사고방식을 아무리 개조해도 우리 삶의 일부 현실을 바꿀 수는 없다. 주식시장이 붕괴하고, 일자리가 사라지고, 세상이 지옥으로 치닫는 지금, 너무나 많은 사람이 앞 실험의 두 번째 쥐처럼 느낄지 모른다. 우리가 무엇 하나 마음대로 제어한다고 생각하기가 너무도 힘들다는 얘기다.   그러나 스트레스 과학은 여기서도 어느 정도의 희망을 준다. 셀리에로 돌아가보자. 그는 대공황 도중에 자신의 이론을 발표했다. 어느 시대보다도 스트레스가 심했고 생존하려면 창의력이 반드시 필요했던 시기였다. 그 공황은 오래전에 끝났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공황이라 할 만한 상황으로 진입해 간다.   거기서 헤쳐 나오려면 더욱 창의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우리는 우리의 어떤 부분을 스스로 통제할 만한지 알아내고 그에 신중히 전념해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우리에겐 그런 능력을 갖춘 뇌가 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게 뻔하다. 그러나 스트레스가 반드시 나쁘지 않다는 점을 명심하자.   출저: NEWSWEEK 한글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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