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건너 로도스라는 이름의 섬이 있다. 사람들은 그 섬을 저주받은 섬, 혹은 마경(魔境)이라고도 부르는 듯 하지만 그건 어쨋든 상관없다.
한 남자가 있다. 오로지 정의를 위해, 보호받지 못하고 핍박받는 사람들을 위해서 검을 뽑는 이가 있다. 그의 이름은 자유기사 판. 그리고 그의 연인인 하이엘프 디드리트. 아아. 스스로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전통한 왕좌(천년왕국 아라니아)도 마다하는 그를 누가 감히 수이 여기랴. 왕들의 친구요, 동맹자요, 조력자인 그야말로 진정한 자유기사일지니.
로도스 최강국이라는 플레임의 영광을 함께 이루고 로도스 곳곳의 분쟁마다 중재에 나선다. 그를 칭송하는 이는 많지만 그를 따르는 이는 수많은 시련을 함께한 소수의 동료들 뿐. 오직 마법의 검과 갑옷, 그리고 마법보다 강한 신념만으로 끝내 정의를 이룬다.
이 감동넘치는 전기의 마지막 장을 넘기고서야 비로소 나는 해방되었다. 그리고 천천히 생각한다.
한 섬나라가 있다. 예로부터 전쟁이 끊이질 않았고 세계를 뒤흔든 큰 전쟁을 일으켰으며 결국 거대한 불의 저주를 받은 나라가 있다.
세계 최강국인 미국을 등에 업고 세계 각지에 이름을 떨치는 나라. 나름의 영광된 과거 대일본제국 건설의 역사가 있으며 국력의 기반은 막대한 부와 기술력이다. 강군건설도 마의 무기, 핵의 보유도 마음만 먹으면 가능하지만 스스로 정한 법(평화헌법)에 따라 마다하고 있다. (요새는 슬슬 물렁해지지만, 소설판 로도스도 전기는 80년대 작품이다! 90년대 운운하는 이들은 애니만 본겐가. 왠만하면 원작도 좀 읽어라.)
문득 생각나는 [침묵의 함대]. (Silent service. 88년작. 만화원작이다. 애니도 나왔지만.)
이 녀석도 마찬가지다. 목적은 오로지 세계의 진정한 평화와 정의의 실현. 기성세력의 아성을 오로지 실력만으로 무너뜨리며 -독고다이 무적의 잠수함- 결국엔 뉴욕 UN총회장 앞에서 그를 추격하던 세계 각국의 핵잠수함 장들의 지지를 얻어낸다. 자유의 여신상 앞에서 그의 신념이 승리한 것이다. 이는 암흑의 섬 마모에서의 승전 직후 파괴의 여신 화라리스의 신전 앞에서 왕들에 의해 판이 로도스의 성기사로 추앙받는 장면과 자연스레 오버랩된다.
일본인들의 판타지인가...전면에 나서지는 않지만(나설 수가 없지. 한 짓이 있으니) 결국 모두가 인정하는 실력자. 그 기반은 강대한 실력(무력-부)과 인망.
그러면서도 자조적인 면이 보인다. 사무라이들의 작은 섬나라에서 대동아제국이 된 일본과 - 마물들이 설치는 암흑의 섬에서 로도스를 전란으로 몰고간 제국 마모. 하지만 혹독한 지배와 수탈만을 일삼고 점령지-식민지의 공존과 번영을 도외시했기에 결국 국력이 급성장한 미국-플레임의 군사력에 밀려 본토로 쫓겨나고 패망하게 된다. 아아, 아쉽다. 진작에 좀 잘할걸.
하지만 황궁과 신사를 지키겠다며 총옥쇄를 부르짖은 일본과 달리 선황제 베르도의 옥좌와 암흑신 화라리스의 신전을 버리고 저 드넓은 미지의 바다를 향해 선단을 띄운다...두 번의 핵 때문일까. 옥쇄든 돌쇄든, 부질없는 저항의 끝은 결국 파괴된 잔해에 불과함을 역사에서 배웠을테니.
[娥鱗]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