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주권운동은 왜 하는거지? [원문링크]
글쓴이-스나이퍼 / 등록일-2008.03.18 10:47
시민주권운동...왜 하는거지요?
제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그래서 제 스스로에게 답을 해 봅니다.
토론사이트가 열리면 본격적으로 시민사회의 태동과 그 역사, 그리고 대한민국에서의 시민사회 발전을 공부하겠지만요. 간략하게 최근의 현안 몇가지만 갖고 시민주권운동을 생각해봅니다.
시민주권운동은 권력 통제를 위한 것
어쨌든 간략하게만 언급하자면..시민주권운동의 처음과 끝은 권력의 통제에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래서 근대입헌주의 국가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양대 원리로 삼아 권력기관 간의 상호통제 원리인 '권력분립론'을 펴고 있습니다.
다만 권력분립론은 직접민주주의가 아닌 간접민주주의를 기본원리로 삼고 있다는 측면에서 과연 오늘날 현실에서도 타당한 것이냐? 혹은 흠결은 없느냐? 보완해야 할 점은 무엇이냐?를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간접민주주의(대의제)를 시작으로 볼세비키혁명에 의한 직접민주주의(인민독재)를 거쳐 대의제를 보완한 '정당민주주의의 강화'로 변화합니다.(볼세비키식의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회의로 오늘날 헌법학자들 다수는 자유민주주의 헌법상 원칙은 간접민주주의라고 강변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다시 자세하게 얘기하죠.)
이 부분에서 정당민주주의를 간단하게 언급하겠습니다. '정당민주주의'는 대의제의 흠결을 보완하기 위한 제도입니다. 대의제와 정당민주주의는 같은 개념이 아닙니다.
대의제는 쉽게 말해서 국회의원들이 시민들의 의사를 대신한다는 논리입니다. 모든 시민들이 정책결정에 관여할 수 없다는 논리, 즉 '시민들의 참여가 어렵다'는 현실인식을 바탕에 깔고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인터넷 문화가 활짝 편 오늘날에도 과연 타당한 논거인가? 전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제는 얼마든지 직접민주주의에 가깝게 갈 수 있는 기술혁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정말 할 말 많습니다만 일단 넘어갑니다)
하여간 정당민주주의를 강화한 것은 대의제의 흠결을 보완하자는 것인데요. 어떤 흠결이냐? 시민들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의회독재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투표로 선출된 이후 시민들의 의사를 무시하는 정책을 남발했을 경우 이를 심판할려면 다음 선거를 기다려야 한다는 맹점이 나타난거죠.
그런데 정당의 민주화가 담보된다면? 대의제의 흠결을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다는 것이죠. 시민들이 정당에 참여하여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면 의회독재를 제어할 수 있다는 겁니다. 열린우리당의 실험은 헌법적으로 이런 가치를 갖고 있습니다. 시민들이 직접 의회권력을 통제할 수 있는 제도가 바로 정당민주주의였고, 열린우리당은 대한민국 헌정 사상 이를 처음 시도한 정당이었습니다.
최근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공천을 놓고 잡음이 일고 있지요? 너무 당연하지 않습니까? 정당민주주의가 형식적으로나마 가동되었던 열린우리당 초창기를 보세요. 각 지역마다 경선을 하니까 잡음이 있을리 없었죠. 시민들이 주권자로서 권리를 행사할 수 있으면 왜 공천잡음이 생기겠습니까? 공천심사위원회는 어떤 민주적 정당성을 가졌기에 그런 무시무시한 권력을 휘두를 수 있을까요? 그야말로 포퓰리즘 아닙니까? 절차적 정당성은 물론이고 민주적 정당성은 애시당초 존재하지 않았고, 그러니 공천 결과가 발표되면 여기저기서 불복할 수밖에요. 하여간 한국 헌정사적으로 대의제를 보완하는 정당민주주의를 시도한, 그래서 대단한 가치를 지닌 열린우리당을 통째로 말아드신 분들은 민주주의와 하등 상관이 없는 분들임을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여간 직접민주주의와 간접민주주의, 대의제와 정당민주주의 등에 관해서도 나중에 토론사이트에서 본격적으로 논의하시죠.
시민주권운동의 목표는 민주주의의 달성
시민주권운동의 목표는 민주주의라는 가치의 달성입니다. 너무도 뻔한 말이라서 누구가가 말하는 민주주의, 그 민주주의를 공부하고, 확산해나가는 운동이 시민주권운동이 아닐까 합니다.
그럼 민주주의는 무얼 지향하는가? 인간의 자유와 평등, 평화라는 가치를 지향하는 원리입니다. '자유'는 또 무엇일까요? 내가 누구로부터 지배당하지 않는 것이 자유입니다. 서로가 지배를 당하지 않는다면 지배하는 사람도 존재하지 않겠지요. 결국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지 않는 것, 지배당하지 않는 것이 자유가 아닐까 합니다.(이건 그냥 제가 생각해낸 게 아니고 노무현 대통령님께서 자신의 최고 고민이 누구를 지배하지도 않고, 지배당하지도 않는 삶이라고 말씀한 적 있었습니다. 여기서 배운 것입니다)
지금 티베트에서 벌어지고 있는 중국의 탄압, 그리고 티베트인들의 저항은 바로 지배하는 자와 지배당하는 자 간의 투쟁입니다. 자유를 놓고 벌이는 투쟁입니다. 인간 대 인간, 인간 대 사회, 사회 대 사회, 인간 대 국가, 국가 대 국가, 이 모든 관계에서 인류의 역사는 자유를 쟁취하려는 자, 사회, 혹은 국가와 이를 억압하려는 세력 간의 투쟁의 역사입니다. 결국 지배와 피지배가 존재하는 한 평화는 불가능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남북관계, 북미관계, 한미관계 등 외교질서도, 직장에서의 상사와 부하의 관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 등 모든 관계가 마찬가지입니다)
그럼 '평등'은 무엇일까? 우리나라에서는 경제라는 관점으로만 평등을 말하지만, 실상 진짜 평등은 인격적인 평등입니다. 인격적으로 평등하기 위해서 기본적인 물적 토대가 필요하고, 그래서 경제적인 측면이 부각될 뿐이죠. 어쨌든 인간이 인간으로서 타인과 평등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생활영위능력이 필요합니다. 이게 비전2030의 사회투자국가론의 철학적 바탕이 아닌가 합니다.
사실 이 부분에서 사회주의 이론과는 확연한 차이가 드러납니다. (평등이라는 개념을 맑스나 레닌처럼 도식화해버리면 시장경제를 부정할 수밖에 없는데요. 시장경제는 공정한 경쟁이라는 전제가 가능하다면 가장 민주적인 제도가 아닌가 합니다. 시장이 권력화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는 이를 민나중에 얘기합시다)
하여간 평등이라는 개념은 자유를 위한 전제조건이기도 합니다.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지 않고, 지배당하지 않는 자유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평등이라는 가치가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간단하게 정리해봅니다.
- 시민주권운동의 목표 : 민주주의 달성
- 민주주의가 지향하는 가치 : 자유, 평등, 평화
- 자유 : 지배와 피지배 관계의 해소
- 평등 : 자유를 달성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서의 지배와 피지배 관계의 해소
- 평화 : 갈등관계의 해소
결국 시민주권운동의 시작과 끝은 '권력에 대한 견제 혹은 제어'에 있습니다.
새롭게 등장한 권력, 시장과 언론
그런데 현대로 넘어오면서 새로운 권력이 나타납니다. 근대입헌국가 단계에서는 왕권 혹은 독재권력, 그리고 의회권력과 사법권에 대한 견제와 균형이 과제였습니다. 그래서 '권력분립론, 즉 3권분립론'이 지고지순의 진리처럼 떠받을여졌지요. 하지만, 현대로 넘어오면서 새로운 권력이 등장하는 것이죠.
바로 '시장과 언론'입니다.(이거 나오면 진짜 길어지는데 ㅡ.,ㅡ...정말 짧게만)
어찌됐든 전통적인 권력, 즉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행정권과 입법권, 사법권은 상호 견제와 균형이라는 원리가 작동하고 있으며, 적어도 민주적 정당성은 확보하고 있습니다.(물론 사법권의 민주적 정당성은 별론으로 합니다. 앞으로 논해야 할 과제입니다)
그런데 '시장과 언론'은 아무런 민주적 정당성도 없이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죠. 특히 시장의 경우 19세기 이후 최근까지 권력의 통제 아래에 있었습니다. 적어도 자신들의 권력을 함부로 사용할 수는 없었습니다. 자신들보다 더 강력한 권력이 존재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정경유착의 형태로 권력을 향유하는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시장은 독자적인 권력의 행사자로 지위가 격상되었습니다. 오래전에 노무현 대통령께서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말씀하신 바가 이를 의미하는 게 아닌가 합니다.
하여간 시장의 권력화에 대해서도 여기서는 길게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시민주권운동을 하는 이유에 대한 전반적인 맥락을 살펴보자는 취지로 이 글을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상을 지배하는 언론
다시 자유로 돌아갑니다. 권력통제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인간의 자유와 평등, 평화를 획득하기 위해서입니다. 자유는 누구를 지배하지도 않고, 지배당하지도 않는 것을 말한다고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이러한 인간의 자유를 가장 억압하는 기제가 언론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자유롭다는 것은 무엇으로부터 자유로운 걸까요? 지배당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사실 이 부분은 약간은 철학적인 물음이기도 한데요. 왜냐하면 나라는 인간의 존재에 대한 탐구영역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또 한편 알 수 있는 점은 지극히 개인적인 철학의 문제가 결코 집단과 동떨어진 개인의 고민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헌법을 보면 다양한 자유권이 나옵니다. 사상의 자유, 학문의 자유, 표현의 자유, 집회 결사의 자유, 신체의 자유 등등등....
근대입헌국가는 바로 이러한 자유를 획득하기 위한 투쟁의 역사였고, 이를 제도화하는 역사였습니다. 이것을 일컬어 바로 '진보'라고 하는 것이죠. 하여간 인간의 자유가 확대되어 가는 것이 진보입니다.
그런데 왜 언론이냐? 인간의 자유를 대충 훌어보시면 아시겠지만 크게는 '행동'과 '생각'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언론은 인간의 생각을 억압하는 권력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무슨 소리냐? (이거 제대로 말씀드릴려면 내용이 너무 길어질거 같아서 또 줄여서 말씀드립니다 ㅜ.ㅜ)
인간이 어떤 행동을 하는 것, 즉 정치적이든 경제적이든 문화적이든, 자신의 생각을 '행동'합니다. 이를 일컬어 실천이라고 하는데요. 실천에 이르기 위해서는 '생각'이라는 단계를 무조건 지나가야 합니다. 어떤 현상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정립하고, 거기에 걸맞게 실천으로 나갈려면 말이죠.
그런데 우리나라 언론을 보십시요. 온갖 왜곡된 사실, 왜곡된 주장을 '진실'처럼 포장해서 유포하고 있습니다. 이런 언론이 독과점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죠. 시민들은 이런 환경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과연 올바른 주장이 나오고, 올바른 여론형성이 가능이나 하겠습니까?
더욱 중요한 것은 '자유'가 박탈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생각의 자유'가 박탈당하고 언론이 유포하는 생각에 지배당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 시민들의 처지입니다.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언론이 단순히 사실의 왜곡과 여론을 호도하는 주장만으로 시민들의 생각, 사고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언론에게도 사상이 있습니다. 2007년 대선에서도 막강하게 위력을 발휘한 사상이 있습니다. 그냥 대충 해서 시민들의 사고를 억압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렇게 허수룩하지 않습니다.
이들의 사상은 무엇인가? 노무현 대통령님을 한번도 인정하지 않았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사농공상이 따로 있다는 식의 계급주의 사상, 그리고 남북관계에서 볼 수 있듯이 패권주의 사상(경제적인 측면에서 성장 후 분배라는 논리도 패권주의에 뿌리가 있다고 봅니다), 조선시대 중화사상으로부터 이어져 온 친미사대주의 사상 등, 이들의 확고한 기반이 있습니다.(좀 더 디테일한 분석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적었음을 양해바랍니다)
시민주권운동의 출발은 사상을 세우는 일부터
일단 저의 결론입니다. 시민주권운동의 영역은 대단히 넓습니다. 따라서 그 시작은 우리의 사상을 확고하게 세우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사상을 세우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대한민국의 사상을 지배하고 있는 언론과의 투쟁은 불가피하고, 우리가 서야 할 최전선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작업중인 민주주의2.0 사이트와 관련해서 말씀을 드리자면, 전략적인 측면에서 이 사이트의 최종 목적지는 대안언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사상을 세우고(집현전 역할의 민주주의2.0 사이트), 그 사상을 축적하고 기록하여(규장각과 같은 민주주의2.0 사이트), 이를 널리 전파하고 확산해야 합니다(대안언론).
오늘 말씀드린 내용은 이전의 전통적인 민주주의론을 업그레이드 한, 노무현 대통령께서 쓰시고 계실지 모르는 '새로운 민주주의론', 혹은 '참여민주주의론' 의 총론에 해당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새로운 사상의 명칭은 '참여민주주의론'으로, 그 중심세력은 마케터님이 예전에 제안한 바 있는 '시민주권자'로 명명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사상은 '지배하는 사상'이 아니라 '다른 사상을 관용하는 포용의 사상'이 되었으면 합니다. 포용의 사상이 널리 퍼지면 그것 자체로 세상을 지배한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다른 사상을 관용하는 한 지배하는 사상은 되지 않을 것이며, 설령 지배하는 사상이 된다면 그것은 곧 교조주의화를 의미하여 역사적으로 퇴행의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오늘 글이 총론에 해당한다면 이제 각론으로 들어가야겠지요? 그 각론의 출발점은 '시민계급의 형성과정, 그리고 한국사회에서의 시민사회에 대한 고찰'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출처 : http://cafe.daum.net/taichi/Rqy/3720?docid=KHh|Rqy|3720|20090223200009&q=%B3%EB%B9%AB%C7%F6%20%B1%DB&srchid=CCBKHh|Rqy|3720|20090223200009
원본 : http://www.knowhow.or.kr/app/bbs/view?meta_id=bestview&list_op=YTo5OntpOjA7czo1OiJsc3RvcCI7aToxO3M6MTc6ImJic19saXN0X2Jlc3R2aWV3IjtpOjI7czowOiIiO2k6MztpOjA7aTo0O3M6MjoiMTUiO2k6NTtzOjI6IjEwIjtzOjExOiJjYXRlZ29yeV9pZCI7YjowO3M6Nzoic3JjaGNhdCI7czo1OiJ0aXRsZSI7czo3OiJzcmNoY29uIjtzOjM5OiLsi5zrr7zso7zqtozsmrTrj5nsnYAg7JmcIO2VmOuKlOqxsOyngD8iO30%3D&id=d12a406aa4b5aa8d07a5c259
(시민주권운동은 왜 하는거지? 글쓴이-스나이퍼 / 등록일-2008.03.18 10:47 - 원문을 찾을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