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으로 북카페라는 곳에 갔던 것은 2006년 어느 여름,
짧은 연애를 막 끝내고 난 뒤 허전한 마음을 가눌 길 없어서였다.
물론,
처음부터 작정하고 간 것은 아니었다.
그날은 마침 휴일이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ex 연인은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일방적인 이별통보에 여전히 미련을 버릴 수 없었던 나는 우연히라도 그를 보고 싶었다.
그래서 회사 주변을 어슬렁거렸는데 휴일 오후에 혹시나 홍대 근처까지 점심을 먹으러 나오진 않을까, 하는 말도 안되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름의 초입이었던가, 쨍쨍하게 쏟아지던 햇살과
지글지글 올라오던 땅의 열기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어찌되었든,
그렇게 홍대 전철역 근처에서 서성이던 나는
마침내 더위를 참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대로 아무곳이나 불쑥 들어섰고
바로 그날이 나의 북카페 출입기의 첫날이 되고 말았다.
'잔디와 소나무'
깔끔한 분위기에 너무 시끄럽지도, 조용하지도 않은,
그러나 구비하고 있는 책이 얼마 되지 않아 평소 생각하던 북카페의 이미지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곳.
몇권의 책을 마치 인테리어 소품처럼 구비한 커피숍의 느낌이 더 강하다.
원한다면 인터넷을 이용할 수도 있고 족욕도 가능하다.
당시 나는 손에 잡히는 아무 책을 건성으로 훑어보다가 더운 기운이 가시자마자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었다.
그리고나선
한동안
북카페에 갈 일이 없었다. 안타깝지만 그때의 기억 덕분에
나에게 있어 북카페는 내 방 책장보다 못하다는 인식이 강하게 남았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좀 더 흐르고 새로운 연애가 시작될 무렵.
두번째 북카페 방문도 역시 작정을 하고 찾은 것은 아니었다.
겨울이었고,
어쩌다 애매한 관계로 만나고 있던 회사의 남자동료(랄까, 후배랄까, 동생이랄까.. 암튼 지금의 남자친구. ^^)와 함께
종로바닥을 헤매고 있었고,
너무 추웠다.
그러다 마침 우리의 눈에 띠게 된 곳이 그곳이었다.
종로 '나무그늘'
북카페라기엔 역시나 좀 미적지근한,
가게 한켠 벽에 듬성듬성 책과 잡지들이 어지러이 꽂혀있고
책을 읽는 사람보단 족욕을 하거나 여느 카페와 마찬가지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이 더 흔한.
그런 곳.
그래도 어쩐지 창가에 놓여진 높다란 bar의자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게 좋아서
그후에도 혼자 두어번 더 들렀었다.
그리고나서 언제부터인가,
북카페를 드나드는 것이 마치 유행처럼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홍대의 괜찮다는 북카페에 대한 기사들과
북카페를 즐겨찾는다며 사진을 올리는 블로거들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아아...
나름 트렌디하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는 나인데.
이거 정말 뒷북도 한참 뒷북이지만,
나도 이제서야 갔다왔다.
홍대 북카페.
연말이고 일도 별로 없고 한가한 시간 썩히긴 아까워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꽁꽁 싸매고 다녀온 나의 북카페 비교체험.
홍대의 '창 밖을 봐, 바람이 불고 있어. 하루는 동쪽에서 하루는 서쪽에서' (맞냐?) 대 '작업실' (단촐하군!)
1. 작업실
'홍대 북카페'라는 키워드를 검색하니 제법 많은 북카페들이 검색되었다.
원래는 그중에서 '창 밖을 봐....'가 마음에 들었지만,
지리에 그다지 밝지 않은 탓에 '디자인뮤지엄카페 aA 맞은편'이라는 그닥 친절하지 않은 한줄 설명으론
도.저.히 찾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해서 두번째로 간택을 받은 곳이 바로 여기, '작업실'.
뭐 이곳 역시 주차장 골목 조폭떡볶이 오른쪽 골목.. 어쩌고 하는 설명만으론 과연? 하는 미덥잖음이 먼저 들었지만
지난 겨울 홍대 길바닥에서 방황하다가 대충 누군가가 손가락질로 '저기가 유명한 조폭떡볶이잖아~! 꺄아~~' 하던
가물가물한 기억을 되살리며 무작정 나와버렸다. ㅡ.ㅡ,,
'조폭떡볶이는 포장마차 트럭이었다.'는 기억으로 예상보다는 수월하게 '작업실'을 찾을 수 있었다.
(긴가민가하며 무턱대고 걸었던 것이 잘도 얻어 걸렸다고 볼 수 있겠다.. ㅡ.ㅡ,,)
내부는 생각보다 작고 아늑했다.
그리고 나름 혼자서만 놀라웠던 사실은
꽤 오래 전, 어느 잡지에선가 뱅글뱅글 달팽이집 같은 책장을 보고 부러워했었는데
그게 바로 이곳에 있다는 것이었다 (사진만 보고 생각했던 것보다 실제 책장은 작은 편이었다.)
오렌지빛 조명과 겨울 느낌이 물씬한 재즈가 흐르고
제법 많은 양의 책들이 꽂혀있었고 신간도 몇 권 정도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대부분 사람들은 혼자 작업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혹 둘이 와서도 각자의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덩달아 나도 차분하게 앉아 페퍼민트 차를 연신 마시며 책을 읽고 집중을 해서 작업을 할 수 있었다.
카페 이름답게 나에게 딱! 맞춘 작업실을 찾아낸 기분이었다.
2. 창 밖을 봐. 바람이 불고 있어 하루는 동쪽으로 하루는 서쪽으로
이 곳은 기필코 가보고 싶었다. (저 좌식으로 되어있는 테이블 탓이다)
북카페 탐방 두 번째 날.
나는 든든한 야후거기! 에서 좀 더 자세히 설명된 것을 찾았고
단 하나 알고 있는 '삼거리 포차 맞은편 세븐일레븐 끼고 골목'만 믿어보기로 했다.
작업실을 찾던 날보다 더 이른 시간에 서둘러 나왔는데 날은 더 추웠다.
카페는,
많지도 않은 골목을 여기저기 후비적거리고 다니다 울먹이기 일보직전에야 겨우 찾을 수 있었다.
그러고보니 그 설명은 오래된 것이었는지 세븐일레븐 골목.. 이후론 하나도 맞는게 없었다. ㅡ.ㅡ,,
아무튼,
낙엽이 떨어진 바깥 테라스의 탁자들을 외면하고(추워, 춥다구!) 들어가니
1층엔 여러가지 앙증스런 소품들이 장식되어 있고(판매용이랬다) 탁자가 두개 정도 놓여있었다.
주저없이 2층으로 올라가니 내가 바라던 좌식 탁자들이 놓여있었고 아직 이른 오후의 햇살이 창가로 스며들고 있었다.
사방에 두서없이 꽂혀있는 제법 많은 양의 책들과 널직한 공간도 흐뭇했다.
그러나, 흐뭇한 마음은 여기까지.
구석진 자리에 앉아 나는 작업노트부터 펼쳤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도무지 집중불가.
나의 뒤를 이어 두 커플의 손님이 더 들어오고 나서는 난 아예 작업을 포기하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클래식 선곡은 좋았지만 2층의 음악소리는 좀 작아서 오히려 자꾸 신경써서 집중하게 만들었고
손님들은 보통의 카페에서와 마찬가지로 맘껏 떠들고 있었다.
(내가 들어가서부터 나올때까지 무려 3시간동안 자기의 애기 이야기만 끝도 없이 늘어놓던 여자!!!)
널직하게 탁 트인 공간은 오히려 고요한 집중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했다.
또한 결정적으로!! 페퍼민트 차 맛이 작업실보다 못했다! (두둥!!)
밖의 추위 때문에 고민하던 나는 결국 그래도 안락한 공간을 선택하기로 마음 먹고 작업실로 향할 수 밖에 없었다.
개개인의 취향이 다르고
함께하는 이가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친구나 연인과 도란도란 책도 읽고 수다도 떨고 그런 것을 좋아한다면
볕이 좋은 따뜻한 날 <창 밖...>을,
혼자 조용히 사색하거나 책을 읽거나 작업을 할 요량이라면
<작업실>을 찾는 것이 바람직한 선택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작업실에 한표를 던지겠다.
아무래도 나의 취향과 성향에는 그곳이 더 잘 맞는듯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