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문도는 총 면적 12㎢에 인구 약 1,000여 명으로서 동도(東島), 서도(西島), 고도(古島)의 3개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3개 섬 중 여객선 선착장도 있는 핵심적 지역은 고도로, 절경의 불탄봉을 안은 섬은 고도와 삼호교로 연결된 서도다.
선착장에서 서도의 불탄봉~보로봉 능선을 바라보면 한심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해발 195m인 데다 눈앞에 보이는 산세는 저기 내륙의 별 이름도 없는 무명산의 변두리 산자락만도 못하다. 그러나 실제 올라보면 예상을 완전히 뒤엎는 절경이 기다리고 있다. 수만 년에 걸쳐 거센 파도의 세례를 받은 서도의 바깥쪽은 흡사 흙속의 숨은 보물이 드러나듯 절경을 드러내고 있다.
산행길은 불탄봉으로 올라 보로봉으로 이어가는 것이 상례다. 불탄봉 오름길은 덕촌리 마을회관 옆에서 시작된다. 마을회관 옆 등산로 안내판이 가리키는 대로 골목길로 들어선다. 경사진 바위지대를 지나 중계탑 아래에 다다라서는 중계탑 왼쪽 옆 동백숲으로 쳐오른다. 수백 년 묵었음직한 아름드리 동백나무들이 즐비한 숲속을 지나 10여 분 급경사 길을 쳐오르면 능선 위에 올라서며, 그 후 길이 좋아진다.
돌담을 두른 무덤, 어두컴컴할 정도로 짙고 시원한 동백숲 그늘지대 등을 지나면 불탄봉 정상 바로 아래의 완경사 초원지대로 나선다. 이곳엔 얼핏 보기에 큼직한 무덤 같은, 일본군이 만든 T자형 벙커가 있다. 이곳에서 왼쪽(북쪽) 10m 위가 불탄봉 정상이다. 여기에도 T자형 벙커가 또 하나 있다. 이곳 정상에서는 고도 안쪽의 포구 일대 풍경이 고스란히 떠오른다.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진 부드러운 억새초원, 하늘을 가린 동백숲을 번갈아 지나게 되는 능선길에서는 암회색의 해안절벽지대와 거기에 부딪는 흰 파도, 조각배 등이 선명한 그림처럼 부각된다.
신선봉 정상은 일출·일몰 모두 아름다워
2m 높이의 촛대바위를 세워둔 곳에 다다르면 해안절벽지대가 한결 더 가파르게 일어선다. 고소공포증이 없는 사람이라도 어찔하는 느낌에 한 걸음 뒤로 물러서게 하는 고도감이 느껴진다. 선착장 쪽에서 볼 때는 그저 야산 같지만 여기서는 태백준령보다도 더 높은 것 같다. 검은 절벽 아래로 검푸른 대해가 기묘한 모양의 암초, 해안선과 더불어 장관으로 펼쳐진다. 이곳 이후로는 능선에 시야를 가리는 것이라곤 전혀 없고 절경이 걸음마다 연속된다.
기와집지붕처럼 수평으로 길게 늘어선 기와집몰랑 능선을 지나면 왼쪽으로 ‘내려가는 길’이란 파란색 팻말이 있다. 여기서 오른쪽 저편에 거문도 최고의 조망처라 할 신선바위가 우뚝 서 있다. 바다 가운데로 썩 나선 듯한 높이 100m가 넘는 암봉 위여서 서도의 해안 절경이 가장 멋진 모습으로 펼쳐진다. 특히 거문도 등대가 선 수월산 쪽으로 들쭉날쭉 내키는 대로 선을 그으며 이어진 해안가 풍광은 기막히다.
정상부는 넓고 평평한 암부라서 20명쯤은 너끈히 앉아 쉴 수 있다. 서도의 남쪽 해안이므로 일출과 일몰 모두를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거문도 등대 쪽에서 떠오르는 일출이 특히 아름다워서 새벽에 유림해수욕장으로 하여 신선바위까지만 올랐다가 다시 내려가는 아침 산행객들도 많다.
신선바위에서 다시 내려와 능선을 타고 주욱 동진하면 보로봉 정상. 이곳은 서도와 고도 사이의 만과 어촌 풍경이 평화로이 떠오르는 곳으로, 쉬었다 가라고 벤치도 여러 개 두었다. 보로봉에서 보로봉과 수월산 사이의 갯바위지대인 ‘목넘어’로 내려가기까지 동백숲이 트이는 지점마다 서로 다른 해안절벽 풍치를 펼쳐보이기도 한다.
덕돈리 마을회관에서 목넘어까지는 총 5~6km에 소요시간은 넉넉 잡아 4~5시간. 경치 때문에 빠른 걸음으로 휙 돌아오기가 어려운 길이다. 목넘어에서는 휴대전화로 택시를 불러 선착장으로 돌아간다.
3,400여 개나 되는 우리나라의 섬 가운데서도 절경으로 이름난 섬을 꼽아보라면 제주도, 울릉도, 홍도 등과 더불어 항상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것이 거문도(巨文島)·백도(白島)다. 거문도면 거문도, 백도면 백도가 아니라 언제나 거문도·백도로 묶어 거론하는 것은 두 섬이 그만큼 서로 밀접한 관계이기 때문이다. 고작 28km의 거리를 두고 이웃해 있다. 그러므로 기왕 불탄봉 산행에 나섰다면 거문도 뱃길 관광도 곁들이기를 권한다.
거문도ㆍ백도 전문 거문도관광여행사 문의 080-665-7788, geomundo.co.kr
교통
서울~여수 열차 서울역 발 여수역 행 전라선 무궁화호, 새마을호 열차 약 1시간 간격으로 하루 14회 운행.
서울~여수 고속버스 서울 강남터미널에서 30분~1시간 간격 고속버스 운행(거의 우등고속). 5시간 20분 소요. 여수 시외버스터미널 061-652-6877.
여수항 여객선터미널~거문도 여객선은 (주)청해진(061-663-2191)의 오가고호(297톤)가 운항되고 있는데 계절에 따라 시각이 달라진다. 3월부터는 1일 2회 운항 예정.
숙박
거문도는 구식 여관들이 대부분이다. 대개 방도 작은 편이지만 그나마 욕실이 딸려 있는 등 조금 나은 업소로는 해동각(061-666-4242), 호반여관(665-8115·2,3층의 큰 방은 시원하고 깨끗), 영빈장(666-8150), 뉴백도장(666-3939) 등이 있다. 삼호교 건너의 민박집은 수월산과 고도 사이의 아름다운 만을 바라보고 있어 전망이 좋다. 방도 넓은 편이다.(061-665-1681) 거문도의 삼산면사무소 061-690-2607.
거문도의 봄·꽃·길‘봄은 머언 바닷가에 갓 상륙해서 동백꽃 산 모퉁이에 잠시 쉬고 있다.’-신동엽 ‘봄의 소식’
그 먼 바닷가 동백섬은 전남 여수에서도 뱃길로 2시간, 거문도 어디께인가보다. 동백꽃은 이제 막 절정을 넘겨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유채꽃은 노랗게 피어올라 단내를 풍기고, 해안 절벽엔 하얀 수선화가 피었다. 보라색 제비꽃과 하얀 민들레는 연둣빛 봄풀 틈으로 고개를 비집고 터져나왔다. 남녘 꽃그늘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 봄은 이제 곧 북쪽으로 올라올 것이다. 봄꽃의 북상 속도는 하루 25㎞. 봄의 속도는 시속 1㎞다.
▲보로봉 동백터널길
‘툭’. 꽃이 떨어졌다. 멍든 곳 하나 없이 붉은 이파리 그대로다. 채 시들기도 전에 작정한 듯 훌쩍 뛰어내린다. 말리고 싶다. 절정에서 추락하는 동백을 보고 소설가 김훈은 ‘백제가 멸망하듯’이라고 표현했는데, 그보다 더 적당한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자결’한 꽃송이가 하나 둘이 아니어서, 나무 그늘에도 꽃이 핀 것 같다. 이 꽃은 필 때보다 질 때가 더욱 비장하고, 아름답다.
바닥에 깔린 붉은 꽃송이들 때문일까. 동백나무 숲길은 ‘비밀의 화원’ 입구처럼 보였다. 울창한 동백숲에 한 사람이 빠져나갈 만한 등산로를 냈다. 나무들이 길쪽으로 고개를 숙여 자연스럽게 터널이 만들어졌다. 보로봉 가는 길 어디나 동백이 많지만 신선바위부터 보로봉 정상까지 300여m는 말 그대로 동백터널이다.
택시에 적혀 있던 ‘거문도 동백섬 유람’이란 말대로 거문도엔 유난히 동백이 많다. 전체 수종의 70%가 동백. 사람들이 동백 가지를 모아 땔감으로 썼을 정도다. 종류도 다양해 붉은 동백부터 연분홍 동백, 흰 동백까지 20여종이나 된다. 11월부터 피기 시작해 2월에 만개한 뒤 4월까지 차례로 진다. 어디라고 할 것도 없다. 사람들은 섬 전체를 가리키며 “다 동백 밀림”이라고 말했다. 비집고 들어가기 힘들 만큼 빽빽한 동백숲 사이로 길만 나 있으면 ‘동백 터널’이 된다. 보로봉 등산로가 그렇다.
유림해수욕장에서 보로봉을 거쳐 등대 입구로 하산하는 코스가 2.4㎞, 2시간 걸린다. 처음 700m 정도는 오르막이지만 나머지는 능선을 따라 걷는다. 오른쪽 옆구리에 바다를 끼고 걷는 길이다. 사철나무, 돈나무처럼 잎이 작고 딱딱한 난대성 수종이 많아 산의 풍경도 뭍과 사뭇 다르다. 꽃도 많고 길도 아름답지만 거문도 동백터널의 유명세에 밀려 찾는 이가 적다.
▲영국군묘지 유채꽃길
‘거문도사건’의 흔적은 아직까지 거문도에 남아있다. 1885년 4월 거문도를 무단 점거한 영국군은 23개월 뒤 철수했으나, 한국땅에서 사망한 군인 3명의 무덤은 그대로 남겨뒀다. 침략군의 흔적을 그대로 보존할 필요가 있는지는 논란의 대상이지만 거문초등학교부터 묘지까지 600여m는 아름다운 산책로다.
왼손엔 돌담을, 오른손엔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를 쓰다듬으며 간다. 시멘트로 아무렇게나 포장한 바닥도 정겹다. 벌써 유채꽃이 한창이었다. 가로수처럼 길가에 늘어섰고, 오래된 무덤 위에도 화관처럼 돋았다. 돌담 아래 파랗게 돋은 제비꽃에도 눈길이 간다. 바닥에 떨어진 것들은 동백꽃이다. 묘지 입구의 돌계단에도 꽃송이가 놓여 있다. 묘지 일대는 지난해 말 공원으로 고쳤다. 팔각정과 벤치를 세우고 계단을 닦았다. 전망이 좋아 관광객들이 빼놓지 않고 찾는 곳이기 때문이다. 대신 호젓한 맛은 없어졌다.
▲거문도 등댓길과 수선화
바닥에 떨어진 동백꽃을 주우며 걸었다. 헨젤과 그레텔이 뿌려놓고 간 조약돌처럼 꽃송이가 길을 인도한다. 길의 끝은 거문도 등대로 이어진다. 1.5㎞의 거문도 등댓길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백터널로 꼽힌다. 나무 계단이었다가 바닥에 돌을 깐 길이었다가 흙길이 된다. 오른쪽으로는 바다가 끊어질 듯 이어진다. 걷는 재미가 있다.
1905년 처음 불을 밝힌 거문도 등대는 올해로 102년째를 맞는다. 2005년 점등 100주년을 맞아 대대적으로 수리했다. 옛 등대는 유물로 보존하고 지난해 1월부터 새 등대가 점등 업무를 이어받았다. 34m 높이의 새 등대 꼭대기엔 팔각형 전망대도 설치했다. 154개의 계단을 걸어서 올라갔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날씨가 맑으면 여기서 백도가 보인단다. 등대 직원은 3명. 1일 3교대로 근무한다. 해질 무렵 불을 켜고, 해가 뜨면 불을 끈다. 등대의 불빛이 한바퀴 돌아 제자리로 오는 데 15초. 불빛은 50㎞ 밖에서도 보인다. 등대 주변의 잔디밭도 빨간색 보도블록으로 덮었다.
주위를 맴돌다 해안 절벽에 피어있는 수선화를 봤다. 뭍에서는 4월쯤 핀다는데, 한겨울에도 좀체 영하로 떨어지지 않는 이 곳에선 2월에 핀다. 수선화 옆 양지에는 벌써 쑥이 돋았다. 정말, 바람이 차지 않다.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바람이 부드럽다. 봄이다.
▲여행길잡이…1박2일 패키지로 즐기세요
여수 여객터미널에서 거문도행 배가 하루 2회 출발한다. 오전 7시40분, 오후 1시20분. 거문도까지는 2시간30분 정도 걸린다. 거문도에서 여수로 돌아오는 배는 오전 10시40분, 오후 4시에 있다. 왕복 5만5900원.
서울에서 거문도까지 가려면 한나절은 잡아야 한다. 중부고속도로,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를 차례로 탄 뒤 진주분기점에서 남해고속도로 순천 방향으로 갈아탄다. 광양IC나 순천IC에서 빠져나와 17번 국도 여수 방향으로 달린다. 여객터미널은 돌산대교 아래에 있다. 터미널 주차장 요금은 1일 8000원.
거문도는 고도, 서도, 동도의 3개 섬으로 이뤄져 있다. 숙박시설과 음식점은 선착장이 있는 고도에 몰려 있고, 거문도 등대와 보로봉 등산로 등 볼거리는 서도에 있다. 고도와 서도는 1992년 개통한 삼호교로 연결돼 있다.
대중교통수단은 택시 2대뿐이다. 렌터카도, 자전거 빌려주는 곳도 없다. 언덕이 많아 자전거를 타기도 쉽지 않다. 택시(061-665-1681) 요금은 거리별 정액제다. 선착장에서 거문도 등대까지 편도 6000원. 숙소는 고도의 민박집을 이용한다. 1박 3만원. 일본식 주택인 김길생씨 가옥(061-665-7288)도 7월부터 10월까지 민박을 친다.
섬 내 이동수단이 없는데다 안내판도 거의 없어 개별 여행이 어렵다. 패키지를 이용하는 편이 편리하고 저렴하다. 1박2일이 일반적이다. 첫날 오후 배로 들어와 고도 산책, 낚시 등으로 시간을 보낸다. 이튿날 새벽 보로봉길 등산 후 아침식사, 오전에 유람선을 타고 백도를 둘러보고 오후엔 거문도 등대에 다녀온 뒤 오후 배로 나간다. 당일 코스는 오전 배로 들어와 백도, 거문도 등대를 둘러본 뒤 오후 배로 떠난다. 남해안투어(www.namda.co.kr·061-665-4477)가 1박2일 13만8000원(2인1실 기준), 당일 9만8000원에 거문도 패키지를 판매한다. 왕복 배편, 백도 유람선 투어(2만2000원), 숙박, 식사가 포함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