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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정임 |2009.04.13 02:40
조회 31 |추천 0


아래 내용은 얼마 전 월간지 '샘터'에 실린 제 글입니다. 
피할 수 없는 청탁을 받고 '내 인생의 한 사람'이란 코너의 내용에 맞는 제 추억을 곱씹다보니 정말 수십년 만에 아래의 이야기가 서서히 떠오르더군요. 워낙 어렸을 때 이야기라서, 살짝 감상적이라는 사실을 감안하고 읽어주세요.^^;;

 


중학교 2학년 때의 일이었다.
‘스승의 날’이 다가오자 담임 선생님께선

수학 교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수업을 쉰 채 그 시간에 편지쓰기를 시켰다.
안부를 전하고 싶은 예전 선생님께 편지를 보내라는 주문이었다.

어느 분께 보낼까.

서두른 아이들 중 몇몇이

벌써 편지쓰기를 끝낼 무렵에서야 간신히 볼펜을 들었다.

그리곤 이정석 선생님께 편지를 썼다.
일단 그 분께 쓰기로 결심하고나니

편지를 쓰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순식간에 두 페이지를 메웠다.

그 대부분은 세상에 대한 실망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늘어놓는 내용이었다.
그때 나는 막 도착한 사춘기를 호되게 앓고 있었다.

다 쓴 편지지를 봉투에 넣은 뒤

겉봉에 받는 이의 이름과 주소를 썼다.
다른 아이들은 수신인인 선생님들의 직장인 학교로 보냈지만,
나는 자택으로 직접 우송할 예정이었다.
이정석 선생님의 주소를 외우고 있었으니까.

선생님은 나와 같은 ‘서울시 성동구 성수2가2동’에 사셨다.

 

그날 이후 종종 이정석 선생님께 편지를 썼다.
첫 편지와 달리, 이후의 편지들은 전부 밤에 홀로 깨어서 썼다.
처음엔 줄이 일률적으로 쳐진 규격 편지지에 썼지만,
곧 아무런 표시도 없는 흰 종이에만 썼다.

어떤 날은 어지러운 일기로 썼고, 어떤 날은 되도 않는 시(詩)로 썼다.
어떤 날은 음악 이야기를 했고, 어떤 날은 소설 이야기를 했다.
가끔은 열에 들떠 흥분한 상태로 휘갈기는 바람에,
내 스스로도 알아보지 못하는 필적의 글을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그 모든 날의 편지는 결국

혐오와 절망의 쓰고도 신 냄새를 풍기며 마무리됐다.

편지는 점점 어두워졌고, 또 점점 길어졌다.
두 번은 부쳤지만, 나머지는 부치지 않았다.
내 애절한 토로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은 한 번도 답장을 보내오지 않으셨다.
그러나 원망스럽지는 않았다.
한 번 편지를 쓰고 나면

적어도 이삼일은 버틸 힘이 생기는 듯 했으니까.

 

자다가 연탄 가스를 마시는 바람에 ‘죽음이란 이렇게 오는 것이구나’

라는 생각이 처음 들었던 어느 일요일, 밤이 되어서야

간신히 정신을 차린 후 선생님께 다시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1층에는 정육점과 쌀집이 있었고,

2층에는 우리 집이 세들어 살고 있던
건물의 3층 옥상 난간에서,

저 아래 밤거리의 불빛에 종이를 비춰가며 썼다.

편지는 열 장을 넘겼다.
그때까지 쓴 가장 길었던 편지였다.
그 날의 편지 역시 부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이후로 다시는 선생님께 편지를 쓰지 않았다.

턱없이 감상적이었고 이유없이 비관적이었던
열다섯살의 나날들이었다.

 

영화 ‘뷰티풀 마인드’의 주인공인 존 내쉬에게는

대학 시절 찰스라는 친구가 있었다.
괴팍하고 자기중심적이어서 관계에 서툰 그는
타인과의 대화를 막다른 구석으로 몰고 가기 일쑤여서

상대를 질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찰스만은 예외였다.
찰스는 언제나 존의 말에 흥미를 가지고 귀를 기울였다.
때로는 충고도 해주었지만, 그보다는 넉넉하게 들어주었기에
존 내쉬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영화는 후반부에 이르러
결국 찰스가 존의 망상이 만들어낸 허구의 인물이었음을 드러낸다.
찰스는 외로움을 견디다 못한 존이

머릿 속에서 ‘발명’해낸 분신이었던 것이다.

 

부끄럽지만,
그렇다.

찰스처럼 이정석 선생님 역시

내가 상상 속에서 만들어낸 대화 상대였다.
다만 나는 그가 가공의 인물이란 사실을

명확히 알고 있었다는 점이 달랐을 뿐이다.
편지를 써야 하는 수업 시간에 즉흥적으로 그 이름을 떠올리게 되자,
이후 그 이름은 일년 넘게 늘 내 곁에 머물면서

그 모든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었다.

수신인 주소 자리에 적은 것은

여러 세대가 함께 살고 있었던 우리 집 건물의 주소였기에,
나는 내가 보낸 편지 두 통을 받아서 읽어보기까지 했다.
그러나 학교에서 보냈던 첫 편지는 끝내 발견하지 못했다.
그 편지를 가져간 사람은 누구였을까.

 
돌이켜 보면
쓴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했을 뿐,
그 상대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아니, 들어주자마자 잊어버려야 할 상대여야 했다.

그때의 나는 무엇인가를 써야 했지만,
그것이 일기 대신 편지여야 했던 시절이었던 셈이다.
‘혼자’를 견디기 어려웠던 열다섯의 나는

‘혼자’가 되기 위한 전 단계로서
절대 말을 옮기지 않는 누군가와의 대화가 필요했을 것이다.
나는 지금 그때를 그렇게 이해한다.

마지막 편지를 쓰고 난 후에도

혹독한 사춘기의 어둠은 나를 길게 지배했다.
하지만 그 후의 나는 그 사람을 오래오래 잊었다.

 

오늘,
실로 오랜만에 ‘이정석’이라는 이름을 떠올렸다.
나를 한 번도 가르친 적이 없었지만,
그랬기에 내 스스로 설 수 있도록 가르쳐줄 수 있었던 사람.
지금 다시 그 선생님에게 편지를 쓴다면,
마흔의 나날은 또 어떤 자기연민으로
무너지는 속내를 털어놓을 것인가.

 

 

 

::출처::

열다섯살의 편지

작성자 이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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