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점에서
학교매점에 갈때는 가끔 주위를 살핀다. 아이들이 많은 시간에는
“선생님~~”하고 달려오는 아이들의 맑은 눈망울과 “아이스크림 사주세요”하고
맑게 웃는 모습을 결코 외면하는 일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현O와 오랜만에 만나서 아이스크림을 사주러 가는날에도 많은 아이들이 줄을 서 있었는데, 현O에게 돈을 주고 “니가 사는 걸로 해^^” 해서 열심히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데, 아니나다를까 어디서 나타난 눈빛들 “선생님, 저희도 아이스크림 사주세요!”
아이스크림을 쏘고 함께 먹으면서 한마디 한다는 것이 “너희도 현O를 본받아 선생님들께 아이스크림 사드리도록 해^^;” 오늘도 아이들의 맑은 눈빛과 호기심 가득한 표정은 나를 설레게 한다.
(상준샘)
-붕어싸만코
저녁식사후 산책을 하는데 아이들이 달려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세O이가 붕어싸만코가 너무 먹고 싶은데, 학교밖을 나갈수 없단다. 그러면서 “선생님, 저희 붕어싸만코 사주세요~~” “그래, 내가 밖에 나가면 낚시를 해서 월척을 낚아오마^^” 그래서 붕어를 잡으러 나갔는데, 붕어싸만코를 사려던 순간, 문득 떠오른 생각은...
우리학교에는 2500여명이 넘는 아이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
그래서 빈손으로 돌아온 나에게 아이들이 “선생님 붕어싸만코는요?~~”라고 묻자,
“내 붕어를 잡으려고 낚시를 했는데, 미끼와 물때가 맞지 않았는지 허탕쳤단다^^”
그래서 내일도 아이들을 위해 붕어낚시를 떠나야 하지 않을까?
-Practice makes perfect.
잘될때까지 하면 된다.(No give-up)
이전에는 해도 안되는 일, 어려운 일이 생기면 고민을 많이하고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았다.
오늘 아침 농구를 하면서 슛을 쏳았는데, 계속 공이 골대를 맴돌거나 링을 맞고
튕겨나와서 화가 났다. “에잇 안하고 말지” 그러다가 다시 돌아와서 반복하기를 여러번, 이제는 던지면 들어간다. “얘들아 진리는 이런거야, 안되면 될 때까지 하면 돼, 시간이 걸리겠지만 결국은 되고야 말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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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Essay)
형식에 구애됨이 없이 생각나는 대로 붓가는 대로 견문이나 체험, 또는 의견이나 감상을 적은 글.
본문
흔히 수필을 essay의 역어로 생각하나 동양에서는 일찍부터 써왔다. 중국 남송(南宋) 때 홍매(洪邁)의 《용재수필(容齋隨筆)》(74권 5집)의 서문에 "나는 버릇이 게을러 책을 많이 읽지 못하였으나 뜻하는 바를 따라 앞뒤를 가리지 않고 써 두었으므로 수필이라고 한다"라는 말이 보이고, 한국에서는 박지원(朴趾源)의 연경(燕京) 기행문 《열하일기(熱河日記)》에 〈일신수필(日新隨筆)〉이라는 것이 처음으로 보인다.
프랑스어의 에세(essai)는 시도(試圖)·시험(試驗)의 뜻이 있는데 이 말은 '계량(計量)하다', '음미(吟味)하다'의 뜻을 가진 라틴어 '엑시게레(exigere)'에 그 어원이 있다. 영어의 essay는 프랑스어의 essai에서 온 말이다. 에세라는 말을 작품 제목으로 처음 쓴 사람은 프랑스의 몽테뉴이며 그의 《수상록(隨想錄)》(1580)은 에세라는 제목을 붙인 서책으로서는 서양 최초의 저서이다. 어원으로 볼 때, 동서양의 수필의 개념은 거의 일치한다.
수필은 일반적으로 사전에 어떤 계획이 없이 어떠한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의 느낌·기분·정서 등을 표현하는 산문 양식의 한 장르이다. 그것은 무형식(無形式)의 형식을 가진 비교적 짧고 개인적이며 서정적인 특성을 가진 산문이라고 할 수 있다. 전기(前記) 홍매의 정의나 "수필은 한 자유로운 마음의 산책, 즉 불규칙하고 소화되지 않는 작품이며, 규칙적이고 질서잡힌 작문이 아니다"라는 S.존슨의 정의나, "수필은 마음속에 표현되지 않은 채 숨어 있는 관념·기분·정서를 표현하는 하나의 시도다. 그것은 관념이라든지 기분·정서 등에 상응하는 유형을 말로 창조하려고 하는 무형식의 시도다"라는 M.리드의 정의 등도 모두 대동소이하다.
수필은 그 정의가 좀 막연한 것과 같이 종류의 분류도 일정하지 않다. 보통, 일기·서간·감상문·수상문·기행문 등도 모두 수필에 속하며 소평론(小評論)도 여기에 포함시킬 수 있다. 수필을 에세이와 미셀러니(miscellany)로 나누는 이가 있는데 전자는 어느 정도 지적(知的)·객관적·사회적·논리적 성격을 지니는 소평론 따위가 그것이며, 후자는 감성적·주관적·개인적·정서적 특성을 가지는 신변잡기, 즉 좁은 뜻의 수필이 이에 속한다.
영문학의 경우를 전제로 하여 포멀 에세이와 인포멀 에세이로 나누는 이도 있는데, 인포멀이란 정격(正格)이 아니라는 뜻이므로 전자는 소평론 따위, 후자는 일반적인 의미의 수필에 해당한다. 또 중수필(重隨筆)·경수필(輕隨筆)·사색적 수필·비평적 수필·스케치·담화수필(譚話隨筆)·개인수필·연단수필(演壇隨筆)·성격소묘수필(性格素描隨筆)·사설수필 등으로 나누는 사람도 있다.
수필의 기원에 대해서는 이설이 많다. 테오프라스토스의 《성격론》, 플라톤의 《대화편》, 로마시대의 키케로, 세네카, 그리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등도 수필이라고 할 수 있으나 프랑스의 몽테뉴의 《수상록》을 수필의 원조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 영국 수필의 원조는 그보다 17년 늦은 F.베이컨의 《수상록》을 꼽는데 영국에는 그 이후에 C.램, W.해즐릿, L.헌트, T.드 퀸시 등의 유명한 수필가가 배출되었다. 특히 램의 《엘리아의 수필》(1823)은 시정인(市井人)의 여유와 철학이 깃들어 있으며 신변적·개성적 표현이면서도 인생의 참된 모습이 묘사되어 있고, 영국적 유머와 애상이 잘 드러나 있다.
한국에서는 김만중(金萬重)의 《서포만필(西浦漫筆)》, 편자·연대 미상의 조선초의 《대동야승(大同野乘)》, 유형원(柳馨遠)의 《반계수록(磻溪隨錄》, 그리고 고려 때의 이인로(李仁老)의 《파한집(破閑集)》, 최자(崔滋)의 《보한집(補閑集)》 등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그러나 근대 최초의 수필은 유길준(兪吉濬)의 《서유견문(西遊見聞》(1895)이며, 이어 최남선(崔南善)의 《백두산 근참기(白頭山覲參記)》 《심춘순례(尋春巡禮)》(1927), 이광수(李光洙)의 《금강산유기(金剛山遊記)》 등이 간행되었으나 이것들은 모두 기행문으로서의 수필이다.
그뒤 김진섭(金晋燮)의 《인생예찬(人生禮讚)》 《생활인의 철학》, 이양하(李敭河)의 《이양하수필집》, 계용묵(桂鎔默)의 《상아탑(象牙塔)》 등이 나왔으며, 이 밖에 조연현(趙演鉉)·피천득(皮千得)·안병욱(安秉煜)·김형석(金亨錫)·김소운(金素雲) 등의 등장으로 한국의 수필문학은 종래의 기행문적인 것에서 벗어나 다양하고 깊이 있는 인생체험에서 우러나온 수필이 나왔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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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자의 정치사상
참고로 순자는 경제학과도 연관지어서 설명이 가능합니다. 희소성의 원칙을 잘 이해하신다면 순자를 잘 이해할 수 있을겁니다. 순자의 사회혼란 원인 진단은 자원의 희소성과 관련이 깊습니다. 그 옜날에 희소성의 원칙으로 자신의 개념을 정립했다는게 정말 대단하지 않나요? ㅋ암튼 순자는 욕구를 규제하는 예를 통해 사회를 안정시키자는 주장을 했습니다. 순자는 맹자와 정치성격이 좀 다르죠. 맹자가 내면에 있는 인의의 도덕을 바깥으로 확충할 것을 강조한 반면, 순자는 인위위 도덕이 실현되려면 외적 규제(예)가 필요함을 매우 강조 했쬬.
공자의 정치사상:
1.정명:군군신신부부자자--맡은바 직무에 충실
2덕치주의:도덕과 예의로 교화하는 정치, 통치자가 군자다운 인격을 닦고서 다스려야 함,통치자는 경제적인 분배의 형평성을 중시해야 함
3.대동사회:인과 예를 통해 도덕을 확립하고 사회 질서를 회복하여 모든 사람이 더불어 잘 살 수 있는 사회,만인의 신분적 평등, 재화의 공평한 분배,인륜의 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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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상대방을 위한 여백을 두는 것
아주 단순하게 우리가 이름붙인 사물들, 집, 나무, 책상, 밥상, 레지가 가지고 온 컵,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연필, ....무한하게 많은 다른 이름의 사물(萬物)들을 바로 그것이게끔 하는 기능은 제각기 다른 맥락의 기능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그 이름에 따라 제각기 다른, 만가지의 기능에 가장 공통된 것은 무엇일까? 바로 이 만물의 만가지 기능에 공통된 기능! 바로 이 기능을 노자는 묻고 있는 것이다. 이 기능이 무엇인가? 아는가? 노자는 이것을 바로 "빔" 즉 虛(허)라고 부르는 것이다.
마음이 차면 무엇인가 내 마음속으로 들락날락 거릴 수 있는 여백이 없다. 내가 한 여자를 사랑할 때, 그여자 생각만으로 내 마음이 온통 꽉 차버리는 것은 이태리 오페라 가사식의 사랑이다. 사랑의 묘약중의 남몰래 흐르는 눈물이 그러하고, 카르멘의 꽃노래가 그러하고, 팔리앗치의 카니오의 애통한 광대노래가 그러하고, 토스카의 저 별은 빛나건만이 그러하다. 이들에게는 허가 없다. 그래서 비통과 좌절과 죽음의 종말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노자가 말하는 사랑은 한 여인을 사랑하되 그 여인이 마음 놓고 들락거릴 수 있는 빔을 내 마음속에 남겨 두는 것이다. 청산리 벽계수를 읊는 황진이를 그냥 스쳐나가는 화담 서경덕의 사랑이나, 황진이 무덤 앞에서 술잔을 기울이는 임제의 사랑이 아마도 그러할 것이다.
p185, 190-191 (위)
김용옥 지음 '노자와 21세기 - 1' 중에서 (통나무)
노자의 빔의 철학은 언제 들어도 공감이 갑니다.
물컵은 완전히 차 버리면 더이상 물컵이 아닙니다.
집이 사람이 들락거릴 수 없이 꽉 차있다면 더이상 집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 비어있는것(虛), 그것을 노자는 모든 사물이 기능하는것의 공통점이라고 합니다.
주위에 보면 너무나 사랑했던 커플들이 어느날 헤어진 경우가 있습니다. 분명 사랑을 했을것입니다. 그것도 그냥 사랑이 아닌 불타는 사랑을 했을것입니다. 하지만 뒷맛은 씁쓸합니다.
서로의 만족을 위해서만 덤볐기 때문입니다.
누구보다도 불타오릅니다. 하지만 그 불이 식고서는 남이 되어 떠나갑니다.
여유를 두지 않아서 입니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막 달려가야 하지만
마지막엔 서로가 채워야 할 여유를 남겨두는 것입니다.
상대가 아무 말도 못하도록 말문이 막히는 질문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신의 질문으로 인해 상대를 압도했다고 속이 후련할것 같지만 오히려 답답합니다. 관계는 멀어집니다.
성경에서는 예수님은 상대가 말 할 수 있도록 여유를 주셨고,
그 사람이 말 할 수 있는 질문을 던지셨다고 합니다. 그와 같이 사랑은 상대가 더 말을 잘 할 수 있도록 여유를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을 열어 최대한 들어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랑은 불타는 것입니다.
하지만 마지막은 자기 만족이 아닌 상대방을 위한 배려...
상대방을 위한 여백! 그것을 남기고 두 사람이 조금씩 채워나가는것 그것이 사랑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사랑학 개론의 Alex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