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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름 "삼청 계획 5호"

이근식 |2009.05.02 15:42
조회 118 |추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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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 계획 5호'라는 말을 아는가?

바로 이 삼청 교육대를 세우기 위한 계획의 일완 이었다.

 

1980년 5 . 17 전국 확대 계엄 이후, 전두환의 신군부는 국가 보위 비상 대책 위원회를 세우고, 상임 위원장에 전두환 보안 사령관 그리고 그 아래 운영 위원장에 자신의 육사 동기생인 이기백 장군을 임명 했다.

 

'삼청 교육대'의 설치는 상임위 예하 사회 정화 위원회 간사였던 허삼수(육사 17기. 대령)의 아이디어였다.

 

이에 앞써 게엄 사령부[사령관. 이희성 대장]는 1980년 8월 4일 계엄 포고 제 13호를 근거로 대대적인 삼청교육을 시작 하였다.

국보위는 그 해 8월 1일부터 11월 27일까지 4차례의 단속결과 6만여명을 연행 했으며, 이 중 절반이 넘는 3만 9천여명이 군 부대의 삼청 교육대에 넘겨 졌다. 구속, 삼청 교육, 훈방 등의 분류작업은 검사 및 경찰서장이나 간부, 보안부대 요원, 헌병대 요원, 중앙 정부부 요원, 지역 정화위원 등 6~7명으로 구성된 심사 위원회에 의해 이루어 졌다.

 

삼청 교육의 실행은 제 3사단[박세직 소장], 제 26사단[박희도 소장], 제 33사단[안필준 소장], 육군 특전 사령부[정호용 소장], 여군 교육대 등 전.후방 20개 사단 및 특수 부대에서 무장 군인의 감시 아래 1981년 1월까지 계속 되었다.

 

그러나 이 기간 동안 삼청 교육생 50여명이 사망하는 등 정치적.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켜 지난 1989년 국회 청문회 등의 5공 비리와 결부되어 크게 문제된 바 있다.

'삼청 교육' 이라고 이름을 붙인 이유는 사회악 일소 특별 조치를 주관한 국보위 사회 정화 위원회(위원장. 김만기, 이춘구)가 서울 삼청동에 있으며, '삼청 계획 5호'로 그 작업을 명명한 데서 비롯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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