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어린이날이었다. 어린이날이 아니라하더라도 5월은 가정의 달이라고 떠들어대는 이 사회의 틈바구니에서 그 5월을, 어린이날을 슬픔과 아픔, 그리고 힘겨움 가운데 버텨내는 사람들이 있다.
지난 연휴에 이어 또다시 찾아온 휴일, 그것도 어린이날. 대다수 평범한 가정에서는 가난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굳이 따지지 않더라도 아이들과 함께 모처럼의 편안한 휴일을 즐겼을 것이다. 다른 휴일이야 직장이나 다른 일들로 집도 아이들도 제대로 챙기지 못했겠지만 어린이날만큼은 그 어떤 장애도 능히 돌파해서 아이들과 함께 휴일을 만끽했을 것이다. 두고두고 아이들에게 원성을 사는 나쁜 아빠가 되지 않으려면 말이다.
그러나 이런 어린이날이 즐거울 수 없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왜 어린이날에도 그들은 기쁘고 즐겁기는커녕 오히려 슬픔과 고통으로 보내야 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1. 故 박종태 열사의 유족 그리고 대한통운 해고자 78명의 가족
지난 3일 대전에서 목을 매 자결한 것으로 알려진 고 박종태 열사의 유족에게는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는 현실이었다. 하수진씨(38)에게는 남편이 그렇게 세상을 떠난 것조차 아직은 믿기지 않는 현실일 터였다. 그럼에도 남편이 남긴 유지를 따르고자 민주노총과 화물연대가 대한통운 해고노동자들의 복직이 이루어질 때까지 장례를 미루는 것에 동의했다.
<민중의소리> 인터뷰 기사를 보니 당장 오늘(6일)이 아들 정하의 일곱번째 생일이다. 하수진씨는 아직 딸 혜주와 아들 정하에게 아빠 얘기를 해주지 못했다고 한다. 하수진씨는 아들에게 "어떻게 얘기할까 정말 고민이 된다"면서 "아이들에게 아빠는 좋은 사람이었다고 이야기해 주고 싶다"고 말했다는데 아마도 인터뷰를 하는 내내 울음을 참으며 힘들게 했을 것같다.
어린이날이었던 5일에도 아이들은 광주에서, 하수진씨는 대전, 아이들의 아빠는 세상에 없었으니 아이들의 어린이날이 어땠을까? 아빠가 사올 생일 선물을 기다리고 있을 아들 생각이 내내 머리속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하수진씨는 인터뷰의 끝자락에서 "내 아이들 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아이들이 가족들과 오손도손 잘 살 수 있도록, 먹는 거 자는 거 걱정하지 않고 잘 살 수 있도록 우리 신랑이 밑거름이 됐으면 합니다"하면서 "당장 괴롭긴 하겠지만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 그렇게 됐을 땐 뿌듯할 것 같습니다"고 해서 더 안타까웠다.
그리고 대한통운 해고자 78명의 가족들에게도 어린이날은 썩 기쁜 날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故 박종태 열사의 일이 그들 자신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복직문제와 함께 열사의 뜻을 이루기 위한 투쟁의 길에 나서야 하고, 대전에서 빈소를 지키거나 대한통운 물류센터에서 투쟁을 벌이고 있을 터였다.
다음은 <민중의소리>에 나온 인터뷰 기사다. 많은 분들이 보지 못했기에 전체를 그대로 올려본다.
"내일 아들 생일… 아빠는 좋은 사람이었다고 말해주고 싶다"
[인터뷰] 故 박종태 열사의 미망인 하수진씨
배혜정 기자 bhj@vop.co.kr
사랑하는 친구 수진에게
당신은 내 친구였어. 동갑내기 친구가 아니라 내가 아플 때 어렵게 투쟁할 때. 길을 잘 못 가거나 힘들어할 때 다른 곳에 있지 않고 언제나 내 곁에 있었던 소중한 친구말야..
-故 박종태 열사가 가족에게 남긴 유서 중
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광주지부 1지회 故박종태(38)지회장에게 부인 하수진(38)씨는 항상 힘이 되고 의지 할 '등받이'였다.
수진씨에게 박 지회장도 그랬다. 대학교 3학년 때 손에서 피가 나는 줄도 모르고 신들린 듯 꽹과리 치는 박 지회장의 모습에 반해 사귀어 한 가정을 이룬지 이제 10년. 가정일보다 바깥 일을 더 열심히 하는 남편이 미울 때도 있었지만 언제나 신념을 꺾지 않고 정의로운 사람이었기에 어디 내놓아도 늘 자랑스러운 남편이었다.
그런 남편이 생때같은 두 아이들까지 떼어놓고 갑자기 세상을 등졌다. 수진씨는 아직도 믿기지 않은 듯 "자다 일어나보니 열사 부인이 돼 있다"며 울먹였다.
"그 때 왜 그렇게 잔소리를 했었나.."
故 박종태 열사의 부인 하수진씨가 5일 고인을 생각하며 눈물을 훔치고 있다.ⓒ 민중의소리
5일 아침 오랫만에 빈소에서 나와 바깥공기를 쐬는 수진씨에게 '남편은 어떤 사람이었냐'고 물으니 "정신이 멍해 남편이 어떤 사람인지 잘 생각이 안난다"고 말했다. 수진씨의 표정은 담담했지만 남편의 기억을 더듬어가면 갈수록 눈물은 그칠 줄 모르고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남편은 집안 일을 정말 대충대충했어요. 빨래를 널 때도 탁탁 턴 다음에 널어야 하는데 세탁기에서 꺼내서 그냥 널었구요. 그래서 제가 잔소리를 좀 많이 했어요. 밖에서 하는 거 반만큼이라도 집에서 해보라고.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때 왜 그렇게 잔소리를 했나 미안하기도 하고.."
남편이 화물연대에 가입해 화물운전을 하던 2003년, 수진씨는 그해 둘째 정하를 낳았다. 대다수 화물운전사들이 그렇듯 박 지회장도 기름값, 수수료, 통행료 아끼느라 야간운전을 주로 했고 종종 벌어지는 파업 투쟁을 이끄느라 집에 못들어오기 일쑤였다.
그 즈음 어느 날 박 지회장은 고속도로 좌판에서 파는 생선 등을 30만 원 어치나 사왔다가 수진씨에게 된통 핀잔을 들었다.
"전복을 사면 광어, 도미, 농어까지 덤으로 얹어준다고 하는 그런거 있잖아요. 남편은 전복 생각만 하고 사왔는데, 저는 비싼 돈 주고 사왔다고 막 타박했었어요. 결국 전복만 먹고 다른 생선들은 다 남에게 보내주고 부산을 떨었었는데, 병원 앞 죽집에 걸린 전복죽 사진을 보니까 그 생각이 나데요. 목 메어서 혼났네.."
"내일이 아들 생일인데..."
남편과 마지막 통화를 했던 28일. 박 지회장은 수진씨에게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내가 조합원들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게 아닌지 생각이 든다"며 괴로운 마음을 털어놓았었다고 말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이상한 느낌을 못받았던 수진씨는 남편이 29일 종적을 감추면서 남긴 메모와 그 다음날 민주노동당 광주시당 홈페이지에 남긴 글을 보고 "무척 화가 났다"고 말했다.
"처음엔 화가 정말 많이 났죠. 주위사람 믿고 같이 하면 되는데 왜 혼자 바보같이 어리석은 행동을 하려고 할까 화가 많이 났었어요."
그러나 자신이 한 말에 대해선 책임을 지는 성격인 남편이 극단적인 선택만 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에 온 밤을 하얗게 지샜던 수진씨에게 3일 대전에서 날라온 소식은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였다.
아직까지 수진씨는 큰 딸 혜주와 둘째 아들 정하에게 아빠의 소식을 전하지 못했다. 모든 어린이들이 부모님의 손을 잡고 놀기를 기대하는 '어린이날'이 바로 오늘이지만 아이들은 광주에, 수진씨는 대전에, 박 지회장은 하늘에 각각 떨어져 있다.
수진씨는 아빠가 선물 사오기만을 기다릴 아이들 생각에 가슴이 미어진다. 더군다나 6일은 정하의 7번째 생일이기도 하다.
수진씨는 "내일이 아들 생일인데 어떻게 얘기할까 정말 고민이 된다"면서도 "그래도 아이들에게 아빠는 좋은 사람이었다고 이야기해 주고 싶다"며 눈물을 훔쳤다.
"정하는 다섯 살 때까지 아빠와 놀아 본 기억이 없어서 아빠를 무서워했어요. 그러다 작년부터 지 아빠랑 목욕탕 다니면서 친해졌는데.."라며 말 끝을 흐리는 수진씨. 언젠가 부부싸움 끝자락에 "정하랑 목욕탕을 다녀달라"는 자신의 소박한 바람을 지켜줬던 남편이 마냥 그립기만 하다.
수진씨는 "한순간에 열사의 아내가 돼버렸지만 아무쪼록 고인의 뜻이 잘 전달이 돼 고인이 원하는 바가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내 아이들 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아이들이 가족들과 오손도손 잘 살 수 있도록, 먹는 거 자는 거 걱정하지 않고 잘 살 수 있도록 우리 신랑이 밑거름이 됐으면 합니다. 지금 당장 괴롭긴 하겠지만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 그렇게 됐을 땐 뿌듯할 것 같습니다."
2. 로케트전기 해고노동자 가족
원래 어린이날에는 촛불문화제를 하지 않기로 했었다. 그러나 고 박종태 열사의 자결 뒤 광주지역에서 투쟁의 강도를 높여가는 마당이라 촛불문화제를 거르지 않기로 결정했다. 밑에서는 천막농성이, 그 위에서는 두 명의 해고자가 30m높이의 교통관제철탑 위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어린이날이 정확히 복직투쟁이 612일째, 그리고 고공농성이 56일째였다. 함께 해고되었던 11명 가운데 2명은 부당노동행위 판정을 받아 복직했고, 2명은 이미 다른 길을 찾아 떠났다. 이제 복직투쟁을 벌이는 이들은 모두 7명이다. 이들 가운데 미혼은 단 2명, 그나마 한 명은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이주석씨뿐.
옛 전남도청 앞 천막농성장은 다른 날과 달리 의외로 한산했다. 다른 휴일과 달리 천막 주위를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없었다. 늦은 저녁시간이라서 그런가 물어보니 그래도 어린이날이라고 잠깐씩 집이나 다른 곳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나간 모양이었다.
촛불문화제는 오후 6시 30분으로 예정되었지만 준비가 늦어져 20분가량 늦게 시작되었다. 처음 시작할 땐 불과 70여명이었던 사람들이 끝날 즈음엔 평소와 달리 200여명으로 불어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함께 했다. 아무래도 이들을 위한 마음에서 평소보다 더 많은 분들이 촛불을 켜려고 나왔을 것이다. 멀리 해남사랑청년회에서도 몇 분이 찾아왔다. "로케트전기 해고자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잘 모른다"는 말을 다 믿을 수는 없겠지만 그들의 마음 속에도 짐처럼 자리잡았을 것이 분명했다.
지켜보는 해고자 가족들의 마음이 씁쓸하거나 서글프기까지 하지는 않았겠지만 마음이 무거워졌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흥을 돋우려고 준비되지 않은 문예공연까지 그 자리에서 즉석으로 만들어올렸다. 핑계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조금이라도 해고자들의 마음을 녹이고 모처럼 많은 분들이 참석했을 때 함께 하는 시간을 늘이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유제휘씨 얼굴이 다른 날과 달리 말끔해져 있었다. 초췌한 얼굴은 가릴 수 없었지만 면도까지 깔끔하게 한 것이 아마도 함께 있지는 못했겠지만 아이들(민주와 민하) 얼굴이라도 보기 위해서였으리라. 처음 고공농성에 올라갈 땐 아이들에게 서울갔다고 했었는데 나중에 안 민주가 아빠에게 전한 말이 자기도 "가족이니 상의해달라"고 했었다.
비록 편치 않은 마음이었겠지만 함께 한 많은 시민들에게 불편함이나 힘든 얼굴을 보이기 싫은 마음도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촛불문화제가 끝나고 나서도 천막농성장은 한산했다. 그 시간부터는 농성자들만 남게 될 것이라 생각하니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차마 떨어지지 않았다.
3. 그러면 또 다른 사람들은 없을까?
현재 관심이 가있는 곳이 위의 두 곳이다 보니 마음이 그리로만 쏠리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위에서 말한 이들과 처지나 조건은 다르겠지만 또다른 사연을 안고 슬프고 서러운 어린이날을 보냈으리라. 당장 이들 외에도 옛 전남도청을 보존하겠다고 11개월이 가깝도록 도청 안에 농성장을 차리고 있는 5월단체 회원들도 같은 처지일 것이다. 또한 전국 그 어디를 가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피눈물을 쏟으며 장기투쟁을 벌이고 있다.
이들이 이틀밖에 남지 않았지만 어버이날에는 따뜻하게 가족과 보낼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은 단지 욕심에 불과할까? 도대체 언제쯤이면 다들 이런 노숙자같은 생활을 벗어나서 각자 자기의 자리에서 힘차게 일하고 바쁘게 생활할 수 있을까?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2명 가운데 한 명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600여일 동안 길거리에서 복직투쟁을 하다보니 내가 노동자였다는 사실을 점점 잊어가는 것 같다." 아마도 노동자의 정체성을 잃어가는데 대한 뼈아픈 자기고백이었으리라.
이 사회에서 하루도 빼지 않고 벌어지고 있는 노동자의 절규, 그리고 민중들의 외침을 왜 청와대와 정부, 그리고 자본과 한나라당, 조중동만 못 듣고 있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이런 세상을 위해 10년을 기다려왔다는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남은 임기라도 무사히 마치려면 반드시 귀담아 두어야 할 것이다. <춘향전>에 나온 것처럼 '노래 소리 높은 곳에 (국민의) 원성도 높다'는 것을.
<embed width="100%" height="100%" wmode="transparent" id="poem-societytistorycom475805" src="http://cfs.tistory.com/blog/plugins/CallBack/callback.swf?destDocId=callbacknestpoem-societytistorycom475805&id=47&callbackId=poem-societytistorycom475805&host=http://poem-society.tistory.com&float=left&" allowScriptAccess="always" menu="false"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