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자들의 도시
원제 : Ensaio sobre a Cegueira / Blindness
작가 : 주제사라마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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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보이면, 보라.
볼 수 있으면, 관찰하라
- 「훈계의 책」에서
이 말을 처음으로 눈먼자들의 도시는 시작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눈을 감는것과, 보이지 않는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둘다 보지못하지만 이 둘 사이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보이나 스스로 눈을 감아버리는 것과, 아예 보지 못하는 것.....
한 도시에 어느날 사람들의 눈이 멀어가기 시작한다. 보통 눈이 멀게 되면 온통 깜깜한데.... 이 도시의 사람들의 실명은 특이하게 모든것이 하얗게보이는 백색실명이 된다. 그렇게 도시 전체 인구가 눈은 뜨고 있으나 앞이 보이지 않는 백색실명의 장님이 되지만, 딱 한명의 여인만 백색실명에 걸리지 않는다. 즉 혼자만 볼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눈이 머는 순간 이미 눈이 멀어 있었소. 두려움 때문에 눈이 먼 거지.
그리고 두려움 때문에 우리는 계속 눈이 멀어 있을 것이고...
지금 말하는 사람은 누굽니까? 의사가 물었다. 눈먼 사람이오. 그냥 눈먼 사람. 여기에는 그런 사람 밖에 없으니까.
그러자 검은 안대를 한 노인이 물었다. 눈을 멀게 하는 데는 눈먼 사람이 몇 명이나 필요하오. 아무도 대답을 못했다. -185p
사람 몸에서 그래도 영혼이 남아 있는 곳이 있다면 그게 바로 눈일 거야. 그런데 그 눈을 잃은 사람들이니.... 190p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인간이란.... 책에서 만난 눈먼자의 도시속 눈먼자들의 모습은 처참하고 추잡하고 암담했다. 작가는 세상의 권력과 명예, 인간의 욕망에 대해 말하는 것 같다. 이런 것에 둘러싸여 많은 이들이 정작 보아야할 것을 보지못한다. 그래서 결국은 인간의 부패, 패역, 추함의 밑바닥을 보이게 되는 것같다.
'가장 두려운 것은 오직 나만이 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작가는 또다른 시선으로도 말하고 있다. 왜 백색 실명이라고 했을까? 그 첫번째 이유를 난 이렇게 생각한다. 어쩌면 세상의 추함, 패역, 부패.. 이런걸 보지못하는게 차라리 더 환한 세상일 것이다. 눈먼자들의 도시속에서 유일하게 볼수있었던 의사 아내의 고통은 더 참혹했기 때문이다. 진실함을 볼 수 있는자, 아무도 보지 못하는 모습을 자신만 본다는 것, 그리고 눈먼자들을 인도해야한다는 보이는자의 책임과 무게는 더 고통스러웠다.
내 목소리가 나요. 다른 건 중요하지 않소. - p.408
눈먼자들의 도시의 참혹함 속에서도, 작가는 인간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고 남겨두었다. 보지못하게 되자, 보였을때의 인간의 오만을 내려놓게 된다. 그리고 인간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깨닫고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며,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간다. 그리고 보지 못하게 되자 한 사람을 알아가는데 있어 보여지는 외적인 기준은 중요하지 않음을 알아간다. 말 그대로 인간대 인간으로써의 그 자체만을 진솔하게 대면하게 된다. 선그라스를 낀 젊은 여자와 검은 안대를 한 노인처럼..... 보지 못하게 되자 그들은 진정한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간다. 보였을 때의 포장에서 벗어난 진실한 자신의 모습을....
가장 심하게 눈이 먼 사람은 보이는 것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말은 위대한 진리에요. - p.419
나는 우리가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눈은 멀었지만 본다는 건가?
볼 수는 있지만 보지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 - p. 461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을 때 눈을 뜨고 있어도 보지못하는 눈먼자들의 상태를 까만색이 아닌 "백생실명"으로 설정한 두번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작가는 사람들이 앞을 못보는게 아니라 "안보고 있을 뿐" 이다 라고 말하고 싶었던것 같다. 허옇게 눈뜨고 못본다는 말처럼....
앞에서 말했듯이 눈을 감는것과 보지못하는 것의 차이는 백색실명과 같은 것이 아닐까??
어쩌면 우리들은 알면서도 안보고 사는것일 수도 있다. 왜냐 의사의 아내처럼 볼수있는 자의 고통이 더 참혹하기에 스스로 눈을 감아버리는 것일 줄 모르겠다. 나 또한 볼 수는 있지만 보지않는 눈먼 사람은 아닐까?
도시는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461p
도시는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 이 문장으로 눈먼자들의 도시는 끝났다. 눈이 멀었던 자들이 다시 보게 되었을 때, 도시는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도시는 항상 그곳에 있다. 문제는 보느냐, 볼수 없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눈먼 자들의 도시" 라는 제목에 굉장한 포스가 끌려 구입했다. 책을 한참읽고 있는데 영화로 개봉된다고 해서 깜딱 놀랬다. 책을 읽는내내 감탄을 연발했기에 영화도 보았다. 역시 영화가 책의 10%로도 못따라왔다. 내가 영화감독이었더라도 눈먼자들의 도시는 참으로 매리트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영화로 만든다는 자체가 무리한 도전이 아니었을까 싶다. 왜냐하면 이 책은 독특한 스토리전개와 상황설정도 뛰어났지만, 전체적인 내용에 힘이 실릴 수 있었던 것은 그 안에 녹아진 작가의 통찰력이 압권이었기 때문이다. 그 보여지지 않는 무언가를 보여지는 화면에 표현하기에는 어려웠을것이다. 어쨌든 그래도 영화와 책을 비교해볼 수 있어서 관객과 독자의 입장에선 좋았다.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주제사라마구는 굉장히 섬세하다. 사람의 생각 하나하나, 시선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아주 세밀하고 치밀하게 서술한다. 하지만 글의 문체는 유하지 않고, 지루하거나 은유적이지 않다. 또한 화려한 수식어와 형용사로 포장하지도 않는다. 극히 직선적이고 힘있고 강하다. 하지만 그 안엔 무수히 많은 통찰과 많은 철학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보는 내내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에 허를 찌르는 그의 글 솜씨에 손뼉을 칠 수 밖에 없었고, 마지막 장을 넘기기까지 긴박감을 놓지못했다.
난 자신의 생각, 자신의 깨달음을 주저리주저리 서술해논 글을 별로 안좋아한다. 꼭 작가의 생각을 독자에게 설득시키려하는 것 같은 이미지를 지울 수 없어서이다. 그러나 주제사라마구는 자신의 생각을 직접적으로 서술하지 않는다. 현실에서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을 가설로 세워서, 아니 좀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너무나 당연시 되어있는 현실을 뒤엎는 다른 시각을 통한 설정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간다. 겉은 작가의 상상에 의해 만들어진 이야기 같지만, 그 안에는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가 정확하게 녹아져있다. 그래서 사라마구의 글이 좋았다. 작가 자신의 생각은 한발짝 물러나 이야기 속에 녹여놓고,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알아서 각자 느끼고 깨닿게 독자의 몫으로 남겨놓아서..... 이렇게 독자의 생각과 느낌을 존중해주는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작가가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