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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스(Once)...

신동욱 |2009.05.15 10:34
조회 77 |추천 0

원스(Once)...

이 영화와의 첫 대면에서 나는 맨 정신이 아니었다.

초겨울이었다.

자정이 넘어 초저녁부터 마신 술에 취해 귀가해서

컴퓨터 전원을 켜고 전날 다운로드한 이 영화 파일을 재생했다.

10여 년 전 겨울 한 철 동안의 술버릇은

아무리 곤드래만드래 취했어도

영화 '동사서독'를 감상하는 일이었다.

늘어진 비디오테이프 때문에 화질과 사운드는 최악이었지만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황량한 고독의 이마주들에 이미 중독당한

내겐 그런 불편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 초겨울, 이 버릇은 10년 만에 다시 되살아났다.

음악을 통해 만난 남녀가 함께 음악을 연주하고 녹음하고 CD를 나누어 갖고

다시 또다른 희망을 찾아 각자의 생활 속으로 떠나는 줄거리.

얼핏 단순하게 보이는 줄거리이지만

애써 설명하려 하지 않은 듯

그들의 현재에 배경음악처럼 깔리는 각각의 사연들이

음악을 통해 잔잔히, 때로는 격렬하게 필름 위에 흐른다.

가난에 찌든 길거리 음악가인 남자와 여자가 부르는 순정한 노래들,

그 노래들이 더없이 예쁘고 아릿하게 다가왔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나는 알코올이 아니라

그들의 노래가 진동시킨 적막한 방안의 공기에 취해 있었다.

더블린의 길거리와 골목, 공원, 지하 스튜디오, 단칸방, 바닷가의 풍경들,

그리고 어거지로 멋지게, 박력 넘치게, 호소력 있게, 가 아니라

그저 자신의 스타일이 이런 것이라는 듯

배우답지 않고 가수답지 않게 노래하고 얘기하고 걸어가는

남자와 여자의 모습이 진한 커피향처럼 가슴에 남았다.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들어서인지,

이날 이후 가끔 듣는 라디오나 길거리에서

원스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이 자주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영화에서 남자가 연주하는 기타 코드를 따보기도 하면서(맞는지 틀리는지도 모른 채)

굳은 혀를 억지로 돌려보기도 했다.

이번에 입수한 오리지널 악보집(기타, 보컬, 피아노)을 들여다 보니 비슷하게 들어맞은 것도 있다.

내한 공연을 갖기도 한 이 남자와 여자는 실제로 연인의 연을 맺었다고 한다.

앙상블만큼이나 잘 어울리는 커플인 것 같다.

이번 서울재즈페스티벌에도 참여한다는데, 아쉽게도 관람은 다음으로 미뤄야 한다.

언제든 다시 보아도 질리지 않는 영화,

언제든 다시 들어도 지겹지 않은 음악,

내게는 무척이나 소중한 친구와도 같은 작품이다.

봄날이 가는 저녁,

통기타와 원스의 악보집 하나만으로도 참 넉넉한 행복감이 차오른다.

 

 

기타 지판 위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걷는 두 주인공의 모습 오늘따라 참 인상적이다.

발거음 하나하나에 얼마나 아름다운 멜로디가 흐르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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