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략과 비약, 만담과 폭력, 침묵과 도발의 공존 그리고 폭력을 통한 자기 파괴
적인 죽음에의 몰두는 그의 네 번째 영화인 <소나티네>에서 최고조에 달한다.
생략과 비약, 만담과 폭력, 침묵과 도발의 공존 그리고 폭력을 통한 자기 파괴적인 죽음에의 몰두는 그의 네 번째 영화인 <소나티네>에서 최고조에 달한다.
조직간의 충돌을 피해 오키나와의 한적한 바닷가에 숨어든 야쿠자 일행의 기이한공동체 생활과 비장한 죽음을 다룬 이 영화는 데뷔작부터 <3-4X10월)에서 베니스 영화제 대상 수상작인 <하나비>에 이르는 야쿠자 혹은 경찰 폭력영화의 한 정점을 이루는 작품이다.
야쿠자의 중간 보스 무라카와는 보스로부터 이끼나와의 조직을 도와주라는 지시를 받는다.
그러나 그것은 무라카와 일파를 제거하려는 조직의 함정이었다.
약간의 사고 끝에 오끼나와의 한적한 바닷가에 숨어들게 된 무라카와 일행은 그 곳에서 그들만의 유토피아적 세계를 이루어 낸다.
빈총으로 러시안 룰렛을 하고 원반던지기, 실탄을 쏴대는 불꽃놀이, 그리고 평화로운 바닷가 백사장에서 종이 인형처럼 민속 씨름을 하는 그들의 모습은 위렵적인 야쿠자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한 순간의 꿈같은 이 시간은 곧 깨어질꿈.
<소나티네> 에는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평화로운 순간뒤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깉게 배어있다.
무라카와의 동료들은 보스가 보낸 암살자에 의해 하나하나 쓰러지고 무라카와는 홀로 적진에 뛰어 들어 기관총을 들고 조직을 몰살시킨다.
여기서 정말 무서운 것은 무표정한 얼굴로 집요하고 처절한 복수 극을 펼치는 무라카와의 얼굴이다.
평화로운 바닷가에서 유토피아적 시간에서도 죽음의 불안을 내포하고 있었듯 난데없이 찾아오는 죽음의 공포, 죽으므이 순간은 이 영화의 주된 정서이다.
복수극을마친 무라카와는 마침내 바닷가로 다시 돌아와 스스로의 머리에 촐울 겨눈다, 이어지는 장면은 황량한 바다와 텅 빈 모래사장, 공허한 파도 소리만이 화면가득 들어찬다.
이텅 비어 허무하기 그징벗는 정서, 이것이 바로 기타도 다케시의 미학일것이다.
사실 영화에서 무라카와의 죽음은 이미 충분히 예견되었던 것이다.
빈총으로 부하들과 러시안 룰렛을 즐기던 무라카와는 이미 자신의 머리에 초을 발사하여 피를 내뿜으며 환상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가 미리 본 미래일까, 아니면 죽음 뒤 떠올리는 과거의 기억일까? 이는 기타노 자신이 연기한 <3-4X10월>의 미치광이 야쿠자 또한 마찬가지다.
마치 장 뤽 고다르의 <미치광이 피에르>의 불손한 반영웅 장 폴 벨몽도처럼 그렇게 갈대밭 속에 앉아 표정 없이 허공을 응시하던 그는 불길한 데자뷔처럼 보여 졌던 잛은 영상 그대로 피범벅이 되어 쓰러진다.
이들에게 죽음은 피해갈 수 없는 운명이며 일상 속에내재 된 것이다.
그리고 결코 피할 수 없는 운명에 대한 절박감과 절망감을 빙글빙글 거리며 스스로의 머리를 날려버리는 <소나티네> 의 무라카와의 얼굴처럼 소름 끼치게 보여주는 장면은 이전에도 이후로도 없었다.
하지만 깐의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대되며 국제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 <소나티네> 이후 죽음과 삶, 운명에 대해 그의 태도는 변화를 겪게된다.
신파에 가까웠던 폭려과 죽음에의 몰두 혹은 매혹 대신 삶의 또 다른 얼굴로서의 죽음 그리고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성찰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이는 일정 정도 기타노 자신의 개인사에서 유래하는 것이기도 하다.
무표정한 폭력의 대명사 기타노 다케시가 아닌 코미디언 비트 다케시로의 엽기적인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한 거의 유밀한영화 < 모두 하고 있습니까>의 실패와 이후 오토바이 사고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왔던 그는 삶과 죽음에 대해 좀더 진지하게 바라본다.
그의 생애 중가장 긴 휴식기간을 거쳐 감족으로 재기한 여섯 번째 영화 <키즈 리턴>이 자신의 어린 시절이 반추된 소년들에 대한 영화라는 것은 당연한 일일것이다.
권투선수와 야쿠자라는, 다르지만 주먹을 쓴다는 점에서는 동일한 방식으로 세상과마주했지만 똑같이 실패한 두 소년은 세월이 흐른 후 학교 운동장을 돌며말한다.
"우린 이제 끝난 것일까?" "아니, 시작도 안 했잔아".
어쩌면 절망에 더 가까울 테지만 적어도 아직은 다시 시작 할 수 있다는 위로는 이전의 기타노의 영화에서는 만날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어쩌면 기타노 다케시 스스로가 자신에게 보내는 다짐이자 작오이기도 했을것이다.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이며 그의 최고작으로 꼽히니는 <하나비>는 이러한 살마과 죽음 그리고 가족에 대한 보다 풍부하고 성찰적인 태도로 가득하다. "죽으라" 는 글자가 써진 도로위를질주하는 자동차의 모습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언제나 그랬듯 예정된 죽음을 질주한다.
하지마 기타노 다케시가 주연한 주인공 니시는 사고의 후유증으로 근육의 반이 마비된 얼굴을 꿈틀대며 딸과 아내의 죽음, 반신불수가 된 친구의 절망을 지켜보면서도 결코 삶에의 욕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한 순관화려하게 피었다사라지는 "하나비(불꽃놀이)" 처럼, 봄철 아름답게 피었다 덧없이 사그라지는 벚꽃처럼 그렇게 사라지고 말 삶에 대한 관조와 성찰이 묻어나는 것이다.
빚 독촉을하는 야쿠자의 눈에 느닷없이 적가락을 꽂고, 총을쏘는 폭력의 순간은 예외 없이 추호의 망설임도 없지만 그는 정작 마지막 죽음의 순에서는 뒤로 물러나 두발의 총소리와 고요하게 출렁이는 바다를 비추면 니시와 아내의 죽음 혹은 자살을 그저 암시할 뿐이다.
그 순간 화면을 가득 채우는 침묵과 여백은 그 어떤 폭력적인 장면보다 더욱 격렬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