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2월 25일 제16대 대통령 취임식에서의 취임 선서 모습
2003년 2월 25일...
그날은 대구 지하철 참사가 일어난 지 꼭 일주일이 되던 날이었다.
일주일을 보내면서 거의 24시간 동안
참사가 일어난 곳의 모습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아,
그날은 일찌감치 아이들을 챙기고 준비해서 부산역으로 나갔다.
5학년이던 헤나, 2학년이던 조슈아, 여섯살이던 세라는
TV 로만 보던 끔찍한 참사 현장을 본다는게 그저 신기할 뿐,
아이들의 마음 속엔 생전 처음 기차를 탄다는 설레임 밖엔
아무것도 없었다.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부산역사 안 TV에서는
'대한민국 제 16대 대통령 노무현'
의 취임식이 생중계 되고 있었다.
아이들과 TV 앞에 섰을 때...
막 노무현씨가 대통령이 되는 순간이었다.
엄숙하게 국민 앞에서 오른 손을 들고,
너무도 당당한 목소리로 선서를 하는 모습...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노대통령의 선서를 보며 호주에서 TV로 시청하며 눈물 흘렸던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취임식을 떠올린 것이었다.
오랜 외국 생활을 하면서 한번도 대한민국의 대통령에 대한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던 나였다.
그런데 지구본에서는 찾기도 힘들고,
또 호주에서도 한국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친구들이 더 많았던
이 작은 나라에서 탄생하는 대통령을 보며
왜 나는 세계 강국인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 취임식을 떠올린 것이었을까.
언제나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을 문어체로 표현하는 아들이 물었다.
"어머니, 대통령이면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분이시죠?"
"응..."
"그럼 나라에서 제일 높은 분이 처음 취임하시는 날 어머니는 왜
우세요? 오늘 같은날은 기쁜 날 아니에요?"
"기쁘지... 기뻐서 우는거야...
너 호주에서 조지 부시 대통령 취임식 본 적 있지?
그때도 엄마가 울었지? 그게 슬퍼서 운거 아니고
너무 대단한 모습이라고, 정말 훌륭한 분이라고 감격해서
우는거라고 했지?"
"지금도 감격스러우세요?"
"그럼..."
"우리 나라는 미국보다 백배는 작은데두요?"
"나라는 작은데 대통령은 조지 부시 대통령보다 더 훌륭하실거야.
엄마는 잘 모르지만, 분명 그런 분이라는 생각이 드네...
조슈아, 나중에 니가 커서도 오늘 엄마가 감격해서 흘린 이 눈물을
절대로 잊으면 안돼...
왜냐하면 넌 어느 나라에 가서 살더라도 대한민국 사람이고,
저렇게 국민을 사랑하는 분이 대통령이 되실 때 한국에 머물게 된
것이 니가 나중에 어른이 되면 분명 자랑스러울 날이 올테니까...
그리고 니가 나중에 훌륭한 목사님이 되려면 저분처럼
국민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꼭 배워야 해. 알겠지?"
아이가 엄마의 말을 다 이해하지는 못했을 것이지만
엄마가 이야기를 하는 내내 TV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런 대화가 오가는 것을 본 기자 한사람이 웃으며 다가왔다.
"죄송합니다만, 방금 아이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었는데요,
아이가 알아듣는다고 생각하고 하신 말씀이세요?"
"아이가 알아듣든지 알아듣지 못하든지 그것이 중요한게 아니죠.
오늘 이 순간에 저와 제 아이가 살아서 이 광경을 보고 있다는 것이
아이의 일생에 중요한 순간이 될 테니까요."
순간 조슈아가 기자를 올려다 보며 한마디 한다.
"아저씨, 저 다 알아들었는데요.
우리 어머니 말씀은요, 저분은 한국 대통령이고, 저는 한국 사람이고,
한국 사람은 저분 때문에 모두 행복할거라는 말씀인데요..."
아이의 똘망똘망한 말에 기자가 놀라 웃음을 멈추고는
아이와 함께 인터뷰에 응해주시면 어떻겠느냐고,
방금 아이에게 해 준 말을 인터뷰에서 대답해 달라는 청을 했다.
제법 긴 인터뷰였는데 연습도 없이 한번에 끝냈다.
"말씀이 참 간결하고 또박또박 하시네요... 혹시 직업이..."
"우리 어머니 아나운서에요..."
아들 녀석의 한마디에 기자는 또 한번 놀라고...
밤 늦게 집에 돌아와서 피곤한데도 인터뷰 하는 모습을
TV로 보며 뿌듯해 하던 아이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리고 몇일동안이나 TV뉴스 시간에 인터뷰 모습이 나와
그날의 인터뷰 덕분에 아이들은 지금까지도
노 전대통령의 취임식을 잊지 않고 있다.
그날...
참사가 일어난 대구 중앙역에서 조슈아는 게시판에 이렇게 썼다.
"많이 뜨거웠겠다. 많이 아팠겠다.
오늘 훌륭하신 분이 대통령 되셔서 같이 살면 좋았을텐데."
......
나는 오늘 점 하나 찍어 놓은 듯한 나라에서 태어나
그 반대 편의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그분의 서거와 마지막 예식까지 보고 있다.
역시 TV로 보는 그 모든 광경을 이제 중학교 2학년이 된
조슈아는 어떻게 생각할까...
"어머니, 노대통령께서 그렇게 정치를 잘 하셨어요?"
솔직히 나는 그분의 정치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다.
어차피 세계의 어느 훌륭한 지도자도 단점과 망언의 실수가
없지 않았기에, 그도 한 인간이라면
수 많은 실수와 좌절과 실패를 안고 삶을 살았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내가 보고, 알고 있는 그분은 자존심과 신념으로 정직하게,
사람을 사랑하는 한 인간이었다는 것이다.
목사의 아내인 내가 오늘
목사가 되려는 아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실수 없는 목사가 되라는 것이 아니다.
무슨 일에든 좌절을 두러워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일에든 실패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정직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그러나 자존심과 신념을 가진,
하나님과 사람을 향한 목사가 되라는 것이다.
취임식 날 내가 흘린 눈물은...
국민을 향한 그의 진한 사랑이 내 가슴에 전해진 이유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