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6.25 대량학살, 한국교회 책임은 없나?

이범진 |2009.06.25 01:05
조회 609 |추천 5
6.25 대량 학살 명분은 반공만능주의 『전쟁과 사회』속 학살 현장, 한국 교회는 책임 없나? 이범진 poemgene@ssu.ac.kr  
『전쟁과 사회』의 저자 김동춘 교수는 “한국전쟁을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이 학살의 진실을 캐기 위한 노력은 전혀 기울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연구가 되었더라도 좌익측이 가해자인 경우만을 거론하며 한국전쟁의 성격을 일방적으로 해석하도록 만들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 김동춘 교수는 평화가 아닌 전쟁을 기념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사진은 전쟁기념관.     © 전쟁기념관
그는 1960년 4.19와 1980년 5.18 당시에 일어난 ‘인간사냥’도 한국전쟁기의 학살에 대한 규명이 없었기에 반복됐던 역사라고 본다.

한국 기독교 역시 전쟁시기의 교회 역사를 살피며, 공산당에 의해 목숨을 잃은 교인들을 ‘순교자’로 기념하는 등 진지한 성찰 중에 있지만 그 당시의 쌍방에 의한 학살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6.25를 맞아 『전쟁과 사회』를 통해서 당시의 학살 현장을 들여다본다. 

김 교수는 한국전쟁 당시 학살의 유형을 크게 네 가지로 분류했다. △작전명령에 따른 학살 △산하 군부대나 경찰 등이 비공식적으로 ‘위험한’주민을 학살 △적에게 도움을 주었거나 그럴 것으로 예상되는 이들을 사법적으로 처형 △정치단체 민간인들 간의 사적인 보복형태로의 학살.

네 가지 유형은 그 경계가 모호하지만, 정치권력이 어떤 식으로든 개입되어 있으며 따라서 그 책임도 작전권자에게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당시 학살의 책임이 미국, 소련, 남한, 북한의 정치 지도자들에게 있었던 것이다.

“제11사단 9연대 3대대는 1951년 2월 10일 대대장 한동석의 지휘아래 거창군 신원면 대현리와 중유리, 와룡리에 출동하였다. 이들은 먼저 청연마을에 도착하였다....마을에는 노인과 부녀자들만이 남아 있었다. 군은 마을 주민 76명을 마을 앞 논에 집결시킨 다음 이들에게 무차별 사격을 가하였다.......신원국민학교에 수용했던 520명의 주민들 역시 이웃 박산골로 몰아가 총살하였다.....군인들은 주민들의 재산을 마구 약탈하였고, 젊은 여자들을 보기만 하면 끌고 나가 강간했다.”(301쪽)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서도 나오듯이, 군인이 아닌 대다수의 민간인들이 학살의 피해자였다. 좌,우익이 무엇인지 모르는 이념에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사람들이었다. 비료를 타기 위해서 모인 사람들이었다. 물론 이들은 대량학살의 피해자가 되었다.

몇몇의 학자들이 당시의 대량 학살을 전쟁에 의한 필연적 결과였다고 주장하지만, 전쟁을 학살의 요인으로 보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 즉 전쟁에 있어서 비극적인 집단학살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 『전쟁과 사회』, 돌베게. 2000년도에 초판이 출간, 2006년에 개정판이 나왔다. 2005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주빈국 조직위가 뽑은 '한국의 책 100'에 선정되기도 했다.
김 교수는 같은 책에서 “한국전쟁 당시의 학살은 국가권력이 집단처형 등 사실상의 학살을 주도한 것으로 보이고, 적어도 ‘빨갱이 사냥’을 묵인, 조장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도성을 가진 유대인대학살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고 적고 있다.

대규모 학살의 명분을 국가가 허락했다는 것인데, 그 핵심 논리는 바로 ‘극도의 반공주의’였다. 반공주의 하나만으로 학살의 명분이 충분했던 것이다. 김 교수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우익 또는 자유주의 세력 주도의 국가 건설이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는 적에 대한 어떠한 고문이나 폭력, 학살까지도 정당화 될 수 있다는 극도의 반공주의 때문이다. 또 지금까지도 그러한 논리가 살아 있는 남한 사회와 정치는 여전히 전쟁 상황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343쪽)

이러한 ‘반공만능주의’는 이승만 정권과 연결해서 보아야 한다. 우리가 알다시피 반공을 국시로 삼아온 이승만은 “빨갱이는 포살해야 한다”면서 학살의 명분을 줌은 물론, 반공을 명분으로 학살을 저지른 이들을 특사로 석방해주는 경우도 있었다.
 
▲ 미군, 국군, 공산군 모두가 대량 학살의 주체였고, 이념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대다수의 민중들이 피해자였다.     © 이범진
또한 김두한, 김창룡, 김종원 등 학살을 주도했던 이들은 일반적으로 민족중심주의, 종교적 확신, 인종주의 등을 내세우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그들의 행동에는 증오의 폭발, 권력의 안정화라는 동기가 진짜 목적이었다는 것이 김 교수의 분석이다.

“북한의 점령을 전후로 한 군,경의 좌익 관계자 학살, 후퇴국면에서 인민군의 우익 인사 학살, 점령과 수복 과정에서의 ‘보복적 학살’에도 아무런 이념적 동기가 없었다....우익측의 ‘반공’, 좌익 측의 ‘조국해방’이라는 각각의 담론은 ‘결과적으로는’ 하나의 허울에 불과하였다.....”(376쪽)

이러한 학살의 가해 현장과 기독교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상상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반공퇴치운동에 앞장선 서북청년회를 비롯한 극우청년조직의 적지않은 이들이 기독교인었다. 그리고 공산주의를 ‘사탄’과 ‘악마’라고 표현하는 등 ‘죽여도 괜찮은’ 짐승 등으로 묘사하면서(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살인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설교를 했던 목회자들도 있었다. 
 
6.25를 맞는 한국교회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이유다.
추천수5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