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죽이 잘 맞는 이성친구가 있다. 군대 보낸 남친을기다릴을 때 고무신 거꾸로 신으려는것 까지
때려가며 말린 그녀는 지금 쯤 어딘가를 신나게 여행하는 중일게다.
학교 다니던 시절 만나게 된 그녀는 넉살 좋게 동갑내기 남학생에게 서슴없이 손을 내민 녀석으로
다행스럽게 성격도 색깔도 심지어 이성관도 틀리기에 참 재밌게 지내고 있는 중이다.
녀석을 볼때면 혹자들이 말하는 '남녀 사이에 친구는 없다'는 말은 우리에겐 적용되지 않는구나 싶다.
적당한 거리와 선이라고 말하기 미안해지는 우정, 신기하다 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사람이다 보니
그럴 수도 있겠거니 하는 정도의 느낌이랄까?
또다른 이성친구가 있었다. 서로가 뭘 좋아하는지, 어떨 때 기분 상하는지, 무엇을 맛있어 하는지,
싫어하는 음식은 뭔지, 심지어는 문자를 할 때도 초성체 없이는 기분 상해 보인다며 불안해하는 것 까지
아는 친구. 근 3달 가량 우리는 친구로 지냈고 간혹 서로가 생각 날 때 쯤이면 만나서 식사를 하고 영화를 봤다. 알 수 없는 선, 넘을 수 없는 벽을 가진 혹은 가지게 만든 그녀는 한동안 내가 변기통을 붙잡고
신경성 위염으로 구역질을 할 수있게 만들어주셨다.
약 3달가량 원인 모를 구토증세에 시달릴때 쯤 혹자들이 말하는 '남녀 사이에 친구는 없다'는 말은
우리에게도 적용되겠구나 싶더라.
이별이란 이야기를 해보자. 일반적인 절차와 방식을 떠나 다른 관계로 남게된 이별을 말이다.
내 오랜친구는 예전에 말하길 전에 사귀던 여자애와 헤어지고 연락을 끊은게 그렇게 후회된다고 했었다.
분명 좋은 친구로도 남을 수 있었을텐데 왜 힘들게 관계를 끊었을까 하는 후회는 연애를 모르던 내게
충고로 남아 오늘의 실천으로까지 이르게 되었다. 연인과 친구, 그 동전의 앞 뒷면과 같았던 환상은
일방적인 편안함과 자유란 이름으로 가능케 되었다. 참 보시기 좋은 모습,
잡지에서나 혹은 케이블 드라마에서나 나올법한 서늘한 연인들, 아니 친구.
사람이니 가능할 수도 있는 관계. 하지만 파도 앞의 모래성은 3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
미련이란 불순물을 거르지 못한 채 차마 시간까지 깡그리 무시하고 손바닥 뒤집듯이 바꾼
친구라는 관계는 사뭇 비참하단걸 왜 몰랐을까. 수학의 공식, 일반적인 뒷처리, 지겹도록 연애지침서에서
본 이야기들. 가능성과 순간의 자유에 도취된 자신감은 사막의 신기루이다.
저기 어디 잡지에서 나올만한 친구사이, 커피프린스 1호점에 나오는 김선균과 채정안 같은 관계는
우리에겐 황새의 걸음걸이과도 같다.
미련과 자유. 시소같은 둘은 자유를 한껏 만끽하고 있을 때 슬쩍 미련을 올려보낸다. 결국 끝없는 주기를
반복적으로 오르내리는 감정은 두 친구를 구렁텅이에 몰아넣게 되는거다. 어느 한쪽일 수도 있겠지만
그 댓가는 양쪽에게 비싸다. 어설픈 우정의 거품이 걷히면 지저분한 애정의 찌꺼기가 모습을 드러낸다.
서로의 혹은 한쪽의 일방적인 사랑이 숨어있다 그 바닥에 남은 찌꺼기로 보이게 될때,
눅눅한 감정으로 남게된 우정을 과연 계속 할 수 있을까.
남녀 사이를 친구로 남기려 할 때 가지고 가서는 안될 것들, 사랑과 미련을 버리기 위해
애를 쓴다. 사서 보낸 힘든 하루를 마치고 자리에 누웠을 때, 그녀의 사랑스러운 얼굴이 떠오르고
내 품에 안겨 자는 모습이 아른거릴때. 베겟머리 옆이 허전하다고 느껴질때 역시 옛 말씀 중에 틀린것은
없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