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의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동시대 사람들로서 둘 다 지도력을 발휘해야 할 상황에 직면했었다.
이들은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가라앉은 사기를 다시 회복시켜, 그들로 하여금 성벽을 재건하며 윤리 의식을 개혁하도록 설득해야 하는 시대적 요청 앞에 서 있었다.
에스라는 예루살렘에 돌아왔을 때 무엇보다 먼저 백성들의 도덕적 타락을 목격했고, 그 때문에 충격에 빠졌다.
에스라는 속옷과 겉옷을 찟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기가 막혀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몇 시간 동안 에스라는 그대로 앉아 울며 땅을 치고 있었다. 그가 통곡하고 슬퍼하는 참회의 모습은 너무나도 충격적이고 감동적이어서 예루살렘 성의 장로들과 온 백성들이 그에게 나아와 함께 참회하고 그들의 행위를 돌이키기로 맹서했다.
느헤미야는 에스라보다 몇 년 뒤에 등장하는데, 약간 저돌적인 접근 방식을 택했다. 장사치들이 안식일에 예루살렘 성에서 물건을 팔려고 성 밖에 진을 치고 있었을 때, 그는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또 유대인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이방인과 결혼한 것을 보았을 때, 느헤미야는 그들을 책망하고 저주하며 몇 사람을 때리고 그 머리털을 잡아 뽑아 버렸다.
에스라는 제사장이었고 또 신비주의자였다. 그는 함께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는 백성들이 28톤에 해당하는 은을 운반하고 있음에도, 800마일에 달하는 그 먼 길의 안전을 위해 군사들을 요청하지 않았다.
군사들을 의지한다는 것이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믿음 없음을 증명하는것이 될까 봐서였다. 그는 안전을 위해 차라리 금식과 기도에 의존하기로 선택했다.
느헤미야는 날카로운 실용주의적 감각을 지닌 고급 관료였다. 그는 주저하거나 망설이는 법을 모른다. 그는 군대 장관과 마병을 이끌고 예루살렘에 들어온다. 그리고 주변 이방 국가들이 그의 재건 작업을 방해할 기미를 보이자 그 즉시 전쟁에 대비하여 유대인들을 무장시킨다. 곧 성을 건축하는 유대인들은 각각 한 손으로는 일을 하고 다른 한 손으로는 병기를 잡는다.
* 물론 느헤미야도 기도하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기도하며 저희를 인하여 파숫군을 두어 주야로 방비하는데(느 4:9)."
에스라와 느헤미야를 대조해 보면서 그리스도인들이 각자 자기의 신앙을 삶으로 옮기는 방식이 서로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같은 사건을 두 가지 다른 각도에서 이야기해주고 있으며, 그 어떤 접근 방식도 혼자로는 온전한 효과를 내기 어렵다는 것을 분명히 해준다.
사람들을 휘어잡아야 속이 시원한 느헤미야는 모든 일을 계획과 경영이라는 각도에서 이끌어 가는 관료형이며, 에스라가 십여 년 간에 걸친 노력에도 이루지 못한 것을 단 52일 만에 해치워 버렸다.
그는 예루살렘 성 안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성벽 재건을 완성했던 것이다.(느헤미야는 언제나 기도와 일을 병행했다. 또한 성벽 재건을 돕는 백성들과 현장에서 호흡을 같이하며 일할 때는 일을하고 기도할 때는 같이 기도를 하며 동거동락 했다.)
다른 한편으로 재건 계획이 일단 성취되자 느헤미야는 에스라에게 대규모 종교 집회를 이끌도록 부탁한다.
느헤미야서의 마지막 몇 장은 구약 역사에 있어서 가장 기념비적인 장면들 가운데 하나를 묘사하고 있다.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큰 광장에 함께 모여 새벽부터 정오까지 하나님의 율법을 낭독했다.
손발을 맞추어 두 지도자들은-상식에 정통한 느헤미야의 실용주의와 가만히 옆에서 보기만 해도 감동을 주는 에스라의 순전함이 합쳐-이스라엘 역사상 천 년만에 한 번 찾아왔던 대부흥 운동을 함께 이끌어 나아갔던 것이다.
필립얀시, 옮긴이 채영삼, 뜻밖의 장소에서 만난 하나님, (사단법인 두란노서원, 1997), pp. 307-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