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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시꽃 당신 -도종환-

이승우 |2009.07.04 14:43
조회 84 |추천 0
                                           접시꽃 당신                                                                              - 도 종 환

 

옥수수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부는 때까지

우리에게 남아 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

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빠져나갑니다

씨앗들도 열매로 크기엔

아직 많은 날을 기다려야 하고

당신과 내가 갈아엎어야 할

저 많은 묵정밭은 그대로 남았는데

논두렁을 덮는 망촛대와 잡풀가에

넋을 놓고 한참을 앉았다 일어섭니다

마음놓고 큰약 한번 써보기를 주저하며

남루한 살림의 한구석을 같이 꾸려오는 동안

당신은 벌레 한 마리 함부로 죽일 줄 모르고

악한 얼굴 한번 짓지 않으며 살려 했습니다

그러나 당신과 내가 함께 받아들여야 할

남은 하루하루의 하늘은

끝없이 밀려오는 가득한 먹장구름입니다

처음엔 접시꽃 같은 당신을 생각하며

무너지는 담벼락을 껴안은 듯

주체할 수 없는 신열로 떨려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에게 최선의 삶을

살아온 날처럼, 부끄럼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마지막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함을 압니다

우리가 버리지 못했던

보잘것없는 눈높음과 영욕까지도

이제는 스스럼없이 버리고

내 마음의 모두를 더욱 아리고 슬픈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날들이 짧아진 것을 아파해야 합니다

남은 날들은 참으로 짧지만

남겨진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인 듯 살 수 있는 길은

우리가 곪고 썩은 상처의 가운데에

있는 힘을 다해 맞서는 길입니다

보다 큰 아픔을 껴안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엔 언제나 많은데

나 하나 육신의 절망과 질병으로 쓰러져야 하는 것이

가슴 아픈 일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콩댐한 장판같이 바래어가는 노랑꽃 핀 얼굴 보며

이것이 차마 입에 떠올릴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마지막 성한 몸뚱아리 어느 곳 있다면

그것조차 끼워넣어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에게

뿌듯이 주고 갑시다

기꺼이 살의 어느 부분도 떼어주고 가는 삶을

나도 살다가 가고 싶습니다

옥수수잎을 때리는 빗소리가 굵어집니다

이제 또 한번의 저무는 밤을 어둠 속에서 지우지만

이 어둠이 다하고 새로운 새벽이 오는 순간까지

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당신 곁에 영원히 있습니다

     

                                                                          

 

시를 눈으로 읽으면 시 안의 화자의 마음이 읽히고,

시를 마음으로 담으면 시 밖의 시인의 마음이 와닿습니다.

 

남겨진 시간이 짧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니,

참으로 그 시간이 짧다는 고백.

사내의 마음은 먹장구름 처럼 어둡고, 또 슬프기만 합니다.

흔적 없이 빠져가는 머리칼 처럼 사랑하는 사람의 생기가,

그와 함께할 시간이...

우수수 흩어져가는 것을

그저 속수무책 옆에서  지켜 보기만 해야하는

사내의 마음 안으로 

눈물을 대신하는 빗방울이 무수히 떨어져 내립니다.

이보다 더 많은 날들을  그와 함께 할 수 있을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이 숨을 거두고 아픔의 세상을 떠나고나면 

사내가 함께하리라 굳게 믿었던 많은 날들을 

혼자 감당해야만 합니다.

사랑이 그랬던 것처럼, 

이별역시 예고 없이 찾아오는 법입니다. 

 

어쩌면 내일이라도 당장

그의 빈자리를 확인하며 가슴아파해야 할 

시간이 덜컥 찾아와 버릴지 모릅니다.

두렵습니다.

그를 붙잡을 길이 없어 애가탑니다.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이 야속하기만 합니다.

 

넋을 놓고 한참을 앉아있다가 일어서길 여러번...

딱히 방법이 있을리 없습니다.

그러나 그걸 누구보다도 더 잘 알면서도,

무너지는 담벼락이라도 붙잡고 매달리고 싶은 심정으로 

그의 마지막을 지켜야 할 것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담벼락에 기대어 한더미 꽃을 피워낸... 

접시꽃 한포기 가슴에 담고, 또 담아봅니다.

무너지는 담벼락을 일으켜 세우려 안간힘을 쓰다

기어기 그 떨림이, 안타까움이... 꽃으로 피어난

애틋한 풀꽃 더미를 가슴에 담아봅니다.

 

세상에는...

사랑하는 마음만으로는 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영원을 약속하는 것 역시 

사랑만으론 부족한 것 중에 하나 입니다.

그러니 사랑의 이름으로 영원을 약속하는 것 역시 얼마나

부질없는 약속입니까.

 

 

차라리 자신의 삶을 그에게 나누어 주었음 싶습니다. 

그러나,

운명은 이미 사내의 손을 벗어나 하늘의 뜻에 맡겨졌습니다.

그러니 어찌할까요...

이제 그 말씀을 받아들여야함을 알아야 할 수 밖에요...

 

그에게 해주지 못한 것들에 대한 미안함으로,

함께 누리지 못한 것에 대한 안쓰러움으로...

얼마남지 않은 시간을

그에대한 애틋함만으로 채워가기엔

남겨진 시간은 너무 짧고,

주어야할 사랑은 너무 많이 남았습니다.

그러니...

남겨진 하루 하루를 마지막 날처럼 살아가야할 것입니다.

가슴아픈 것을 생각하기 전에,

그에게 미처 다 주지 못한 사랑만을 생각해야 합니다.

모든것을 그에게 내려놓고,

그를 위해 하루를 온전히 살아야합니다. 

온힘을 다해 그를 사랑하는 것으로 운명에 맞서야 합니다.

지금 할 수 있는일은 다만 그뿐입니다.

최선을 다해 남겨진 시간을 사랑하는 것...

 

절망은 그렇게 꽃으로 바뀌어 갑니다.

아마도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자신의 일부를 그사람에게 내어주는 것이란...

그 말이 맞는모양입니다. 

무너져가는 담벼락이라도 꼭 부여잡고

기어이 꽃을 틔우고야 마는 접시꽃 한 포기처럼,

어둠이 다하고 새벽이 오는 순간까지,

꼭 잡은 그의 손을 놓지 않아야 합니다.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소중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누구의 사랑이 아름답다 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러니 그들의 이별 역시 슬프기만한 것은 아닐테지요. 

저마다 애틋함으로 아름답다하여야...

그래야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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