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는 갑자기 나타나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피곤하고 지쳐서 돌아오는 집 앞
내가 출장에서 돌아오기로 되어있는 시각의 공항
시간강사 시절 내 고물차가 세워져있는 대학의 주차장
오늘처럼 연구실 앞 벤치
그런 곳에 예고없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나타나는 것만 극적인 게 아니다
헤어질 때도 그는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게 만든다
한참동안 눈 속을 뜨겁게 쳐다보다가
이윽고 어려운 결단이라도 내린 사람처럼 한번 눈을 꾹 감은 다음
긴 숨을 내쉬며 어깨를 끌어당겨 안는다던지
아니면 흩어지지도 않은 내 머리카락을
정성스레 한가닥씩 쓸어올려준 뒤
이마에 다정하게 입을 맞춘다
그리곤 잠긴 목소리로 내일 전화할게 라고 속삭이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안타깝게 헤어진 뒤
보름이고 한달이고 소식이 없었다는 점이
종태의 출몰에서 가장 극적인 대목이다
시사주간지의 사회부기자라는 다소 돌진 성향의 직업 탓도 있겠지만
그는 바람처럼 왔다가 방귀처럼 냄새만 남기고
아무데서도 찾을 길 없이 허망하게 떠나버리는 일을
남자다운 일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종태는 거의 한달만에 나타난 셈이다
지난번 인사동 감자탕 집에서 헤어질 때가
좀 싸늘한 봄밤이었던 게 기억난다
팔에 걸치고 있던 내 바바리코트를 그가 억지로 입혀주고
목 밑까지 단추를 채워줬었다
입술을 내 귓볼에 바짝 대고는
오늘밤 이불 잘 덮고 자
라고 속삭였던가
그런 뒤로 오늘이 처음인데 마치 잠시도
내 곁을 떠나본 적이 없다는 듯이 대한다
옷 예쁜데 라면서 날 한번 쓱 훑어보더니
진희 넌 원래 흰색이 잘 받아 정장도 잘 어울리고 한다
나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없으며
내가 그렇게 되도록 관리라도 해왔던 사람같은 말투인 것이다
일 안 하고 여기 왠일이야?
지금 일 하고 있잖아
무슨 일
너 만나는 거 말고 나한테 일이 어딨냐
종태의 감동적인 등장과 퇴장
그리고 세살이나 아래인 그의 친밀한 반말투에 대해
별다른 느낌을 갖지 않게 된지 오래다
그의 기분을 따르지 말고 철저히 나 자신이 시키는 대로
움직여야한다는 것이
그를 대하는 나의 첫번째 원칙이다
그렇지 않다가는 그의 사랑의 변속을 견디기 힘들 것이다
은희경의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중에서
사랑을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