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1년, 한국전쟁 당시 미 공군기가 촬영한
조선총독부와 경복궁'터'의 모습이다.
일제는 조선을 이씨조선이라 칭하면서
그 권위를 깍아내리고자 수많은 행동을 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조선의 궁궐들을 훼손하는 일이었다.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고쳐서 동물원으로 만들어버렸으며
현재 가장 보존상태가 좋다는(그래봤자 원크기의 30%)
창덕궁마저 불을 지르고 보수한다는 명목으로 맘대로 지었다.
경희궁은 그 존재자체를 지도에서 지워버렸고
경우궁은 그 크기를 30%로 축소시킴과 동시에
원래 이름을 지우고 고종에게 말년에 오래살으라고 비꼬는 용어로
덕수궁이라 고쳐서 부르는 등 치가 떨릴만큼 무자비했다.
이렇게 여러가지가 있었지만, 단연코 압권은 조선의 법궁(정궁)인
경복궁을 조선민중들의 뇌리에서 지우는 것이었다.
1394년 태조 이성계가 390칸의 작은 경복궁으로 시작한 이래,
16세기 말엽인 임진왜란 전까지 약 200년간 경복궁은
끊임없이 확장을 거듭했었다.
국력의 부족으로 인해, 왜란 때 소실된 것을 복원 하지 못하다가
흥선대원군이 세도정치로 무너진 왕실의 위엄을 세우기위해
1868년 330여채의 전각, 7200천칸의 규모로 다시 복원하였다.
북경의 자금성의 규모가 이론상으론 9999와 1/2칸이라지만
실규모가 9400여칸으로 추정되는 것으로 보아,
당시 경복궁의 규모가 어마어마했다는 것을 짐작해 본다.
그러나 경복궁의 비극은 50년이 채 못가서
다시 일본인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1910년 8월 29일 국치일을 기념하기 위해 근정전에
대형 일장기가 걸리는 것을 시작으로 조선총독부가 10여년에
걸처세워지는 과정에서 많은 전각이 해체되었고,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은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해체되어
동쪽으로 옮겨지는 운명을 맞게된다.
그리고 이도 모자라, 북악산으로부터 내려오는 정기를 끊고자
조선총독부 지하에 361개의 콘크리트 석주를 말뚝처럼 박았고
유교를 숭상하는 조선의 기를 누르기위해 불교문화재인
탑, 석등 등을 헐어낸 전각터에 무분별하게 배치시킨 후,
그 터를 폐허로 만들고자, 무덤에나 깔아놓는 잔디를 덮었다.
위의 사진은 일제 식민통치가 끝난 후 항공사진으로 찍힌
경복궁전경으로서 얼핏보기에도 근정전과 경회루를 제외한
경복궁의 모든 전각이 해체되었음을 한눈에 알 수 있다.
해방 후, 다시 조금씩 복원을 하고 있으나,
2009년 초, 현 복원률이 1868년 최종 경복궁 모습의 30%를 갓
넘은 수준이며, 최종 복원시기는 2025년에서 30년으로
점치고 있다니, 이 얼마나 통탄할 일인가?
난 사대주의 사상이 만연했던 조선왕조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다.
물론 세종대왕의 훈민정음이라는 업적과
이순신이라는 존재는 내게 너무나 소중한 존재이지만....
허나, 그런 것을 떠나서 우리 조상의 혼심의 힘이 담긴 자존심,
경복궁이 저렇게 된 모습을 보면... 정말 울분이 치밀어 오른다.
미국도 2차대전시에 도쿄를 소이탄으로 불바다로 만들었지만,
천년고도인 교토만큼은 문화재가 많다고 공습을 하지 않았다.
일본의 역사가 숨쉬는 고도를 불태웠을때, 그 행위가
일본인들의 한으로 남아 저항이 더 심해질까 두려워서이다.
얼핏보면 일본인들이 동양의 문화재에 대한 이해도가
미국 보다 더 높으리라 짐작을 해보지만,
실제로는 서양의 미국이 동양문화재를 이해하는 수준에도
못 미치친다는 것을 이런 증거물들을 통해 입증 할 수 있으리라.
아울러 일본의 황거를 똑같은 식으로 당하게 해야한다는
극단적인 생각을 잠시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