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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열량(단편)

이구아나 |2006.09.06 20:58
조회 526 |추천 0

사랑의 열량을 무시하지 마라..
사랑을 하면 아름다워진다는 말은.. 결코 미신이 아니다.


1. 그들은 그렇게 만났다.

 

힘들다.. 괴롭다.. 외롭다.. 하지만 어디 한군데 기댈 데 조차 없다는 것이 더욱 슬프다. 아무도 모르는 일인 걸. 혼자만의 짝사랑이었으니..
한 동안 어두운 방안에서 베게만 적시던 연화는 컴퓨터를 켰다. 그래.. 이럴 땐 익명성이 보장되는 곳.. 채팅이 제격이지.. 연화는 오랜만에 채팅이나 할 작정인가 보다. 채팅을 손놓은지도 꽤 되었지. 특유의 말솜씨와 함께 심은하 전지현등의 채팅명으로 남자들을 사로잡았던 연화였기에 한동안은 채팅에 심각한 중독증상까지 보였었다. 하지만 벙개를 목적으로 접근하는 남정네들을 만족시킬 수 없었던 연화는 언제부턴가 채팅에 환멸을 느끼기 시작했었고 채팅을 끊고 살아온지도 어언 2년.. 하지만.. 지금 의지 할 곳은 여기.. 채팅방 뿐이다.

연화는 예전에 살다시피 했던 채팅방에 접속했다. 너무 오랜만이어서 그런가? 너무나도 다양해진 메뉴들로  잠시 혼란을 느끼던 연화는 조용히 방을 찾기 시작한다. 방제는 하나같이 '지금 만날래?', '드라이브 하실 분','지금 술한잔 어때?' 등이 난무하고 있다. 패스, 패스,패스... 하지만 한순간 연화의 눈에 박힌 방제가 있었으니.. '오늘 그녀를 떠나보냅니다.' 연화의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왠지 이 사람과는 마음이 통할 것만 같다. 마치 연화를 위해 준비된 방인 듯 하다. 빙고! 연화는 두근거리는 맘으로 방문을 넘어섰다.

 

"하이"

 

지지않는 태양님이 연화를 맞아준다. 지지않는 태양.. 별명도 환상적이지 않은가.

 

"방가 방가"

 

이건 너무 구식멘트인가? 한 때 채팅 퀸이었던 연화이지만 왠지 조심스럽다.

 

"심은하님이시네요."

 

아뿔싸.. 몇 년 전 별명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이미 결혼까지 한 여자의 이름을..

 

"나이가..23이네요?"

 

"넵!"

 

"압! 동갑!"

 

23동갑내기였던 지지않는 태양과 심은하는 말을 트기로 하고 그야말로 편안한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다.

 

"방제를 보아하니 누군가 떠나보냈냐?"

 

심은하가 묻는다.

 

"오늘.. 나의 그녀가 떠났다네 친구."

 

"쯧쯧.. 여친이랑 깨진겨?"

 

"그게 아니라.. 짝사랑하던 여자가.. 결국 딴놈한테 가버렸다네."

 

"뭐.. 뭐시라?"

 

심은하는 심장이 털컥 내려앉는 느낌이다. 어쩜.. 이렇게 똑같은 처지이냔 말이다. 심은하의 손은 마치 모터라도 단 듯 가속이 붙기 시작한다.

 

"어쩌냐.. 우린 천생연분이야. 나도.. 나도 오늘 그를 떠나보냈다고.."

 

바라 볼 수 밖에 없던 그와 그녀.. 그리고 떠나버린 그들.. 그 슬픔과 말 못할 상실감은 지지않는 태양과

심은하를 더욱 강하게 묶어 주었고.. 그들의 대화는 밤이 새는 줄 모르고 계속되고 있었다. 어쩜 이렇게도 말이 잘 통할 수 있는지.. 아팠던 상처에 소독약이라도 바른 것 처럼 아찔한 쾌감은 이루 말 할 수가 없었다.

 

"어엇! 벌써 4시야.. 아침에 섭있는데."

 

"엉? 벌써? 우리 미쳤나부다."

 

"우리 이렇게 됐는데 이름이나 알자!"

 

그렇다. 이렇게 끝내기엔 너무나도 안타까운 인연이다. 심은하는 어차피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인연의 끈은 놓지 않기로 결심하고 지지않는 태양에게 마음을 열었다.

 

"난 태양이야. 이태양.."

 

"장난하지 마고 똑바로 대셔!"

 

"진짜야.. 그래서 별명도 지지않는 태양인걸?"

 

"심은하한테 맹세해?"

 

"심은하와 우리엄마와 떠나버린 그녀를 걸고 맹세해!"

 

떠나버린 그녀에게 걸건 뭐래? 심은하는 괜히 기분이 샐쭉해 진다.

 

"넌? 정체를 밝혀라 심은하!"

 

"아무한테나 안갈켜주는데.. 영광인줄 아셔!"

 

"알겠소.."

 

"난 연화야.. 우연화."

 

"그렇구나.. 왠지 낯익은 이름인걸?"

 

"그래?"

 

연화는 태양이의 연락처까지 따낸 후 채팅방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침대위로 쓰러져버렸다.

 

 

'우룽우룽우루루'

 

연화의 폰이 연화를 깨운다.

 

"여보시오."

 

"야 일어났냐?"

 

"누구냐.."

 

"나.. 이태양."

 

태양의 목소리에 연화의 잠이 확 달아나 버린다. 미쳤어..미쳤어.. 어쩌자고 폰번호를 가르쳐 준거야.. 연화의 가슴속에 후회의 파도가 밀려온다. 처음했던 벙개의 아픈 기억.. 잊었더란 말이냐.

 

"어.. 일어났지."

 

연화의 목소리가 주춤한다.

 

"야.. 채팅느낌이랑은 다른데? 왜 이렇게 힘이 없냐? 갸냘픈척 하긴.."

 

"아.. 아냐!"

 

연화의 얼굴이 붉어진다. 태양이의 목소리는 자신감이 넘쳐 흐르는 매력적인 목소리다. 두려움이 없는 아이.. 너 같은 건 내맘 몰라.

 

"섭이라며 괜찮어?"

 

"어.."

 

"나.. 사실 너 안다?"

 

"뭐.. 뭔 소리야."

 

연화의 심장이 발밑으로 쿵 떨어진다.

 

"너.. 누군지 안다고.. 우연화!"

 

"장난 고만해라이.."

 

연화의 목소리가 떨려오기 시작한다.

 

"너.. 정말 나 몰라? 이태양 몰라?"

 

"이태양..."

 

모르겠다. 모르겠단 말이야.

 

"누군데.."

 

연화가 조심스레 묻는다.

 

"니 짝사랑.. 이상민.. 내 짝사랑  권하연.. 그리고 나 이태양.. 뭔가 공통점있는 거 같지 않어?"

 

상민이와 하연이가 초등학교 동창이란 건 알고 있다. 그렇게 알게됐고 또 그렇게 어울렸으니까. 하지만 이태양은...

 

"아!"

 

그래.. 이태양..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남산초등학교 6학년 2반.. 하연이와 난 6학년때 같은 반이었다. 친했던 건 아니다. 그 아인 우리반에서 이쁜이로 통했다. 다른반 남자애들도 다투어 선물공세를 펼치던 인기걸이었다. 그리고.. 내 사랑 상민이는 반장, 나는 부반장이었다. 태양이는.. 이제야 떠오른 태양이는 늘 하연이를 괴롭혔었다. 선생님이 안계신 동안 늘 시끄럽게 떠들어서 떠드는 사람 명단에 일순위로 적어놓던 악동이었다. 이태양.. 한마디로 그는 내 관심밖의 인물이었다.

 

"채팅끝내고 졸업앨범 뒤져봤지.. 거기 우리 4명이 나란히 있는거 있지? 진짜 웃기지 않냐? 소름이 다 돋더라니까."

 

정말이다. 연화의 온몸이 닭살로 덮여버렸다. 부르르 경련까지 일어난다. 한국이란 땅덩이가 이렇게

좁다는 걸 왜 몰랐던가. 실수였다. 흥분한 나머지 모두의 실명을 거론해 버린 연화의 결정적 실수였다.

 

"진짜.. 별일이다."

 

"안돼겠다. 이것도 인연인데 우리 한번 보자! 그냥 넘어갈 수 없잖아? 오늘 시간있냐?"

 

"어.. 그게 말야.."

 

"바쁜척하긴.. 너 어제 별일 없다고 했었잖아! 나와라.. 4시에 종로 벨킨앞이다."

 

'뚜.. 뚜..'

 

"야.. 야 임마!"

 

제 멋대로 인간.. 나는 먼지가 쌓인 졸업앨범을 뽑아들었다. 6학년2반 이태양..

 

"허걱"

 

놀랍게도 정말 4명의 사진이 나란히 정렬되어 있다. 역시나 멋진 상민이와 얄미울 정도로 이쁜 하연

이.. 그저그런 모범생 나, 우연화.. 그리고.. 이태양..

태양이는 얼굴에 익살을 가득물고 있다. 근데.. 그땐 몰랐는데 지금 이렇게 보자니 이 녀석 꽤 귀엽다. 살포시 패인 보조개도 귀엽고 갸름한 얼굴에 꼭 박혀있는 똘망똘망한 눈동자도.. 꼭 다문 입술도 귀엽다.. 정말 귀엽다. 그렇게 자신있는 목소리는 이런 외모에 뿌리를 두고 있었으리라.. 연화는 이런 생각으로 잠시 가슴이 벅차오르다가 우연히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고는 다시 좌절감에 빠져든다. 빵빵한 얼굴, 두개의 턱, 툭튀어나온 뱃살.. 터질듯한 허벅지..

 

"안돼.. 안돼.."

 

연화는 다시금 끝없는 상실감에 고개를 숙인다.

 

 

3시 반.. 연화는 마냥 시계만 바라보고 있다. 막상 샤워까지 하고 속옷바람으로 옷장앞에 섰지만.. 하지만 이런 몰골로 나갈 수는 없다. 에라 모르겠다. 연화는 옷장문을 쾅 닫아버리고 그냥 tv나 볼 심사로 피자한판을 시켜놓고는 프링글스한통을 껴안고 tv를 켰다.

 

'와작와작'

 

연화는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으려는 듯 프링글스를 와작와작 씹는다.

 

'두루루루루루우룰루'

 

태양이다. 그러나 받을 수 없다. 연화는 폰을 외면한채 급기야 프링글스를 세개씩 씹어먹기 시작한다.

 

'와작와작와자자작'

 

"으어어엉."

 


저녁무렵.. 연화는 우울한 마음과 더부룩한 속을 진정시키고자 대문을 나선다. 연화은 외출을 그리 즐기지 않는다. 터질듯한 청바지에 살을 집어넣을 때마다.. 그리고 청바지위로 넘쳐흐르는 뱃살을 쥘때마다.. 꽉끼는 자켓에 눌려있는 팔뚝을 느낄때마다 짜증이 솟구친다. 거울앞에서 팔뚝살과 허벅지살.. 뱃살을 뭉텅뭉텅 뜯어 던져버리는 상상만 끝도 없이 해 본다. 그렇다고 연화가 심각한 비만녀는 아니다. 통통함이 좀 오버했다고나 할까? 하지만 연화는 늘 늘씬한 여자들처럼 하늘거리는 몸매를 그리며 산다.

 

'만약 내가 하연이 고것처럼 하늘하늘했다면 상민인 나에게 왔을거야.'

 

연화는 다시금 울컥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눈을 꼭 감았다 뜬다.

 

"하이"

 

"엄마야!"

 

연화가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을 뜨자 바로 앞에 커다란 얼굴하나가 귀신같이 등장한다.

 

"뭐에요!"

 

연화는 아직 진정이 되지 않은 듯 꽥 소리를 지른다.

 

"지지않는 태양.. 태양이."

 

"이태양?"

 

하지만 태양인.. 귀여웠다. 갸름한 얼굴에 귀여운 보조개가 있었다. 반짝반짝한 눈동자가 박혀있었다. 하지만 이 사람은.. 아니 이 곰탱인.. 너부대대한 대야판에 곰보자국같은 보조개와 쥐똥만한 눈이 두개 박혀있을 뿐인걸... 턱이 3개에 두꺼운 팔뚝때문에 차렷자세도 불가능한 이 야만인은 도대체 누구이길래 태양이를 사칭하고 있단 말인가.

 

"이야.. 섭섭한걸? 살 좀 쪘다고 이렇게 못알아보다니.. 너두 만만치는 않잖어."

 

"뭐..뭐야 이거!"

 

하지만.. 맞다. 저 목소리.. 말투.. 분명 태양이렷다. 하지만.. 하지만.. 이건 아니잖아.. 진정 이럴 순 없

는 것이란 말이다.

 

"여긴.. 어떻게."

 

"바람 맞추고.. 전화도 안받고.. 이 이태양 그렇게 당하고 살 순 없다 이거야! 자, 니가 밥사라!"

 

태양이는 다짜고짜 연화의 팔목을 꽉 쥐고 둔탁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아야! 야..야.. 이 돼지섀끼 이거 못놔?"

 

엉겁결에 끌려가다시피 도착한 레스토랑.. 만찬이 준비되었다. 태양이는 물만난 고기마냥 접시에 코를 파묻는다. 하지만 연화는 입맛이 싹 가신 듯 하다.

 

'저거.. 저 야만인같이 생긴 놈이 도대체 뭘 믿고 저렇게 자신만만한거야! 지금 날 무시한다 이거야?'

 

연화는 마치 사기라도 당한 기분이다. 하지만.. 동병상련의 아픔이랄까?

 

"너.. 근데.. 어쩌다.. 이렇게.."

 

연화가 안타깝다는 듯 입을 열다 자신도 그런 말을 할 처지가 아니란 걸 깨달은 듯 입을 다문다. 태양이는 연화를 흘긋 보며 말한다.

 

"내가 좀 쪘지? 살다보니 이렇게 되더라? 근데.. 이제 이 가면.. 그만 벗어버리련다."

 

"뭔 말이냐?"

 

"너.. 안먹냐? 어서 먹어.. 이게 우리의 마지막 대만찬이니까.."

 

"그게.. 무슨.."

 

"너.. 상민이 정말 좋아한다며.. 10년도 넘게 좋아했다며.. 그냥 보낼 거야?"

 

상민이의 이야기에 연화의 눈에서 다시 눈물이 울컥한다.

 

"나는..  나는 절대 하연이 포기못해. 꼭 내꺼로 만들거야."

 

연화는 순간 푸식 터지려는 웃음을 간신히 참는다. 눈물이 쏙 들어가 버렸다.

 

"무슨 수로?"

 

연화는 간신히 숨을 참아내며 태양이를 바라본다.

 

"이렇게 당하며 살기 억울하지 않냐? 한 번사는 인생.. 이제 우리도 날개를 펼쳐 보자구."

 

"어떻게?"

 

"내가 지금 이래뵈두.. 살만 빠져봐! 상민이? 그 자식은 비교도 안되게 멋있다구!"

 

3종세트 턱을 주렁주렁 달고 감히 상민이와 비교하다니.. 연화는 기도 안찬다는 듯한 표정으로 대꾸한

다.

 

"그러셔? 이거 왜 이러셔? 나야말로 살만 빠지면 심은하 저리가라 이거거덩?"

 

연화의 말에 순간 태양이의 눈에서 섬광이 스친다.

 

"그럼.. 우리 내기할까? 누가 더 괜찮아질지 말야."

 

하지만 연화는 다시 침묵을 지킨다. 누군 빼고 싶지 않아서 이 상태인줄 아나? 연화도 지금까지 수백

수천번의 다이어트를 시도해왔다. 하지만 다이어트는 언제나 폭식본능을 자극할 뿐이었다. 그냥 이대로 살 수 밖에 없다고.. 이 살들을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것 봐, 그게 말이야.. 말처럼 쉬운게 아니거덩? 나도 많이 시도해 봤는데.."

 

'너.. 사랑해 봤어?"

 

태양이가 뜬금없이 묻는다.

 

"응?"

 

"살이 타들어갈 정도로 열정적인 사랑말야.."

 

그날 태양이는 연화에게 엄청난 협상을 요구했다. 연화는 미친소리하지 말라며 태양이를 저지했다. 이놈.. 정신나간 것이 틀림없다.

 

둘은 말 없이 레스토랑을 나선다. 그리고 어색하게 걸음을 옮기던 태양이는 연화를 다시 한번 설득시켜보려는 듯 장황한 이론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열정적인 한번의 키스로도 12키로칼로리가 소모된다는거 아냐? 그리고 섹스 말인데..."

 

태양이는 잠시 주춤하며 연화의 눈치를 살핀다. 연화의 얼굴이 달아오르게 시작한다.

 

"입닫어라."

 

연화가 낮은 소리로 경고한다. 연화의 심상치 않은 기운에 태양이는 완전 기가 눌린듯 결국 두손을 들

고 말았다.

 

"까르르르.. 어.. 그래서?"

 

순간.. 어디서 많이 듣던 목소리가 연화와 태양이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저기 다정한 한쌍의 연인을 보

라.. 두꺼운 목도리를 칭칭감고 있는 연화와 달리 갸날픈 목에 블루오션컬러의 패셔너블한 스카프를 두르고 배꾭이 드러날 정도로 쇼트한 까만 점퍼에 늘씬한 허벅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스키니 진을 입고 세련된 웨스턴 부츠로 마무리한 멋진 그녀.. 하연이다. 그리고 하연의 옆을 지키고 있는 저 보이는.. 이렇게 보고만 있어도 눈물나는 남자.. 이상민..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빛이나는 그 연인은 어둠속에서 암석과 같이 서 있는 연화와 태양이를 의식하지도 못한 채 그렇게 스쳐지나갔다. 영원같은 여운이 그들을 감싼다. 잠깐의 정적이 흐른 후 그들은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다시 둔탁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침묵은 연화의 집앞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되었다.

 

"야.."

 

연화가 고개를 숙인 채 태양이를 부른다.

 

"어.."

 

태양이의 목소리도 한 풀 꺾여 있다.

 

"키스가.. 몇키로칼로리를 소모시킨다고 했지?"

 

태양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연화를 바라본다. 그들은 그날 밤 그렇게 12키로칼로리를 소모시켰다.

 


 

2. 작전 돌입하다.


다음날 아침..
 
'부르르를아아아하하'

 

연화의 폰이 울린다.

 

"여보쇼."

 

짜증이 감도는 연화의 목소리는 아직 꿈속을 헤매고 있다.

 

"일어났냐? 6시까지 헬스장알지?"

 

짜랑한 태양이의 목소리.. 지금은 새벽 5시 반이다. 어제의 그 약속.. 꿈이 아니었단 말인가? 연화는 눈

을 꼭 감는다. 하지만 곧 연화의 머리속에 상민이와 하연의 다정한 모습이 클로즈 업 되고... 연화는 다시 결심했다는 듯 두터운 종아리를 힘차게 뻗으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이렇게 살지 않을 거야.. 멋지고 당당하게 살래. 조금만 참자 우연화!"

 

 

연화는 펄렁한 츄리닝차림으로 헬스장을 들어선다. 아직 6시임에도 불구하고 몇몇의 인간들이 러닝머신을 부여잡고 열심히 달리고 있다. 저기 저 인간 이태양도 삼중턱을 펄럭이며 열심히 뛰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이렇게 삼중턱을 보고 있자니 어제의 악몽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으억! 부르르..살이 다 떨린다. 아무리 12키로칼로리라도 그건 아냐! 차라리 안먹고 말지.. 하지만.. 지금껏 다 실패했잖아.. 그래..마지막 방법이다. 저놈.. 어디 한번 믿어 보자고.. 연화는 저 삼중턱의 압박에서 빨리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러닝머신에 올라선다.

 

"왔냐?"

 

태양이가 거친 숨을 내쉬며 연화를 맞이한다. 거친 짐승의 숨소리.. 쭈욱쭉 흘러나오는 끈적한 돼지기

름.. 연화의 숨이 막혀온다. 헝헝헝 몰라, 몰라! 연화는 억지로 거울을 외면한 채 러닝에 열중한다. 그러나 한 순간 거울에 비친 태양과 연화의 열정적인 모습.. 연화는 깨닫게 되었다. 태양이보다 나을 것이 없는 자신의 모습을..

 

2시간반의 운동을 마친 그들은 샤워를 끝내고 터질 듯 빤드르르한 얼굴을 하고서 다시 재회를 한다.

 

"야.. 개운하지?"

 

태양이가 두꺼운(근육은 아닌..) 팔뚝을 쭉 뻗으며 말한다.

 

"어.. 근데 오랜만에 운동을 해서 그런지 피곤하다.. 어디 좀 앉자."

 

연화가 태양에게 제안을 한다.  

 

"뭐? 너 지금 장난하냐?"

 

태양이가 연화에게 버럭 호통을 친다.

 

"왜!"

 

"어제 우리의 서약을 벌써 잊었단 말야?"

 

서약이라니.. 어제의 장시간의 키스후 작은 기억상실이 있었나보다. 멍멍한게 도대체가 아무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첫째!  우리가 만나는 동안에는 절대 앉지 않는다."

 

태양이가 부르짓듯 외친다.

 

"그런 것도 있었나? 아, 알겠고.. 그럼 우리 뭐라도 좀 먹자! 배가 고파 죽겠다야."

 

그 순간 태양이가 연화의 입술로 기습공격을 해 온다. 연화는 무방비상태로 당해버리고 말았다. 이번 키스도 꽤 오래 지속되었고.. 흠흠.. 누군가의 조용한 헛기침으로 화들짝 마무리 되었다.

 

"야! 뭐야!"

 

한참의 키스가 끝난 후, 연화는 새삼스레 소리를 꽥 지른다.

 

"둘째! 배가 고프면 키스를 한다. 식사는 하루에 세끼만 먹는거야!"

 

"야! 안돼.. 난 간식없음 하루도 못 산단 말야.."

 

애처로운 연화의 눈빛에 정말 눈물까지 맺혀있다.

 

"그럼.. 이거나 먹자.."

 

태양이는 눈물에 못 이긴 척 호주머니를 주섬주섬하고.. 연화의 눈빛은 무서우리만치 희번득거린다.

그러나..

 

"자.. 우리 구름과자.."

 

하고 나타난 태양이의 손엔 담배한갑이 들려있다.

 

"너.. 미쳤어?"

 

"나도 첨이야. 근데 내 친구가 단게 땡길 땐 이게 즉방이라더라구.."

 

"그래두.."

 

"셋째! 간식은 구름과자.. 배고프면 핀다. 골초가 되도록.."

 

서약은 단 세 개였다. 지쳐쓰러질때까지 걷고.. 입술이 부르트도록 키스를 하고.. 골초가 되도록 담배를 핀다.

 

태양이와 연화는 이 서약을 구구단처럼 외며, 법처럼 지켰다. 둘은 매일 밤 헤어지기가 무섭게 쓰러져 잠이 들었기에 무언가를 입에 댈 기력조차 없었다. 그러니.. 살이 안빠질래야.. 안빠질 수가 없지..

그렇게 두달이 흘렀다. 연화와 태양이는 턱이 하나씩 없어졌다. 둘다 아직은 목표달성을 못했지만 이제 보기싫은 뚱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다.

 

"어이! 오늘 보기 좋은데?"

 

"어이! 이 총각 누구신가?"

 

둘의 아침인사도 점점 상큼해져간다. 모르는 사람들은 어디서나 키스를 하는 닭살 커플이겠지만 둘은 키스의 횟수로 하루에 소비한 칼로리를계산하기에 여념이 없다.

 

"야... 오늘은 10번했으니까 120키로칼로리 소비했냐?"

 

"아니지.. 3번은 조금 약하게 했으니까 한 100정도밖에 안되겠다."

 

"그럼.. 내일은 쫌더 힘차게 해 보자.."

 

"그래.. 피곤하다. 잘자.."

 

"어!"

 

둘의 헤어짐은 늘 이런식이다.

 

 

오늘은 살이 많이 빠진 기념으로 추리닝을 사러가기로 했다. 이제 우리도 어느정도 봐줄 만 한데 좀 피트한걸 입어보자 뭐 이런거다. 둘은 무려 15군데의 샵을 돌며 추리닝을 사러다녔다. 사실 옷을 고르기 보다는 이제 샵에 자신감 있게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해서였다. 그래서 고른 것이 연화는 꽃분홍빛을.. 태양이는 태양의 컬러.. 황토색 추리닝을 샀다.

 

"야.. 너 피부가 햐얀게 꽃분홍빛 진짜 잘 어울리겠다. 낼 기대되는데?"

 

"그래? 크.. 고맙다. 야.. 그리구 넌 금색사라니까. 왜 이거 샀어! 이제 너 금색 이런 거 입어도 된다구!"

 

"아.. 그럼 너무 튀잖어. 그냥 똥색할래."

 

하루가 멀다하고 투닥대던 그들이었지만, 이젠 이렇게 서로를 부추겨주기까지 한다.

그날 저녁.. 연화는 태양이과 헤어지고 가벼운 맘으로 미용실을 향한다. 이젠 미용실도 두렵지 않다 이거다. 이거 자신감이 너무 과도한거 아닌가? 하지만 연화는 벼루어 오던 매직스트레이트를 할 작정이다. 이젠 하연이처럼 긴 생머리를 휘날리며 다녀보련다.

 

다음날 아침.. 연화는 여느 때보다 일찍 일어나 꽃분홍 새 추리닝을 입고 찰랑찰랑 긴 생머리를 풀어헤쳤다. 솔직히 말해.. 아직은.. 조금.. 부담스럽다. 뱃살과 허벅다리가 아직은.. 그러나 연화는 날아갈 듯 헬스장을 향해 달려간다. 달리는 폼만은 저러다 정말 날아갈 것 만 같다.

 

여기는 헬스장.. 태양이는 언제나 그렇듯 먼저 나와있다. 황토색 새 추리닝을 곱게 입고 돌진하듯 달리는 태양이의 모습.. 아직은 턱이 하나 남아있긴 하지만.. 2달전의 태양이와 비교해 보면 용됐다. 용됐어.

 

"하이 태양! 여어~ 멋진데 총각?"

 

연화가 태양이를 응원한다.

 

"어, 왔냐?"

 

태양이는 긴머리를 휘날리며 러닝머신위를 사뿐히 오르는 꽃분홍빛 연화를 바라본다.

 

"앗!"

 

순간 태양이가 러닝머신에서 헛걸음질을 하며 바닥으로 미끄러져버렸다. 매우 추한 모습으로...

 

"야, 괜찮어?"

 

연화도 급한맘에 러닝머신위를 허둥대다 더욱 추한 모습으로 태양이 위로 떨어져내린다.

 

"야! 너 때문에 이게 뭔 망신이야!"

 

연화가 괜히 태양이에게 화를 낸다.

 

"야, 비켜 무겁단 말야!"

 

태양이는 더 크게 화를 낸다.

 

 

휴식시간..

 

"야.. 담배한대줘.."

 

연화가 태양이에게 담배를 달랜다.

 

"없어.."

 

"뭐? 왜! 오늘은 니가 사오기로 했잖어!"

 

"안 필래!"

 

"그게 뭔 말이야?"

 

"우리.. 이제 그건 빼자."

 

태양이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야.. 난 이제 담배 없음 못 살아.. 정말 못살어!"

 

연화가 거짓으로 울먹인다.

 

"야.. 우리 삼촌이 폐암으로 죽었단 말야. 너 그리구.. 나중에 기형아 낳으면 어쩔래? 우짤래!"

 

"니가 뭔 상관이냐?"

 

둘은 꽤 티격태격댔지만 맞는 말이다. 그 날로 세 번째 서약은 사라져 버렸고 두번째 서약이 그 빈 자

리를 메꾸었다. 하지만 왠일일까? 연화의 살은 굳어져 버린 듯, 더 이상 빠지지가 않는다.

 

"야.. 너 무슨 고민있냐? 아까부터 표정이 왜 그래?"

 

태양이 연화에게 묻는다.

 

"이상해.. 일주일동안 살이 하나도 안 빠져.."

 

연화의 얼굴이 더욱 침울해 진다.

 

"뭔가 부족해서 그런가?"

 

태양이가 들릴 듯 말듯 중얼거린다.

 

"뭐? 뭐가.. 뭐 숨겨둔 아이템이라두 있냐?'

연화가 눈을 반짝이며 묻는다.

 

"그러니까.. 최고의 효력을 자랑하는 그거 있잖아 왜.."

 

"뭔데! 나쁜 놈..치사하게 혼자만 알고 있구! 빨리 같이 좀 하자 좀.."

 

"그래? 정말이지?"

 

태양이의 얼굴에 묘한 미소가 떠오른다.

 

"뭐냐구!"

 

"그게.. 영어스펠이 S..E..X라고 하지 아마?'

 

연화는 잠시 골몰하는가 싶더니 다음 순간 주먹으로 태양의 복근(이제 조금 생김)을 강타한다.

 

"악!"

 

태양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쓰러진다.

 

"이게 죽고싶어?  나는 말야.. 그건 꼭 사랑하는 사람이랑 할거야.. 그 때를 위해서라면 이 살들은 남겨

놓을 거라구!"

 

연화는 바닥을 구르는 태양이를 남겨둔 채 흥 하며 저만치 뛰어가 버린다.

 

"쳇! 나도 싫어! 이거 왜 이렇게 오바하셔?"

 

태양이는 억울하다는 듯 연화의 뒷통수에다 대고 꽥 소리를 지른다.

 

 

 

3. 태양이의 비결

 

정말 미스터리한 일이다. 더 이상 빠지지 않는 연화의 살과 달리 태양이의 살들은 언제부턴가 그야말로 날개돋힌 듯 사라져가는 것이 아닌가. 정말 하루가 다르게 살이 빠져가는 태양이.. 제 코가 저렇게 높았었나? 눈이 저렇게 또렷했어? 아니.. 얼굴에 각도 있잖아! 하루가다르게 탈피를 하듯 변신에 또 변신을 거듭하는 태양이... 그런 태양이를 바라보는 연화는 애타는 마음에, 혼자 몰래 담배를 피워 보기도 하고 집에 돌아가서도 윗몸일으키기며 남몰래 운동을 해 보기도 하지만 살은 더 이상 빠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짜증이 난다. 미칠 것 같단 말이다! 그렇게 연화의 스트레스가 극에 달할 즈음.. 태양이는 어느새 호리호리한 몸매가 되어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어렸을 적 언뜻 엿보였던 날렵한 턱선과 타고난 하얀피부.. 그리고 매력적인 보조개까지 더해진 태양이는 킹카중에 왕킹카.. 초특급 꽃미남이 되어버린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헬스클럽엔 여자고객들이 늘어나 있었다. 늘 비어있던 태양이 주위의 기구들은 그녀들이 모두 섭렵하고 있었으며 연화는 저만치 구석으로 밀려날 지경에 이르렀다. 왜.. 왜! 내가 뭘 잘못했단 말인가! 도대체 뭐가 문제란 말인가! 연화는 답답해서 죽을 것 만 같다. 하지만 정말 참을 수가 없는 건.. 정말 말 할 수 없을 만큼 화가나는 건.. 그런 태양이를 보며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물 마시듯 쉽게 하던 키스였는데... 지겹고 귀찮기까지 하던 키스였는데.. 어느 순간 태양이의 얼굴이 다가오기만 해도 심장이 벌렁거려 미칠 것만 같은 것이다. 그리고 키스가 끝날 땐 얼굴이 불타는 고구마처럼 벌개져 있는 것이다. 그럴 땐 연화는 눈을 꼭 감고 삼중턱을 매달고 있던 태양이를 떠올리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면 어느정도 진정이 되곤 하니까..

 

태양이와 헤어지고 잠자리에 누운 연화.. 뭐야! 천장에서 태양이가 웃고 있다.

 

"미쳤어.. 미쳤어!"

 

연화는 목이 끊어져라 머리를 뒤흔든다.

 

'하아라아항라나'

 

갑자기 연화의 폰이 울리기 시작한다. 엇! 태양이다. 연화의 심장이 콩콩 뛸 준비를 시작한다. 연화는

아아..목소리를 가다듬으면서도 어? 내가 왜 이러지? 하며 전화를 받는다.

 

"자는데 왜!"

 

연화는 애써 퉁명스런 목소리를 낸다. 하지만 왠지 어색한 떨림은 감출 수가 없고..

 

"야! 빅뉴스!"

 

경쾌한 태양이의 목소리..

 

"뭔데!"

 

"드디어 우리 프로젝트 성공이다!"

 

"그게.. 무슨 말이냐?"

 

"날 거들떠 보지도 않던 하연이가 말야.. 만자나고 연락이 왔지 모냐?"

 

"그래?"

 

기뻐해 줘야 하는데.. 맥이 쭉빠지는 건 뭘까..

 

"야.. 낼 나 옷사는데 같이 좀 가주라.. 그럼 낼 보자고! 잘자라!"

 

'뚜...뚜...'

 

연화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눈을 감는다. 이제 잘거야. 근데.. 왜 자꾸 눈물이 나는 것이야.

 

 

"야, 이거 어떻냐?"

 

태양이가 케러멜빛 자켓을 들어보인다.

 

"어머!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리겠다. 근데.. 오빠 정말 너무 잘생기셨다!"

 

점원이 태양이에게 거의 앵겨붙는다.

 

"어머.. 애인이신가 보다.."

 

점원이 시큰둥한 연화의 표정을 보고 실수라도 했다는 듯 배시시 웃는다.

 

"아..아녜요! 애인은 무슨.. 야.. 어떠냐?"

 

태양이는 극구 부인을 하며 자켓을 걸쳐 보인다.

 

"어머.. 딱이다. 딱이야! 오빠꺼네, 오빠꺼!"

 

점원 혼자 박수치고 난리가 났다. 연화는 하나 도와준 거 없었지만.. 태양이는 결국 쇼핑을 마쳤다.

 

"야.. 드뎌 내일이다. 야.."

 

"잘 되길 빈다. 제발 그 년한테서 상민이나 떼놔라구."

 

연화가 시큰둥하게 말한다. 사실 오늘 하루종일 시큰둥이었다.

 

"그래..내가 확실히 둘이 떼 놓을테니까 너도 얼른 분발해서 목표달성하라구!"

 

어느 새 연화의 집 앞이다. 이젠 이것도 마지막인가? 연화는 갑자기 목구멍 깊숙히 뜨거워 짐을 느낀다.

 

"오늘 작별인사로 한방 찐하게 해 볼까?"

 

태양이가 웃으며 연화에게 다가선다.

 

"아냐.. 가봐.. 피곤하다. 잘가라."

 

연화는 다급히 집으로 뛰어들어간다. 왜 자꾸 눈물이 나는 것이냐고..


 

다음날 저녁 7시.. 장소는 알렉산더 레스토랑..
풀색 니트에 새로 산 캐러멜빛 자켓을 걸친 태양이는 어느 때 보다 빛나보인다.

 

"어.. 여기."

 

하연이다. 도도하기로 유명한 하연님께서 어인 일로 먼저 나와 태양이를 기다리고 계신다.

 

"어.. 기다렸냐?"

 

"아니.. 나도 좀 전에 왔어.."

 

하연이.. 초등학생 시절부터 쭉 가슴속에 품어왔던 하연이.. 그렇게 학수고대하던 만남이지 않았던가.. 근데.. 심장이.. 

 

 

지금쯤 둘이 잘 되고 있을까? 연화는 정말 간만에 TV앞에 앉아 프링글스와 아이스크림 한통을 껴안고 있다.

 

"몰라.. 아무리 해도 빠지지도 않는데 뭐..."

 

왠지 오늘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훌쩍.. 또! 또다. 태양이 생각만 하면 자꾸 눈물이 난다. 연화

는 훌쩍이며 프링글스에 아이스크림을 얹어서는 입에 쑥 집어넣는다.

 

'와자작'

 

깨어진 프링글스조각들이 너도나도 연화의 입천장을 마구 찌른다.

 

"아프단 말야.."

 

연화는 프링글스통을 집어던진다. 괜히 프링글스에게 화풀이다. 프링글스통이 저만치 굴러간다.

 

"으어어엉"

 

연화는 결국 울음을 터뜨린다.

 

 

'딩동'

 

벨이 울린다.

 

"누구시오."

 

연화가 눈물을 삼키며 퉁명스레 외쳐본다.

 

"나요.. 태양도령."

 

태양이? 연화는 태양이의 목소리에 거의 자동반사적으로 화장실로 달려가 눈물과 콧물로 범벅된 얼굴을 어푸어푸 씻어내고는, 얼마간 거울앞에서 얼굴을 매만지다 빼꼼히 문을 연다. 앗, 눈부시! 새옷을 입은 태양이는 오늘따라 더욱 멋져보인다.


"빨리도 열어준다."

 

"왠일이냐, 니가?"

 

"어.. 가는 길에.."

 

태양이는 말을 하다 말고 연화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묻는다.

 

"근데 너.. 울었냐?"

 

"어.. 아니.. 영화가 하도 슬퍼서..."

 

순간 TV속 방청객들의 웃음소리가 쏟아져 나온다. 쪽 팔려.. 연화의 얼굴이 달아오른다.

 

"야.. 하연이 만난다더니 잘 안됐나 보지? 벌써 헤어지고.."

 

연화가 재빨리 화재를 돌린다.

 

"왜 배아프냐?"

 

연화는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는 듯 태양이를 째려본다.

 

"배신자.. 치사하게 혼자만 살 빼고.."

 

태양이는 연화의 어깨너머로 프링글스통과 아이스크림통을 발견한다.

 

"야.. 저거 뭐냐, 저거! 저런 걸 먹으니까 살이 안빠지지!"

 

"상관 마!"

 

연화는 결국 폭발하고 만다.

 

"니가 뭘 안다고 그래! 지금 살 좀 빠졌다고, 여자들이 좀 좋아해준다고 유세하는 거야, 뭐야!"

 

연화는 결국 눈물을 뚝뚝 떨어뜨린다. 그런 연화를 지켜보던 태양이가 연화의 눈물을 조심스레 닦아준다.

 

"왠 닭살?"

 

연화가 코맹맹이 소리로 말한다.

 

"너.. 내 비결 가르쳐 줘?"

 

태양이가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연화의 눈이 동그래 진다.

 

"내 그럴 줄 알았어.. 따로 비결이 있었지? 뭔데! 뭐냐고!"

 

연화가 필사적으로 묻는다.

 

"사랑.."

 

"뭐?"

 

"얼굴만 봐도 가슴이 떨리고, 생각만해도 심장이 미친듯이 뛰는데.. 보고싶어서 잠도 못자는데.. 살이

빠질 수 밖에 없잖아."

 

태양이가 연화의 얼굴을 애써 외면하며 말한다. 태양이의 얼굴이 그 어느 때보다 빠알갛게 물들어 있다.

 

"하연이가 그렇게나 보고 싶디? 근데 여긴 왜 왔냐고!"

 

연화는 더욱 짜증난다는 듯 받아친다. 태양이는 그런 연화를 보며 한 숨을 푹 내쉬더니 연화의 머리를 콕콕 찌르며 한심하다는 듯 말한다.

 

"넌 이래서 안돼요 안돼.. 역시 안돼.."

 

순간 연화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해간다. 의문.. 의심.. 기대.. 확신.. 그리고 행복... 연화의 입가에 보일 듯 말 듯한 미소가 떠오른다.

 

"너.."

 

연화가 한참만에야 입을 연다.

 

"왜"

 

태양이 무덤덤하게 대답한다.

 

"우리는 한 팀이니까 니가 책임지고 내 살까지 다 빼!"

 

"니가 집에서 맨날 저런 거 먹는데 내가 무슨 수로?"

 

"왜 있잖아.."

 

"뭐.. 뭐!"

 

태양이가 답답하다는 듯 묻는다.

 

"영어 스펠이.. S..E..X였나?"

 

연화는 눈동자를 굴리며 능청스레 말한다. 순간 태양의 눈이 어느 때보다 똥그래진다. 그렇게 한동안 할 말을 잃은 듯, 머뭇거리던 태양이가 간신히 입을 뗀다.

 

"뭐.. 너.. 그거.. 사랑하는 사람이랑만 한다며.."

 

연화는 장난스레 눈을 흘기며 태양이의 손을 잡아끈다.

 

"그러니까.. 이리 오라구!"

 


학자들의 일반적인 견해에 따르면.. 개인차가 있겠지만 30분간의 열정적인 섹스는 200-800㎉의 열량을 소모한다고 한다. 체중 60㎏의 정상 성인이 30분 정도 자유형으로 수영할 때 200㎉, 배드민턴을 할 경우 70㎉, 조깅할 때 250㎉, 계단 오르기를 할 경우 60㎉의 열량이 소모되는 것과 비교할 때 섹스는 그 어떤 유산소 운동보다 뛰어난 다이어트 방법인 셈이다.
미국 버클리 의대 연구팀이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부부 세 쌍을 대상으로 실시한 임상실험에 의하면 일주일에 3번씩 정기적으로 3개월간 섹스를 하게 한 결과 체중 7㎏을 빼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연화는 불과.. 한달반만에 목표를 달성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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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합시다!!^^
나도 빨리 해야되는데...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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