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수 어머니와 창수 그리고 현이 거실에 앉아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서로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현이 어색한 듯 주위를 살펴보았다. 지난번 현이 전역 후 왔을 때와 별로 바뀐 게 없어 보였다.
"어디부터 얘기를 해야 할지……." 창수 어머니가 생각을 하듯 말끝을 흐렸다.
"처음부터 전부다 얘기 해줘요." 창수가 옆에서 숨길게 없다는 듯 말했다.
“그럼 얘기 해 줄게. 오해하지 말고 들어라. 원래 소문이란 게 부풀려지기 마련이잖니. 조금 전에
가게에서 했던 얘기 말고 그 나머지 얘기를 해 줄게. 그 신사분이 다녀간 후 일주일쯤 있다가 읍내에
있는 네 할아버지 사셨던 집이 먼저 팔렸어. 그전부터 팔려고 내놓았는데 임자가 없었거든. 그리고
이틀 뒤에 네 큰집도 팔았다는구나. 근데 이상한 건 이런 시골에 집 두 채를 판다고 해서 아파트를
살 수 있는 게 아니거든. 그것도 36평이라던데.” 창수 어머니가 목이 타신 듯 주방으로 들어가
물병을 들고 나오셨다.
“다른 얘기도 있어. 저녁에 주현이네 배달 갔다고 했잖아. 그 녀석 얘기가 자기 부모님이 PC방
채려준다고 했다더라. 그래서 서울서 공장 다니다 그만두고 일주일 전부터 집에 있었다고, 자기
부모님이 해외 여행가고 안 계셔서 밥 시켜 먹는 거라고 하데.” 창수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어머니 다른 얘긴 없는가요? 혹시 그 신사분에 대해서 아시는 거라도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컵에 물을 따르시는 창수 어머니를 바라보며 말했다.
“근데 며칠 전에 주현이 아버지가 그러니까 현이 네 큰아버지도 되구나, 우리 식당에서 약주를
하신 적이 있었지. 그날 술이 과하신 듯 취하셔서 이상한 소리를 하더구나.” 여전히 목이 타시는지 물병을 통째로 들고 마시셨다.
“나도 기억해. 현이 너를 팔았다고 조상님 뵐 면목이 없다고 하시면서 주먹으로 가슴을 퍽퍽
소리 나도록 때리시더라. 그러다 비틀거리시며 댁으로 가셨는데.” 창수가 그날을 떠올리는 듯
머리를 갸우뚱거리며 말했다.
“언제쯤 돌아오신다던 가요?” 현이 물 잔에 물을 부으며 말했다.
“글쎄다. 난 잘 모르겠는데, 창수야 들은 거 없어?”
“내일 오후면 오신다던데.” 졸린 듯 두 눈을 비비며 말했다.
“그럼 내일까지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루만 신세 지겠습니다.”
“신세는 너도 그런 말 하지 마. 언제 내가 널 남으로 생각한적 있니? 편하게 지내다 만나보고
돌아가렴.” 창수 어머니가 일어서서 주방으로 들어가셨다.
어느새 창수는 옆에서 턱을 괴고 졸고 있었다.
현의 머리가 복잡했다. 그 신사분이 누구이며 도대체 백부님은 할머니 기일인데 해외여행이라니
어떻게 된 일인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내일이면 다 밝혀질 테지만 쉽사리 잠들 수 있는 밤은
아니었다.
지은이 평소 출근 때와 달리 한시간정도 일찍 집을 나섰다. 어젯밤 잠을 설쳐서 그런지 눈이 조금씩
따끔거렸다.
학교에 가기전 준혁이 입원하고 있는 병원을 찾을 생각이었다.
지은이 병원 앞에 도착을 하여 핸드폰 문자 메시지를 확인했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병원이
한산해 보였다. 천천히 병원 안으로 걸어가 엘리베이터를 타고선 5층 버튼을 눌렀다. 지은이 층을
알리는 숫자 표기 판을 보며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었다. ‘땡 5층입니다.’ 라는 기계음과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좌우를 살피며 입원실 호수를 확인하고 걸어갔다. ‘똑똑’ 노크를 하고선 문을 열었다. 아무도
없었다. 허탈감과 안도감이 동시에 밀려오는 듯 했다. 밖으로 나가기위해 돌아섰을 때 병실 문이
열리면서 누군가가 들어왔다. 준혁이었다. 얼굴이 몰라보게 초췌해져 있었다. 준혁의 모습을 본 지은이 아무 말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 준혁 역시 지은을 바라볼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서 있었다.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괜찮으세요?” 지은이 어색한 듯 침묵을 깨며 말했다.
“네. 이제 괜찮아요. 여기 앉으세요.” 준혁이 걸어 들어와 지은에게 의자를 권한 뒤 침대에 걸 터
앉으며 말했다.
“네. 고맙습니다.” 지은이 의자에 앉으며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지은의 향기가 준혁의 코를 자극하고 있었다. 껴안고 싶다는 생각을 간신히 참고 있었다.
“날씨가 너무 좋네요. 퇴원은 언제 하시나요?” 지은이 준혁의 시선을 외면한 채 창밖을 바라보았다.
“지은씨 죄송합니다. 이만 돌아가 주세요. 자신이 없습니다.” 갑작스레 준혁이 매몰찬 눈빛을 하며
말했다.
“무슨 얘긴가요?” 지은이 놀란 표정으로 준혁을 쳐다보았다.
“아직까지도 제 마음이 이럴 줄 몰랐습니다. 마지막으로 지은씨를 본 후에 제 마음을 정리하려고
했는데, 마음이 제 말을 듣지 않습니다. 여기 조금 더 계시다간 제가 어떻게 돌변할지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저라는 놈 저 자신도 밉습니다. 진정 제가 지은씨를 사랑한다면 지은씨의 행복을 빌어 줘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다시는 지은씨를 찾지 않겠습니다. 보이지 않아야 잊혀지는 것인데 제가 경솔했습니다. 지은씨에게 끝까지 좋은 모습 보여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준혁이 고개를 숙여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지은이 그런 준혁의 모습이 애처로워 준혁의 어깨를 감싸며 등을 토닥여주었다.
“준혁씨 힘내세요. 제가 준혁씨의 마음을 못 받아들이는 건 제 마음속에 다른 사람이 먼저 자리를
잡고 있어서 그런 거예요. 시간이 많이 흐른 뒤 생각해보면 좋은 추억이 될 수는 있을 거예요.
모쪼록 몸조리 잘 하시고 유학도 잘 다녀오세요. 그럼.”
지은이 병실 밖으로 나와 병실 문에 기대어 서 있었다. 다리에 힘이 풀린듯 걸어 갈 수 없었다.
준혁의 울음소리가 문틈사이로 가늘게 들렸다.
현이 새벽녘에 창수의 집을 나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잠들어 계신 문중 산소를 찾았다.
밤새 한숨도 잠을 이루지 못한 탓에 하루사이 얼굴이 많이 상해 보였다.
올라오는 길에 준비한 막걸리와 육포 그리고 어머니께서 준비해주신 과일을 상석에 올려두고서
절을 했다.
‘할아버지 할머니 고맙습니다. 그리고 자주 찾아뵙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저는 마음씨 좋은 분들 만나서 편안하게 공부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이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부모님이 하늘나라에서 지켜주시기 때문인 듯 합니다. 할머니! 많이 서운하시죠? 어제 내려왔을 때 먼저 찾아뵈었더라면 마음이 너무 무겁습니다.‘
현이 아침 햇살을 받으며 산소 옆에 드러누웠다.
지은이 조교 사무실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준혁의 병문안을 다녀온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고
있었다. 최소한 현이 에게 연락을 하고 다녀와야 했다는 자책감에 사로 잡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현이 보고 싶었다. 오후에 학교로 온다고는 했지만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 전화를 했다. 하지만 받지를
않았다. 몇 번을 더 해 보았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가만히 사무실에 앉아 있기가 답답해서 학교를
나왔지만 막상 갈 곳이 없었다.
창수가 힘겹게 산을 올라 현이를 발견하고는 뛰어왔다.
“현아 일어나. 여기서 뭐하니? 내려가자.” 현의 몸을 흔들며 창수가 말했다.
“어......, 창수구나. 잠깐 누워 있는다는 게 잠이 들었나보네.” 현이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넌 여기가 편한가보네. 예전에 수능시험 전 날에도 너 없어졌잖아. 내가 한참을 찾았는데, 그때도 여기 있더니.“ 창수가 현이 옆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그러네.” 현이 어색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몇 시나 되었니? 큰집에 가봐야겠다.” 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털며 말했다.
“야~~아. 여기 경치 좋네.” 창수가 여전히 자리에 앉아 산 아래를 보며 말했다.
“내려가자.” 현이 상석에 놓인 음식을 치우며 말했다.
“조금만 있다가자. 너한테 물어볼 말이 있다.” 창수가 현의 소매를 끌며 말했다.
“그러자.” 현이 창수 옆에 앉았다.
“너.......” 창수가 머뭇거렸다.
“물어봐라. 너랑은 친구잖아. 다 얘기 해 줄께.” 현이 창수의 어깨에 팔을 올리며 말했다.
“너 진짜로 팔린 거니?” 사뭇 진지한 모습이었다.
“하하하. 내가 물건이니? 팔리게. 그냥 좋은 분들 만났어.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편안하게 공부만 할 수 있게 도와주시는 분들을 만났어. 나를 친자식 이상으로 대해주시고 나도 그분들을 부모님처럼 따르고 있어. 그리고 나 사랑하는 사람도 만났어. 미안하다. 내가 먼저 얘기를 해야 했는데.“
“아니다. 지금이라도 얘기 해줘서 고마워.” 창수가 현의 어깨에 팔을 올려 끌어 당겼다.
“아아아. 아프다. 여전하구나.” 현이 아픈 듯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뭐? 애인이 생겼다고 그럼 나는 어쩌고.” 창수가 장난을 치며 말했다.
“그만하고 내려가자. 나 배고프다.” 현이 배를 만지며 말했다.
“알았다. 나도 아침을 건너뛰었더니 배고프다.” 창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현과 창수가 산을 내려오고 있었다.
준혁이 퇴원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침에 지은이 다녀간 뒤로 마음에 평온을 찾았다.
“준비 다 되었니?” 준혁 어머니가 병실로 들어오시며 물었다.
“네. 어머니 그 동안 마음고생 시켜드려 죄송합니다. 이제 마음 편하게 유학 갈 수 있습니다.” 준혁이
어머니 품에 안기며 말했다.
“아침에 좋은 일 있었나보네. 우리 아들 그 동안 고생 많았어.” 준혁 어머니가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퇴원한다고?” 최 교수가 노크도 없이 문을 열고 들어오며 말했다.
“형!” 준혁이 어머니와의 시간을 방해한 최 교수에게 눈을 흘기며 말했다.
“어떠니. 엄마와 포응한건데.” 준혁 어머니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기뻐서 그런다. 그동안 숙모님이 얼마나 고생하셨는데. 다행이다. 그리고 축하한다.” 최 교수가 준혁의 손을 잡으며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고마워. 형 덕분에 아침에 지은씨 만나서 잠시나마 행복 했었어.”
“고맙긴. 이제 마음 다 잡았니?”
“잘 모르겠어. 하지만 나 내일 유학 갈 거야. 며칠 동안 많이 생각했는데 형 말이 맞았어. 시간이 약인거같아. 하루라도 빨리 떠나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럼 오늘이 마지막이네. 숙모님 저녁에 환송식 해야죠?” 최 교수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나 빨리 가려고. 며칠만 있다가 떠나면 안 되니?” 준혁 어머니가 서운한 듯 말했다.
“이제 몸도 좋아졌으니 얼른 갈래요.” 준혁이 몸을 이리저리 흔들며 말했다.
“우선 집으로 가자.” 준혁 어머니가 병실을 나섰다.
최 교수와 준혁이 뒤를 따랐다.
현이 창수 집에서 점심을 먹은 후 큰아버지 댁으로 가고 있었다.
핸드폰을 두고 산소를 찾은 터라 지은으로부터 많은 전화가 들어와 있었다.
전화를 했지만 지은이 전화를 받지 않았다. 오늘 못 갈 것 같다고 음성 메시지를 남겨 두었다.
현관에서 벨을 눌렀다.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열렸다.
큰 어머니 이셨다.
“그 동안 안녕하셨어요?” 현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현아 오랜만이구나. 어서 들어오렴.” 큰 어머니가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현이 거실로 들어서자 여행 가방에서 선물을 꺼내시던 큰 아버지가 놀란 눈으로 현을 쳐다보았다.
“안녕하셨어요? 백부님.” 현이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어어 현이구나. 오랜만이다.” 자리에서 일어서며 현에게 다가와 손을 잡았다.
“어디 다녀오셨나 봐요?” 현이 모른척하며 물었다.
“해외여행 다녀왔어.” 큰 어머니가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앉아라. 여보, 마실 거 꺼내와.”
“네.” 큰 어머니가 주방으로 들어가셨다.
“잘 지내고 공부는 어때 할 만해?” 여행 가방을 허리 뒤로 치우며 말했다.
“네.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현이 분노를 억제하듯 이를 악다물며 말했다.
“근데 어쩐 일이니?” 주방에서 주스를 들고 나오던 큰 어머니가 말했다.
“어제가 할머니 기일이잖아요. 제사 지내려고 왔었는데, 이사를 가셨더라고요.” 현이 주스 잔을 만지작 거리며 말했다.
“그게 그렇게 되었다. 그리고 제사는 절에다 맡겼다.” 큰 어머니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태연하게 말했다.
“집은 파셨더군요. 그리고 아파트를 사셨고요. 백부님 솔직히 말씀해 주세요. 그 신사분 혹시 제 양아버님 아닌가요?“ 현이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얘가 무슨 말을 하는 거니? 우리가 그러면 너를 팔기라도 했다는 거니?” 큰 어머니가 펄쩍 뛰시며 말했다.
“여보. 당신은 가만히 있어. 현아 내가 얘기 해 줄께.”
“무슨 얘길 한다는 거예요. 현이 얘기하는 거 봐요. 우리가 뒷바라지 한건 생각도 않고 지금 네가 여기 와서 따지는 이유가 뭐니?“ 표독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현을 노려보았다.
“현아 나가자. 오늘 햇살이 참 좋더라.” 백부님이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여기서 얘기해요. 우리가 잘못한 게 뭐가 있다고, 현아 너도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어려서부터 부모 잃고 오갈 데 없는 너를 돌봐준 게 누군데, 지금 와서 그러면 너 천벌 받는다.” 분이 삭히지 않는지 현의 팔을 잡아채며 말했다.
“여보 이러지 마. 우리가 현이에게 해준 게 뭐가 있다고 또 설령 해줬다 하더라도 이건 아닌 거 같아. 미안하다 현아. 너에게 해준 것도 없으면서 이제와 생색을 낸다는 게 잘못인거 같아 마음이 계속 마음이 불편했다.” 백부님이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그럼. 사실인가요?” 현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 다 사실이다. 널 볼 면목이 없구나.” 백부님이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아이고 동네 사람들. 내말 좀 들어보소. 물에 빠진 놈 구해줬더니 이제와 보따리 내놓으라고 하네.” 큰 어머니가 악을 쓰며 울부짖었다.
현이 눈물을 흘리며 아파트를 벗어나고 있었다.
아파트 공원 벤치에서 백부님이 답답한 듯 한숨을 내쉬며 담배를 피우고 계셨다.
p.s. 글이 올라오는 시간이 자꾸만 늦어지고 있습니다. 핑계 같지만 어제부터 계속되는 외근에 사무실에 앉아 있을 틈이 없네요. 새벽녘까지 글을 써서 올리려고 했는데 집에 가면 도무지 글이 잘 안 쓰져서요. 이제 마무리가 거의 되어갑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할테니 지켜봐주세요.
내일 #24도 이시간쯤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