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여자.7
"나랑 술 한 잔 하겠소?"
뜻밖의 말이었다.
할아버지 혼자 살고계신 기와집을 나서서 돌아오는 길에 남자는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내게 술친구 제안을 해왔다.
"음주운전은 안되니까 우선 자전거는 가게에 갖다두고 가죠."
"그러시오."
해가 저물어 어둑어둑해질 무렵 하얀색 바구니가 달린 자전거 두 대가 나란히 거리를 달렸고 어느정도 달리자 문닫은 빵집앞에 세워졌다.
"어차피 오늘은 가게도 쉬는 날인데 가게에서 마실래요??"
"마음대로.."
남자는 조금 우울해보였고 또 쓸쓸해보였다.
어떻게든 내 앞에 보이는 이 남자를 웃게 해주고 싶었다.
혼자 수선을 떨며 술과 안주를 장만했고 남자는 그런 내 모습을 보며 피식 웃곤 했다.
"건배!"
"... .... ..."
"뭐에요,건배도 안 하고 치사하게 혼자 마시는게 어딨어요."
"원래 첫 잔은 이렇게 마시는거요."
"쳇..그런법을 누가 정해놨나요, 뭐..!"
"억울하면 당신도 혼자 마시면 될 것 아니오."
"그냥 마시면 재미없으니까 우리 취중진담이나 해볼까요??"
내 눈빛은 부담스러울만큼 밝게 반짝거렸고 남자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승낙했다.
먼저 비어있는 남자의 잔을 채우고 가득차 있는 잔을 들어 마시곤 물었다.
"자기 소개 좀 해봐요."
남자는 다시금 잔을 비우며 대답했다.
"강영민이오."
"체엣..그게 소개에요? 무슨 소개가 그것뿐이에요??"
"사장과 사랑하는 사이오?"
남자가 물었고 술병을 잡으려 뻗쳤던 손이 힘없이 떨구어졌다.
뭐랄까..억울한 누명을 뒤집어 쓰게 된 기분이라고 해야할까..?
"NO!!절대로...아니에요.."
남자는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이곤 술을 마셨다.
다시금 술잔을 비우고 물었다.
"강영민씨...아까 할아버지께서..당신에게 왜 성모라고 한거죠..??"
"그야..내가 이성모니까..."
"무슨..말이죠??"
"난 강영민이지만 사람들은 날 이성모의 껍데기쯤으로 치부해버리거든..."
"...울어요..??"
남자는 고개를 떨구고 있었고 괜한 질문을 한 것 같아 죄책감마져 들었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그의 어깨로 손을 뻗으려다 말았다.
"오늘은 여기까지...고마웠소...그럼 난 가겠소.."
"강영민씨..!!"
딱히 그에게 할 말 같은건 없었지만 그의 이름을 불러야만 할 것 같았다.
그냥 기분이...그리고 그의 뒷모습이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를 바라는 것 만 같았다.
"난 이성모요...앞으론..."
"나 한사람만이라도 당신의 이름을 불러주면 안 되나요?"
"고맙지만 사양하겠소.."
"왜....그렇게 살아요??"
정말이지 이해되지 않았다.
자신을 버린 채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살아간다는 행위 자체가 나에게는 용납되지 않는 일이었다.
"살고싶어서...이렇게라도...살아야 하니까.."
그 말을 끝으로 남자는 가게를 떠났고 난 다시 혼자가 되었다.
붙잡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는 내게 화가났다.
늦은 밤까지 조리실에서 닥치는대로 만들었다.
화가났을 때 가장 쉽게 풀리는 방법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라 믿어왔기때문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좀 처럼 쉽게 화가 풀리지 않았다.
자꾸만 그가 떠난 자리를 보게 된다.
그리고 자꾸만 그가 보고싶다.
"써니~!!"
사장님은 여전히 밝은 모습으로 가게문을 열었고 나는 찌뿌둥한 몸을 이끌고 가게로 나왔다.
무슨 일이 그리 즐거운지 오늘따라 유독 더 신난 사장님이었다.
"무슨 좋은 일 있으세요?"
"응~아주아주 좋은일이야."
"정말요??축하드려요."
"엥? 무슨일인지도 모르고 축하부터 해주는거야?"
"축하할 일이 있을것만 같아서요."
"써닌 정말 특별한 사람이야."
"제가요??"
"글쎄 단호박 할아버지가 우리가게에 매일 납품을 해주시겠대!!!"
"네??정말요??"
"그래, 방금 할아버지가게 들러서 오는 길이었는데 '이놈아 이젠 작은 놈 귀찮게마! 아침마다 원하는만큼 보낼테니까'라고 하시는거야.이건 다 써니덕분이지."
"제가 뭘.."
"그런 의미에서 오늘 저녁엔 회식하는거야!!!"
"사장님하고 저..둘뿐인데요..?"
"그래서 싫어??"
"아뇨..그건 아니지만.."
"아무튼 오늘은 기분이 참 좋아!!!"
사장님은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며 빵을 굽기 시작했고 나역시 조금은 편안해진 마음으로 하지만 한편으론 여전히 그를 걱정하며 일을 시작했다.
사장님의 기분에 따라 진열장에는 수제케이크가 없을수도 있고 반대로 진열장 전체를 다향한 수제케이크로 자리를 채울때도 있었다. 오늘은 진열장이 모자랄만큼 많은 수제케이크가 세상에 나왔다.
덕분에 사람들의 호기심과 단골손님들의 애정과 관심으로 가게는 하루종일 북새통을 이루었다.
그렇게 하루 해가 저물었고 나는 다시 찾아올 그를 위해 단팥빵과 전병을 만들었다.
"써니 우리 오늘 갈비먹으러 갈까?"
사장님은 벌써 가게문을 닫으려 준비하고 계셨다.
"사장님 조금만 있다가요."
"..영민이 기다리는거야??"
"... ....."
"오늘 영민이 안 올거야."
사장님의 말에 나는 정신이 번쩍들었고 사장님은 며칠전 지었던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