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친구 군대 가던 그 해..
2003년도 3월 즈음에,
한창 ㅌ마트에서 알바하더 그 시절이었다..
이유없이 입안이 헐고 씹지도 못하고..
첨에는 그것이 힘들어서 그런것인 줄 알았다.
그리고 며칠 후..
왼쪽 아래 어금니 안쪽으로 무언가가 삐죽이..
올라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모두들, 사랑니라고 했다.
그 후로 가끔가끔, 1년에 두 서너번,
육체적으로 힘들 때나 정신적으로 힘겨울 때..
그 때에만, 사랑니의 존재감을 느끼곤 했을 뿐
전혀 내 삶에 지장을 주지도 않았고.
뽑아야 한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바르게 나주려니 생각하고
그냥 그렇게 두었다.
그러고..4년이 흘렀다.
2006년 혼자몸이 되어 서울에 올라왔던 그 때..
나는 그를 잊기 위해
강도 높은 알바를 시작하였고,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탓인지,
2개월간이나 사랑니 때문에 고생을 했다.
그 때부터였다.
단무지를 씹지 못해 김밥에서 따로 빼서 먹게 된 것은..
입속의 병이 다 나을때 즈음,
나의 생활도 예전과 같은 활기를 찾아갔다.
그리고 미치도록 매달렸던 학교생활..일..사람..우정..
사랑 하나 빼고 작년 한 해 나는 엄청난 포스를 발산하며
그렇게 힘겨운 한해를 마쳤다.
대구에 내려와 다시 늦은 공부를 시작하면서도
전혀 사랑니 때문에 아프거나 힘든 일은 없었다.
그러다 문득 며칠 전..
나의 가지런 하던 앞니가 하나씩 삐뚤다는 것을 깨달았다.
빼야겠다고 맘먹고 있을 그 때,
동생은 나에게 10만원을 내밀며..
'언니 써라'..고마운 동생,,
갖고 있어봤자,
홀랑 옷 사버릴까봐,
공돈 생긴대로 당장 우리동네 미인치과의사가 있는 미치과로 갔다.
미련없이..뽑아주세요...
'사랑니가 아래위로 4개씩이나 났네요..윗니는 많이 썪었는데..그동안 아팠을텐데..' 하더라..
그 깟 사랑니 아픈 것 좀 ,
지난 몇년간 겪은 맘고생에 비하면 고통도 아니다..
그렇게 오늘 속 시원하게 왼쪽 아래 사랑니를 뽑고 왔다.
요번주 목요일에는 오른쪽 사랑니를 뽑는다고 했다.
아무래도 11월에는 4개의 사랑니를 뽑느라
제대로 먹지도 못할 것 같다.
앗싸~이번기회에 살이나 빼지 모...
'근데, 사랑니 빼고 나면 몸살감기처럼 아프다는 사람도 있다더라구요..
너무 심하게 아프면 낼 병원에 들려요..'
설마 나 같은 자연인이 아플까..?
꽤 건강하다고 자부한 나는 용감하게도 솜도 빨랑 빼버리고
전동칫솔로 이리저리 돌려가면 차가운 물로 이도 닦고..
식후에 먹으라는 약도 안먹었다..
이까짓,항생제에 순 진통제..정신력으로 이길 수 있어..
2시간의 인터넷강의를 듣고 있는데..
서서히 밀려오는 치통과 오한과 발열..
결국 약 한봉을 빨대 달린 컵의 물로 함께 삼키고
보일러 이빠이 올려서 자리에 누웠다.
진통제 때문인지. 교감신경의 흥분으로 잠이 오지 않았다..
그리고 흐르는 눈물..
지난 몇 년간의 아픔..
아무것도 아닌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었다..
사랑니가 나면,
철이 든다고 했던가..
이렇게 나는 알면서도 묵혀온 그 철없음을 오늘에야 빼버렸다.
이 늦은 나이 27에..
그 힘든 시절에 나를 두고 군에 가던 네 눈에서 흐르던 눈물 때문에..
사랑니 때문에 아프다고 네게 얘기하지도 못했어.
군에 간 네 뒷바라지 하는 동안도..
가끔 아파도 아픈 내색 한번 못했어..
사랑니 뽑을 그 몇만원 아껴서 너 맛있는거 사주려고..
병원한 번 못갔어..
7년의 사랑 끝에,
제대 1개월 남겨두고 아무 이유도 없이 내게 이별을 고하던 그 날에도..
만신창이 된 나에게 나 죽어도 자기와는 상관 없다고 얘기하던 그 날에도...
그렇게 마지막으로 나를두고 떠나가던 추운 3월의 그 날에도..
아파 죽을 것 같았어도..
못뽑았어...다시 네가 돌아올까봐..
그렇게 또 2년을 보냈는데..
이젠 더이상 너를 기다리지도, 보고싶지도 않아..
이젠, 너라는 사람도 잊어야겠지..아니, 이미 잊혀졌지..
아이러니하게도 왜 네가 떠나가던 그 날에만 아팠을까..
이깟 사랑니..
가장 아픈것 하나를 빼버렸으니.
남은 세개는 아무것도 아닐꺼야..
내가 가진 유일한 무기..
낙천성..
이젠 좋은일만 생길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