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살에 시집을 왔습니다. 친정은 절실한 기독교 집안이구요. 알고 보니 시댁은 시어머니가 신을 모시는 분이시더군요. 남편은 저보다 나이가 10살이나 많은 장남이구요.
나이 차가 많으니 잘 해주겠지 ? 생각했습니다. 남편과 결혼하기전 사귀던 오빠가 너무 잘 해줬거든요.저의 첫사랑이였습니다.친정부모님도 금슬이 좋아 남자들은 다 저렇게 여자한테 잘하는 구나 싶었습니다. 남편은 저와 결혼하기 위해 온갖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그당시 저의 친정이 꽤 잘 살았거든요.
친정아버지가 결혼을 반대 하셨어요. 어린게 벌써 시집가서 무슨 고생할려고 하냐구~ 또한 그당시 IMF가 와서 친정아버지 사업도 기울어가고 있는 중이였어요. 저 시집갈때 남한테 빚져서 보냈다구 하더라구요. 아버지 부도 나서 친정어머니와 시골에 가 계셨어요. 맘이 너무 아팠어요. 근데 시댁과 남편은 그걸 빌미로 삼아 무시하더군요. 자기네 집은 그 정도는 아니라면서 ~
남편은 시아버지가 기업을 하시는 회장님이시고 남동생은 서울대 졸업했구 누나는 시집가서 사업하는 남자랑 잘 살 고 있다고 결혼전에 제게 거짓말을 했어요.
그런데 그게 다 거짓이였어요. 아버님은 현장소장님이시고 어머니는 그렇고 동생은 전문대 출신, 누나도 결혼도 안하고 동거중~ 그래도 사람하나 착하면 되지 하고 믿고 살려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더군요. 신혼여행에서 사람이 변하더군요. 180도로~
툭하면 소리지르고 사람 무안주고 ~ 그제서야 알았습니다. 이게 아니구나. 그런데 애가 들어섰습니다.
뗄까 까지 생각했는데 그럴 수 없었습니다. 그때 부터 저에겐 고통의 나날이였습니다.
아파트라고 얻어놓은 것이 논밭에 아파트딸랑 있구 옆에는 기차지나다니는 곳에 새처럼 갇혀 지냈습니다. 우울증이 오더군요. 처녀적엔 친구들이 하도 많아 우리집에 먹을 것이 남아돌지 않을 정도였는데
그런데 그런 곳에서 남편이 퇴근 할때 까지 생활을 하려하니 미칠것만 같았습니다. 참고로 남편의 직장은 울산에 있었어요. 아는 사람도 없는 곳이였죠.
남편과 자주 다투게 되었지요. 이런곳이 싫다고~ 남편왈 엄마한테 얘기 해야지
내가 어떻게 해? 우리 남편 마마보이 입니다. 모든일을 제가 아닌 시어머니와 상의 하죠.
남편은 결혼하기전 저의 동의 없이 차를 샀습니다. 그할부금 갚느라고 3년 고생했습니다.
한달 생활비가 15만원이였으니까요. 애를 가져서 먹고 싶은 게 너무 많은 데 귤 2000원 어치를 못사먹었습니다.
그런 생활을 뻔히 아시면서 저희 시어머니 저희 싸우기만 하면 남편이 일러서 매일 비행기 타고 내려오셨습니다. 제가 친정부모한테 하소연 하는 게 아니고 저희 신랑이 시어머니한테 일러바치더라구요. `엄마 애가 자기집에 자꾸 간다고 그래` 엄마가 빨리 내려와 이러면서 전화를 하더군요.
그 소리 듣자 마자 새벽이면 새벽 저녁이면 저녁 비행기나 버스타고 내려오셨습니다.
제가 자기 아들 잡는 다면서요~ 싸울때마다 1년에 10번이상은 꼭 내려오셨습니다.
억울하고 눈물이 났습니다. 감싸줘도 종교때문에 절 미워하시는 어머니인데 더 내모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남편이 아니라 남보다 더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마음이 아파 교회를 나가려 하면 교회간다고 싸우고 일러바치고 그 과정에서 어머닌 교회 갈꺼면 애 떼고 이혼하라고 까지 하더군요. 마음을 둘 곳이 없었습니다. 저희 시어머니는 평생 시아버지 한테 사랑한번 못받고 사셨거든요. 작년에 돌아가셨는데 그때까지도 아버님 곁에 여자분이 계셨어요. 어머니 모르게~ 어머니가 그렇게 사셨으면 절 더 이해해줄꺼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구요. 우리 신랑이 마치 어머니의 신랑 같았어요. 돌아가신 아버님께 그정도로 잘했다면 아버님도 겉돌지 않았을 꺼란 생각이 들더군요. 시어머니와 신랑이 야속하고 밉기만 했습니다.
나중엔 애까지 가졌는 데 폭력까지 쓰더군요. 또 어머니가 오셨죠 . 어머니께 말씀 드렸더니 니가 잘못했으니까 맞았겠지 하더군요. 그때 알았죠. 팔은 안으로 굽는 다는 사실을 ~
그 와중에 애도 낳고 이사도 하게 되어 잘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애가 선천성 심장병이 걸려 있더군요. 그렇게 마음졸이고 맞았던 것이 애한테 갔나봅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제가 아프면 그만인데 애까지 그런다는 사실이~
애도 낳고 살면 남편의 행동에 변화가 오겠지 싶었습니다. 근데 그게 아니였습니다.
남편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습니다. 시어머니의 방문도 예전과 다름없이 ~
그런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결심을 했습니다.
이렇게 살지 말자고 ~ 남편과 또 싸움이 있었습니다.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때리는 버릇만은 고쳤으면 하고~ 경찰이 고소할꺼냐고 묻더군요. 아니라고 했습니다.
차마 그렇게 까진 할 수없었습니다.
시어머니 또 내려오셨습니다. 그래서 이혼했습니다. 합의이혼 ~
시아버지 종이한장 보여주시면서 똑같이 쓰라 하시더군요. 그때 내나이 24살
뭣모르고 썻던 내용은 아이의 친권포기와 위자료 포기 각서 였습니다.
공증사무실까지 가서 공증까지 받더군요. 예물로 받았던 반지와 목걸이도 뺏더군요. 우리시어머니가~
그래도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에 기꺼이 해주었습니다. 너무나 괴로워서 ~
이혼후 직장도 다니고 육신은 정말 편했습니다. 원하는 교회도 맘껏 다니고~
하지만 애가 자꾸 눈에 아른거려 심적인 고통의 나날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이혼한 지 3개월후 남편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애기 잘 지낸다고 하더군요.
헤어지는 찰나에 신랑이 다시 살아보지 않겠냐고 하더군요.
애가 보고 파서 애만 볼 수 있다면 다시 참고 살아봐야지 싶었습니다.
이혼한지 3개월만에 간집은 전에 살던 집이 아니였습니다.
장롱을 뒤지던 순간에 다른 여자의 속옷이 나왔습니다.
알고 보니 남편은 저와 이혼후 열흘도 안되서 다른 여자와 관계를 맺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다시 절 찾아온 이유는 그여자와 헤어진 후 라고~
노처녀 였는데 우리 애기 사진을 보고 누구냐고 했더니 남편왈 조카라고 했답니다.
그여자를 만났거든요. 저보고 왜 다시 들어와 사느냐고~
인간같지 않은 것들과 왜 다시 사냐고 하더군요. 할말 이 없었습니다.
애기에 대한 모든 것은 다 조카꺼라면서 이혼은 했지만 애는 없다구~
이혼도 한지 몇년 지났다구 햇다고 그러더군요.
친구가 구청에 근무해서 알아보니 애아빠인데다가 이혼한지 열흘도 안되었다고 ~
그여자도 속았다고 저에게 하소연 하더군요.
그래도 남편을 용서했습니다. 그런데 시어머니 말씀이 이혼해서 그런 건데 왜 니가 뭘잘못했느냐고 하더군요. 남편은 그말에 용기을 얻어 더욱더 의기양양 해졌습니다.
작년에 아버님 돌아가시고 어머니와 같이 살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불쌍한 생각이 들더군요. 남편에게 사랑 못 받아서 저러시는 구나 하고 이해하며 살려고 했는데 지금의 저의 상태는 예전에 이혼했을 때와 별반 다를게 없는 더욱 더 최악의 조건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사는 게 나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