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친구는 얼마전 아버님를 하늘로 보냈습니당!!
우연히 친구 싸이에 갔는데 아버지께 보내는 편지가 있었는데
읽다가 너무 눈물이 흘러서 글을 올립니당!!
우리도 부모님이 이세상에 계실때 잘하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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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행복하게 살았다.
친구같이 편안한 부모님과 애인같이 다정한 오빠
그리고 천방지축막내딸로써....
하지만.. 내삶은 2003년 11월11일
부모님과 오빠에게 태어나서 첨으로!!
가장실망스런 딸과 부끄러운 동생이 되버렸당
많이 울고 또 많이 자책했던 날들을 생각하면...
나는 아직도 후회하며 내발등을 찍는다.
아빠눈에서 엄마마음에서 처음으로 흐르는 피눈물을 봤다.
그치만 용서했다.
내 딸이기에 무조건 용서한다고 했다.
그리고 2004년 10월 7일
나는 처음으로 삼성중공업 디자인팀에 입사를 했다.
학교도 다 졸업하지 않은채..
아빠의 연봉은 6500만원이다.
그중 내가 6000만원을 썼다.
물론 태어나 처음이자 마지막 사고였다.
그래서 열심히 일했다.
더럽고 치사하고 유치해질때도 있었지만..
그 6000만원은 아빠가 경찰생활 복지금을 모아둔 것이였다.
만약에 아빠가 사고로 목숨을 잃게 되면
그때 엄마몫으로 남긴거였다.
그래서 갚아야겠다는 생각만 앞섰다.
1년을 열심히 일해서 정확히 2800만원을 모았다.
아빠엄마 몰래 고교생들 미술지도를 해가며 알바도 했다.
1년동안 잠수를 탄 채 친구들을 외면했다.
내생활 내시간 모든걸 포기했다.
그리고 우연한 기회에 은행에서 일하게 되었다.
HSBC은행!! 부모님이 좋아했다.
7개월동안 또 이악물고 돈을 벌었다.
1200만원을 모았다.
그래서 내가 모은 돈은 1년 7개월만에 정확히 4000만원이였다.
처음에 그돈을 아빠께 가져다드렸더니 되려 화를 내셨다.
그리고 내가 시집갈때 쓰라고 통장에 모으라고 하셨다.
그치만 난 그돈을 부모님을 위해 쓰고 싶었다.
내가 까먹은 6000만원은 아빠의 경찰생활 26년간의 보상금이니깐..
아빠의 낡은 자동차를 보았다.
내 부모님은 그런 분이다.
세상 부모님 마음은 다 같은 거 겠지만..
당신 입을 꺼 먹을꺼 아껴가며 다 자식위해 희생하시는 분이셨다.
그래서 늘 아빠의 필수품이였지만..
고장난 자동차였다.
자동차를 사라고 그돈을 엄마한테 드렸다.
아빤 분명히 안받을 꺼니깐..
그후 난 부모님께 내 꿈을 말씀드렸다.
나는 유학을 가고 싶었다.
프랑스 보르도.. 내가 꿈꾸는 세상이였다.
그때 부모님은 썩 기쁘지않은 눈치였다.
니뜻대로 하라곤 하셨지만.. 분명 좋지 않은 눈치였다.
어렵게 입사한 은행을 또 퇴사하게 되었다.
그리고 알바를 하면서 어학원도 다니고 유학수속도 밟고있었다.
그렇게 또 부모님께 용돈을 타쓰는 어리광쟁이 막내딸이 되었다.
2006년 6월 24일 LYCEE DE L'ELORN 에서
합격통지서가 날라왔다.
너무 기뻤고 행복했다.
친척들과 할머니 댁에 방문하며 일일히 인사를 했다.
9월이되면 나는 프랑스에서 내 꿈을 펼칠생각에 행복했다.
6월30일 막내 외삼촌댁에 인사를 드리러 갔다.
이틀을 울산에서 잼있게 보냈다.
그리고 돌아오던 7월 2일
엄마에게서 아빠가 갑자기 많이 아프다는 얘기를 들었다.
아빠는 이상했다. 평소와 너무 달랐다.
늘 당당하고 호탕하셨던 아빠!!
넋나간 사람처럼 힘없기만 했다.
처음엔 단순한 감기인줄만 알았다.
병원에 가자고 해도 아빠는 괜찮다고 고집을 부렸다.
나도 괜찮겠지 했다.
7월6일 기억하고 싶지 않는 목요일!!
아빠는 아침에 출근하시려다 쓰러지셨다.
119를 급하게 불렀고 아빠는 눈만 멀뚱 뜬채
숨을 쉬지 않았다!!
오빠는 덩치큰 아빠를 힘들게 업고 1층으로 뛰었다.
119는 도착했고 아빠는 구급차에 실려가셨다.
나는 그냥 눈물만 났다.
신발도 신지 못하고 허둥지둥 따라갔다.
그때 생각이 났다.
그전날 밤 아빠가 마지막으로 한말을
"딸아~ 아빠 어깨랑 다리가 너무 아파!! 주물러줘!!"
아빠는 내가 안마해주는 걸 좋아했다.
나는 그날 안좋은 일이 있어서 아빠께 짜증을 냈다.
그러자 아빤 미안해했고 방에서 나갔다.
또 난 아빠한테 괜히 짜증낸게 미안해 거실로 따라나갔다.
그때 시간이 새벽 3시였다.
"아빠 화내서 미안!! 내가 예민해져서 그렇다"
"괜찮다!! 우리딸 유학 준비한다고 힘들제? 그래도 아빠는 딸 믿는다"
그렇게 아빠의 다리와 어깨를 꼭꼭 주물러드렸다.
병원을 달려갔을땐 아빠는 발버둥을 치셨다.
의사들은 불친절하게 아빠를 붕대로 온몸을 묶었다.
내가 짜증섞인 말투로 주치의를 불러달라고 했다.
아빠는 고통을 호소하며 내게 붕대를 풀어달랬다.
난 흐르는 눈물을 참으며 간호사한테 풀어달라고 소리쳤다.
내 신경질에 간호사는 놀랬는지 보호자가 봐달라고 하며 붕대를 풀었다.
아빠의 눈물!!
아빠는 왠만해선 잘 울지 않는다!! 여리고 약하지만..
아빠는 죽음을 예상했던 걸까?
주치의가 엄마랑 뭔가를 심각하게 이야기했다.
아빠는 잠시후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엄마가 대기실에서 오빠와 내게 말했다.
내가 유학가겠다고 선포한날!!
아빠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간경화말기라는 선고를 받았다했다.
그리고 아빤 내가 은행에 취직했을때 너무 좋아했었다.
그치만 내 꿈을 알고 있었던 아빠기에 막지 않았던 것이다.
친척들은 우리의 연락에 모두 병원으로 몰려왔고
나는 아빠가 간경화라는 판정을 받고도
병원을 가지 않았단 말에 화가났다.
아빠의 상태는 매우 위험했다.
신장!! 흔히 말하는 콩팥이 파손됐다고 했다.
이뇨제를 투여하지만 그날 중으로 소변을 못보면 돌아가신다고 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였다.
눈앞이 캄캄했던 나는 중환자실에서 난동을 부렸다.
아빠는 그때 내게 그러지말라고 힘겹게 말했다.
나의 복부를 가위로 찢었다.
의사와 간호사 엄마와 가족들이 모두 놀랐고
조금 찢어진 내 복부를 부여잡고 나는 말했다.
아빠를 살리라고 내가 이식하겠다고...
못살리면 다죽인다고 협박까지 했다.
나는 남자간호사들에게 제지 당해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았다.
그리곤 그날 밤 마지막으로 혼자 아빠를 보러 중환자실에 들어갔다.
아빠는 내손을 잡고 놓치 않았다.
산소호흡기 사이로 아빠는 무언가 말을 하는 것 같았다.
가까이 귀를 대고 아빠의 말을 들었다.
"은...은주..야 어..엄마말 잘 들어라.. 아..빠가 우..리..따..알..
사..랑..해"
눈물이 어찌나 흐르던지.. 난 아빠의 손을 꼭 잡고 고개만 끄덕였다.
그리고 아빠께 내일 아침엔 꼭 웃으면서 보자고 했다.
아빠는 소변을 못보면 돌아가신다는데 그때 아무렇지도 않게 소변보는
내가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웠다.
그리고 원망스런 7월7일 아침
아빠를 보러 갔을땐 아빠는 이미 돌아가신것과 다름없었다.
미동도 없이 침대에 힘없이 누웠다.
몸은 차가운 느낌이 들었고 눈동자만 조금씩 움직일 뿐이다.
아빠의 숨소리는 힘겨워 보였다.
엄마의 하염없는 눈물에 아빠는 엄마의 손을 꼭 쥐고 있었다.
아빠를 키우듯이한 큰 고모는 오열을 하며 아빠의 이름을 부를 뿐이였다.
오빠도 울부짖으며 미친듯이 아버지 아버지를 외쳤다.
난 아빠 가슴에 귀를 댔다.
아빠는 흐느끼고 있었다.
나는 아빠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아빠 나는 아빠 딸이였던게 젤 행복했다!!
아빠 다음에 다시 태어나도
나는 꼭 아빠 딸로 태어날께 아빠가 꼭 그렇게 해줘!
나도 아빠 믿는다
아빠 나 용서하지마!! 이렇게 아빠를 보내는 거!!
그리고 아빠 사랑해!!"
아빠의 눈에선 눈물이 흘렸다.
그날 오후 1시 50분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던 내 아빠 가 우리 곁을 떠나셨다.
지금 돌이켜보면..
나는 참 행복한 딸이다.
먹고사는 것이 힘들어서 울어본적이 없다.
갖고 싶은게 생기면 그게 값비싼 것이여도 가졌다.
늘 남에게 뒤지지 말라며 용돈도 두둑히 받았다.
중고등학교를 다닐땐 늘 아빠가 등교를 시켜줬다.
대학시험을 보고 원치 않은 학교에 합격했을때
누구보다도 나를 위로했던 아빠였다.
내가 큰 사고를 쳤을때도 묵묵히 뒷수습을 해주던 그런 아빠였다.
세상에서 딸을 젤 사랑하기에 딸이 어떤 잘못을 해도
무조건 용서할수 있다고 말했던 아빠였다.
빈소에는 많은 문상객이 이어졌고
분향소에 사람이 너무 많아 다른 빈소에 피해까지 주게 되었다.
아빠의 입관식때
귀와 코 입에 솜뭉치를 물고 있던 아빠
낯선 모시 수위
그리고 찡그린 아빠의 얼굴
숨이 막혔다.
다른 사람들은 목례로 경건히 식을 치뤘지만..
난 장의사한테 졸라서 오빠와 둘이 아빠께 마지막 절을 올렸다.
한번이 아닌 두번!!!!
오빠와 난 동시에 이렇게 말했던거 같다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만큼 키워줘서 고맙습니다. 근데 이렇게
먼길을 혼자보내드려 죄송합니다."
모든 아빠의 장례를 끝내고 지내던 어느날
나는 유학을 포기하기로 했다.
그래서 프랑스로 연락을 취해 합격을 취소했다.
다시 취직을 하기로 마음 먹고 있던 찰라
아빠가 좋아했던 은행에 다시 입사할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그래서 나는 국민은행에 입사했다.
그리고 오늘 우연히 월급통장을 발급하다가
내 이름으로 된 계좌를 발견했다.
난 국민은행 통장이 없다.
그래서 조회해봤다.
내가 그때 드린 돈이였다.
입금인을 조회했더니
우리 아빠였다.
아빠!!
내가 오늘 일하다가 얼마나 울었는지 아나?
내 뭐가 이쁘다고!! 내가 아빠한테 잘한게 없는데
나는 아빠한테 용서받기만 한 나쁜 딸인데
미안해!! 아빠!!
나는 아무것도 한게 없는데!!
이건 엄마줄께
난 아빠한테 이런거 받을 자격없는 거 알잖아!!
아빠 미안해!!
아빠가 나를 아끼는 이 마음만 받을께!
그리고 아빠랑 한 약속 지킬께!!
아빠 믿음에 벗나가는 딸 되지 않을께!!
약속할께~
사랑해 아빠 !!
그리고 정말 죽도록 미안해!!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