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동거인(同居人)#1

창작 東 |2006.11.13 20:29
조회 488 |추천 0

 하늘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이틀 전 내린 눈이 다 녹기 전에 태양이 회색빛 구름 뒤로 자취를 감추었다.

 공항으로 가는 동안 마음이 조금씩 비워지고 있었다. 처음 메일을 받았을 때 너무나 황당하기도 하고 화도 났었지만 멀리 공항이 보이자 마음이 평온해지고 있었다. 공항 화물청사 앞 주차장에 차를 주차시키자 은우의 머리위로 빗방울이 하나 둘씩 떨어지고 있었다. 차에 늘 가지고 다니던 검은색 우산을 펼쳐들며 공항 화물청사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출장을 다녀오느라 바쁘게 프린터 한 문서를 안주머니에서 꺼내었다. 자세한 내용을 읽지도 못했었지만 물건 하나 찾는 것이라 생각하며 공항 화물청사 관리 사무실로 들어가기 위해 출입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제복을 입은 여성이 은우의 얼굴을 보자 눈빛을 반짝이며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여기요.” 은우가 건성으로 문서를 건네주며 딴청을 피웠다.

 “잠시만 앉아서 기다리세요.” 제복을 입은 여성이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 안 다른 문을 열고 들어가며 말했다.

 은우가 사무실 한쪽에 마련된 소파로 걸어갈 즘 핸드폰이 울렸다.

 “네. 감사합니다. 김은우입니다. 여보세요.” 잘 들리지 않는 듯 은우가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회사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지방 출장을 하루 일찍 끝내고 공항으로 바로 와서 회사에도 들리지 못했었다. 통화가 끝나고 은우가 공항 화물청사 사무실로 들어가려다 출입문 옆에서 비를 흠뻑 맞고 있는 검은색 정장차림의 여자를 발견했다. 순간 은우의 가슴이 ‘쿵’하고 무너져 내렸다. 은우 자신도 모르게 그녀에게 걸어가고 있었다.

 “미정아!” 은우가 고개를 숙이고 있는 여자에게 다가서며 말했다. 목이 메여왔다.

 “서……,선배.” 미정이 고개를 들며 은우를 쳐다보았다.

 “여기서 뭐 하는 거니? 비 다 맞잖아.” 화가 난 듯 은우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저……,정민 씨가.......” 미정이 자리에 주저앉으며 울먹였다.

 “무슨 일이니? 정민이가 왜?” 은우가 미정의 등을 토닥이며 놀란 눈으로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었다. 메일엔 별 다른 내용이 없었다. 그저 첨부된 파일을 인쇄해서 오늘 공항 화물청사로 오면 된다고만 되어있었다. 은우가 방금 전에 사무실 여성에게 건네준 문서를 보기위해 공항 화물청사 사무실로 뛰어 들어갔다.

 “저기요. 방금 전에 제가 준 문서 보여주세요.” 은우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준비되었습니다. 뭐라 위로의 말을 건네야할지 모르겠습니다. 혼자 오셨습니까? 영구차는 두시에 온다고 합니다. 시간이 별로 없군요.” 남자직원이 손목시계를 보며 은우 곁에 다가와서 다소 사무적인 어투로 말했다.

 “무슨 말입니까? 영구차라니요?” 은우의 머릿속이 멍해졌다.

 “이정민씨 시신 확인하러 가시죠.” 남자직원이 사무실 출입문을 열어 은우가 나오길 기다리며 말했다.

 “잠시 만요.” 은우가 충격에 휩싸인 듯 자리에 주저앉았다.




 

 

 가족으로 보이는 세 사람이 공항 로비에서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하늘도 이들의 이별이 슬픈지 비를 뿌리고 있었다. 공항 안은 평일이라 그런지 한산해 보였다.

 “엄마 도착하면 전화해.” 정희가 애써 웃으며 말했다.

 “너도 같이 갔으면 좋을 텐데 누구 닮아서 이리 고집이 센지.” 정희를 안으며 엄마가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정희도 이제 다 컸는데......” 뻘쭘하게 서서 모녀간을 바라보며 중년의 남성이 말했다.

 “나도 이제 성인인데, 너무 걱정하지 마.” 정희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아버지. 엄마 잘 부탁합니다.” 정희가 낯선 사람 대하듯 무뚝뚝하게 말했다.

 “그래. 혼자 남겨두고 가서 미안하다. 자리 잡으면 너도 꼭 와.” 정희의 어깨를 토닥이며 정희의 아버지가 말했다.

 정희의 엄마와 아버지가 비행기를 타기 위해 출국심사대로 걸어가고 있는 모습을 정희가 참았던 눈물을 소리 없이 흘리며 바라보고 있었다. 두 분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은우가 정신을 차리고 공항 화물청사 사무실 밖으로 나왔다. 공항 화물청사 직원이 은우의 모습을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미정아!” 은우가 사무실 밖에 초라한 모습의 미정을 불렀다.

 “저 여자분 동행이세요?” 비에 젖은 미정의 모습을 본 직원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 은우가 아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침부터 와서는 고인을 보겠다며 얼마나 괴롭히는지. 오전 내내 저 여자분 때문에 아무 일도 못했는데, 처음부터 같이 오셨으면 좋았잖습니까?” 남자직원이 불평을 쏟아내며 막말을 했다.

 “뭐야? 그럼 아침부터 저기 서서 비를 흠뻑 맞고 있는데도.” 은우가 남자직원에게 버럭 화를 내며 쏘아보았다.

 “아니. 왜 화……,아……,를 내세요? 진……,작 화 내……,엘 사람이 누군데.” 남자직원이 은우의 행동에 적지 않게 당황하며 말을 더듬거렸다.

 “되었소. 그만합시다. 미정아 같이 들어가 보자.” 은우가 미정에게 다가서며 오른팔로 어깨를 감싸 안았다.

 은우와 미정이 남자직원을 따라 ‘냉동 창고’라 적혀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비행기 도착을 알리는 기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안전벨트를 착용하라는 얘기와 더불어 지금 비가 내리고 있으며 온도가 몇 도 인지 알려주었다.

 소피아가 보던 책을 덮으며 안전벨트를 맸다. 구름 덮인 하늘이 낯설게 다가오고 있었다. 눈을 감았다.






 냉동실 문이 열리자 흰 천에 덮인 시신 한구가 모습을 보였다. 남자직원이 얼굴을 보여주기 위해 흰 천을 걷었다. 얼굴이 심하게 손상된 싸늘하게 식은 시신이 은우와 미정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은우가 미간을 찌푸렸고 미정은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허락된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잠시 나가 있을 테니 확인하시고 나오십시오.” 직원이 은우와 미정의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도저히 정민의 모습이라고 할 수 없었다. 오른쪽 눈가가 심하게 뭉개져 있었다. 왼쪽 눈과 입 코만 봐서는 정민이 아니었다.

 “잠시 만요. 뭔가 잘 못 된 거 아닌가요?” 은우가 밖으로 나가려는 직원의 팔을 다급하게 잡으며 말했다.

 “아야. 서류상 확실히 맞습니다. 조금 있으면 가족들이 올 테니 두 분은 확인만 하세요. 특별히 두 분에게 먼저 공개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저는 모릅니다. 그럼 이만.” 남자직원이 아픈 듯 짧게 비명을 내질렀고 은우의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저……,정민씨.” 미정이 정민을 부르며 목 놓아 울고 있었다.

 “정민이 아니야. 잘못된 걸 거야. 지난주까지만 해도 잘 있다고 통화했었는데.” 은우가 세차게 머리를 흔들며 이성을 잃은 듯 소리를 쳤다.

 “선배. 정민씨가 맞아.”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미정이 은우의 옷깃을 잡으며 말했다.

 “어떻게 저 모습이 정민이니?” 은우가 눈짓으로 정민의 얼굴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여기 반지.” 미정이 정민의 손에 끼워진 반지를 가리키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은우가 미정의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와 정민의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번갈아 보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두 사람의 말소리 외에 무서울 정도로 적막하던 냉동 창고가 갑자기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정희가 화장실 거울속의 모습을 보면서 눈물을 씻어내고 있었다. 혼자라는 생각에 가볍게 몸이 떨려왔다. 하지만 잘 할 수 있을 꺼라 맘속으로 다짐하며 애써 미소를 지으려고 했다.

 공항을 빠져나와 주차장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하늘에선 아직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정민아! 어떻게 된 거니?” 중년의 여성이 냉동 창고 안으로 뛰어 들어오며 통곡을 했다.

 은우와 미정이 한걸음 옆으로 비켜나자 중년의 여성이 정민의 시신을 끌어안았다. 그 뒤로 몇 명의 사람들이 뒤따라 들어오자 어정쩡하게 서 있는 미정의 팔을 잡아끌며 은우가 밖으로 나왔다.

 “여기가 어디라고 온 거야.” 날카로운 목소리로 누군가 다가와 미정의 뺨을 때렸다.

 은우가 말릴 틈도 없이 또다시 미정의 뺨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세아였다.

 미정이 뺨을 손으로 감싸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세아씨! 이러지 말아요. 미정이 무슨 잘못이 있다고.” 은우가 세아의 팔을 잡으며 무섭게 노려보았다.

 “은우씬 가만히 있으세요. 저 사악한 계집이 아니었으면 지금 정민씨가 저 차디찬 냉동 창고에 누워 있을 리가 없잖아요. 모든 게 저 애 잘못이라고요.” 분이 풀리지 않는 듯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말했다.

 “미정아! 나가자. 내가 바라다 줄 테니 일어서렴.” 은우가 미정을 일으켜 세웠다.

 “안……,돼……,요. 정민씨를 지켜줘야 해요. 저 사람 저렇게 가게 두……,지 못해요.” 미정이 은우의 팔을 뿌리치며 냉동 창고 안으로 걸어 들어가려했다.

 “어딜 가. 재수 없는 것 같으니.” 세아가 미정의 앞을 가로막으며 미정을 밀었다.

 미정의 몸이 휘청거리더니 바닥에 꼬꾸라졌다. 기절을 했는지 미정이 움직이질 않았다. 은우가 미정을 들어 안으며 공항 주차장으로 비를 맞으며 걸어 나왔다.






 겨울비가 내리고 있었다. 친구가 마중을 나온다는걸 사양을 했는지라 소피아가 공항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마음이 설렜다. 25년을 꿈꿔왔던 곳에 첫 걸음을 내딛었다는 것 자체가 믿기지 않아 주변을 세심하게 살펴보며 걸었다. 피부색이 같은 사람들 속에 썩여있는 자신의 모습이 신기하기까지 했다.






 미정이 정신을 차렸는지 은우의 품에서 내리려고 했다. 은우가 차가 주차되어 있는 주차장에 다다르자 미정을 차에 태웠다.

 “여기서 조금만 기다려. 다시 들어가서 상황 보고 올 테니.” 은우가 차문을 닫고는 다시 공항 화물청사로 가기위해 발걸음을 돌렸다.

 “나도 갈래.” 어느새 미정이 차에서 내려 은우의 팔을 잡으려했지만 몸을 가누기 힘든지 차에 몸을 기대었다.

 “안 돼. 들어가 있어.” 은우가 미정을 차에 다시 태우며 말하곤 공항 화물청사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미정이 차에서 내려 멍하니 은우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다리에 힘이 빠져 걸을 수가 없었다.






 정희가 오후 강의를 하기위해 공항에 주차되어 있는 차를 향해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하루쯤 쉴까 생각도 해 보았지만 바쁘게 움직이는 게 오히려 외로움을 잊기 쉬울 듯 했다. 주머니에서 자동차 열쇠를 꺼내 원격시동 버튼을 눌렀다. 멀리서 자동차 시동이 걸리는 소리가 들렸다.

 

 

 

 

 

※가을이 저만치 바람결에 날아가고 겨울이 한발자국 다가 왔습니다.  몸도 무겁고 마음도 무거워지는 계절이 다가온 듯 합니다. 너무 늦게 찾아온 듯 미안한 마음 고이 고이 접어두고 있습니다. 욕심엔 많이 올리고 싶지만 일주일에 두번정도밖에 올리지 못할 듯 합니다. 머리속엔 얘깃거리가 잔뜩 들어있는데도 막상 글을 쓰려고 하면 어느새 하얀 백지가 되어버려서 독자 여러분들의 너그러움에 호소할 따름입니다. '사진'을 끝내고 초라한 제글에 힘을 실어주신 여러분들께 변변히 고마움을 전하지 못한듯 합니다.  '임경옥님, 마미영님, 닉네임님, 느림의 미학님, 혁이맘님, 이진영님, 수다쟁이님, 낯선 그리움님, 다프님, 이영자님, 최해림님, 항상고민님, 지금 처럼만님, asa님, 망고탱고님, 허미순님, 팬~~님, 천지인님, 쩡이님, 조급증님, 그리고 저보다 재미있고 훨씬 실력이 좋은 글을 올리시는 Cute_zLol님, 추림의 풍님, 설화님, 장은경님, 러브빌님, 요즘엔 얼굴 뵙기가 힘든 Milujute님, 항상 제 곁에 있으신 듯 저를 열심히 응원해 주시는 狂독자 실비님, 이윤영님, 그외 제 글을 읽어주시는 여러 독자님' 까지 이 자리를 빌어 고마움에 고개 숙여 인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제가 중도에 포기하지 않게 힘을 실어 주시리라 믿으며 다음회에 또 뵙겠습니다. 감기 조심 하세요^^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