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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만화의 추억을 찾아서

작은숙녀 |2003.03.27 12:17
조회 3,076 |추천 0
어린시절 ‘만화‘에 대한 추억을 따라서 부천의 특별한 공간, 한국만화박물관 [출처 : http://www.sportsseoul.com]"어린시절 ‘만화‘에 대한 추억을 되살리고 싶다면 경기도 부천으로 오세요!" 경기도 부천시에는 매우 특별한 곳이 있다. ‘만화‘에 대한 추억을 되찾을 수 있는 곳이다. 이른바 ‘한국만화박물관‘이다. 여러종류의 박물관이 전국 곳곳에 설립되어 있지만 만화와 관련된 박물관이 설립되어 있는 곳은 경기도 부천시가 유일하다. 만화의 유래는 물론, 한국만화의 태동과 흐름 그리고 현주소를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는 뜻깊은 장소이다. 아울러 50~60년 전에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한국만화들을 직접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소극장 화면을 통해 만화영화도 감상할 수 있다. 백열전구 아래서 땅콩이나 오징어, 과자 부스러기를 먹어가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장을 넘기던 어린시절 동네 만화방.그 ‘만화 삼매경‘의 역사 속으로...줌~인!<부천/강명호기자.mycall@sportsseoul.com> "기억나십니까?" 순정만화, 무협만화, 공상과학만화, 성인만화를 보기위해 들렀던 어린시절 동네 만화가게. 지금이야 게임방, PC방, 오락실에서 즐기는 컴퓨터 관련 게임이 아이들의 놀이문화를 선도(?)한다지만, 컴퓨터가 없던 그때 그 시절에는 만화가 어린 아이에서부터 어른들까지 보고 느끼고 웃고 즐기던 그 시절 최고의 낙이었는데... "기억나십니까?" 연탄난로에서 새 나오는 매케한 연탄가스는 만화에 빠진 애만가(만화를사랑하사람)들 에게는 구수한(?) 누룽지 타는 냄새였다고 할까. 딱딱한 나무의자에 앉아 몸을 이리저리 비틀어 가며 책장을 넘기던 그때 그 시절이 생각나지 않습니까. <"저 녀석, 지난 번에 다섯 권 봤는데 네 권 밖에 보지 않았다고 우겨대던 녀석이지. 오늘은 철저히 감시할테다."> 만화가게 아저씨는 따뜻한 연탄난로의 열기에 취해 두꺼운 안경을 쓴 채 졸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손님들을 감시(?)하고 있던 그 시절이었다. 그러나 아이들의 주머니 사정을 잘 아는 만화가게 주인아저씨는 ‘더 보고도 덜 본 척‘ 우겨대는 아이들의 거짓말을 알고도 모르는 척 넘어가 주던 그때였다. ^^기억나시죠^^. 이른바 명랑, 폭소, 통쾌, 스릴 등 각종 인기 검색어를 즐비하게 늘어놓고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던 그때 그 사절 만화들. 혹시 인기 만화가 왕현씨의 걸작 ‘얼룩외인부대‘를 기억하시는지요. 자! 경기도 부천의 ‘한국만화박물관‘으로 함께 가보실까요 만화박물관 내부로 들어갔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안내문이다. 한국만화박물관의 설립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한국만화의 원조(?)는 어디에서 시작 됐을까. 고래잡이 광경이 새겨져 있는 대곡리 바위 그림이다. > "만화를 예술의 한 종류로 볼 때 그 역사는 인류의 회화역사 만큼이나 오래되었다. 선사시대의 바위그림이나 스페인의 알타미라 동굴벽화를 비롯해 아프리카 타시르 니제르 지방에서 발견된 B.C. 4천년 경의 동굴벽화도 만화창작의 한 양식이다." <1896년 창간한 ‘독립신문‘의 삽화에서부터 1909년 ‘대한민보‘의 만평까지 소개되고 있는데 한국 근대만화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 우리 근대만화의 시작은 20세기를 전후한 개화기 신문, 잡지의 발행에서 비롯됐다. 이 시기의 우리 만화는 각종 인쇄매체의 삽화 또는 신문만화의 형식으로 처음 등장했다. 개화기 당시의 인쇄매체를 통해 우리 만화의 도입부분을 분석해 볼 때, 신문과 잡지는 우리 만화의 태동을 알리는 중요한 ‘텃밭‘ 역할을 했다. 초창기 우리 만화는 글을 말풍선 속에 가두는 요즘의 만화와는 달리, 사람(캐릭터) 주위에 대화내용이나 상황설명을 부연하는 형태를 취했다. 마치 동양화의 한쪽 귀퉁이를 장식한 싯구와 같은 양식이었다. 이러한 그림칸 구성은 1920년대 신문만화에 까지 이어지고 있다 <19세기 말부터 시작된 우리의 근대만화는 험란했던 세계의 정세 만큼이나 어두운 시기와 시련을 거쳐야만 했다. 1920년대를 40년대 중반까지는 우리 만화의 암울기였다.> 일본의 중국대륙 침략으로 한반도는 그들의 전쟁 전초기지가 되고 말았다. 이에따라 전시 총동원령이 내려져 우리 언론매체는 대부분 강제 폐간되고, 만화문화도 긴 암흑의 터널로 빠졌다. 1930년대 중반까지 명맥만은 유지했던 한국만화의 역사가 간악한 일제의 언론말살정책에 내몰려 신음했으며, 이런 암울함은1945년 8월 15일 해방의 그 날까지 지속되었다. 해방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비로소 민족문화와 우리 글과 말을 되찾았다. 우리 만화도 기나긴 암울의 터널에서 벗어나 르네상스를 맞았다. 대한만보 발행 이후 처음으로 정치 사회문제를 아무런 제약없이 만화로 표현할 수 있는 ‘창작의 자유‘를 찾게 되었다 <1946년에서 1950년대 까지를 우리 만화 전성기의 서막이라고 할 수 있다. 1946년 단행본 만화의 효시라 할 수 있는 김용환의 ‘토끼와 원숭이‘가 발간됐다.> 1950년대를 전후한 시기에는 만화책을 비롯해 만화 전문 잡지 발행 붐이 일어났다. 한국전쟁의 와중에서도 우리 만화책은 부산과 대구에서 꾸준히 발행되는 등 활기를 띄었다. 이 당시 우리 만화의 내용은 고전이나 전쟁을 소재로 한 작품이 주를 이루었고, 일본만화의 불법복제 및 표절이 공공연하게 이루어 졌다. 한국전쟁 이후 우리 만화는 잡지매체를 중심으로 대중만화시대의 틀을 마련해 나갔다. 성인, 오락 , 어린이(학생) 잡지는 물론 ‘만화세계‘ 같은 만화 전문잡지가 생겨나면서 만화잡지의 수요는 나날이 확대되었다. 또한 만화전문출판사인 ‘광문당‘이 설립되면서 우리 만화는 일대 혁신을 맞았다. 이때 발행됐던 만화책들은 서점 판매용으로 만들어 졌으나, 58년 이후 서울을 중심으로 시작한 만화방의 영향으로 서점판매용 만화책은 자취를 감췄다 한국 만화전성기의 서막이라 일컽는 1940년대 중반과 1950년대를 거쳐 1960년대에 접어 들면서 우리 만화는 새로운 장르의 탄생을 맞이 하는데 이른바 ‘어린이만화 전성시대‘이다. 1960년 ‘주간만화‘가 창간되었고 1961년에는 한성학, 방영만, 정도빈이 이솝우화를 바탕으로 한 ‘개미와 베짱이‘가 완성돼 만화영화의 시작까지 알리고 있었다. 이 시대에 발행된 우리 만화들은 대부분 아동들을 대상으로 한 만화들이 주를 이루었는데 1965년 임창씨의 ‘땡이와 영화독‘도 이 시기에 발표된 작품이다. 또한 1967년에는 아동만화 월간잡지 ‘소년 두꺼비‘가, 1969년에는 ‘소년중앙‘의 창간에 이어 아동만화 월간지 ‘만화왕국‘이 창간되면서 어린이만화의 전성시대를 이어갔다. <1960년대 우리 만화가 어린이만화의 전성기였다면 1970년대는 성인만화시대의 개막이라고 할 수 있다.> 1970년 만화 월간잡지 ‘만화춘추‘의 창간을 시작으로 길창의 ‘꺼벙이‘가 만화왕국에 연재됐고, 1971년에는 길창덕의 ‘순악질여사‘가 여성중앙에 연재됐다. 이 시대에는 한국이 낳은 대표 만화가들의 활동이 두드러지는데 이상무의 ‘독고탁‘이 1972년 등장해 이후 10여년간 ‘독고탁 시리즈‘가 발표되기도 했다. 또한 고우영의 ‘임꺽정‘이 일간스포츠에 연재됐고 어린이지 ‘어깨동무‘에 신문수의 ‘도깨비 감투‘가 연재되기도 했다. 1973년에는 김민의 ‘블나비‘가 발표됐고 1974년에 박수동의 ‘고인돌‘과 방학기의‘바리떼기‘가 ‘선데이서울‘에 연재되며 1970년대 성인만화시대의 극치를 이루었다. 한편 1976년에는 허영만의 ‘각시탈‘이 발간됐고 이후 우리 만화는 또 다른 시대의 전성기를 맞이하는데 그것은 ‘만화영화‘의 붐을 이룬 시기이기도 했다. 김청기 감독의 만화영화 ‘로보트 태권V 우주작전‘의 개봉과 한아람 감독의 만화영화 ‘철인 007‘도 이 시기에 발표됐다. 이어 1977년에는 김청기 감독의 만화영화 ‘로보트 태권V 3탄: 수중특공대‘가 개봉됐고 임정규 감독의 만화영화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가 개봉되기도 했다. <1980년대를 일컬어 순정만화의 부흥기라고 한다.> 1980년 이진주의 ‘달려라 하니‘를 시작으로 1981년에는 아동만화 전문지 ‘보물섬‘이 창간됐고, 김수정의 ‘오달자의 봄‘이 발표됐다. 이후 1983년에는 한국 현대만화의 축이라고 일컽는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이 발표됐고 청소년 만화 ‘북해의 별‘도 김혜린에 의해서 발표됐다. 또한 1980년대 중반에는 그 당시 우리 시대상을 반영하는 민중운동 만화들도 선을 보였는데 그 대표작으로 도시 빈민층의 민중운동을 다룬 ‘나뭇골 사람들‘이 도서출판 ‘공동체‘에 의해서 1985년 발표됐었다 <1990년대 ‘만화시대‘ 활짝 열리다(Grand Era of Comics).> 1990년대의 한국만화는 다양한 계층의 독자층을 흡수하는 명실상부한 ‘만화시대‘를 구가했다. 90년대에 두드러졌던 만화관련 이슈는 각종 공모전, 국제행사의 잇단 개최였다. 1991년 서울만화전을 시작으로, 서울국제만하페스티벌(SICAF), 신한새싹 만화대상, 운평만화공모전 등 우리 만화의 위상을 드높이고 우수신인작가를 발굴하기 위한 노력이 대대적으로 전개되었다. 1996년에는 정부가 ‘만화산업육성발전방안‘ 등의 적극적인 지원책을 발표하였다 또 다른 특징은 공주국립전문대를 위시한 전국의 10여개 대학에서 만화, 애니메이션 관련 학과를 개설했다는 점이다. 만화가 한국사회의 ‘문화학문 영역‘으로 정착됐음을 의미하는 일대 쾌거였다 1990년 배금택의 ‘영심이‘ 발표를 시작으로, 1991년 ‘서울만화전‘이 개최됐고 1994년에는 만화전문잡지 창간의 러시를 이루어 신세대코믹챔프, 슈퍼코믹, 영챔프, 빅 보물섬, 주간파워, 보이즈클럽, 팡팡, 팬팬 등이 창간됐다. 1995년 ‘제1회 서울국제 만화페스티벌‘이 개최됐고 1996년에는 국립 중앙박물관에 ‘고바우, 김성환 작품전시실‘이 개설됐다. 이어 각 대학의 만화관련학과가설립되었는데 세종대학교의 ‘영상만화학과‘와 상명대학교의 ‘만화예술학과‘ 등 이다. 또한 1997년에는 박광수의 ‘광수생각‘이 조선일보에 연재됐고, 극장용 만화영화 ‘전사 라이언‘ ‘난중일기‘ ‘임꺽정‘ 등이 개봉됐다. 이어 1998년에는 양영순 원작 성인용 비디오 애니메이션 ‘누들누드‘가 출시됐고 ‘제2회 춘천국제 만화축제‘가 개최되기도 했다 <만화의 한 장르인 ‘카툰(Cartoon)‘은 주로 신문에서 사회풍자용으로 즐겨 사용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21세기 우리 만화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21세기 우리 만화는 독자층의 세분화와 그에 걸맞은 특화된 장르만화가 지속적으로 개발되어, 한국 대중문화계를 선도할 것으로 여겨진다. 출판문화를 근간으로 한 게임, 영화 등 인근 대중문화영역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면서 대중문화산업의 ‘중심축‘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만화의 또 다른 장르인 케리커쳐는 어느 한 특징을 기가막히게 부각시키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우리 만화계는 사이버공간에 만화문화를 접목시키는 실험이 이어지고 있다. 1999년 말부터 만화를 컨텐츠(contents)로 한 인터넷 서비스 포털사이트(portal site)가 늘어나는 등 만화산업대국이라 일컬어지는 미국과 일본을 앞지르고 있다. 이른바... <한국만화박물관 내부 전경> 디지털만화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클럽와우(Club Wow), 코믹스투데이(Comics Today), N4, 아이코믹스(Icomics), 코믹플러스(Comicplus)‘ 등의 사이트에서 사이버 만화유통을 실험하고 있다. 한국만화의 미래... 한국만화의 미래, 새로운 ‘만화수요층‘을 창출하는 적극적인 자세와 만화인들의 올곧은 창작혼, 그것이 결합될 때라야만 밝은 미래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박물관은 또한 한국만화의 역사, 어제와 오늘에 이어 우리 만화를 이끌어 온 대표 만화가들에 대한 인물소개도 마련해 놓았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책으로 만들어 진 단행본 만화의 효시를 이룬 김용환 화백에서부터... <1946년 발행된 김용환씨의 ‘토끼와 원숭이‘는 단행본 만화의 효시이다.> 김용환씨는 인기 캐릭터 ‘코주부‘로 해방이후 한국만화계를 선도한 작가이다. 일본에서 활동시에도 손가락에 꼽히던 출중한 그림실력을 갖춰 그의 만화는 한국만화 초창기 신진들의 교과서이기도 했다. <신동우 화백은 특히 한국적 정서의 캐릭터와 이야기들을 주로 탄생시킨 만화가였다.> ‘홍길동‘은 1960년대 중반 신동우의만화에서 다시 한번 우리들의 영웅으로 태어난다. 작가는 타고난 재능의 유려한 그림실력으로 ‘홍길동‘ ‘차돌바위‘ ‘곱단이‘ 등 한국적 정서의 캐릭터와 이야기들을 탄생시켰다 <1983년 ‘아기공룡 둘리‘를 탄생시킨 장본인은 만화가 김수정 화백이었다.> 1950년대와 1960년대를 구가하던 김용환씨와 신동우 화백에 이어 1970년대 중반에서부터 현재까지 특히 동물시리즈로 인기를 끌어 온 김수정 화백은 이현세씨와 함께 한국만화를 이끌어 가는 만화계의 중진들이다 한국만화박물관에는 또한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없는 희귀만화들을 직접 찾아 볼 수 있는 도서 열람실이 마련돼 있다. 아울러 도서 열람실 외에도 만화영화를 즐길수 있는 ‘만화영화 상영실‘도 따로 마련돼 있다. 입장료를 내고 이 모든 시설들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 <희귀만화 열람실에 배치된 40~50년 전의 우리 만화들, 단행본 외에 시리즈물들도 찾아 보기 쉽게 배치돼 있다.> <만화정보 검색을 위한 공간도 마련돼 있다. 컴퓨터를 통해 찾고자 하는 만화의 정보를 한 눈에 살펴볼 수도 있다.> 만화의 역사는 대략 120년. 우리 만화의 역사 또한 100년이다. 컴퓨터와 디지털의 발달로 주춤 거리는 지금이지만, 다행스러운 건 최근 ‘추억의 만화‘들이 복간되고 있다는 것이다 [추억의 만화들이 줄줄이 복간되고 있다. 2001년 8월 길창덕 화백(75)의 ‘꺼벙이‘를 시작으로 신문수 화백의 ‘도깨비 감투‘ ‘로봇찌빠‘, 윤승운 화백(59)의 ‘두심이 표류기‘, 이정문 화백(61)의 ‘철인 캉타우‘(이상 바다출판사) 등이 지난해까지 잇따라 복간됐다. 아울러 올 초에도 신화백의 ‘천방지축 로봇찌빠‘ ‘신출귀몰 도깨비 감투‘, 이화백의 ‘심술통‘(이상 여명미디어) 등이 출간됐다. 지금은 사라져버렸지만 한때 한국만화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장르인 ‘명랑만화‘의 내로라하는 작품들이 그 모습 그대로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이 만화책들을 사서 보는 이들은 아이들이 아니다. 넥타이를 맨 20대 후반∼30대 후반의 어른들이 만화책을 들고 전철을 타서는 키득거리며 읽고다니는 명랑한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스포츠서울 닷컴/최대환기자> 꿈과 낭만 그리고 동심이 살아 숨쉬는 곳, 경기도 부천의 ‘한국만화박물관‘으로 향해 보심이 어떠실지...<강명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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