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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의 쓴맛?***

질경이 |2003.04.01 08:24
조회 369 |추천 0

   살다가 우리는 무던히도 부딪힌다.

이왕이면 아름답고 긍적적이고 고마운 것들만 부딪치면 얼마나 좋으랴만

삶은

   "그렇게 왔다 그렇게 갔다 하라"

   며 입적하신 스님의 유언처럼 우리는 이렇게 살다 이렇게 갈지언정

화살로 돌아 오는 아픔에 쉽게 오른쪽 빰마저 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추접스러운 자신의 잣대로 함부로 말하고 그 그릇에 담겨주기를 바라지만

세상은, 투명한 시대는, 현명한 사람은 결코 짓밟히고 있지만은 않은 것이다.

참으라 한다. 물론 참으면 좋지, 그렇지만 참는것도 유분수지,

참을수록 멍청이로 알고 가만히 있으면 바보인줄 아는게 세상이다.

얼마나 자기 방어적으로, 얼마나 이기적으로, 세상을 살아 가는게 본인인줄 뻔히 알면서,

터트렸다.   참지 못하고 끝까지 참지 못한게 나의 내일에 플러스요인이 될지 마이너스요인이 될지 모르지만 세 번까지는 바보가 되지 않겠다는 나의 철학을 깨뜨리는 자는 용서 할 수 없는 것이다.

   산 입에 거미줄치라는 법은 없다. 절대로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 아니다. 셋도 될 수 있고 넷도 될 수 있다.

   앞에 놓인 수 만개의 갈림길에서 잠시 쉬었다 갈 수도 있고 거쳐야 할 길이라면 거쳐 갈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삶의 여정에서 하다못해 아름다운 추억이라도 던져주는데 괜히 스트레스 받으면서 주눅들어 살 필요는 없는 것이다.

   심장은 뜨거운 혈류로 쿵쾅거리는데 다리는 나날이 넓은 세계로의 진출을 기다리며 조바심을 내고 있는데 어찌 걸음을 멈추겠는가?

   하지만 마지막 카드는 절대 내 놓지 않는다는 것을 그들은 모르면서

무조건 우긴다.   하고도 안했다 하면 그 뿐이다. 물증증거가 없어도 인터넷이 괜히 인터넷인가, 추적조회 한 번에 금방 들통날일을,

   그래도 잘했단다.   자기들이 잘못한 말은 상대방이 잘못 알아 들은 것이고 내가 잘못 쓴 글은 표현 못한 내 잘못이고 제대로 글을 읽어 보지도 않고 내린 결론이라는 사실을 절대 모른다.

   밤새도록 고민했었다.   마지막 카드까지 던지고 옷 벗고 거리에 나설까? 끝까지 그들의 행태를 지켜볼까?

   촉촉한 봄 비가 내리는 새벽, 등줄기가 흠뻑 젖도록 달리다가 만난 지인은 한 마디의 농으로 결론은 내려 준다.

   " 달랜 사람과 꼬치 꼬치 따진 사람? 그게 무슨 고민이냐고

   그게 조직의 쓴 맛 아니냐!"

   그렇다. 조직의 쓴 맛!

   한 사람은 달래고 한 사람은 협박하고 그러면서 우리는 살아가는 것이다.

   달래는 사람조차 없다면 우리사회가 살벌하여 어찌 살아갈까?

   곰곰 생각해본다.가정도 마찬가지다.

   달래는 엄마와 혼내는 아빠사이에서 우리는 커 왔고 우리 자녀도 커 가듯 우리는 가정과 흡사한 조직속에서 큰소리치는 사람의 아니꼬움을 달래는 사람의 아량에서 풀면서 사는 것이다.

   달래는 그를 위하여 나는 화를 가라앉히며 다시 할일을 생각해야 하나보다.

   달래는 그의 안위를 걱정하며 사는게 나도 살고 그도 사는 길이라면

굳이 휘발류통 짊어지고 불구덩이로 자처하며 들어갈 필요는 없는 것이다.

   아직 법이 이땅에 현존하고 법보다 무서운게 정의며 도덕임을 아는 사람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그래도 만개한 벚꽃을 보며 안도의 한숨이라도 내쉬어야 하고 그래도 살아있음으로 하여 행복하다고 꽃잎에 입맞춤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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