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저희 어머니입니다.
제가 6살 때 부모님께서 이혼을 하셨어요.
그 뒤로 지금까지 저는 엄마와 함께 살고 있고,
아버지는 이혼한지 1년만에 재혼을 하셔서 새 가정이 있으시고 두 명의 자녀도 두셨습니다.
저와 아버지는 일 년에 한 번 만날까 말까한 사이입니다.
아버지라는 이름을 단념한 지 오래되어
아버지라는 그 단어가 낯설고, 소리내어 부르기조차 어색하게 되어버렸어요.
너무도 어릴 때부터 모르고 살아와서 그런지
아버지가 한 가정에서 어떤 자리에 있어야 하며,
그 자리가 어떤 존재인지, 어떠한 역할을 하고 얼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 모릅니다.
교육을 통하여 배운 이론상으로는 알고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모른다고 해야 맞을겁니다.
보고싶다거나 그립다던지 하는 감정은 이미 오래전에 고갈되어버렸고
안 보고 살아도 그만입니다. 안 보는 것이 차라리 속 편합니다.
그렇지만 엄마는 저와 달라요.
일 년에 저와 아버지가 한 번 만날까 말까 한 것도,
엄마의 권유를 이기지 못 한 까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나 아빠 만나기 싫다니까? 불편해. 밥이 코로 넘어가는지 입으로 넘어가는지 체할 지경이야"
그러니까 더 자주 만나고 왕래해야지. 너가 너무 아빠를 안 만나니까 더 그런거야.
그래도 너를 낳아주신 아버지란다.
"정 만나고 싶으면 엄마가 가서 아빠 만나면 되잖아"
아빠한테는 가정이 있잖아. 어떻게 나랑 네 아빠랑 둘이 만나니?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부부야 헤어지면 남남이라지만,
너는 다르지 않니.
"아빠를 만나든 안 만나든 닥달 좀 하지마.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네 아빠 너무 미워하지 말아라.
네 아빠는 나를 미워하면 미워했지 널 미워하진 않으시단다.
내가 널 사랑하는 만큼 네 아빠도 널 사랑하셔.
시간이 지날 수록 하나씩 하나씩 알고자 하지 않았지만
자꾸만 알게 되는 것들이 있더라구요.
그 중에 하나가 엄마는 아버지를 사랑하신다는 겁니다.
과음을 하시고 집으로 돌아오시는 날엔 더욱 그렇지요.
주사가 좀 있으셨어요.
처음엔 아버지에게 밤이고 새벽이고 술만 취했다하면 전화해서 보고싶다고 하셨고,
그 때문에 아버지도 새 가정이 있으신 입장이신지라,
부득이하게 핸드폰 번호를 바꾸셨어요.
전에는 아버지와 만날 때에 엄마와 함께 셋이서 볼 때도 가끔씩은 있었어요.
헌데 번호를 바꾸고 나서는 셋이서 본 적이 없습니다.
아버지는 바뀐 핸드폰 번호를 절대 엄마에게 알려주지 말라고 부탁하셨고,
저 역시 엄마가 술에 취해 아버지에게 전화하는 것이 못마땅했으니
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약속이 지켜지는 탓이었죠.
그 뒤로는 제게 그 화살이 돌아와서
네 아빠가 보고싶다, 목소리라도 듣고싶다, 전화 안할테니 번호만 알려달라며
눈물을 쏟아내셨던 엄마가 안쓰럽기까지 했어요.
몇 년동안 이러한 주사가 반복되면서 하루는 제가
감정을 참지 못하고 그만 화를 버럭 내버렸는데... 후...
그 이후로 엄마가 안 그러시더라구요...
조금 미안하긴 했지만 그 일을 계기로 주사를 고치신 듯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제 새벽에 엄마가 과음을 하셨더라구요.
평소같았으면 대충 옷 벗는 시늉만하다 잠들어버리실텐데,
갑자기 대성통곡을 하시는겁니다.
무슨 일이 있는가 싶어 엄마 앞으로 다가갔어요.
왜 우느냐고 하니, 그저 오늘 하루가 울쩍하다 하십니다.
이유없이 슬픈 날도 있는 법이고 오늘이 바로 그 날이라고 하시며 우시는 겁니다.
제 방으로 돌아올까 하다가 잠드실 때까지만 옆에 있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뜻밖에 말씀을 하시는겁니다. 혼잣말하듯,
나도 사람인데 나는 왜 감정을 다 들어내고 살 수가 없느냐고...
나도 표현할 수 있다고, 표현하고 싶다고 하시며 서럽게 우시는겁니다
그래서 내가 다 들어줄테니 말해보라고 했지요.
너무나 울어서 말도 제대로 잇지 못하는 엄마는 조금씩 조금씩 속에 감춰두고 쌓아놓았던 것들을
입 밖으로 꺼내놓으셨습니다.
내 스무살 때 네 아빠를 만나, 그것이 사랑인지도 모르고 시작했는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랑한 유일 한 남자가 너무나도 보고싶구나.
내 정말 몰랐다, 40이 훌쩍 넘어버린 지금까지도 네 아빠를 그리워 할 줄은...
목소리만이라도 듣고싶은데... 내게 유일한 핏줄인 너를 안겨준 그 사람을 어찌 잊을까.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말이 무색하구나. 시간이 흐르면 흐를 수록 더 깊어지는데...
보고싶다, 너무너무 사무치게 보고싶구나...
두어시간이 넘도록 긴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 이야기들을 다 적어내릴 순 없지만,
어머니는 애오라지 아버지 한 분만을 가슴에 담아두며,
아직도 그리워하시더군요.
사랑하는 만큼 미워하고, 미워하는 만큼 사랑할 수 밖에 없어서,
미워하는 마음조차 끌어안아 사랑하는,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인, 마음 속에 품은 단 하나뿐인 남자,
바쁜 일상에 치여 잠시 추억하지 못하였을 뿐, 잊었던 것이 아니었던 남자,
시간이 지날 수록 그립고 더욱 보고싶었던 얼굴이 있었던 것입니다.
딸의 성화에 들어내지 못하고 감추고 속으로 삭혀왔던 사랑이 있었습니다.
굳이 아버지를 만나라 하신 그 말들도 혹시 나와 아버지에 대한 거리가 멀어지면,
엄마와 아버지와의 거리도 더더욱 멀어지는 것은 당연지사며,
나를 통해 전해들었던 아버지에 대한 작은 소식마저
닿을 수 없을 것을 염려한 마음도 섞여있던 것은 아닐런지....
마음이 짠하더군요...
아빠에게 당장 내일이라도 전화를 걸어, 잠시 저녁식사라도 셋이서 함께 하자고
부탁을 드려볼까 했어요.
아버지도 분명 꺼리시겠지만, 간절히 부탁드리면 마지못해서라도 승낙해주실꺼라고 생각했던 것이죠.
"내가 아빠한테 전화할께. 만나자고 할께, 그러니까 울지마."
내가 이렇게 변해버려서... 볼품없이 변해버러셔서 실망하면 어떻해
난 이렇게 뚱뚱해져버렸는데, 다 늙어버렸는데...
이렇게 사는 꼴 보여주고 싶진 않은데... 실망할텐데...
"아빠라고 그대로 겠어? 아빠도 변했어."
더이상 말을 잇지 못하시더니 말없이 눈물만 흘리십니다.
보고싶고 또 보고싶다는 말을 반복하시며 울다 지쳐 잠드셨습니다.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제가 뭐라도 해드리고 싶은데 어찌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버지께 연락을 드려서 셋이서 만나는 자리를 마련해야 할런지,
아니면 그냥 이대로 지나쳐야할런지...
저렇게도 보고싶은 마음이 간절한데, 만나게 해드리고는 싶은데,
괜히 또 만났다가... 그리움만 더 커지고 엄마 마음만 쓰리고 아파지지는 않을런지요...
엄마도 평소에는 낙천적이고 활발한 성격이신데다, 아버지와 만났을 때에는
이러한 속내를 들어내지 않고 친구처럼 편하게 대하세요. 아버지도 그렇구요.
제가 중간에 껴 있어서 그런지...;;
그런데 제가 없으면 두 분이서는 절대 만나시질 않아요;;;
때문에 만나서는 문제가 없을테지만,
만나고 돌아온 후에 엄마의 마음고생이 염려되는 겁니다...
아버지의 입장은 현재로써는 생각하고 싶지 않네요.
아버지의 입장을 따지자면 아버지의 입장도 분명 있기 마련이겠지만, 그건 잠시 미뤄두고
우선은 오로지 엄마의 입장만 놓고 생각하고 싶네요.
제가 어떻게 해야 현명한겁니까... 조언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