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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보리밥

지도자 |2006.12.30 23:12
조회 196 |추천 0

어머니의 보리밥



퇴근 시간에 통근차 에서 내려 시장한 생각에 보리밥집 이 눈에띄여 그곳에 가서 난 보리밥을 시켜놓고 옛날 생각이 떠올라 잠시 유년시절로  돌아가 보았다.

어릴 적 나의 유년시절은 무척이나 배고프고 고아보다 못한 어렵 디 어려운 시절이 였다.

아버님의 첩 살림 으로 시작한 나의 어린 시절은 단 한번 이라도 따뜻한  어머니의 품에서 잠을 자보는 작은 소망마저도 나의  아버님의 쾌락적인  생각으로 그 소망은 빼앗겨 버리고 가세가 기울고 고집스러운 아버지의   자존심 덕택(?)에 우리는 가난한 단칸방에서 우리형제 셋과 또 배다른 동생 셋과 함께 같은 방에서 흥부의 식구처럼 살아야 만했다.

밤이면 아버님과 새어머니의 비끓는 섹소리에 잠을 깨도 늘 자는척을 해야만 했고 소변이 마려워도 일이 끝이 난 한참 후 까지 참고, 몰랐던 것처럼 일어나야만 했다. 왜 그리도 길고 소리까지도 못 참아야 했는지 .......

새어머니는 아버지와 열세살 이나 차이나고 또 아버지를 유혹해서 만난테라 아버지의 능력을 많이 좋아했는가보다.... 어째든 그것은 내가 성인이 되기 전에도 이해를 했는데....

새엄마의 애들이 크면서 부터 나의 고뇌는 시작이 되었다.

모두들 찢어지고 가난하게 살았었고, 장손인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자존심  싸움으로 농사 지을땅 마저 뿌리치고 살았던 터라 논, 농사 하나없는 강원도 탄광 지역에서 벌어먹고 살기도 힘이 들고 고작 하루일을 해봤자 시멘트  원료로 쓰이는 석회석을, 큰 망치와 작은 망치를 바꾸어가며 잘게 깨서 기차 화차에 싣는일 이 고작이 였고......온 식구가 메달려 하루 종일 깨고 장갑에 자전거 튜브를 잘라서 덧대어 그것이 다 헤어지도록 화차에 던지는 일을  해서도 온 식구가 하루 두끼는 먹어야 하는게 라면 몇 개 넣고 국수를 많이넣어서 띵띵 불은 죽을 먹어야 하는 시절이였다.

그것을 아버지은 힘이 드셨는지 때려 치우시고 먼 곳으로 노동 일을 하러 몇 달, 혹은 몇일씩 집을 비우게 되면서 부터 나의 유년은 어두워져만 갔다.

새어머니의 성적욕구 때문이 였는지, 아버지가 안 계시는 틈에 우리는 이유없이 매를 맞았고 그 욕구의 화풀이 대상만 되어 버렸다.

언제인가 집에 가보았더니 옛날 동생과 나의생활 통지표를 보니,

그때의 초등학생이 였던 키 나 몸무게가 지금의 유치원 정도 밖에 되질않아그때 그 떠올리기 싫은 생각을 하면서 서럽게 울었었다.

난 그중에 제일 큰 놈이라고 집안 일을 해야만 했고 지금의 배다른 동생도 둘 씩이나 업어서 늦은 나이까지 혹사를 해야만 했다.  학교를 갔다 오면  언제나 먼저 숙제보다 해야 할일은 물 지게를 지고

우물에 가서 하루 써야할 물을 길러다 날라야 그날은 조금 쉽게 넘어 가는날이 였으나 작은 키에 지게 끈을 두어 바뀌 줄여서 지어도 힘이 없어    반통씩만 여러번을 지어 오면서도 집 앞까지 다 와서 돌 뿌리에 넘어져   눈물 지으며 다시 지곤 했고 겨울이면 그 추운 강원도 날씨에 새까막게   튼, 작은 손을 호호 불어가며 죽지 못해서 살았던 생각들이 뇌리에 스친다 혹시나 가끔 반항이라도 할때면 그 추운 엄동설안에 옷 하나 안입히고 맨몸으로 밖에서 몇 시간씩 벌을 서야만 했고 창피한마음에 누가 볼까봐 그것 마져도 나서지 못하고, 누가 길가에 지나가면 숨어야만했다. 그러다가 한번은 친구 어머니가 보시고 울면서 따뜻한 방으로 데려가 옷과 먹을것을 주셨지만 그 후 그 일이 새어머니 에게 알려진 다음으로는 난 더 많은 고충을 겪어야만 했다.  이젠 부모까지 욕을 얻어 먹게한다는 이유로..따뜻하게   추의와 배고픔을 피했던 댓가로 그 추운날 맨몸으로 밖에서 죽지 않을 만큼 매를 맞아야만 했다. 지금 짐승도 그렇게 까지는 안맞았을거라, 생각하니  지금으로서는 눈물도 나오질 않는다.

내 인생이 너무도 기가 막혀서....

가끔 나와 생일이 같은 외할머니께서 오셔서 너의 엄마를 찿아가라고     하였고, 누구라도 첩으로 딸을 시집보내고 싶은 마음이 있겠냐마는 ....     그러나 그렇게 된다고 본처가 되는 것도 아니고 내 동생과 내가 없어진다고 해고 배 다른 동생이 장손이 되는 것도 아니 였는데 뭐가 그것이 중요한지, 그렇다고 재산이 많은 부자도 아니 였는데......

언제인가 서러움에 가출했던 누나가 와서 우리끼리 서울로 가서 힘 모아  살자고, 거지로 살아도 이 짖보다 행복하다고 하면서 우리 두 형제를 데리고 기차역 플랫홈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아버지가 어떻게 알고  찿아  오셨는지, 누나보고 너는 다 컸으니 너만 가라하며 동생과 나를 데리고 다시오셨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차라리 한5분만 더 늦게 오셨더라면 지금의    내 인생은 달라져 있었을까?

언제인가 산에 가서 나무좀 한짐해 오라고 하였다 분위기도 조금 이상했고 언제나 하던일 이라 낫과 끈을 가지고 뒷산으로 가서 나무를 하는데 작은 나무가지에 지어놓은 땡벌집을 잘못 건드려 어린마음에 당황을 하다가    죽도록 벌에 쏘여서 신발까지 벗어던지고 집까지 도망을 왔는데,

그 먼곳  까지 오면서도 벌이 가만이 나둘리야 없겠지만 자기네 집을     건드린 죄로 까까머리한 쬐그마한 소년에게 집에까지 와서도 벌이 박혀있었으니깐 아마도 면역성이 없는, 지금에 사람으로는 절대적으로 죽었을      거라 생각된다.

집에 돌아오자 일찍온 날보고 새어머니와 동생들은 당황하였고 그 정신에도 왜? 그런가,하며 보았더니 계란을 한판사서 양이 적으니 나를 나무하러    보내놓고 자기들 끼리 먹다가 얼마나 죽지 못하고 온 내가 원망 스러웠겠  는가? 모처럼 영양분을 계란으로 보충하고 있는데 보신 하는 시간에 불청객이, 그것도 벌에 얼굴이며 온 몸을 다 쏘여 얼굴도 알아 볼수 없을 정도   인데..... 그땐 그래도 지금 그 비싼 된장은 풍족했나 보다 난 그날 된장으로 몸 전체를 맛사지를 해야만 했다. 그 귀한 시골된장으로.....

너무도 배고팠던 시절 너무나 외롭고 고달팠던 시절..... 일찍 가난때문에  어린나이에 원하지도 않은 강제시집을 간 누나가 보고싶어 그 어린나이에 120리나 되는 곳을 아침부터 걸어서 그곳에 도착 하였을때 밤이 였고, 길을걸으면서도 배고프면 누나를 볼 마음으로 참기도 하였고 가을이면 추수가 끝이 나고 허였게 서리가 묻은 남겨놓은 무를 뽑아 먹으면서도 얼마나    배고픔을 참고 걸었던 그 길이 행복하고 그리운지......

아침이 되면 언제나 난 학교 가기가 싫어었다.

학교를 가면 아침에는 괜찮은데 오후만 되면 배가 고파서 견딜수가 없었다. 배 다른 동생들은 학교에서 한달에 몇십원씩 하는 배급빵도 있었고 도시락도 싸 갈수 있었지만 난 싸주는 도시락도 창피한 마음에 가져갈수가 없었다.

나중에 원망의 소리를 들을까봐 그랬는지? 아니면 영양실조로 죽이려고   했는지....

그 당시에는 보리하고 쌀을 따로 따로 앉혀서 밥을 하던 시절이 였다.

깡보리는 언제나 잘 익지 않아 먼저 불려 씻어서 끓이다가  그 다음 에는 쌀을 넣고 물을 맞히면 밥이 다 된후에는 쌀은 밑으로 가라 안져서 밑에  층을 이루고 보리는 맨 위로 뜬 상태에서 밥이 된다.

5공시절 때 처럼 잡곡이 안나오던 시절이라 아마도 이렇게 밥을 해본사람들은 내 나이에는 없었으리라...

초등학교때 부터 난 밥을 했으니까.

동생들의 도시락은 맨 밑은 쌀로 가득채워져 있었고, 그 위에는 위장용으로 보리로 내 도시락과 같이 쌔까만 보리로 덮혀 있었다.

반찬이야 어떻했 겠는가.........

언제나 난 이렇게 도시락을 싸주면 집에다가 숨겨놓고 집에 와서 먹고는    하였지만 하루종일 집안의 노예로 살다보니 숙제도 못하고 잠이 들었고   학교에서도 언제나 그 때문에 벌로 늦은 시간까지 놀지 못하고 남아서    나머지 공부를 해야만했다.  그 시간도 끝이 나면 친구들과  놀고 싶었지만

배가 고파서 집에 숨겨둔 밥을 먹기위해 돌아와야만 했고, 여름철이면 몰래 남의집 과수원 서리로 배를 채우며 놀았던 나의유년시절이 그래도,

그리운 건왜일까?

죽도록 맞아가면서 머슴보다 못한 삶이였고 뻐꾸기 처럼 남의둥지에 알을 낳은 덕분에 집주인의 첩살이 보다 못한 삶을 살아왔지만 그때가 문득 눈물겹도록 그리운건 왜일까?

보리밥을 시켜놓고 난 아주 오래된 유년의 시절로 돌아갔다 왔다.

그것도 아주먼 아득한 유년으로........


그리고 돌아가고 싶다, 나의 그 그립고 아득했던 나의 유년의 시절로..........


                  2005년 8월    어느날 여름이 끝나갈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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