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지금은 하늘에 있는 가장소중한 친구..

김세형 |2006.12.31 04:19
조회 1,244 |추천 1

오늘아침에 제가 쓴글을 보았습니다.

베스트 리플을 써준님.. 지어낸얘기 아니에요 .. ^^

리플달아준 님들. 정말 감사합니다. 저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영훈이에게도 제동생에게도

그리고 제아내와 아들녀석. 제곁에는 이런 소중한사람들이 있습니다.

한가지 소원이있다면, 영훈이의 꿈을 꿔보는게 소원이에요.

여태껏 한번도 꾸질못했네요..

새해복 많이 받으시구요, 감사합니다.^^

 

------------------------------------------------------------------------------------

저에겐 아주소중한 친구 한명이 있었습니다.

이름은 김영훈, 지금은 하늘에 있어요..

제나이 7살때 그친구를 보육원에서 처음만났었습니다.

전 부모님이 안계세요.

저와 제동생 이렇게 두식구가 살고있죠..

5살때 저의 부모님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거든요..그래서  저와 제 동생은 친척집을 전전하다가

7살때 보육원으로 보내졌죠.

난생처음 보육원이란곳에서 살아보니, 저와 제동생은 낯설기만한 환경에서 부모님생각에

하염없이 울기만했었습니다. 정말.. 많이도 울었어요. 

어린나이였어도 부모없는 자식의 맘은 다 똑같을까요?

물론, 보육원에 있는 아이들의 맘은 다 똑같겠지만요..

보육원에서의 생활이 일주일됐을때쯤. 보육원에서 제친구 영훈이와 같은침대를 쓰게되었습니다.

그아이는 저희보다 보육원에서 1년을 생활했었더라구요.

어린나이였지만 영훈이는 저에게 곧잘 잘대하며, 친절하게 대해주었고, 제가 부모님이 보고싶어 울때마다 울지말라며 어깨를 토닥거려주었습니다.

나중에 안사실이지만 그아이의 부모님도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더라구요.

저보다 외로움을 일찍느낀아이답게, 그아인 저에게 큰힘이 되어주었습니다.

그래서 보육원에서의 생활은 그아이덕분의 서럽지만은 않았어요. 제동생 서원이도 그아이를 저와같이 친형처럼 따랐구요. 구슬치기도 하고, 가끔 보육원아이들과 싸움이 붙을때면 영훈이는 자기가 먼저 나서서 저와 제동생의 편을 들어주었죠.

그렇게 보육원의 생활이 10년이 흘렀습니다.

17살이 되자 같은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된 저와 영훈이는 여전히 단짝이 되어 늘 같이 붙어다녔어요.  

밥을먹을때도, 잠을잘때도, 그아인 항상 저의 옆에 있어주었죠.

친구와 싸울때도 그아인 항상 제편에 서주어 싸워주기까지 할정도로 저희의 우정은 커져만 갔어요.

고2가 되고, 그아이와 전 같은반이 되었어요. 어김없이 저희둘은 매일 붙어다닐정도로 그렇게 지내며 새로운 2학년 생활을 적응해 나갔어요.  

어느날, 수업도중 선생님께서 저를 다급히 찾으시더니 교무실로 오라고 하시더군요.

교무실로 가보니 원장선생님께서 무척 걱정된 표정으로 저를 기다리고 계셨어요.

왜그러냐며 이류를 물어보니 원장선생님께서 제 동생이 병원에 입원해 있다고 하더군요..

연년생인 제 동생은 고1입학하고나서 몸이 시름시름 아프기 시작하더니, 밥을 먹고난후에

자주 토하는 일이 잇었습니다.

그냥 별거 아니겠거니, 하고 넘겼는데, 학교 급식실에서 밥을먹다가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다는것이었습니다.

한걸음 달려와 병원에 가보니, 산소호흡기를 달고 중환자실에서 숨을가쁘게 쉬는 동생이 있었습니다.

의사님말로는.. 만성신부전증이라더군요..

순간 눈앞이 흐려지더니 눈물이 치솟더라구요..

제나이가 18살.. 이런일을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막막하게만 느껴지고, 앞으로 뭘해야할지 감을잡을수가 없었습니다.

의사선생님이 수술을 하면 낳을수 있다고 , 그러나 수술비가 1000만원이 넘더군요..

그날부터 무작정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의료보험이 없어서 수술비가 만만치않았던지라, 전 일에만 매달렸습니다. 하루도 쉬지않고 공사장에서 일을하고 주말에는 식당, PC방등등.. 안해본일이 없을정도로 일만했습니다.

그렇지만 2달동안 꼬박일해서 번돈은 400만원.. 수술비로는 가당치않는 턱없이 부족한돈이였습니다.

영훈이는 나에게 보탬이 되고싶다고 했지만, 전 친구에게 짐이 되고싶진않아서 영훈이에게 하지말라고 했죠.

그렇게 3달이 지나고, 제가 모은돈이 600만원이 조금 넘었을때쯤.

의사선생님께서 수술을 해야 겠다고  저에게 말씀하시더군요. 하지만 수술비가 턱없이 모자라 수술을 하고싶지만, 못하겠다고 말하자, 우선 사람하나 살려야지 병원비는 차차 갚으라고 하셧습니다. 신장한쪽이 너무 안좋아 떼어버리는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시더군요.  

그렇게 수술날짜가 잡혀지고 제동생은 예전의 건강상태보다 조금 좋아졋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일뿐 나머지 한쪽의 신장의 상태도 안좋아 언젠가는 이식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시더군요.

그렇게 한달이 지났습니다.

영훈이와 전, 답답하기도 하고, 기분전환도 할겸 공원에 갔었습니다.

1시간정도 대화를 하던도중 영훈이가 뜬금없이,

"얌마 니동생 걱정마 살수있어, 그러니까 그 우거지상좀 피고 다녀라 임마. 보기 안좋다"

이러는것이었습니다.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냐.. 내동생 꼭살려야지.."
"니동생 .. 내가 살려줄게..야 그런소리 말고 농구나 한판 할래? 음료수내기 !"

영훈이와 전 농구를 했고, 그날밤 영훈이덕분에 전 오랜만에 웃을수 있었습니다.

일주일후 영훈이는 저에게 보육원을 나와야 겠다는 말을했습니다. 갑자기 왜그러냐며 물어보니,

" 아 나 잠깐 여행좀 떠나려고, 보육원에서만 있더니 몸이 근질거려서 죽겟다야"이러는것이었어요.

갑자기 왜그러냐며, 무슨일잇냐며 꼬치꼬치 캐물었지만

영훈이는 저에게 그런일 없다며 오히려 저를 안심시키려고 하더군요.

다음날 영훈이는 짐가방을 메고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게 마지막모습일줄은 몰랐어요.

일주일후, 의사선생님께서는 제동생에게 신장이식을 해줄수잇다는 말을 하셧어요.

제동생은 A형 저는 B형이라서 못했던 수술..

누가 제동생에게 신장이식을 해주겟다고 하더래요.. 자기가 누구인지는 비밀로 해달라고..

그렇게 해서 제동생은 신장이식을 했습니다. 물론 두쪽 다요.

한달이 지나 제동생은 예전과 다르게 건강을 되찾았고, 저는 그제서야 한시름놓았다고 생각했어요

의사선생님께서 절 찾으신단말에 한걸음에 달려가서 의사선생님께 그동안 감사했단말을 수도없이 했어요..

그런데 ..

"동생 신장이식해준사람.. 누군지 알고싶지않아?"

이러시는것이었어요..

"니 친구 영훈이야. 8달전 뇌종양판정을 받았었나봐, 수술하면 살수도 잇었는데 돈이없어서 수술을 못했었데. 내게 와서 이런말을 했었어. 너와 동생에게 큰선물을 해주고 싶다고.. 해줄게 이것밖에 없어서 미안하단말 대신 전해달라 해줫어. 여기 편지도 남겼으니 한번봐봐.."

전 그순간 아무말도 못했습니다.

여행간다던 친구.. 다시는 볼수없게되었어요.

제동생에게는, 영훈이가 죽었단말을 할수가 없었습니다. 제동생은 영훈이가 자기에게 신장이식을 해준것도 몰라요.

그친구.. 저에게 정말 큰선물을 하고 돌아갔습니다. 전 그친구에게 해준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10년이 흐른지금도 그친구는 항상 제맘에 있고, 제가 죽어서도 아마 그친구의 기억은 잊혀지지않을겁니다..

 

영훈이가 저에게 남겻던 편지입니다.

 

세형아, 나 영훈이.

너에게 이렇게 편지를 써보긴 또 처음이다. 그치?

우리 그동안 정말 재밌었어. 단순한 재미뿐만이 아니라, 너와 내가 형제가 될수있었던 시간들..

그시간들이 나에겐 정말 소중하고, 영원히 간직하고싶은 추억들이야.

너에게 여지껏 거짓말이라곤 한번도 안했는데.. 이번엔 어쩔수없이 해야겠구나..

나 사실 여행 안가. 굳이 여행이라고 우기면 여행일텐데..

세형아 나 사실 뇌종양이다? 웃기지? 휴.. 세형이 너두고 나먼저 가서 미안..

그대신 내가 작은선물하나 주고 갈테니까.. 너무 섭섭해하지마라 . 알았지?

더 큰걸 주고 떠나고싶었는데.. 내가 줄게 이것밖에 없어서 미안하다.. 친구.

넌 언제까지나 내 친구맞는거지..?

나 없어도 잘해낼꺼라 믿어. 화이팅 . 김세형 화이팅이다 정말 ..

나먼저 가있을게

     -널 정말 사랑하는 영훈이.

 

 

영훈아,

나 세형이다.

휴 세월참 빠르지? 벌써 내가 28살이라니..

난 지금 장가도 들어서 아들이 하나 있단다.

내결혼식때 넌 물론 하늘에서 지켜보았겠지?

결혼식떄 정말 재밌었는데 말야..

너랑 맨날 싸우던 민철이 생각나니? 그자식 맨날 하는짓은 꼴통짓이였는데

지금은 중소기업 사장이 되있더라구. 키도 훌쩍커버려서 나에게 결혼축하한다고 하더라.

축의금 30만원이나 내놓고 갔어.

너도.. 내결혼식 왓었지?

아참 내 동생 이젠 비실비실 안거리고 잘지낸다야 .

영훈아.. 니가 정말보고싶다.. 너와 약속한대로 나 정말 열심히 살고있어.

글쎄.. 이게 열심히 사는건지는 나 스스로 장담못하지만, 너에게 언젠가

나도 꼭 큰선물을 해주고싶어. 그러기위해선 열심히 사는길밖엔 없을거 같아.

너와 찍은 사진이 한장도 없다는 사실에 오늘도 나는 후회란 길을 산다.

언젠간 볼테지만.. 너와 함께 했던 추억들, 다시 되돌릴수만 잇다면 되돌리고 싶구나..

먼훗날 내가 내인생의 막바지를 다다랐을때쯤,

너에게 부끄럽지 않은 내가 될게 . 열심히 살게 영훈아..

나에게.. 그리고 내동생에게 큰선물을 남기고간 영훈아.

꼭 한번 보고싶다. 니가 내게 해줬던말..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어.

나 열심히 살게, 그리고 니가 나에게 다른인생을 살게 해준 은혜 꼭 갚을게.

정말..정말 고맙고.. 보고싶고.. 사랑한다..

 

               -김세형

추천수1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