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바닥에 떨어져 일어날수도 없을지경이다. 사지가 마비되어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조차 없다. 사방이 어두워서 여기가 어디인지도 잘 모르겠다. 도대체 내가 왜 이 지경이 되었는지도 알수 없다.
빨리 화영이 옆으로 가고 싶은 생각뿐인데 사방이 벽으로 막혀 있어 그럴수도 없는 신세다. 화영이가 날 기다리고 있을건데.... 화영이 옆으로 가야하는데... 내가 오지 않으면 아파할 화영인데... 병우는 안간힘을 써서 눈을 떴다. 눈조차 뜨지 힘들었다. 축축하고 싸늘한 바닥에 누워 어둠을 응시했다. 문하나 없는 이곳이 섬뜩하기까지 했다.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영원히 여기에 갇혀 있는 생각을 하니 덜컥 겁이 났다.
"이봐요. 여기 아무도 없어요."
돌오는 소리는 자신의 메아리일뿐 사람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감옥인가? 지하 감옥인가? 병우는 이런 생각도 해보았다.
자신이 여기에 있다고, 사람들에게 알려야한다. 여기서 하루빨리 탈출해야한다. 하루라도 빨리 탈출하지 않으면 화영이가 나때문에 아파할거라고 생각하니 하염없이 눈물이 나왔다. 움직일 수도 없는 자신이 이렇게 원망스러울수가 없다.
"이봐 저기 아무도 없어. 제발... 제발... 나좀 꺼내줘. 화영이가 기다리고 있다구. 제발 부탁이야.'
심장이 조이는 아픔을 느꼈다. 이제 숨을 쉴때마다 동반되는 고통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이대로 죽을까봐 무서웠다. 화영이도 보지 못하고, 죽을까봐 겁이났다.
"화영아... 너무 보고 싶다. 화영아!"
병우는 이 어둠이 자신을 삼키까봐 몸을 움직여보았다. 하지만 자신의 뜻대로 몸이 움직이지 않아 더욱 답답할 뿐이었다. 욕지거리가 나왔다. 이런 상황이 너무 화가나서 욕이라고 해주고 싶은 심정이다. 어둠을 향해 소리라도 쳐보았다. 하지만 메아리만 울릴뿐 날 도와주러 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병우는 절망에 두 눈을 감았다. 눈을 뜨면 화영이 집에 누워 화영이가 날 부르는 그런 상상을 해보았다. 날 보면 사랑스럽게 웃는 화영이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3년후....
"그 최과장 정말 짜증나. 출장가서 차사고는 왜 당해. 그리고 더 웃긴것 말이야. 나보고 대신 수습하라는거야. 내가 왜 지대신 그 일을 맡아야하는는데... 누굴 바보로 아나. 일은 내가하고, 상은 지가 받겠다는거잖아. 재수없어."
"그만해. 그 인간때문에 열받지마. 눈가에 주름만 생겨. 우리 나이 29살이다. 그런 지랄 같은 일 하두번 있는 일이냐".
"아무리... 내가 말을 말자. 진짜 치사해서.. 내 입만 아프지."
"최과장 이번에도 승진 못할거야. 이건 비서실에 있는 미영이가 말해준건데 최과장 영업팀에 ... 누구라도 하더라. 아무튼 어린년이나 바람피우다가 걸렸데. 너 몰랐지"
"어머 웬일이야. 그 자식 미친거아니야"
화영은 서울로 올라와서 물류회사에 취업을 했다. 서울 생활 3년차. 회사 3년차. 옥상에서 이런 험담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스트레스로 쓰러질지도 모른다. 친구는 벌써 5년을 넘게 사회 생활을 했지만 승진은 누구보다 늦었다.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성차별적인 이 회사가 문제였다. 아니 이 사회가 문제였다.
"넌 억울하지도 않아. 후배녀석한테 니 자리 빼겼잖아."
"지랄같지. 그래도 어떻게해. 여기도 겨우 들어왔는데... 다른데 가면 안그럴까? 더럽고 치사해도 다녀야지."
"정우씨는 뭐라고 그래"
"지도 힘들어. 요즘 맞벌이 안하면 손가락 빨면 살아야하는데... 다니라고 그러지."
친구 미진은 2년전에 결혼을 했다.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서 둘이 열심히 벌지 않으면 안되는 형편이다. 아기도 그래서 미루고 있다. 한편으로는 미진이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결혼을 꼭 해야하나 이런 생각도 든다. 사랑도 못해본 주제에... 이 나이 먹도록 남자친구도 없는데 결혼부터 생각하는 자신이 한심스럽다.
"다음주에 소개팅 있지 않아."
"일본 출장갔다와서 볼거야. 근데 소개팅이 아니라 대타야. 맞선 대타. 별로 친한 친구는 아닌데 한달전에 우연히 거리에서 만나서 전화번호 주고 받고, 밥이나 한끼먹자고 헤어진 친구가 어느날 갑자기 전화와서 자기대신 선좀 대신 봐달라고 애원을 하길래 한일도 없고해서 해준다고 했어. 대충 거절하고, 빨리 나오라고 그러더라. 별로 중요한 사람 아니라고... 남을 속인다는게 좀 그래."
"그냥 좋게 생각해. 근데 너는 왜 남자 안사겨. 너 좋아하는 남자들 많지않아. 너 대학때 사귄 그 놈말이야. 니 버리고 딴년한테 간 그 놈 아직도 못잊고 있는거야."
"미쳤냐. 그놈 못잊게. 처음에는 배신감때문에 용서가 되지 않아서 울고불고 했지. 그 놈 사랑해서 그런건 아닌것 같아. 날 버리고 다른년한테 간게 억울해서 그랬지. 한달 지나니까 괜찮더라. 밥도 잘 먹고, 웃기도 잘하고, 내 생활로 다시 돌아와져 있더라고. 근데 사랑은 무슨.... "
"그 이후로 없었어."
"없었던 것 같아. 소개팅해서 몇번 남자를 만나보기는 했는데... 별로 썩 잘 되지 않았어."
"뭐가 문제야"
"나도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 내 심장이 너무 굳어져 그런가? 좀 해서 안뛰네"
"심장 떨리는 사랑하고 싶어. 니가 18살 소녀야. 심장떨려서 남자 만나게. 애가 사람 웃기네."
"비웃지마. 영화에서 나오는 그런 사랑해보고 죽어야지 미련이 없지. 그럼 평생 후회할 것 같아."
"지랄한다. 그런 사랑 몇명이나 해볼까? 정우랑 나보고도 몰라. 하루라도 안보면 죽을 것 같은 시절이 있었어. 근데 지금은 좀 늦게 들어오지. 내가 어이가 없어서... 사랑 길어야 1년이다. 대충 맞는 사람하고, 사겨서 사는게 결혼이야."
"됐거든. 그래도 넌 정우 사랑했잖아. 결혼한 여자들이 이런말 할때마다 정말 얄밉더라. 난 심장 떨리게 사랑해서 결혼할거야."
"그래. 심장 떨리게 결혼해서 그 남자 때문에 심장마비로 죽을 수 있다는걸 명심해라. 결혼한 선배로써 충고하는거야."
미진과 옥상에서 가볍게 농담을 주고 받으면서 그 날 쌓여있던 스트레스를 다 풀고, 다시 나의 자리로 돌아와 일을 했다. 내일은 최과장 대신 출장을 가야하기 때문에 빨리 업무를 처리하고, 출장갈 준비를 했다.
"누나 뭐해"
"내일 너 혼자 부산가야겠다. 내일 일본출장이야."
"일본... 아침에도 그런말 없었잖아."
"갑자기 생긴 일이야. 아빠한테는 전화했어."
"언제 와"
"4일 뒤에... 일본은 처음가는데 걱정이다. 일본어 책 있어."
"있을거야."
"그럼 찾아줘. 갖고 가야겠다. 일본어도 못하는데... 일본에서 못 돌아오면 어떻게하지."
"그런 소리하지마."
갑자기 버럭 소리치는 동생을 바라보았다. 평생와 다르게 화를 내고 있는 동생을 보고 화영이 더 놀랬다.
"농담이야. 그렇게 정색할거 없어. 낮에 무슨일 있었어."
"아니야. 아무것도... 미안 소리쳐서.. 잘다녀와."
뭔가 숨기는 듯한 화진의 행동이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화진이도 화진의 사생활이 있을거라고 뭔가 안좋은 일이 있을거라고 생각했기때문에 화진의 행동에 대해 묻지 않았다.
제주도 이후로 비행기를 타보는 처음이다. 기분이 이상했다. 분명 처음가보는 곳인데 처음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가깝고도 먼나라 일본이라서 그런가보다 그렇게 넘어갔다.
최과장님이 계시는 병원으로 우선 먼저 가보기로 했다. 일이 얼마나 진행되고 있는지, 최과장님의 상태도 직접 만나서 들어야할 것 같아서였다.
일단 택시를 탔는데 일본어를 못해서 어느 병원으로 가달라는 말을 책을 찾아서 손짓발짓 다해서 말을했다.
"어휴 너무 힘들어. 일본어 공부좀 할걸."
화영은 늦은 후회도 해보았다. 하필이면 내가 왜 최과장대신 해야하는지 모르겠다. 일본어 못하는거 모르나... 사람 여러가지로 피곤하게 만드는 스타일이다.
운전기사는 친절하게 병원앞에 차를 세우고는 뭐라고 하고는 인사를 했다. 인사 정도는 이제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병원안으로 들어온 화영은 병원에서도 걱정이었다. 일단 경비아저의 도움을 받아서 최 원석과장님이 계시는 병실 번호를 알수 있었다.
병동을 찾아 이리저리 돌아다녀 보아도 여기가 저기같고, 저기가 여가 같았다. 뭔가 뭔지 몰라서 한참을 헤매이고 있는데 비슷한 단어가 나왔다.
"여기인가? 아까 아저씨가 302호실이라고 했나? 아니 303호실인가?"
화영은 일단 302호 앞에 서서 이름을 확인해보았다. 근데 문제는 일본어로 써져 있다는 것이다.
"한국 이름도 일본어로 쓰나. 에라 모르겠다. 최과장님 병실이 아니면 다시 나오면 되지."
화영은 일단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창문으로 쏟아지는 햇살 때문에 눈이 잠시 감겼다. 그리고 빛에 익숙할때 다시 눈을 뜨고, 침대쪽으로 천천히 걸어들어갔다.
젊은 남자가 산소호흡기를 끼고 있었다. 눈을 감고 있는 그 젋은 남자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잘생긴 일본 남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죽은 듯이 자고 있는 그 남자를 흔들어 깨우고 싶다는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화영이 자신도 놀랬다.
그래도 나가야했지만 화영은 쉽게 나갈 수가 없었다. 그때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쿵쿵.... 쿵쿵 뛰는 심장으로 손을 가져갔다.
"미쳤나봐. 처음보는 남자한테.... 그저 이 남자가 불쌍해서 그런거야. 내가 너무 착해서 안타까워서 그런거야."
화영은 그 남자곁으로 좀더 다가가 ' 빨리 일어나요. 당신을 기다리는 사람이 가슴아파하면서 기다리고 있을거에요' 그 남자의 귀에 대고 이렇게 말해주고는 나왔다.
자신이 생각해도 미친 짓이라는 걸 알지만 꼭 그렇게 말해주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심장이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내가 돌았나봐"
그저 다른 나라에 와서 기분이 업되어 그런 미친 행동을 한거라고 그렇게 자신을 타일렀다. 그러지 않으면 그런 행동을 한 자신을 도저히 설명할 길이 없기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