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옛날 대학 3학년때 얘기입니다.
가끔 학교 끝나고 집에가는 버스 안에서 이나영삘 나는 여학생을 봅니다.
나이는 스물서넛 정도 돼 보이고, 늘 뒤로 묶은 머리에 귀밑머리가 흘러내려 있으며,
그림 가방을 든 팔목에는 아직도 기억나는 얇은 가죽끈으로된 보헤미안 스타일의 알록달록한 팔찌가 몇줄로 겹쳐져서 매어 있습니다. .
아마 우리학교 전 정거장에 있는 학교의 미대생이거나 그 비슷한걸 하는 학생인가 봅니다.
자주 보는건 아니지만 일주일에 한,두번 정도는 하교길 버스에서 마주치는데 벌써 몇개월이나 보게 되니까 점점 관심이 생겼습니다.
학교가 끝나서 약속이나 작업등 특별한 일이 없으면 그 여학생이 자주 등장했던 시간대에 맞춰서 버스에 타러 가고,
버스에 타게 되면 혹시 그 여학생이 있나 하고 한번 쓱 둘러보게 됐습니다.
그러다 그 여학생이 있으면 살짝 두근거리기도 하고
없으면 조그마한 실망감 같은 것도 들고...
뭐 요런 저만의 작은 기쁨과 기대, 설레임의 날들을 보내고 있으니
나중에는 버스안에서 그 여학생과 같이 탄 날이면 어디선가
크랜베리스의 dream 같은 노래가 BGM으로 흘러나오는 착각 같은 것도 들더라구요. ,ㅡ.ㅡ;;
제 성격상 한번 말을 붙여 볼만도 했지만 , 이 여학생에게 만큼은 왠지 건드리지 않고 그냥 바라만 보면서 이런 몽롱~~한 기분을 즐기고 싶었지요.
그러다가 '이 여학생 사진으로 좀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친구에게 엄청 비싼 디카를 빌렸습니다. 쏘니어쩌구800(?)이라는 제품인데 앞이 코끼리 코처럼 길~게 나온 덩치큰 디카죠.
아무튼 이 카메라를 들고 매일을 그녀와 마주치기 위해 그 시간에 버스를 탔는데 한 일주일쯤 돼서 드디어 같은 버스를 타게 됐습니다.
버스에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고,
그 여학생은 뒷문쪽에 서 있고,
저는 맨 뒷자리께에 서 있었습니다.
여전히 제 가슴은 작게 두근거렸고
여학생의 샴푸 향이 뒷자리까지 전혀져 오는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버스가 가장 흔들림이 없는 구간으로 들어설때까지 차분하게 기다렸다가
카메라 랜즈 커버를 열었습니다.
전원을 넣고, 액정에 담긴 그 여학생의 모습을 응시했습니다.
카메라주인은 제가 카메라를 빌려주면서 이런 전문 카메라의 사용법을 잘 모르는 절 위해 조언을 해주었죠
"먼저 대상이 액정에 들어왔다 싶으면 촬영버튼을 반쯤 눌러, 그럼 자동으로 촞점이 맞춰지고 그때 완전히 눌르면 사진이 찍힌다"
전 슬며시 검지를 들어 촬영버튼을 반쯤 눌렀습니다.
그러자 카메라에서 철컥! 하며 금속성 소리가 나더니 망원경 같이 생긴 카메라 코 부분의 윗부분이 자동차 본네트 열리듯이 척! 열리는게 아닙니까?
그러더니 거기에서 붉은 레이져 빛이 십여개가 발사되어 여학생의 얼굴이며 목이며 가슴에 가서
뻘겋게 부딧히는 것입니다.
마치 프레데터가 목표물에게 레이져빔을 쏘기위해 조준하는 것 같은 모양으로...-0-
여학생은 창밖을 보며 가다가 뭔가 번쩍번쩍한게 시야를 괴롭히니까 고개를 이쪽으로 돌렸습니다.
그 여학생은 빨간 레이져를 자기 얼굴에 쏘는 카메라를 들고 당황해하고 있는 왠 예비역 아저씨를 발견했습니다. OTL
그 여학생은 '저 놈 뭐야..' 라는 것처럼 미간을 찌푸렸고,
그리고 그 빨간 점들을 본 사람들 몇몇도 절 쳐다봤습니다.
그들은 한번 쓱 보고 만것일지도 모르지만 전 사람들이 "저 놈 도촬하려다가 실수했구만?" 이라고 서로 얘기 하는것 같이 느껴졌지요.
저는 이걸 끄려고 허둥지둥대다가 결국 전원을 눌러 카메라 자체를 꺼버렸고,
사진은 찍지도 못하고 바로 버스에서 내려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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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곧 방학이 찾아왔고,
새학기가 시작된 후에는 졸업을 했는지 그 여학생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저의 한시절을 아름답게 했던 판타지는 깨지고 말았지요.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