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한 점 많은 제 글이 톡이 되니 너무 신기하네요.
밑의 댓글에서 세입자들은 어떻게 되었냐고 하셨는데, 다들 보상 받으신걸로 알고 있구요,
아직까지 그때 사시던 분들 중 일부는 아직 그대로 살고 계신걸로 알고있습니다.
건물은 다른 분께서 경매에 참가하셔서 사셨구요 (이때 시기는 2001년도 가을쯤이었습니다.)
참, 그리고 공순이란 부분 수정 합니다. 아버지 표현 그대로 적다보니 그렇게 되었네요.
이해 부탁드릴게요.
그리고 제가 사는 지역은 부산인데, 부산은 공고가 남녀공학인 곳도 많답니다.
하지만 남자가 훨씬 많아서, 공주 대접이 아닌 남자대접?을 받지만요;
톡톡님들 댓글 하나 하나 너무 감사합니다.
아직 갚아야할 빚도 참;;; 많지만, 그래도 열심히 살려구요^ㅡ^
미흡한 글 읽어주시느라, 소중한 시간 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항상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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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톡톡을 즐겨보는 20대 초반의 여자입니다.
오늘 톡톡에 내 성공의 밑거름은 사랑하는 울 부모님이란 글이 올라온걸 보고 저도 글을 써보게 되네요. 글이 길어질것이라 예상됩니다;
저의 가족은 아빠, 엄마, 오빠, 저 이렇게 네 식구가 살고 있습니다.
(아직까진 아버지 어머니라는 말을 쓰지 못하는 철없는 딸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아빠 엄마께서는 양장을 하셨고, 아빠께선 의류사업을 크게 하셨습니다.
어릴때 아침에 일어나면 아빠는 일보러가신다고 안계시고, 제가 잠들고 나면 밤 늦~게 약간의 알콜에 알딸딸~해서 들어오셔서 뽀뽀하시고, 수염으로 까칠한 턱으로 어린딸에게 비비시는 그런 아빠였습니다.
사업상 거래처 분들과 좋은 곳 맛있는 곳에 가셨다가 오시면, 꼭 기억해 두셨다가 주말에 시간을 내시어 가족들과 함께 가셨습니다.
또 과일이나 과자나 먹거리 등을 잘 사주지 못하시니까, 과일을 사러 가면 사과 한상자, 배 한상자, 귤 한상자 뭐든지 상자로 해서 집에 과일가게 아저씨들이랑 한박스씩 어깨에 매시고 집에 들어오셨습니다.
94년도에 러시아에 츄리닝을 수출하셨는데, 아시는 분에게 크게 사기를 당하셨고, 어음을 쓰고, 돌려 막고 돌려 막고, 그러다가 부도를 내셨고, 그러다가 징역을 살게 되셨죠. (이 상황을 잘 모르겠네요.)
우리는 밥먹고 있는데 엄마가 쪼그리고 앉으셔서 벽에 기대서 울음을 참고 계신게 기억이 나네요.
엄마 친구분들이나 아주머니들은 우리집 힘든거 아시니까, 우리가 잘 못먹고 다니실까봐 오빠랑 저를 보실때마다 항상 머먹었냐고 물으셨는데, 우리는 오늘은 고기랑~ 머랑 ~ 머랑~ 먹었어요~ 하고 밝게 대답하곤 했죠.
잘 먹고 다닌 이유는.. 엄마가 우리 기 죽을까봐 항상 더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셨기 때문이죠.
아빠가 안계신동안 엄마가 무슨일을 하셨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무튼 정말 많이 고생하셨습니다.
아빠가 다시 돌아오셨지만, 한번 사업이 기울고 부도가 나고 나니, 다시 일어서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때부터 양장이라든지 의류업이 하향세를 향하기 시작하였고, 그동안 배워오셨고 사용하셨던 기술이 아닌 다른 기술을 배우셔야 하셨습니다.
다시 조금 사업을 일으키셔서 이사를 갔지만, 그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또 일을 하셨는데 세입자들이 담보때문에 전세내놔도 안나간다고 싸우고 난리가 났고, 결국 경매로 집이 넘어갔습니다.
그리곤 아버지 친구분의 비어있던 집으로 이사를 갔죠. 한 1년 반정도 살았으려나? 또 경매로 넘어갔고, 또 이사를 갔죠. 이상하게도 항상 돈은 없었는데 어떻게 어떻게 이사를 잘 다녔습니다.
저는 성격이 밝고 활달한 성격이었지만, 제가 학교에서 펑펑 우는 날은 경매로 이사간 날이었죠.
하도 웃고 다녀서 친구들은 저희 집엔 아무 문제가 없고 마냥 행복한줄만 알았다고 하더군요.
그냥 저냥 그렇게 또 잘 지낼줄 알았지만, 제가 고3때 였죠.
오빠는 전문대에 입학해 근로 장학생으로 일하면서 1학년을 보내고 있을때였구요.
아빠의 사업이 또 꼬여서 1년이란 시간동안 징역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때 살던 집에 마침 또 경매로 넘어가게 되고, 엄마가 하시던 옷수선 가게도 문제가 생겨 경매로 넘어가게 되고, 집도 가게도 다 이사를 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수중에 모아둔 돈도 얼마 없고, 아빠 없이 또 엄마 혼자 짊어지기엔 너무 버거웠습니다.
가게는 원래있던 가게의 가까운 곳의 조그마한 곳으로 옮겼고, 집은 어떻게 어떻게 알아보다가 저의 친구의 집에 달세로 있게 되었습니다.
제가 공고를 다녔는데, 고3 1학기였으니까 한창 수시를 쓰니 어쩌니 저나 친구들 모두 대학에 관심이 쏠려 있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엄마 혼자서 너무 힘든데 가게 장사도 잘 되지 않고, 오빠도 대학 다니는데.. 제가 대학가서 열심히 해서 장학금 받고 공부를 하고, 아르바이트를 한다치더라도 어떻게든 엄마에겐 짐이 될것 같더군요.
근데 솔직히 너무 대학이 가고 싶더라구요. 공부를 못한것도 아니고.. 집이 힘드니 더 공부가 하고 싶었다고 해야 할까요? 반에서 1등하고 선생님의 사랑도 관심도 많이 받았습니다.
정말 서러웠던건.. 친구가 그러더군요. 자기는 4년제 대학 갈꺼라고, 엄마가 4년제 아니면 쪽팔린다고 전문대 가지 말라고 그랬다고..
그때 그게 얼마나 서럽던지 혼자서 펑펑 울었습니다. 제 신세가 얼마나 처량하게 느껴지던지..
하지만 결국 전 취업을 했습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대학 간다던 애가 대뜸 선생님한테 취업 보내달라고 하니, 선생님께서도 놀라셨겠죠.
여자애들은 되도록 때리지 않으시고 잘 대해주시던 선생님이셨는데,
실습실 옆 선생님의 연구실에서 정말 언성이 높아지시고,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
실습실에 있던 친구들은 다들 놀라고..
선생님께서 저에게 더욱 화내신건, 대기업은 안갈꺼라는 저의 말때문에;
아빠께서 절대 대기업가서 공순이는 하지 말라고 세뇌교육을 시키셨죠. 나중에 거기서 나와서 머할꺼냐고, 바보되서 나온다고 그러셨죠.
선생님께선 몇년동안 열심히 일하고 아껴서 1억 모아서 나오라고 그러셨고..
결국 저의 승리로 1학기 여름방학식을 끝으로 학교에 납품하는 중소기업으로 취업을 나왔습니다.
사회 생활을 하면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학교 축제라던지 행사에 못가고, 친구들은 다들 놀러다니는데 전 회사에 있고, 친구들 다들 대학가서 열심히 부어라 마셔라~ 이러는데 나는 뭐하나 싶었죠.
하지만 자기 합리화를 시키는 저였습니다.
제가 취업을 나왔기에, 얼마안되는 돈이었지만 우리집 생계에 큰 보탬이 되었고, 징역살고 계신 아빠께 매일 매일 쓴 편지로 아빠께 조금이나마 걱정을 덜어드리고, 내가 벌어 내가 쓰고 -
방송통신대학교에 진학해 직장과 학교를 겸해다녔죠. 돈도 벌고 학교와 자격증공부도 하고 -
친구들보다 내가 더 인생을 더 보람차게 살고 있노라고 그렇게 합리화를 했습니다.
현재 회사를 1년 6개월 정도 계속 꾸준히 다니고 있습니다.
출퇴근하면서 공부하고, 회사갔다가, 퇴근하고 공부하고 친구들도 만나고 돈모아서 놀러가고
사랑하는 우리 가족들한테 선물도 하고 - 이번에 오빠 운동화랑 엄마 가방, 신발, 옷 사드렸고..
다음달에 월급받으면 ..월급 엄마 드리고, 그동안 모은 돈이랑 다음달 월급 남은걸로 모아서 아빠 양복 한벌 해드리려구요.
이상하게 제 옷이나 제 물건을 사려고 하면 10번을 더 생각하게 되지만, 가족들한테나 친구들한테 선물하는건 아깝지가 않네요. 저희 오빤 제가 참 이상하다고 합니다. 저도 참 제가 이상합니다;
요새 아빠께서는 옥매트도 만드시고, 여러가지 일을 하시는데, 월급도 받아오시더라구요.
맨날 사업하시던 아빠가 월급 받아오시니깐 참 기분이 신기 하더라구요.
평생 엄마의 바램이 아빠가 월급 받는거였거든요; 하도 사업에 디여서 그러신건지..
(저도 어릴땐 사업하는 남자 싫어~ 생각했는데, 이젠 자영업이 최곱니다! 하는 생각이..)
엄마는 돌침대 매장하시고, 옷수선하시고 계세요.
오빠는 어릴때부터 요리를 좋아했는데, 요리쪽으로 쭈~욱 가서, 고등학교도 대학도 다 그쪽 방면으로 가서 아직 군대 안갔구요, 영장이 10월로 날아왔는데, 그때까지 여고의 급식소에서 일한다고 하네요.
아무리 집안에 힘든 일이 많았지만 아무리 한숨 쉴 일들이 많았다지만, 제 주위 친구들의 가족들보다 훨씬 더 가족간에 사이도 좋고 웃음이 넘쳐나는 우리 가족이기에 행복하네요.
아빠께서 뇌출혈로 수술도 하셨고, 엄마도 고생을 많이 하셔서 몸이 많이 상하셨고 편찮으신 곳이 많으시지만, 그래도 살아계셔 주신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아직까지 철없는 못난 딸이지만,
부모님께서 베풀어주신 사랑.. 제가 평생을 갚으려고 해도 다 갚지 못하겠지만,
효도하는 착한 딸이 되도록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이번주 일요일은 아빠, 엄마 결혼 기념일이네요. 가족끼리 영화도 보고, 엄마가 좋아하시는 회 먹으러 가려구요^ㅡ^ (아.. 통장에서 또 돈빠지는 소리가 들려오네요ㅋㅋㅋ)
그동안은 입에 풀칠하며 살기에도 바빴지만, 이젠 조금은 문화생활도 즐겨가며 살아도 되겠죠?
톡톡님들, 애인이나 친구들하고만 맛있는거 드시러 가시거나 영화 보러 가시지 마시고, 이번주는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보세요~
회사에서 점심시간에 글을 써서 글에 두서도 없고 맞춤법도 틀린곳도 있을것 같네요.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하구요, 톡톡님들의 가정에도 항상 행복이 가득하길 바랄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