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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내게 준 암호 (3)

통통너굴 |2003.04.22 10:55
조회 1,069 |추천 0

그녀가 내게 준 암호 (3)

 

 피곤한 하루였다. 누구에겐가 연락이 왔다 혜주였다.


 혜주 : 어디야? 도서관이야?
 나 : 응...

혜주는 근처의 호프집에 있었다.
나는 가방을 싸고 혜주가 기다리고 있는 호프집으로 향했다.


[3]
 대학가의 호프집은 언제나 젊은 열기로 가득차있다.
쉼없이 흘러나오는 최신가요와 뿜어지는
담배연기, 열렬한 토론까지... 혜주는 그 담배연기를 피해
구석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술이 한 잔 생각나서.'하고 혜주는 한 번 웃어보였다.
그리고 혜주는 자신의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다음에서 '나'는 혜주를 가리키는 말이다.

 '나(혜주)'는 너와 같은 해 11월에 태어났다.
아버지 어머니 오빠 그리고 여동생이 가족이다.
우리집은 늘 같다. 아버지는 자그마한 회사를 다니고,
어머니는 평범한 주부이다. 오빠는 ROTC 1년차인 3학년 생이다.
여동생은 고등학생이고...
 나는 이 학교의 국어국문학과를 선택했다.
그냥 시가 좋고 소설이 좋아서였다. 나는 평범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남들이 거치는 과정을 다 거쳐 여기까지 있었다.
 사고방식도 남들과 비슷했고 그저그런 평범한 학생이다.'

 혜주는 계속 말을 이었다. 나름대로 힘든 일을 겪는 것 같았다.

 '나는 그저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에 솔직히 대학생활에 적응이 되는 것이 힘들었다.
자유를 만끽하기가 힘들었다. 대학도 나름대로
많은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곳이라는 것을 느꼈다.
마음대로 행동해도 거리낌이 없다는 자체가 힘들다.
고등학교처럼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싶을 때도 느꼈다.
카알부셰의 '산너머 저쪽'이라는 소설처럼 나에게
행복은 산너머 저쪽에 있는 것 같았다.
나의 그저 그런 삶도 물거품처럼 피어나다가 꺼져버리는
 - 그런 순간적인 삶을 살고 있다.
나에겐 삶의 목적이 있었으면 좋겠다. 어느 것이라도'

 나는 혜주가 예리하며 사회와 사람을 보는 안목이 있고 활발하며
명랑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분위기상 차마 입이 떨어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혜주는 긴 침묵을 지켰다.
 음악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어색함을 깨고 혜주가 말을 열었다.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하셨다.'

 


 나는 집에 왔다. 혜주와 함꼐 마신 맥주가 적절히 나를 취하게 해주었다.
 나는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현란한 바이올린 소리가 들려왔다. '바네사 메이 -'
 폭풍우의 기운이 느껴지는 타이틀 연주곡 'storm'. 나는 나의 삶을 뒤돌아보았다.

나는
과연 혜주와 다른 것이 무엇이던가.
그리고 혜주를 생각했다. 어쩌면 혜주는 이상의
'날개'에서의 주인공처럼 옥상에 서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날자꾸나'하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혜주에게 삐삐로 음성을 남겼다.


 다음날부터 도서관 내 자리 옆에는 강성이와 혜주가 앉게되었다.
나는 혜주에게 어느 작은 목적이라도 주고 싶었다.
나와 강성이와 혜주는 같이 우리과에
있어서는 필수적인 漢字 능력시험을 준비하기로 했다.
그리고 레포트등도 같이 쓰기로 했다.
나는 내심 불안해졌다. 나와의 사귐을 바라는 y의 시선때문이다.
혜주와 함께 있는 광경을 그녀는 어디에선가 보고 있다.
그녀는 어떻게 할까?


이러한 생각이 들자마자 점심식사 후에 그녀의 쪽지는 와있었다.

'Zn + 2MnO + 8NH4 → Zn + 2Mn + 8NH3 + 4H2O
                   PM6 K.525           -Y- '


 '이게 뭐야?' 혜주가 물었다. '아냐..아무것도 .. '나는 황급히 숨겼다. 
 그리고 대출실로 달려갔다.

 나는 이번 암호는 생각보다 쉽게 풀 수 있었다. 그러나 하나의 막중한 부담감을 느
꼈다.

 

'Zn + 2MnO + 8NH4 → Zn + 2Mn + 8NH3 + 4H2O
                      PM6 K.525        -Y- '

 위의 화학식은 건전지의 화학식이다.
 나는 화학책의 다음 구절에 주목을 했다.
 '어떤 용기 내에서 이루어지는 자발적 산화/환원반응은 전류를 발생시킨다.'
 그녀는 혜주와 나를 어디에선가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그녀의 마음에는 전류가
발생하였다.
 
 처음에는  PM6 K.525 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몰랐지만
PM은 오후를 나타내는 것이고
K.525는 내가 즐겨듣던 모차르트의 '아이네 클라이네 나하트 무지크'라는 곡이다.
'하나의 작은 밤의 음악'이라는 뜻인데, 학교 앞에는 '작은 밤·음악'이라는 커피숍
이 있었다.
나는 강성이에게 혜주에게 이야기 잘 해달라고 하고 6시에 맞추어 커피숍으로 나갔다

.
커피숍은 3층이었다. 아래가 잘 내려다보이는 곳에 - 그녀가 앉아있었다.
나의 예상은 적중했다.

 '어서와' 그녀가 말했다.
나는 그녀가 처음부터 반말을 쓴 것에 대해 약간의
불쾌감이 들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봤다. 당차게 생긴 아이였다. 그렇기 때문에 생판 모르던 나에게 이렇게
접근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헤이즐넛 두 잔을 시켰다. 
 '난 연숙이라고 해.' 다시 그녀가 말했다. '그래..알고 있어' 내가 대답했다.
어색함이 아직도
남아있었다. '지금부터는 나 혼자 얘기해도 될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러 온 것이었다.


 그녀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자신은 시내의 모여고를 나왔다는 것.
 고등학교 때 서클활동을 했다는 것.그러면서 각 학교와 교류하던 차에
우리학교에도 왔었다는 것. 그런데 우리학교의 서클에 내가 있었다는 것.
내 활발한 활동은 익히 알고 있었다는 것, 나를 처음 본 순간 친근함이
느껴졌다는 것,대학교에 입학하니 나 또한 이 학교로 진학을 했다는 것,
나와 같은 학교를 나온 화공과 친구 (그놈은 내가 1학년화학전공책을 알려
할 때 전화 건 그놈이었다.) 에게 나에 대한 정보를 알아냈다는 것,
가까워지고 싶다는 것 등이 그녀가 한 주요 얘기였다.


 '이제는 내가 얘기해도 될까?'라고 내가 이야기했다.
 그녀는 약간 긴장하는 듯 했다. 나는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나와 가까지 지내는 것은 시간이 좀 걸리겠다.
그냥 서로 알고 지내는 건 어떨까?
누구에게나 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잠깐' 하고 그녀는 내 말을 막았다. 그리고 혜주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나는 아는 대로 모두 다 말해줬다. 사실 그녀가 혜주보다 더 예쁘고 키도 컸다.
하지만 나는
'마음으로 사귈 수 있는 친구는 누구라도 좋다.
다만 나는 그것 때문에 '나'를 잃고
'누구를 좋아하는 또 다른 나'로 되기는 싫다.
나는 아직 20살이며 나는 아직 이십대 초반에 해봄직한
여러 가지를 하지 않았다.
나는
 우리는 한시간 동안 더 이야기를 한 다음
헤어졌다.


 집으로 오는 나의 마음은 착잡했다.
쉽게 답은 나오지 않았다. 나는 혜주를 다시 그려보았다.


작가의 변  : 이제 결론을 내야겠다. 타자치는 것도 힘들다.

 나는 다음 날 쪽지를 연숙이에게 직접 건네받았다.
연숙이는 미소를 한 번 지어보였다.
 'Ag2o + 4NH3 + H2O  --> 2[Ag(NH3)] + 20H
                                   - Y -  '


 나는 그 암호가 나올 것을 예상했었다. 그것은 은거울 반응식이었다.
 나는 책을 들고 오전 교양수업을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자리에는 연숙의 쪽지가 있었다.
'여러 시도가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이 시도는 나의 가슴에 앙금처럼 내려앉았습니다.
하지만 나의 아픔이 아름다운 은거울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당신을 비춰주고 나를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거울이라는 것을...

우리 좋은 친구로 지내자. 꼭!!
            - Y -'


 그 후 일주일 그녀의 마지막 쪽지는 다음과 같았다.

 ' FAT + NaOH   많이 씻어버리려구요
                                    - Y - '

 나는 이 마지막 쪽지의 내용을 화학백과와
영어사전을 이용해 알아내었다.
 FAT은 지방질을 뜻하는 단였고 지방에 수산화나트륨을 섞어 끓이면
비누가 생기고 이를 비누화 반응이라고 한다.

 화학백과에는 이렇게 나와있었다.
 '비누는 지방산의 나트륨염이다. 비누는 다른 탄화수소에 대하여
좋은 용매작용을 가진 긴 사슬의 탄화수소와 물에 대한 용해도가 높은
친수성(親水性)인 극성카르복실기가 결합되어
훌륭한 세척성을 가지고 있다.'

이제 그녀는 여러 가지를 지우기로 한 것이었다.

 

에필로그
나는 그렇게 있다가 군대를 갔다.
내가 군대를 간 사이
혜주는 열혈 운동권이 되어있었다.
담배도 피고...
도중에 강성이와 사귀었다는 소문이 돌았고 그 소문은 사실인 것으로
판명되었다.
강성이는 ROTC를 지원했다.
그리고 내가 제대를 한 해에 졸업을 했다.
그렇게 나의-
20대 전반이 지나갔다.
가끔 생각을 하면 뿌옇게 흐려지는 것들이 있다.
나는 그것을 기억이라 부른다.
나는 내 기억이 소중하다.
그리고 그것이 절대 잘못된 선택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나는 20대에 할 수 있는 것들을 많이 해 본 것 같다.
정말로 술에 취해봤고
사람에 취해봤고
책과 공부에 취해봤고
사회생활에도 취해봤고
운동권에도 취해봤다.
그러면서 지금의 내가 된 것이 아닐까 한다.
그렇지만 나를 자화자찬할 생각은 없다.
나는 아직 미완이다.
남녀를 가리지 않고 맘에 들지 않으면 대고 욕하고
뒤에서 태클건다.
짜증도 잘 내는 편 같다.
나는 이런 것들을 내가 잘 조절하기를 바란다.
나는 나를 잃고 싶지 않다.
나의 과거 분명 어딘가에 나의 사랑이 있다.
하지만 나는 사랑에 대해 엄격해지고 싶다.
사랑 = 좋아함 + 열정 + X 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랑의 조건이 있다.
늘 -ing여야 할 것!!!
나는 정말 불같이 일어나는 풋사랑이 조금은 두렵다.
빨리 달아오르는 쇠가 빨리 식어지는 것처럼
그런 경우를 너무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가끔 졸업한 우리 애들을 만난다.
사랑없이 우정으로 다져온 그들을 만날 때 나는 기쁘다.
남녀 사이에 분명히 우정은 있다.

사랑을 찾아 떠나는 나비가 되어선 곤란하다.
수많은 사람들에 취해보는 것도
20대가 가지고 있는 특권 중에 하나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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