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이 그놈
장성우는 침대에 누운 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지금쯤 그가 보낸 8×10 크기의 사진을 받아 든 오승구의 아내는 독이 오를 대로 올라 입가에 게거품을 물고, ‘사진 속의 이 년이 누구냐?’고 남편을 프라이팬 위에 올려놓은 멸치 볶듯이 달달 볶아대며 다그치고 있을 터였다.
아내에게 혼쭐난 오승구는 앞으로 꿈에서조차 이경아를 만나는 일은 두 번 다시 없을 것이다. 남자가 그까짓 바람 한 번 피운 게 무슨 큰 죄가 되냐고 하겠지만 처가집의 덕택으로 지금의 생활을 영위하고 행복을 누리고 있는 그에게는 곧 파멸을 의미하는 거였다. 어떤 남자가 한때의 바람으로 만난 여자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겠는가. 또 어떤 미친년이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빈털터리 유부남을 만나겠는가. 생각만 해도 야구경기를 하다가 만루홈런을 친 것처럼 통쾌한 일이었다.
그러나 장성우의 기대와는 달리 오승구는 프라이팬 위에 올려진 멸치 신세이기는커녕 이경아를 만나기 위해 무교동에 있는 서울호텔 커피숍 안으로 발을 들여놓고 있었다. 대개 그가 먼저 약속장소에 와서 기다리는 편이었는데, 오늘은 그녀가 먼저 와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세요?”
어제와 오늘, 이틀 동안 꼬박 오승구는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려고 애썼지만 그놈의 사진 때문에 머리털 빠지게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도 모르게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그의 표정을 살피면서 이경아가 걱정스런 얼굴로 물었다.
“으응? 사실은…….”
오승구는 무심코 이경아에게 사진 얘기를 꺼내려다 얼른 입을 다물었다. 그녀가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먼저 앞섰기 때문이었다.
“사실은……, 뭔 데요?”
이경아가 오승구의 말꼬리를 붙잡고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냐, 아무것도.”
“정말 아무 일이 없었어요?”
“그래, 아무 일도 없었어.”
오승구에게 좋지 않은 무슨 일이 있었을까봐 걱정하는 이경아를 안심시키기 위해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유비무환이라고, 오승구는 사진이 또 배달될 것을 대비해서 어떠한 우편물이든 무조건 경비원이 접수했다가 자신에게 직접 전달하도록 단단히 조치를 해놓은 상태였지만 불안한 마음은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서울호텔 스카이라운지에서 저녁식사를 마친 오승구와 이경아는 자연스럽게 예약해놓은 객실에 들어가 침대를 옆에 두고 마주보고 섰다.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욕정으로 꿈틀거렸다.
사진문제로 인해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던 불안감이 호텔 객실로 들어와 이경아와 마주 서는 순간 사막에서 막 돌아와 샤워를 한 것처럼 씻은 듯이 사라져버리면서 비로소 오승구는 마음이 안정되는 것 같았다.
오승구는 자신의 처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사랑한다고 말하기에는 양심의 가책을 느꼈지만, 이경아에 대한 사랑은 진심이었다. 그녀를 만나는 건 그녀와 섹스를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보고 싶어도 보고 싶은 그런 여자였다. 그러나 그녀를 만나면 먼저 먹이를 앞에 둔 굶주린 짐승처럼 그는 그녀의 몸을 가지고 싶은 충동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항상 그랬듯이 오늘도 예외가 아니었다.
한바탕을 격정을 치른 후 오승구는 천장을 바라보며 누워 있다가 몸을 일으켜 담배를 찾아 입에 물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이경아는 침대에 누운 채 잠깐동안 쳐다보다가 눈을 감았다. 시도 때도 없이 걸려 오는 괴상한 전화에 대해서 그에게 말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고 있었던 것이다.
오승구가 필터까지 타 내려온 담뱃불을 재떨이 비벼 끄는 것을 보고 이경아는 몸을 일으켜 벌거벗은 몸을 새우처럼 구부리고 앉아 젖가슴까지 시트로 감쌌다. 아무래도 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였다. 그녀는 자신 스스로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나 그만한 능력이 없었다.
“사실은 오늘 의논드릴 게 있어요.”
목소리에 힘이 하나도 실려 있지 않은 이경아의 표정에서 오승구는 그녀가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 같은 피아노 줄처럼 잔뜩 긴장하고 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뭔데?”
오승구는 혹시 그놈이 이경아에게도 사진이 보내진 것이 아닐까 하는, 불길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요즘 저한테 괴상한 전화가 계속 걸려와요.”
“괴상한 전화?”
사진은 아니지만 괴상한 전화가 걸려 온다는 이경아의 말에 오승구는 순간적으로 머리를 둔기로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외로운 남자라고 하면서……”
자신을 괴롭히고 있는 괴상한 전화에 대해 말하는 이경아의 목소리는 촛불처럼 가늘게 떨었다.
말을 마친 이경아는 다시 침대에 누워 천장을 잠깐 바라보다 두 눈을 감았다. 오승구에게 말을 하고 나면 속이 시원할 것 같았는데 납덩어리처럼 무거운 마음은 쉽게 가벼워지지 않았다.
이경아의 말을 듣고서 숨이 턱 막혀 온 오승구는 뭐라 대답하지 못하고 얼굴을 찌푸렸다. 분명 그놈의 짓이 틀림없었다. 자신에게 사진을 보낸 놈과 그녀에게 전화를 해대는 놈은 그놈이 그놈인 것이다.
오승구는 끓어오르는 분노로 입안이 바싹 마르는 것 같아 냉장고 안에서 생수병을 꺼내 유리잔에 가득 따라 단숨에 벌컥벌컥 들이켰다. 이경아 앞에서 애써 태연한 척하려고 했지만 컵을 든 그의 손이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는 그런 자신의 모습을 그녀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써야만 했다.
오승구는 두 개비의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그리고 한 개비를 이경아의 입에 물렸다.
“전화질 해대는 그놈 말이야.”
오승구는 한숨을 내쉬듯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고 나서 말했다.
“예?”
“그놈이 전화질 해대는 거 말고 다른 이상한 짓은 하지 않았어?”
“지금까지는 그냥 전화만 하고 있어요.”
이경아가 천장을 향해 길게 담배연기를 내뿜고 나서 입을 열었다. 그놈이 그녀에게 전화질 해대는 거말고는 다른 이상한 짓을 하지 않았다니, 오승구는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놈이 언제 마각을 드러낼지 모를 일이므로 방심은 금물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죠?”
이경아가 두려움이 깃든 시선으로 오승구를 쳐다보며 물었다.
“걱정하지마. 아무 일도 없을 거야.”
오승구는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아 손으로 이경아의 얼굴에 흘러내린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겨주며 위로했지만, 스스로 생각해도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 말을 지껄였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 오승구는 속으로 그놈을 곱씹어 보았다. 그놈이 얼마나 우리의 일을 알고 있을까? 그놈이 뒤를 미행하면서 사진 촬영까지 한 것으로 보아, 또 그녀의 레코드 가게로 전화를 하는 것으로 보아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동시에 전화기를 쳐다본 두 사람은 팽팽한 긴장감에 휩싸였다. 전화벨 소리만 들어도 고통과 두려움을 느끼고 있던 이경아의 표정은 흙으로 만든 인형처럼 굳어졌다.
“전화할 사람이 없는데……”
혼란을 느낀 오승구는 몸을 엉거주춤 일으키며 전화기 쪽으로 다가갔다. 그러나 선뜻 수화기를 들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혹시 그놈이라면……? 지금까지 한 짓을 보면 그놈이 아니라고 부정할 수 없었다. 오승구는 소리나지 않게 심호흡을 한 뒤 아이가 칭얼대듯 전화벨이 열 번쯤 울어대서야 조심스럽게 수화기를 들어 천천히 귀에 가져다 댔다.
“여보세요?”
냉정을 되찾은 오승구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여보세요?”
그러나 오승구의 예감은 빗나갔고, 상대방은 여자였는데 귀에 익은 목소리는 아니었다.
“…….”
오승구는 갑자기 말문이 막힌 듯 아무 말 하지 못하고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내의 목소리와는 상판 다르지만, 혹시 아내가 다른 여자를 시켜서? 그럴 리가 없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보지만 불길한 예감을 쉽게 떨쳐버릴 수는 없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처음엔 몰랐는데, ‘여보세요?’를 되풀이 한 여자의 목소리는 막 사춘기를 벗어난 여자처럼 어리게 느껴졌다.
“누굴 찾으시죠?”
아내와는 상관없는 전화일 거라고 확신한 오승구의 말투는 마치 사무실 일로 전화 받는 사람처럼 금방 바뀌어 있었다.
“홍성표 씨?”
“누구라고요?”
“홍성표 씨 아니에요?”
“아닌데요.”
“그럼, 거기가 천오백삼 호실 아니에요?”
“예. 잘못 찾으신 것 같아요.”
“아, 죄송합니다.”
미안해하는 여자의 목소리와 함께 수화기를 내려놓는 딸깍 소리가 들려왔다. 잘못 걸려온 전화였다. 오승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수화기를 내려놓고 이경아 옆으로 다가갔다.
“무슨 전화예요?”
계속 불안해하는 이경아의 목소리엔 약간의 떨림이 묻어 있었다.
“잘못 걸려온 거야.”
오승구는 양팔로 이경아를 포옹하며 말했다. 그는 그놈을 잡기만 하면 아주 요절을 낼 생각이었다. 그놈은 정말 밟아 죽여도 시원찮은 놈이었다.
오승구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침대에서 일어나 팬티를 들고 뒤집어졌는지 확인한 후 구멍에 번갈아 가며 한 발씩 집어넣었다. 어제 일본에서 돌아온 그의 아내는 지금 늦는다고 전화조차 하지 않은 그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옷을 다 입은 오승구는 침대에 걸터앉아 이경아를 끌어당겨 두 팔로 감싸안으며 얼굴을 그녀의 얼굴에 대고 비벼댔다. 그녀를 품안에 안고 깊은 잠을 자고 싶었던 그는 이렇게 그냥 그녀와 헤어지고 싶지 않았지만 내일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오승구는 호텔문을 나서면서 엉뚱하게도 집에서 졸린 눈을 깜박이며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아내에게 늦은 귀가에 대해서 둘러댈 핑계거리를 궁리하고 있었다.
이경아는 처음엔 아침까지 그냥 있을 생각으로 8시에 벨이 울리도록 핸드폰 기능을 조작해놓았으나 레코드 가게문을 열지 않고 늦잠을 자고 싶은 마음에 오승구보다 한 시간 가량 늦은 자정이 다 되어서 서울호텔을 나왔다.
자정이 되었음에도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지고, 불을 환히 밝힌 상가가 많았지만 거리는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은 혹독한 추위 탓인지 사람을 구경할 수 없을 정도로 한산했다. 그래서 그런지 평상시에 쉽게 잡히던 빈 택시가 보이지 않아 이경아는 몸을 웅크리고 발을 동동 굴렀다.
그렇게 한동안 서서 추위에 떨며 택시를 기다리던 이경아는 이상한 느낌에 주위를 조심스럽게 살폈다. 아무래도 누군가가 숨어서 자신을 뚫어지게 주시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외로운 남자’라고 전화를 해대는 그 남자가. 그녀는 온몸에 오싹 소름이 돋았다.
아니다 다를까. 저만큼 떨어진 곳에서 웬 남자가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며 이경아를 향해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드디어 자신의 뒤를 밟으며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던 그 ‘외로운 남자’가 차츰차츰 어둠으로부터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사람 살려! 이경아는 그 남자로부터 멀리 도망가기 위해 소리치며 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비수처럼 가슴속에 날카롭게 꽂힌 공포감에 그녀의 목소리는 안으로 기어 들어갔고, 그녀의 발은 땅에 얼어붙은 듯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이제 남자와의 거리가 20미터도 채 남지 않았지만 그녀는 꼼짝 못하고 있었다.
아찔한 현기증에 얼굴이 백짓장처럼 하얗게 변한 이경아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지탱하기 위해 가로수에 몸을 기대었다. 그때 다행하게도 빈 택시가 그녀 앞에 와서 멈췄고, 그녀는 가까스로 몸을 움직여 택시 뒷좌석에 올라탔다.
“어디로 모실까요?”
택시 기사가 택시를 출발시키면서 이경아에게 물었다.
“…….”
“아가씨, 어디로 모실까요?”
아직도 공포에 질려있는 이경아가 대답을 못하고 있자 택시 기사가 룸미러로 그녀를 쳐다보며 짜증이 난 듯한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역삼동이요.”
이경아는 짧게 대답하고 나서 고개를 돌려 자신이 서 있던 곳을 쳐다보았다. 그녀의 마음은 자신에게 다가오던 그 남자에게 온통 집중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남자의 모습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사람의 흔적이 전혀 없는 텅 빈 거리만이 추위에 떨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