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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홍 Story +5

수레국화 |2007.03.21 14:01
조회 774 |추천 0

일요일이라 늦잠을 즐기던 민경은 울리는 핸드폰 소리에 잠이 깨었다.

“여보세요”

“나 차비없어. 우리집까지 와서 같이 학교가.”

어떤 일로 마음에 변화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다홍이 먼저 전화해 준건 반가운 일이다.

“맞다. 너 지갑 내 가방에 있던데. 씻고 갈테니까 1시간만 기다려.”

버스를 타고 가면서 민경은 다홍의 지갑을 열어보았다. 입학할 때 부모님한테 선물받은 것이라는데 3년째 쓰고 있는 빨간 지갑은 테두리가 낡아 있었다. 현금카드 한 장, 운전면허증, 현금 3만원. 통신사 멤버쉽카드 한 장, 단촐하기 그지 없는 지갑이다. 그 또래 여자애들이 테이크아웃 커피 쿠폰이나 화장품샾 멤버쉽카드를 몇장씩 넣어가지고 다니는 것에 비하면 남자 지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단조로왔다. 그렇게 검소하고 단순하게 사는 다홍이기 때문에  민경이 둘도 없는 친구로 지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갑을 닫으려다가 민경은 면허증 뒤에 쪽지 한 장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사부님, 도서관에서 잠 좀 그만 자시오. 나 먼저 간다. -은수]

별 것도 아닌 쪽지를 다홍은 지갑 한 켠에 넣어두고 있었다. 민경은 마음이 짠해짐을 느꼈다. 무뚝뚝하고 매사에 무관심하기만 한 줄 알았던 친구의 가슴에도 봄바람이 불어오고 있나보다.

다홍은 집에서 라면을 끓이다가 문을 열어 주었다.

“라면 먹고 가자. 아침도 못 먹었어.”

“김치는?”

“냉장고에. 계란도 넣어줄까?”

부모님이 대구로 가시고 다홍 혼자 살다보니 밥해 먹은게 언제인지도 모른다.

“다른 반찬은 없어?”

“있어. 너 꺼내먹고 싶으면 꺼내먹어.”

다홍은 맛있게 라면을 먹고 나서 이를 닦고 세수를 했다.

“너도 지대로 화장 좀 해봐. 이제 우리 나이는 화장을 해야 예의가 바른 나이라구.”

“그래? 그럼 오늘 특별 서비스로 함 해볼까?”

민경은 오늘도 다홍이 무뚝뚝으로 일관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이 기분이 풀렸는지 화장품을 꺼내들고 왔다.

“내가 해줄까?”

민경은 화장품 통에서 연두색 아이셰도를 꺼내며 물었다.

“이쁘게 해줘.”

다홍은 바탕화장을 끝내고 민경 앞에 앉아서 눈을 감았다.

“넌 쌍꺼풀이 크니까 이런 색을 해도 전혀 거부감이 없잖아. 난 쌍꺼풀 수술해버릴까? 준용선배가 내 눈 작다고 그러던데.”

“별로 작지는 않은데.. 수술하면 아플텐데.”

“많이 아프지는 않나봐. 넌 어디 하고 싶은데 없어?”

“무서워. 이대로 살다가 죽을거야.”

의외로 겁이 많은 다홍은 초등학교때부터 주사라면 아주 기겁을 하고 도망다녀서 화장실에 숨어있다가 잡혀나온 적도 여러번 되었다. 그러니 성형수술은 꿈도 못꾸는 이야기다.

“지현이 언니는 쌍꺼풀이랑 코 하고 나서 스튜어디스 시험 붙었잖아. 그러고 보면 여자들 외모가 중요하긴 중요한가봐.”

“넌 키 크잖아. 난 키 큰게 젤 부러운데. 175만 되면 좋겠다.”

“이다홍, 너도 그렇게 작은 키 아니거든.. 162가 뭐가 작아서 불만이냐?”

“175만되면 공부 안하고 모델해서 돈 끌어모을텐데... 아깝다.”

“168인 나도 키 커서 민망스럽다는 얘기 가끔 듣는데 175되면 어른들한테는 마이너스야. 여자 키 너무 크면 싱겁다고.”

“그래도 짠 것 보다는 싱거운게 좋다고. 키 큰 건 분명 축복받은거야. 오늘 그럼 구두나 신고 키높이해볼까나  크크크”

다홍은 눈화장을 하다 말고 신발장에 가서 구두를 꺼내왔다. 6센티는 되어보이는 뾰족구두다.

“뭐야 이다홍, 오늘 필 받은겨? 이리와봐. 일단 눈화장은 끝내자. 마스카라는 없어?”

“거기 어디 있어. 찾아봐.”

“너 화장을 안해서 그렇지 있을건 다 있구나.”

“주말에 가이드 알바할 때 화장했던 거야. 그때는 화장안하면 욕먹어서.”

다홍은 이목구비가 큼직하니 예뻐서 화장을 하니 금방 몰라지게 예뻐졌다.

“야야 빨강다홍, 그런 화장하고 그 옷은 좀 아니다. 잠깐만..”

민경은 그렇게 다홍이 기분이 풀렸으면 하고 다홍의 옷장에서 유난히 봄기운이 도는 꽃무늬 스커트와 비즈가 있는 조끼를 꺼내왔다.

“넘 야시시아냐? 이건 봄나들이용 같은데.”

“이 정도는 보통이야. 학교가봐. 요즘 애들 다 이러고 다녀. 너만 청바지에 재미없는 니트 하나 걸치고 다니는거지. 이쁜 옷 샀으면 좀 입어주는 센스도 있어라.”

“이렇게 입고 공부가 되려나 몰겄다. 내가 바람이 났나 왜 이러나 몰라.”

“봄처녀 가슴에 봄바람이 부는게지. 가자. 지금 가도 점심시간이겠다.”


도서관에 들어서니 빈자리가 별로 없어서 헤매다 보니 은수가 보였다. 가방으로 자리를 하나 더 잡아두고 있었지만 다홍은 시끄러운 입구 쪽에 있는 빈자리로 갔다. 한창 공부하다가 잠시 화장실 다녀온 사이 자리에는 포스트잇이 붙은 음료수병이 놓여있었다.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 보기 좋습니다. 음료수 드시고 힘내세요^^]

주위를 둘러봤지만 다들 고개를 숙이고 공부하느라 누군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음료수를 한 쪽에 밀어두고 공부하는데 민경이 책을 빌리러 왔다가 음료수를 발견했다.

“이거 뭐야? 크크크 너 오늘 화장하고 차려입은 효과 좀 있는거 아냐?”

“아니거든. 책이나 가져가슈. 누가 잘못 놓아 둔 것이겠지.”

“이다홍도 도서관에서 음료수를 받는 날이 왔구나. 파이팅이다.”

민경이 놀리고 가자 준용은 어느새 소문을 들었는지 다홍에게 왔다. 커피 한잔 하자는 신호에 다홍도 일어나서 준용을 따라 나갔다.

“어제는 왜 안왔어?”

“그냥요.”

“웬 놈이 책상에 음료수 두고 갔다며?”

“벌써 선배한테까지 소문났어요?”

“오늘 뭔 일있냐? 그 복장으로 도서관에 나타나고. 너도 꾸며놓고 보니 예쁜걸. 이 여사, 드디어 바람나셨나?”

“아니거든요. 커피 다 마셨음 들어가서 공부나 하세요.”

휴지통에 빈 컵을 버리고 들어가려는데 보라와 은수가 열람실에서 나오고 있었다.

“어머, 준용선배님, 우리도 커피 한잔 뽑아주세요~”

다홍은 슬슬 보라의 그 애교섞인 목소리가 듣기 짜증나려고 했다.

“다홍언니도 안녕하세요? 언니 오늘 약속있나봐요? 안입던 치마를 다 입으시고.”

“선배랑 커피 마시고 들어와. 나 먼저 들어감다.”

다홍은 애써 은수의 시선을 피하며 열람실로 들어가 버렸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살랑거리는 치마를 입고 나타나서는 입을 삐죽거리며 들어가는 다홍을 보자 은수는 또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선배님, 커피요.”

보라가 커피를 들고 은수의 팔을 잡자 은수는 다홍의 뒷모습에서 시선을 뗄 수 있었다.

“다홍언니, 연애해요? 갑자기 안입던 치마를 입고, 화장도 하고.”

“낸들 알겄냐? 저 속을 누가 알리요. 은수 형 오늘 저녁에 술 한잔 어때요?”

“좋지. 그럼 도서관에서 7시쯤 나갈까? 민경이랑 다홍이한테도 말해서 같이 가지뭐.”

“선배님, 저는요?”

보라는 갖은 애교를 부리며 은수의 팔에 매달렸다. 아직 스물 밖에 안된 아이가 어디서 그런 애교를 배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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