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올라와 서울생활을 한지 벌써 4년차가 되어갑니다.
길이라도 잃을까, 지하철 노선을 달달 외우고 일부러
길을 익히기 위해 버스만 골라탔던 탓에 이젠 서울 친구들 보다
더욱 지리에 익숙한 서울 사람이 되어만 갑니다.
나는 시골 아이 입니다.
그때는 도시에 대한 동경이 얼마나 컸던지, 어린마음에
지방 국립대도 포기한채 서울이 좋아 전문대를 무작정 택해버린
그때는 철이없던 20살 이였네요.
그때를 후회하는건 아니지만, 서울생활에 재밌고 익숙해지는 이시점 시골에서의
동심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볕좋은 오후입니다.
슈퍼는 커녕 구멍가게도 없던 우리집은 윗집인 진성이네 집까지도
10분도 넘게 걸어야 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이 학교를 다니기 위해서는 몸짓만한
가방을 둘러매고 꼬박 1시간 30분을 걸어야 학교에 도착했지요.
울퉁불퉁 비포장 도로를 걸어, 발에 채이는 돌을 걸러내며 도착하면
제일 먼져 도착한 아이가 난로를 켜기 위해, 나무를 받으러 갑니다.
아 ! 아침에 세수하기는 정말 싫었습니다.
가마솥에서 뜨거운 물을 쓰긴 했지만, 재래식 부엌의 찬바람은 너무도 싫었거든요
고양이 세수만 겨우하고, 지하수 물 한컵을 들이킵니다.
일주일에 한번 아라리 차*가 들어옵니다. 없는 물건이 없었지요. 길건너편에서
요란한 노래를 울리며 등장하면 옆집, 뒷집, 앞집 모두 나와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사갔습니다. 계란은 꼭 사갔던거 같네요.
*아라리차) 산골마을에 트럭에 온갖 잡동사니를 싣고와서 판매하는 차. 움직이는 구멍가게
특별한 놀거리는 없습니다. 추수철이 되면 볏단을 모아놓은 키보다는 열배는 높은곳에
올라가 친구들과 누워서 뒹굴며 놉니다. 장티푸스 주사는 필수였지요.
장마가 끝나고 산이 깍여져 있으면 정복 놀이를 한다면서 남자아이 여자아이 할것없이
나무뿌리를 밧줄삼아 올라갑니다. 겁도 없이 말입니다.
또 여름이면 집앞 개울로 여자아인데도 팬티만 입고 물에 들어갑니다.
물놀이를 한단 표현도 어색하고 멱을 감는다고 하죠? 가끔 목욕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겨울엔 비료푸대에 지푸라기 몇개 넣어서 산으로 올라갑니다.
브레이크가 어디있습니까? 스톱없이 내려 달리죠. 어찌나 잘나가던지..
봄은 유난히 싫습니다. 역한 계분 냄새는 몇년을 맡아도 익숙해 질 수 없었거든요.
어릴적 제일 먹고 싶었던 과일은 바나나 였습니다.
다른 내 또래의 아이들은 바나나를 배불리 먹었다는걸 며칠 전에야 알았습니다.
그때 내 친구들과 우리집에서 바나나는 아픈날에만 먹을 수 있는 특별한 과일이였거든요.
생각해보니 바나나는 아라리 차에도 없었네요.
저를 이상하게 봅니다. 그시절 바나나도 못먹었냐구, 요즘 세상이 좋긴 좋은가 봅니다.
인터넷으로 클릭 한번만 하면 바나나, 딸기 제철도 아닌 과일들이 집앞까지 배달되니까요.
이건 지금 우리 시골에도 해당되는 사항이네요.
주산학원은 다니기 싫어도 다닐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갈때 또 한시간 반이나 걸어갈 자신은 없었거든요.
학원차를 타고 집에 가려면 고학년 언니 오빠들을 기다려야 합니다.
100원짜리 메가톤바를 물고 연쇄점앞 의자에 앉아 턱을 괴고 앉아 있습니다.
이웃마을에 살던 친구들은 동네 이름을 갖고 놀립니다. 우리 동네 이름은 석은새 였거든요.
썩은 감자냄새가 난다고 그렇게 놀림을 받고도, 난 아이들 팔목 한번 깨물어 줄 수 없었습니다.
우리동네 애들보다 옆동네 애들이 훨씬 많았거든요.
내가 다닐땐 1학급이였던 국민학교 아니 초등학교는 이젠,
전 학년이 4학급을 가진 초등학교가 되었고, 학교 건물은 그때보다 두배로 높아지고
몇개의 건물이 더 생겼습니다.
관광지 개발로 인해 땅값이 어찌나 올랐는지 여기저기 비싼 자동차도 눈에 뜁니다.
이젠 주산학원을 일부로 다닐 필요도 없어 보입니다. 학교가 끝나면 교문앞에서 기다리는
부모님이 여럿 보이거든요.
더이상 아이들의 신발은 흙발이 아닙니다. 아스팔트 길이 얼마나 가지런한지...
우리 엄마아빠들이 우리를 보면서, 엄마 어릴적은...이라고 말씀해 주시는데,
고작 23살인 나는 너무 재밌게 살았나 봅니다.
벌써부터 내 2세에게 엄마 어렸을땐 말야... 라고 해줄말이 너무나 많습니다.
부모님 손잡고 놀이공원에서 사진을 찍을 수는 없었지만,
학교 끝나고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고, 모래성을 쌓으며 놀 수는 없었지만
아파트란 곳에서 뜨거운 물을 콸콸 쓰며 살 수는 없었지만,
그땐 갖고 싶었던 미미 인형, 바비 인형이 뭔지도 모르고 살았지만
지금 생각하니 너무 재밌고 소중한 추억들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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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된거 오늘 아침에도 알았는데 ^^ 같은 추억을 공유한 사람들의 리플 읽는 재미에
하루종일 마음이 따뜻했습니다.
오늘 회사에서 괜히 안좋은 일도 터지고, 심적으로 많이 힘든데
향수란 이름으로, 비슷한 동심이란 것들만으로도 날 따뜻해야 만들어 주는걸 보니
어린시절 그때가 좋긴 좋은가 봅니다.
간간히 같은 강원돈데 넌 대체 어디서 살았냐고 하시는 분들,
평창 살았습니다. 또 평창도 평창 나름이겠네요. 두메산골.. 와는 보셨나 모르겠네요
그쪽들은..원주, 춘천, 강릉을 비롯한 도시에 사시는 분들은..그냥 모른척 해주셔도 될걸..
꼭 그렇게 트집을 잡으셨네요..
처음엔 한개 두개려니 했는데, 마치 자기네 동네와 제가 살았던 곳을 같은곳으로 취급한단 식으로
매도하고 몹시 불쾌해 하니 지역 이름 삭제하고 제 동네만 적겠습니다.
이런 추억은 다른 어느지역 시골마을을 가도 있을테니까요,
그런데도 글의 요지를 제대로 이해못하는 사람들 때문에 몹시 언짢은데..
퇴근시간이 한시간이나 훌쩍 넘었는데..
모두들 편안한 밤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