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돌아보지 않았고 나는 멈추지 않았습니다.(Pat Matheny - Our Spanish love song)
그래서 나는 그렇게 당연하게, 익숙하지 않은 방황을 하여야 했기에, 무척 고독했습니다. 이리저리 술과 낭비와 탕진의 시간을 보낸 것이 당신 때문이라고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나 자신을 모조리 소진 시켜 버리고 싶었고, 그때 숨을 쉰다는 것이 얼마나 구차한 일인지를 매초마다 되새기고 있었습니다.
도시는 늘 무채색이었고, 당신은 늘 전화기로 달려가려는 미련한 손가락을 말려야 되는 곤란한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그렇게 당신을 한시도 놓지 못하고 있었고, 당신이 준 약속을 ‘어쩌면 그럴 수가...’ 라고하면서, 매일 되새기고 매일 일용할 주문으로 외고 있었습니다. 나는 아마도 심장을 떼어 냉동한 설죽은 시체일지도 몰랐고, 내게 남은 무엇을 떼어내건 절대로 상관하지 않을,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과 체념, 그리고 우울한 chet baker의 시간들이었습니다.
“당신 굉장히 특이한 사람이네요.”
그렇게 잠시 스쳐 만난 그녀는 당신보다 더욱 날렵하고, 당신보다 더욱 예쁠 수도 있고, 무엇보다 당신보다 많이 단순한 사람이라는 점으로, ‘나는 쉬어갈까? 여기서 쉬어볼까?’ 그렇게 생각하였습니다. 나는 이미 도둑을 맞은 기억이 있는, 그래서 아직 상처가 선연한 내 마음을 안전하게 넣어둘 금고가 필요하였지만, 이미 당신이 없는 이 행성의 어느 곳에도 그런 유토피아는 없을 것으로, 지레 확신하고 있었기에 희망이라는 단어는 늘 유리병속의 사탕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아니면 내가 유리병속의 박제가 되어 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지요.
“그래 7시에 만나지... XIAN은 고추장 새우볶음과 오리 볶음밥이 좋아... 그래 마음에 들거야... 100일 벌써 그렇게 되었나? 하하하 그래~ 시간은 정말...”
들뜬 그녀의 음성을 툭!하고 플립을 닫으며 잘라버린 나는 “제기랄...” 이라고 한번 신음처럼 내뱉고 말았습니다. 해서 다시 들른 온통 검은 색의 계단이 긴 그곳의 육중한 철문 앞에서 괜스레 “하나 둘 셋!”을 외치던 당신과 나를 생각하며, 음식보다는 버드 병에 더 손이 많이 갔네요... 레스토랑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Pat Matheny의 Our Spanish love song은 마음을 더욱 깊숙한 곳으로 가라앉게 만들었습니다.
“무슨일 있으세요?”
“아니. 그런 일은 없어, 그냥 조금 피곤할 뿐이야...”
“힘들었나 봐요... 그래 난 힘들어, 나는 지구에 매달려 있기에 지쳐가고 있어. 초등학교 때부터 오래 달리기, 오래 매달리기, 뭐든지 오래 오래... 그래서 이 세상에 오래 붙어있기를 시도하였지만 그런 것들이 어떤 일에는, 또 사람에 대하여서는 일순간에 모래성이 되어 버리곤 하지, 나는 집착하지 말았어야 했어, 너무 많은 배덕을 겪었지. 그래서 나는 피곤해...”
“그게 무슨...”
“아! 미안 혼잣말이었어... 음식이 맘에 들어?”
“네 너무 맛있어요.”
그렇게 접시에 조금 더 덜어가던 그녀에게 난 미안 했습니다. 때로 어쩌면 필사적인 이 친구에게 난 줄 수 없는, 아니 있지도 않은 마음을 침묵으로 약속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약속을 하여 주지 않으므로 해서, 점점 더 필사적인 이 친구에게 나는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일까? 어쨌든 100일 이었으므로, 나는 더 이상 미안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즐거워 보여야 했고, 조금 덜 피곤하여야 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육중한 크롬의 문을 닫고 다시 긴 계단을 내려갔습니다.
“여기요.” 발렛 맨에게 키를 맡기고 차를 기다렸습니다. 내 곁의 그녀는 상당히 즐거웠고 들떠 있었습니다. Once in a Blue Moon의 가운데 소파자리에 예약을 마친 나는, ‘그래 오늘 하루 더 소진하고 부서진다고 뭐가 달라질까?’ 그렇게 마음을 먹고 네온으로 파랗게 빛나는 담배를 꺼냈습니다. 조금 고개를 숙여 오렌지색 불꽃을 올리고, 오른손을 주머니에 넣으며, 왼손으로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 깊숙이 끼운 채, ‘후우~’ 하고 하얀 연기를 검은 벨벳의 감촉으로 어둡고 부드러운 대기에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도록, 가벼운 한숨을 섞어 뿜었습니다.
그리고 10여 미터 앞에서 걸어오고 있는 당신을 보았습니다. 이미 나를 먼저 보았는지, 얼음처럼 딱딱해진 그리고 조금 곤란해진 얼굴로 한때 나를 그렇게도 좋아해 주었던, 당신의 언니와 손을 꼬옥 잡은 채 부자연스러운 걸음걸이로 스르르 내 앞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주변은 정지 하였고 당신의 머리카락은 뒤가 조금 바람에 끌린 빠르게 캔버스 위를 스치는 크로키의 상태였습니다.
당신은 푸르스름하게 다가왔다가 온통 주변을 진공으로 만들며 그렇게 내 앞을 스쳐 지났습니다. 짧은 순간 머리가 멍할 정도로 많은 생각이 지나 갔습니다. 나는 터널에 진입하기 전, 기인 기적소리를 울리는 기차의 시끄러움으로 고요한 청담동의 골목길에 서 있었고, 당신은 이미 가라앉은 어둠으로 멀어졌습니다. 아마도 파랗게 인광만이 번뜩이는 나의 눈동자였을 것이고, 나는 주머니에 넣은 오른손과 이미 길게 늘어진 흰 재가 달린 담배의 끝이 덜덜 떨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세상은 흐릿했고 한바퀴를 돌았고, 그리고 이리저리 일그러지며 어지러웠습니다. 그렇게 당신은 흔들리는 네온 속으로 조용히 빨려들 듯 사라졌습니다.
이윽고 차가 도착 했습니다. 주차하는 사람에게서 키를 받아든 나는 내 곁의 그녀에게 문을 열어주는 것조차 잊고 키를 꽂았습니다. 소실점의 끝에 걸려 있는 그 언덕 아래 검은 골목길로 차를 몰아갔습니다.
“당신의 그녀로군요.”
그렇게 옆자리의 그녀는 내게 물었지만 나는 아무대답도 할 수 없었습니다. 굉장히 답답하고 긴, 5분이 지났고 당신은 마침내 헤드라이트의 끝에 실루엣으로 하얗게 빛나기 시작하였습니다. 당신은 돌아보지 않았고 나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곁을 스치며 자석에 끌리는 쇳가루같이 머리털들이 모두 곤두서는 것을 느꼈고, 그 찰라가 얼마나 느릿하게 정지되어 지나갔는지요.
Jaguar XJ6의 손바닥만한 사이드 미러 속으로 당신은 흔들리는 불빛이 되어 사라졌고, 곤란하게 얼어버린 당신의 눈과 잠깐 마주쳤습니다. 그저 그뿐이었습니다. 나는 당신을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그리고 예전처럼
“어! 이렇게 마주치다니 어서 타...”
라고 말하지도 못하였습니다.
“그래 그러면 우리 여기까지 하지 뭐, 나도 이젠 지겨워, 만일 다시는 떠나지 않겠다는 그 거짓말이 정말이 되면, 그때 다시와. 너무 오래는 말구 한 백년정도는 기다려 주지...”
그렇게 자존심이 시킨 대로 나는 말한 사실이 분명히 인정되므로, 그저 부들거리며 떨리는 두 손과 어깨가 빨리 진정 되었으면... 하고 그 한 가지 생각에만 굉장한 인내로 집중하였을 뿐입니다.
그날 나는 나대로의 이유로, 내 곁의 그녀는 그녀대로의 이유로, 남이 아닌 우리의 이상한 100일주를, 결국 현관의 전등불이 굴러 나오도록 마셨고, 그날 밤엔 지독한 꿈을 꾼 것으로 기억됩니다. 나는 아무리 당신을 향하여 뛰어도 제자리였고, 당신은
“우리 이제 그만 해요. 여기서 멈춰요.”
그렇게 수백 번도 더 메아리치게 외쳤고, 나는
“그래 그러지 뭐...” 라고 입술도 벙긋거리지 않게 조용히 대답을 했는데도 귀가 멍멍해 지게 울리는 그런 꿈이었습니다.
이젠 난폭한 점령군이 되어 의식의 깊숙한 곳까지, 가슴의 밑바닥까지 마구 유린하는 그런 지독한 사랑은 그만 하구 싶습니다. 그런 불운이 다시는 내게 상처를 남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동안 너무 습기에 찬, 물 아래의 창백한 나날들이었으므로, 어느 일요일의 아침, 내게서 더 이상 하바나의 처칠 사이즈 시거의 향이 나지 않더라도, 헤네시 파라디의 둥근 잔이 만들어낸 그윽한 향이 다시는 나지 않더라도, 느직이 일어난 아침으로 눈곱이 자유 낙하를 하고, 아래턱이 빠질 정도의 하품으로 사방 10m를 오염시킬 수 있는 강력한 입 냄새가 나더라도, 그렇게 쭈그리고 앉아서 명랑한 발톱을 마구 튀겨 내더라도, 잔잔히 웃으며 말없이 바닥을 쓸어 집어줄, 100% cotton이라는 라벨이 붙은 헐렁한 티-셔츠 속의 그 뽀송한 편안함과 땅위에 자리 잡은 안정을 느끼고 싶습니다.
그렇게 바라고 또 바라지만 아직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답니다. 그런 것도 당신의 최종 결재가 없으면 불가능 한 것인가요? 그런가요? 그럼 아마 영원히 불가능 한 것인가요? 그리 길지 않은 동안 당신을 사랑한 대가로는 너무 치열하고 지독하게도 심한 일이군요.
세 그루의 소나무 아래에서...
** 내일의 [오늘의 talk]을 기대해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