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죽음1
입술을 꽉 다물고 두 눈을 꼭 감고 있는 내게 지완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키스 할 때는 어금니를 깨무는 게 아니라고 말해잖아…….”
정신이 번쩍 든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느낌에 몽롱하니 정신 못 차리던 나에게 지완의 말 한마디가 번쩍 정신 들게 했다. 서로의 몸이 물에 젖어 물기를 뚝뚝 흘리고 있고 입에선 한기 때문인지 아님 입맞춤 때문인지 허연 입김이 나오고 있는데 감았던 눈을 뜨고 지완을 노려봤다. 그리고 쏘아 붙여 준다.
“그리고… 키스는 아무하고나 하는 게 아니란 것도 알려줬지!”
힘껏 지완을 밀쳤다. 지완이 주춤하며 뒤로 밀렸고 그 바람에 허리에 걸려있던 시트가 풀려 지며 엉덩이를 간신히 가라고 있다. 지완의 손이 다급하게 시트를 붙잡는다. 그 틈에 욕실에서 빠져 나왔다.
굳이 첫 사랑을 생각하며 대가나 그에 맞는 계산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럴 거였으면 연우와 지완의 대화를 엿들었을 당시에 해줬을 것이고 그때 바로 복수나 보복 뭐 그따위 것을 했을 것이다. 아마도 난 그냥 그렇게 첫사랑을 덮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옅은 수채 물감에 또 다른 색을 입혀 덧칠 할 때처럼 아마도 난 처음 그림이 망쳐질까 겁이 났는지도 모른다.
어릴 적 마법의 성에서 지완을 만났을 때부터 고등학교까지 내가 느낀 것 만큼만을 사랑이라 믿고 그만큼만 마음에 담아 두고 싶었다. 선명하거나 화사하지 않더라도 밋밋하고 잔잔한 수채 물감 같은 사랑으로 남기고 싶었다.
그러기에 몇 년이 지나 눈이 다쳐 이곳에 온 지완을 보고 아는 척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나에게 지완이 그때를 끄집어내고 있다. 그것에 화가나 지완이 그 당시 했던 말을 똑같이 되풀이 해 주고 있다.
물기를 흘리며 갈아입을 옷을 들고 1층 욕실로 들어갔다. 한참을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다 대충 물기를 닦고 옷을 갈아입고 나오니 지완이 거실에 나와 있다. 아마도 욕실에서 나는 샤워 소리에 눈치 채고 나온 것 같다. 거실 소파도 아닌 내 방문 앞에 기대 팔짱낀 채 나를 응시하고 있다.
아무래도 욕실 일을 따지고 들판 같은데 나도 이번엔 봐주지 않겠다. 어릴 때나 또 고등학교 때나 말없이 상대해주니까 내가 아직도 우스워 보는 것 같다. 하지만나도 예전 같지 않다. 싫은 것 좋은 것 분명하게 말해줄 수 있다.
“비켜 줘.”
“이거 불공평하지 않냐? 내 홀딱 벗은 몸을 보여주면서도 보여주는 줄도 몰랐는데 난 네가 홀딱 벗고 내 앞에 있어도 모를 테니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불공평 한 거 같아.”
잔뜩 긴장하며 깐에는 무게감 팍팍 실어 말했는데 예상과 다른 말에 풍선 바람빠지듯 긴장감이 새어 나간다. 너무나 지완이 같은 억지에 바로 대꾸조차 나오지 않고 있다. 겨우 그딴 얘기하고자 남의 방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나 싶은 것이 참 할 일 없다 싶기까지 하다.
"그래서, 억울해서 문 앞에 버티고 있는 거야?
“아니. 나가자.”
“???”
갑자기 나가자니? 말하다 말고 나가자 하니 알 수 없는 말에 눈이 치켜떠진다.
“어디를?”
“산책.”
야밤에 무슨 산책 인가 싶은데 덥석 손을 잡아끈다. 지완에게서 시원한 향이 난다. 금방 샤워를 끝내서 인지 은은한 그 향이 자꾸만 지완을 돌아보게 했다.
조금 전에 서로 키스를 나눴고 또 서로 어색한 상황이었는데 지완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고 있다. 항상 그랬다. 동굴 안에서 서로 부둥켜안고 지완의 울음까지도 보았지만 학교 와서는 전혀 그런 적 없던 것처럼 행동했고 첫 키스 후에도 전혀 달라진 게 없었다.
손을 잡고 싶지 않은데 문제는 오지랖 넓은 날 어쩌겠는가. 덥석 잡은 지완의 손을 매몰차게 뿌리쳤으면서 옆에서 절뚝거리며 걷던 지완이 연신 돌부리에 걸리고 몇 번을 넘어질 뻔하는 모습에 손을 내밀어야 했다. 내미는 손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지완에 소매 끝은 잡았다.
“왜? 넘어질 까봐?”
“…….”
“그럼 손을 잡아야지 소매를 당기냐?”
“와 별 많다!”
속을 다 읽고 있는 것 같은 지완의 말에 어떠한 대답도 못하고 하늘을 보며 엉뚱한 말을 하고 있다. 좀 오버하긴 했지만 하늘을 수놓은 보석들에 저절로 탄성을 나왔다. 서울에서 생활하며 저렇듯 촘촘히 박혀 있는 별을 본지가 언제인지 기억이 없다.
“어떤데?”
“어?”
“어떤지 설명해봐.”
옆에서 있던 지완이 하늘을 올려보며 설명해달란다. 저걸 어떻게 설명하라는 건지? 예쁜건 보며 느끼는 것이지 설명하는 것이 아닌데 설명을 하란다.
“저걸 어떻게 설명해?”
“너 작가잖아. 작가라며? 그럼 저 정도는 말로써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냐?”
모든 걸 글로써 말로써 표현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아니 그건 내가 부족한 작가라서가 아니라 가끔은 긴 글보다 침묵으로 느낌으로 더 많은걸 알 때가 있다. 드라마에서도 굳이 남녀 주인공이 멋들어진 대사를 하지 않더라도 눈빛만으로 시청자는 그들이 뭘 말하려는지 알 때가 있다. 구테여 대사를 읊지 않아도 가끔은 빈 공백이 더 많은 것을 알려 줄때가 있다.
너무 똑똑한 남녀 주인공이나 대사처리는 시청자를 인상 찌푸리게 할 때도 있다. 지금 내가 저 별에 대해 말로써 설명한다면 그 순간 하늘에 박힌 보석은 그저 흔한 별이 되는 것이다.
“나… 서브 작가야. 보조 작가란 말이야.”
“그래서 설명 못해?”
하늘을 올려 보던 지완이 나를 돌아본다. 깊숙한 눈매며 보고 있는 눈빛까지 금방이라도 그 안으로 빨려 들어 갈 것 같다. 보이지 않는다는 것에 다행이란 생각까지 들었다. 봄바람에 머리를 흩날리며 보지 못하는 하늘을 궁금해 하고 있다.
“보조 작가는 뭘 하냐?”
별로 궁금해 하지도 않으며 묻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오히려 하늘에 별을 설명하는 것 보다는 나을 것 같아 난 듣지도 않는 지완에게 열심히 설명을 해 댄다.
“음… 작가가 필요로 하는 자료를 구해다주고 만약에 주인공이 변호사라면 거기에 맞는 언어나 뭐 그에 필요한 자료를 수집해 주는 거야. 말이 그렇지 사실은 심부름꾼에 가까워. 한 작가 밑에 팀을 이뤄 여러 명의 보조 작가가 있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지…….”
“그러니까 설명 해봐. 하늘에 대해…….”
그러니까 설명할 수 없다고 여직 늘어놨는데 또 다시 설명을 하라니. 푸른 바다에 뿌려 놓은 보석 같은 저 하늘을 어떻게 설명하라는 건지, 아니 설명을 한다손 치더라도 말로써 지금 내가 느끼는 느낌이 전해질수 없음을 아는데 막무가내로 설명하란다.
“…….”
“너 못하지? 작가라면서 못 하겠지? 설명 못하지?”
“말하면 그 느낌이 전달되지 못할 것 같아서 그래…….”
지완의 놀림에 변명처럼 말을 흐리고 있다.
“하늘을 본지가 오래 되서… 아니 이 곳 하늘이 궁금해서 그래. 너무 오래 되서 다 잊었어. 기억하고 싶은데 기억이 안나. 울보 네가 설명해봐…….”
나를 향해 웃는다. 분명 미소를 짓고 있는데 어딘지 모르게 아픔이 느껴진다. 어쩌다 눈이 저 지경이 됐는지. 그 남아 곧 낫는다니 다행이다. 마지못해 긴 한숨을 쉬곤 설명을 하기 위해 지완의 손바닥을 들었다.
“이 손을 하늘이라고 치고… 여기에…….”
“야! 요딴만한 하늘이 어디 있어?”
“그러니까 예를 들어 이 손바닥을 하늘이라 치자고 했잖아. 너 자꾸 그러면 그냥 가버린다. 그러게 야 밤에 무슨 산책이야 산책은. 산책은 좋아하는 사람이랑 해야 하는 건데…….”
지완의 딴지에 말꼬리를 흐리며 투덜거림으로 이어졌다.
“그래, 그래. 알았어. 자…….”
커다란 손바닥을 내 앞으로 내민다.
“음… 이게 하늘이라면 여기… 여기 왼쪽에…….”
지완의 손에 손가락으로 원을 그리며 설명을 시작했다.
“왼쪽으로 수많은 별들이 촘촘히 박혀 있어. 그래서 그 빛이 꼭 보석처럼 빛나. 하늘에 누군가가 보석을 박아 놓은 것 같아. 특히 여기…이쪽이 아름다워…….”
손바닥 한쪽을 누르며 설명을 하고 있다. 지완은 보이지도 않으면서 제 손바닥을 내려 보며 상상을 하듯 눈을 감는다. 긴 속 눈썹이 내려온다. 확실히 잘생긴 놈이다. 잡지사에 일하면서 몇몇 연예인을 만난 적이 있다. 뭐 꽤 잘나가는 잡지사도 아니었기에 그리 많은 연예인을 만난 건 아니지만 그 어느 누구도 지완이 보다 멋지다 느낀 적은 없다. 넋 놓고 훔쳐보고 있는데 지완이 제 손을 그대로 감싸 쥐고 나에게 내민다.
“???”
무슨 행동인지 몰라 지완만 바라본다. 그 주먹을 살며시 펴 보이며
“너 가져. 이 하늘 너 다 가져. 그리고…민승아…….”
또 나를 향해 웃음진다. 지랄 맞은 윤지완인데 요즘 이상하다. 눈이 보이지 않아 그런가? 난 왜 이렇게 떨릴까? 승아라 불려지는 말에 떨리는 걸까? 아님 하늘을 다 가지라는 말에 떨리는 걸까?
“가끔은 설명 하고 싶어도 설명이 안 될 때가 있어. 그때… 설명하면 그 설명으로 모든 것이 엉망이 될 것 같아 말 못 할 때도 있어. 가끔은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절실할 때가 있어. 지나고 나면 바보 같았던 모습에 화가 나고 놓친 것에 안타까운데…….”
손을 잡는다. 바보 같은 심장은 또 멋대로 펌프질을 한다. 다 지우고 덮어 버린 첫 사랑이 또 다시 숨을 쉰다.
“그런데… 그런데 울보야 가끔은 설명조차 힘들 때가 있어. 말하고 싶지만 너무 바보 같았던 자신의 모습에 그 사람이 더 달아날까 겁나서 말을 못 할 수도 있어…….”
무슨 말을 할까? 이럴 땐 무슨 말을 해줘야 하는 건가? 쿨 한척 웃어줘야 하는 건가? 아님 다 잊은 척, 훌훌 떨쳐 버린 척 해야 하는 건가? 분명 그때 일을 두고 하는 말인데 난 아무 말도 못하고 있다. 말 없는 나를 일으켜 세운다.
“그만 가자. 그런데 넌… 여자 손이 왜 이렇게 뻣뻣하냐?”
손을 잡고 일으키던 지완이 묻는다. 가끔 손에 마비가 오고 뻣뻣해진다. 아마도 직업병이 생긴 것 같다. 너무 오래 키보드를 쳐대서 이놈에 손이 기어이 고장이 난 것 같다. 아가씨 손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뻣뻣한 것이 사실이다. 순간 창피해지며 손을 잡아 빼는데 지완이 움켜쥐며 놓지 않는다.
“왜 창피하냐?”
아무래도 독심술을 배웠나보다. 보지도 못하면서도 사람의 마음을 꾀뚫어 보고 있다.
“너무 오래 돼서 기억이 안나.”
“??”
“한 번 봤으면 좋겠어…….”
“뭘? 하늘?”
“아니 너.”
“!!!”
어색한 분위기에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 지완의 대답에 그대로 얼어 버린다. 또 다시 바보 같은 내 심장을 덜컹 내려앉는다.
“맨 날 울던 것 외에 왜 기억이 없지? 한번 봤으면 좋겠어. 민 승아가 어떻게 변했는지 한번만 봤으면…….”
“…곧, 곧 낫는 다잖아…….”
제대로 말도 못하고 떨고 있다. 그에 비해 지완은 금방 다른 말을 한다. 큰소리로 의사를 욕하며 투덜대고 있다.
“내일 의사 놈 오면 당장에 멱살부터 잡아야겠어. 도대체 눈이 호전이 없어. 치료는 제대로 하는 건지 돌팔이 놈이 아니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고!!”
그리곤 별장을 향해 걸어간다. 그렇게 맞잡고 들어와 각자의 방을 향해 들어갔다. 잠자리에 들어서도 지완의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아무래도 예상보다 일찍 떠나야겠다. 지완의 말 한마디에 두근대는 이놈에 심장도 문제가 있고 괜히 지완과 얽혀 또 다시 상처 받기 전에 부모님께 가야겠다.
다음 날 아침은 이상하게 조용했다. 매일 들려오던 그 큰 음악도 들리지 않았고 윤지완의 괴성도 들리지 않았다. 안채를 찾은 아줌마도 웬일이냐는 표정이다. 아주머니와 난 서로 마주보며 어리둥절한 표정만 지어댔다.
결국 지완이 조용했던 이유는 자신의 눈 때문이었는지 담당 의사가 도착하자 요목 조목 따지며 왜 호전이 없는지 물어 댔다. 한참 지완에게 진땀을 빼던 의사는 혹시 이상이 있을 수도 있으니 다시 한 번 검진을 하자며 함께 병원으로 가자고 한다.
그 말에 지완이 정말 의사 멱살을 잡았고 만약에 눈에 이상이 있다면 가만 두지 않겠다고 생난리를 피워 댔다. 의사는 연신 설명하며 안절부절 못했고 결국 의사를 쫓아 아저씨와 지완이 함께 병원을 갔고 오후가 한참 지나서야 돌아왔다.
“의사가 뭐래요? 왜 눈이 안 보인데요?”
아저씨를 보자마자 아주머니가 묻는다.
“뭐 검사를 많이 하더만… 오늘 찍은 결과도 봐야 하고 암튼 며칠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고.”
“또?!!”
나도 아주머니와 같은 표정을 하고 있다. 정말 뭐가 이상이 있는 건지 나아도 벌써 나았을 눈이 왜 호전이 없는지 알 수가 없다. 주위 사람들이 이렇게 답답한데 정작 본인이야 더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쩜 지완의 저 생난리도 이해가 간다.
“어이구~ 그러게 평소에 좀 마음을 느긋하게 갖고 사람이 좀 차분해야지. 그러니까 나을 병도 안 낫지. 안 그러니 승아야?”
“그래도 좀 답답하겠어요.”
“그러게 그렇긴 하겠다. 지완이 말대로 정말 돌팔이 의사인가? 하지만 이완이가 데려왔으면 어느정도 실력이 있는 의사일텐데... 승아야 이거 한번 마셔봐. 작년에 매실이 어찌나 좋던지…….”
지완을 얘기하며 초록 빛 유리잔을 내미신다. 빛깔이 참 곱다.
“어, 어…….”
받아 드는데 그만 놓치고 말았다. 다행이 유리잔이 깨지진 않았지만 초록빛이 모두 바닥에 쏟아졌다. 이 놈에 뻣뻣한 손이 또 문제다. 굽어져야 하는데 손가락이 굽어지지 않아 유리잔을 놓친 것이다.
“아니, 젊은 애가 왜 그래?”
“그러게요. 요즘 가끔 손이 뻣뻣한게 종종 마비가 와서…운동 부족인가 봐요.”
서둘러 바닥을 닦으며 대수롭지 않게 말을 하지만 걱정이 된다. 운동부족이라 하기엔 몸이 이상한 건 사실이다. 잡지사에서도 종종 이런 일이 있었고 안 좋은 몸을 이유로 그만 두긴 했지만 요즘 더럭 겁이 나는 것도 사실이다. 미국으로 들어가기 전에 진찰을 받아 보는 게 좋겠다.
“매일 글만 쓰지 말고 운동 좀 하고 그래. 벌써부터 몸이 아프면 내 나이 되면 어쩌려고?”
말씀은 그렇게 하시면서도 걱정하시는 눈치다.
“그죠? 지금 당장이라도 운동 해야겠어요. 나갔다 올게요.”
또 다시 초록빛 음료를 건네시는데 무뎌지는 손의 느낌에 운동을 핑계 삼아 서둘러 나왔다. 만약 또 다시 잔을 놓치면 아줌마가 괜한 걱정을 하실 것 같아 그냥 나와 버렸다.
가끔은 손뿐만 아니라 다리의 근육까지 뻣뻣해 질 때가 있다. 처음엔 무신경하게 흘렸데 운동 부족이나 직업병으로 치부하기엔 그 증상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좀 전처럼 손이 오므려 들지 않아 컵을 잡기가 힘들거나 아님 어제처럼 손을 맞잡아 지지 않을 때가 있다. 또 어떤 날은 다리에 마비가 와 걸을 수가 없을 때도 있다. 물론 그런 날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갑자기 찾아오는 증상에 나도 당황스러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이번 주쯤으로 한번 서울에 다녀와야겠다. 팔을 주무르며 걷고 있는데 뚝방 근처를 지완이 보인다. 혼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보이지도 않는 눈으로 더듬더듬 걷고 있는 게 보였다. 아마도 뚝방에 걸터앉으려는 것 같은데 저 정도 보폭으로 걷는다면 위험하다.
조금씩 앞으로 걸어가는 지완을 보며 내 쉼 호흡도 거칠어 졌다. 조금만 앞으로 걸어가면 위험한데… 무슨 생각을 하는지 멈추려 하지도 않고 성큼성큼 걷고 있다.
“그만 멈춰!”
행동보다 말이 먼저 나왔다. 뛰다시피 걸으면서도 지완을 향해 소리치고 있다. 하지만 미처 다가가기도 전에 지완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잠깐 사이에 감쪽같이, 정말 마술처럼 사라졌다.
“지완아!! 윤지완!!”
보이지 않는 지완을 보며 허겁지겁 뛰어 갔다. 이 기분 나쁜 예감이 맞지 않길 간절히 바라며 뚝방 끝을 향해 뛰었다. 그리고 헉헉거리는 숨을 진정시키기도 전에 호수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지완의 모습이 보인다.
시간이 정지 된 것 같다. 보면서도 보이는 것을 믿지 못하고 얼어버린 듯 그대로 멈춰서 있다. 소리 지르려 해도 말이 나오지 않는다. 주먹을 꼭쥔 채 벌벌 떨고만 있다. 그때 꼬르륵 거리며 지완이 수면위로 떠올랐다 사라진다. 그 모습에 저도 모르게 지완의 이름이 불려진다.
“윤지완!! 지완아!!!”
또 다시 지완의 얼굴이 떠올랐다 사라진다.
“어떡해 어쩌면 좋아!!! 사람 살려!!! 사람 살려!!! 아줌마! 아저씨!! 지완이… 아줌마!!!”
정신없이 소리쳤다. 들리는 사람이라곤 아주머니와 아저씨뿐일 텐데 그 두 분이 소리를 듣기 만무한데도 단리 도움을 청할 사람이 없다.
우왕좌왕 정신이 없다. 주위를 둘러보며 지완에게 도움의 줄 만한 것을 살펴보지만 아무것도 없다. 계속해서 지완의 얼굴이 수면으로 나왔다 다시 물속으로 잠기길 반복한다.
“사람 살려!! 도와줘요!! 아줌마!! 아줌마!!!”
내가 소리치고 있는 동안에도 지완이 몇 번 더 수면 위를 나왔다 들어 갔다를 반복하더니 그 후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생각 할 겨를이 없었다. 무조건 뛰어 들었다. 내가 보는 앞에서 꼬르륵 거리며 물을 삼키고 있는 지완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아무 생각 없이 무조건 뛰어들었다. 그리고 그때서 알았다. 내가 수영을 못한다는 것을!!!
물속으로 잠기며 허우적거리는 중에 앞쪽으로 지완이 보인다.
“지완… 어푸… 지완아…….”
꼬르… 꼬르륵…….
점점 몸이 잠긴다.
이렇게 빠져 죽는 구나…….
지완인 어쩌나…….
엄마도 못 봤는데…….
아직도 못 한 게 많은데…….
정말 진한 사랑도 못해 봤는데…….
죽기엔 이른 나인데…….
꼬르륵…….
물 밑으로 가라앉는 내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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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자고 이리 늦는지 죄송합니다.^^
히~ 죄송한 마음에 그저 웃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