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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열려오는 또 다른 나날 7

푸른바다 |2003.05.05 15:46
조회 598 |추천 0

                                   새롭게 열려오는 또 다른 나날  7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3)

  

    새벽길을 걷는다. 먼동 터기전에 아등바등 길을 당긴다. 산을 오르기 위해서다.
비탈길에 깔린 솔가리와 상수리 낙엽이 발목을 잡는다. 낙엽이 너무 많다. 가파른
비탈길에 실바람 일렁이는 소리가 가쁜 숨을 시원히 적셔 준다. 적막한 숲 속의 오
솔길은 희미하게 사라졌던 삶의 길이 되어 현실의 고리로 연결시킨다.

  

   저명한 산악인에게 누군가가 물었단다.
   "당신이 산을 오를 때 가장 무서운 것이 무엇이냐?"
   "나는 산 속에서 만나는 사람이 제일 무섭다!"
  
   사람이 사람을 무서워해야만 하는 불신의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내 앞
에 인기척이 난다. 부부인 듯한 두 사람이 산을 오르고 있다. 무섭기는커녕 동료를
만난 듯 정겹기만 하다. 저들도 아침 가벼운 산행을 즐기는 사람들이다.
   내게서 산은 언제나 정다움으로 다가온다. 감정이 나무등걸 같이 말라 있어도,
세상사에 섭섭함을 느껴도 언제나 산을 오르면 정겹고 푸근하기만 하다. 아침 산행
의 청신한 기쁨을 알고나서는 틈이 나면 부지런을 떤다.

  

   산마루 암자에는  벌써 선주자가 두세 명 와있었다. 가벼운 아침에 짧은 인사를
한다.  어느 쪽도 상대방이 누구인지 모른다. 그러나 산을 오른 사람들은 서로가 통
한다.  산과 어둠과 정겨운 눈빛이 서로를 이어준다.
   가볍게 흘린 땀을 훔쳐내며 조롱박 바가지로 맑고 시원한 약수를 가득 받아서는
단숨에 마신다.  창자에 끼어 있는 번뇌의 찌꺼기가 후련히 씻겨 내려가는 것 같다. 
또 한 잔을 받아 마신다. 아침 공복에 마시는 청량한 감로수다. 멀리 도로를 달리고
있는 불빛이 세상이 살아있음을 알려 줄 뿐 인간사를 등진 산 속이다.
  

   암자 뜨락 늘씬한 오동잎새에 여명의 청색 빛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아침 산
행에서 맞이하는 그 푸른빛의 동 터기 전 여명의 순간은 내 혼탁한 영혼을 말끔히
씻어주는 청량제가 되고 그 푸른 여명은 내 가슴속 깊숙이 충전되어 간다.

   맑은 기운을 채우고 가벼운 마음으로 산을 내려온다.  정신은  말끔히 씻긴 것
같은데 마음엔 앙금이 가득 가라앉아 있는 것 같다.  웬일인지 개운하게 씻기지 않
는다. 무엇 때문일까? 속이 후련치가 않다.

  

   가을도 막바지다. 풀숲에서 들려 오는 벌레 소리가 더욱 쓸쓸하게 들리고 갈대
바람 타는 소리도 처량하기만 하다. 우리 집 두엄 위에 누렇게 잘 자란 호박덩이가
"이제 가을은 갔다!" 하는 선언을 하는 듯 덩실덩실 누워 있다. 잘 익은 호박을 보
며 집을 들어섰다. 까치가 반겨 맞아준다.

  

   아내가 사색이 되어 벌벌 떨며 누워 있었다. 가슴이 철렁하여 "왜 그러냐?" 물어
보니 빨리 마당 변소로 가보라 했다. 뱀이 있단다. 
   뱀? 하기야 지금 살찌운 뱀들이 동면을 위해 산을 오르고 있는 계절이다. 우리
집 마당에 가끔 보이는 꽃뱀이 두 마리 있다. 엉성한 펜스사이로 산의 뱀들이 들어
온 것이다. 한번은 누런, 정말로 누렇게 살찐 독사 한 마리가 나의 인기척에 놀래
산으로 도망가는 것을 본 뒤로는 잡초 우거진 것을 뿌리 채 뽑아 내기를 여러 번
했다. 풀이 무성하니 뱀이 내려 온 것이다. 그 이후 나는 마당을 다닐 땐 대나무 작
대기로 풀을 툭툭 치며 조심하였다. 아내에게도 뱀을 조심하라고 충분한 주의를 주
었다. 
  

   그런데 뱀이 변소에 있다니?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변소 문을 여니 세상에 죽은 꽃뱀 한 마리가 떡 하니 누워 있는 게 아닌가.
   죽은 뱀이 화장실로 들어왔다?
   세상 생기고 죽은 뱀이 혼자 변소로 들어왔다는 소리는 들어 본 적이 없다. 기네스
북에도 없는 사실이다. 
  

   또 누가 이런 짓을 했는가?
   우리 집과 무슨 철천지원수를 졌는가? 
   아내는 가랑잎이 변소로 날려 들어와 쌓인 것을 청소하기 위해 변소 문을 열었다가 뱀을 발견하고 그 자리에서 기어들어가듯이 방으로 들어와 얼이나가 누워 있었다.
지난 이야기이지만 그 놀랜 모습 참 볼 만 했다.
  

   우리는 삼 세 번이라는 말을 잘 한다. 벌써 세 번째의 해코지다. 이제는 내 인내
의 한계가 왔나 보다. 그냥 지나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정신이 혼미하다. 잔인한 생
각이 머리를 어지럽힌다.

  

   나는 항상 절반쯤은 밑져 주며 살아가는 마음이다. 그러나 알다가도 모를 것이
사람이며, 더욱 모를 것은 자기가 아닐까? 나는 자신에 대한 새로운 인식으로 괴롭
고 쓸쓸해 졌다. 이때껏 관용이라고 굳게 믿어 온 '내 식'을 새로 검토하게 되었다.
지금껏 느껴 보지 못한 또 다른 내가 느껴지는 듯하다. 너그러움이라고 믿어 온 '절
반쯤은 져 주며 살기'라는 내 식이 혹시 나의 우매성은 아닌가 라고 생각하게 되었
다.
  

   즉 절반쯤은 밑져 주며 살아감으로써, 내게 피해 입힌 그들을 경멸할 근거를 얻
고, 그럼으로써 우월의식을 가질 수 있고, 그들이 오래오래 후회와 수치의 통증을
살아 있게 하고, 그래서 그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웃을 수 있으리라 하는 생각이
오늘이사 졸렬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원수 갚는 일은 내게 맡기라'는 신의 말씀을
이용하여 신의 더 큰 처벌을 은근히 기대하고 있던 내 믿음이었다.
   절반쯤 밑져 주었다는 우월감으로 마음 편해질 수 있고, 그래서 편안하게 내 일
에 몰두할 수 있다는 것으로 편해지려 한 내 생각이 바로 졸렬한 생각이 아닌가.
언제나 내 식으로 침묵한다는 것은 과연 순수한 것만은 아니다.
    
    나는 또 친구를 불렀다. 친구는 묵묵히 소주만 마셨다. 그날 동네 잔치 났다.
난동의 욕지꺼리 말 잔치, 나는 마을 이장과 마을 경로당에서 놀고 계시는 어른들
에게 점잖게 그들에게 저간 사정을 이야기하며 경고했다. 감시 카메라 설치 할 것
이니 우리 집 출입하시다 사진에 찍히시는 분 없으시도록, 마을사람들에게 소문 내
어 주시도록.....

  

   그날 나는 슬픈 노래를 또 불렀지만 노래가 나오지 않았다. 내 넋은 줄 끊어진
영혼이 되어 고향마을의 뒷산을 훨훨 날아가고 있었고 나는 무당이 되어 무형의 칼
춤을 추고 있었다. 인정이 봄철같이 따스하기로 기대했던 고향은 황량한 겨울이었
다.

 

                                                                   푸 른 바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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