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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때돈을 벌게된 이야기(2)

세신 |2003.05.10 03:12
조회 8,374 |추천 0

  어제는 서론이 길어져 본론으로 들어가지 못 했다.
사실 막노동하던때 이야기는 길게 하고 싶지 않았는데 본이 아니게 길어졌다.
그때 맺힌게 많아서 그런거 같아 이해해 주기 바란다.

 

  하여간 97년 7월말경 7개월정도의 막노동을 그만두게 되었다. 물론 직장이 생겨서
그런 것은 아니다. 노가다가 본시 공사판의 일이라 장마가 되면 데마찌가 심해 일하는날
보다는 일을 못하고 공치는 날이 훨신 많은 것은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나 역시도 그러한
영향으로 근래 한달간 집에 50만원도 못 갔다주고 보니 또 전처럼 생활고에 시달릴 수 밖에
없었다. 그나마 몇 달 벌었던거 이전에 생활하며 진 빚과 전세 대출금 연체된것들을 갚는다고 모두 쓰고 여유돈이라고는 전혀 없었던터라. 밤에 잠을 잘 수 없을 만큼 괴로웠다. 그일들을 하면서도 꾸준히 이력서를 보내 봤지만 IMF는 그렇게 벌써 우리에게 찾아 오고 있었다.

   어느날인가 간만에 일이 있어 일갔다가 저녁늦게 돌아왔을때다. 아내가 아버님이 오셨다가 가셨다고 한다. 쌀 20kg 한 포와 이제 겨우 4살인 큰 놈이 맛들이 쵸코파이 한 통을 사다주시고, 들어오시지도 않고 그냥 가셨다고 한다. 또 가슴이 찢어진다. 당신은 아파트 경비를 하고 계신다. 여러 형제들 중에서 유독 나에게 기대가 크셨던 당신, 두형님을 동생 대학까지 보내야한다고 중학교만 나오게 하셨던 당신, 그런데 나는 그 아버지의 기대와 희망과 꿈마져도 나는 내가 가졌던 꿈과 희망과 함께 모두 버리고 말았다.  그런 당신께 지난 어버이날에 나자신이 너무 비참하고 힘들다고 삭발하고 면도까지한 모습으로 찾아뵜으니.......

   생각 끝에 원양어선을 타기로 결심을 했다. 일단 2000만원정도 목돈을 만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빚이라도 갚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였다. 당장 교차로와 버룩시장을 가져와서 펼쳐 보기 시작을 했다. 선원모집 광고가 의외로 많았다. 일단 한꺼번에 선금으로 주는 곳을 찾아 몇군데 전화를 했다. 그런데 그일도 늘 내가 당해던 일들 처럼 만만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이유는 모르겠지만 원양어선은 여름에 출발하지 않는다고 했고, 국내선만 승선할 수 있는데 동해안의 오징어배나 고등어배, 서해안의 새우잡이배들 밖에는 없고 더욱이 광고와는 달리 일시불도 아니고 보수도 광고와는 많이 달랐다.  결국 나는 원양어선을 탈려고 했던일도 그만 두어야 했다.

 

   7월말 장마끝이라 며칠동안 비가 계속내려 일을 못한 탓에 며칠전부터 아내가 시작한 전자부품에 코일감는 부업을 도울 수 밖에 없었다. 한봉지에 1000개가 들어있고 개당 3원씩 하루 종일 잘만 하면 3봉지까지는 할 수 있다며, 아내는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나는 아내가 종일 두봉지이상하는걸 보지 못했다.

  설마 이 부업으로 때돈을 벌었는냐고 생각하는 분이 있을지 모르지만 물론 아니다. 그 일을 하게 된 것은 참으로 우연찮게 내가 가져온 교차로의 광고를 보면서의 일이다.

 

  - 남탕관리인 구함. 살림가능 월 80이상 보장  전화 000-0000  -

 

  광고를 보는 순간 옆에 있던 아내를 살림이 가능하다는 것은 방을 준다는 것이니 그러면 전세를 돌려받아 대출금 갚으면 생활이 될것 같아 설득하기 시작했다. 참고로 내 아내는 지금껏 결혼 10년이 넘어가지만 내가 할려는일에 반대하지 않았고 아무리 어려워도 불평보다는 늘 나에게 용기를 주었다.

 

   그날 밤 우리는 간만에 새로운 생활과 고정적인 수입이 생기는데 행복해 했다. 아마 겪어본 분들은 이해가 가시리라 믿는다. 직장과 그리고 고정적인 수입이 얼마나 가정에 중요한것인지 아무리 월급이 적어도 고정적으로 들어오면 생활 할 수 가 있다. 그리고 빚도 갚을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다음날 아침일찍 전화를 하고 이력서를 가지고 어느 조그만 무역회사엘 갔다. 목욕탕주인은 무역회사를 경영하며 목욕탕을 3개나 가진 알부자 였던거이다.

 

   면담에서 사장님은 목욕탕의 위치와 4층 건물이란것과 옥탑방을 살림집으로 쓰라는 것 내가 해야 할 일은 남탕관리와 보일러실 관리를 하는 것등 그리고 남탕관리는 음료판매와 구두닦이 그리고 때밀이....때밀이라고?

  나는 때밀이라는 말에 화들짝 놀랐다. 사실 난 목욕탕에 가서 내몸도 밀기 귀찮아 대충 밀고 나오곤 했는데 나보고 때밀이도 해야 된다는 말에 망설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나에게 구미를 당기게 하는 사실에 귀가 번뜩 뜨일 수밖에 없었다. 내용은 이러했다.  원래 목욕탕들에는 적든지 많든지 때밀이을 할려면 권리금과 보증금을 내야한다는 것이다. 호텔이나 좀 큰 목욕탕들은 수천을 호가한다는 말은 나도 들은적이 있는 터였다. 그런데 사장님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목욕탕들은 처음부터 그것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동네 변두리 목욕탕이 때문에 나라시(또 일본말이네, -때밀이를 그렇게 불른다-)손님이 많지가 않아 그것만 가지고는 먹고 살기힘들기 때문에 음료수 판매와 구두닦이도 같이 하고 수익도 모두 때밀이가 가지고 자신 관여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계절마다 수입의 편차가 크기 때문에 보일러실 관리와 목욕탕 전반적인 관리를 함께 하여 월급으로 80만을 별도로 준다는 것이다. 얼핏 생각해도 괜찮은 장사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그리고 이런말도 덧붙였다.

 

"돈 욕심에 하는 건 좋은데 왠만한 결심 없이는 힘들어 못하니까. 자네 집사람하고 다시 의논해보게, 사실 여러명 이력서를 받아 놓았지만 자네가 학벌도 있고 좀 아까운 사람이라. 원한다면 자네에게 일을 맡기고 싶네"

  이렇게 해서 나는 목욕탕 때밀이가 되었다. 이제부터는 때돈 버는 일만 남았던 것이다. 그래도 그때는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나라경제가 너무 힘들었고 지금도 실업률이 높지만 그때는 더욱 심했다. 그것도 불과 몇 년 사이에 말이다. 하여간 나는 우여곡절 끝에 목욕탕때밀이를 하게 되었고,  면접을 보고 삼일만에 이사를 했다. 물론 살던집은 광고를 내고 말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이 옥탑방이긴 했지만 부엌과 방두개 화장실도 갖추고 있는 살림 살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내가 그 목욕탕에 이사하던날이 7월 26일 이었다. 그런데 선임자 때밀이가 7월30일 까지 밖에 일을 하지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8월1일부터 열흘간 목욕탕은 하계 휴가에 들어가고 말이지. 물론 여름엔 알다시피 목욕탕 손님이 거의 없다. 내가 첫근무하던날도 정확히 새벽부터 저녁까지 16명이 이용했는 것으로 알고 있다.(그때 내 수첩메모에 적혀있다. 난 새직장이라 보일러 돌리는 법, 청소하는법,구두닦는법등이 빽빽하게 적었다.)

  그래서 나는 선임자에게 열심히 배웠다. 메모도 열심히 하고 그렇게 이틀을 보내고 선임자와의 마지막 근무일되었다. 그날도 보일러 돌리는 법과 ( 일반가정용과 달리 스위치 넣는 순서가 있고 하루종일 돌리는 것이 아니라 중간중간 꺼주어야한다 수온에 따라서 아마 구형이라서 그런거 같았다. 그리고 기름를 아끼려면 더욱더 수온에 신경써야한다) 구두닦는 법을 마지막으로 다시 배우고 하는 동안에 오전이 훌쩍 지나갔다. 나는 선임자에게 옥탑 우리집에서 점심을 같이 하자니까 극구 싫다고 하며 중국집에 시켰다.

  나는 아내와 점심을 먹으며, 내일부터는 나혼자 근무하게 되어서 긴장이된다등 한참을 수다를 떨었다. 그런데 나는 아내의 한마디에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받고 말았다.

 

"때미는 것도 기술이 있다는데, 당신 연습은 많이 했어요?"

  그렇다 나는 때밀이 였다. 그런데 난 아직 때미는 것을 안배우것이  아닌가, 그것도 그럴것이 이틀 동안 때밀이를 찾은 손님도 없었으니 말이다.

 

"여탕아줌마가 그러는데 그거 싶게 안된데요. 또 단골손님한테는 간단한 전신마사지 같은것도 서비스로 해준다는데......"

  이런 젠장 아내의 이야기가 채 끝나기전에 점심먹다가 말고 나는 뛰어내려갔다. 저 때밀이(선임자) 오늘까지밖에 근무 안한다고 했는데 그것도 한나절도 채 남지 않았으니, 이 일를 어떻게 한다. 갑자기 머리속이 복잡해 졌다. 현기증도 나는 듯했다. 때밀이가 때미는 법을 배우지 않았다, 아 그놈의 보일러에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 했어, 정작 배울걸 안 배우고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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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여기까지 할께요. 대학때 레포트 쓸 때 말고 이렇게 긴문장를 쓰기는
오랜 만인 것 같네요. 철자도 틀리고 뛰어쓰기도 안되고 엉망입니다.  

  때밀이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너무 지리하게 이야기하게 되어 죄송하네요.
이제 본격적으로 목욕탕에서 남탕과 여탕을 오가며 겪었던 이야기를 할거예요.
읽어주셨어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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