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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 에피소드들

^^ |2007.05.03 18:19
조회 1,649 |추천 0

1.무명시절 연습벌레 축구 '별'됐다

(::프리미어리그 스타로 우뚝 선 박지성::)영국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소속의 국가대표 축구선수 박지성이 책을 냈다. 박지성이 쓴 ‘멈추지 않는 도전’(랜덤하우스중앙)은 고교 시절까지 2류를 면치 못하던 한 축구선수의 화려한 성공 스토리를 담고 있다. K리그는 물론, 대학의 팀들이 모두 외면했던 별 볼 일없 는 축구선수 박지성이 명지대를 거쳐 국가대표에 기용되고, 세계 최고의 리그인 프리미어리거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축구 기술과 체력에 대해서는 인정을 받았으나 작은 체격 때문에 설움을 겪던 그가 다시 일어서 세계 최고의 명문 클럽에서 기라성같은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한 힘은 무엇일까. 이제 2006 독일 월드컵 D―93일, 박지성이 기울인 숨은 노력과 계속했던 도전, 그리고 일반에 알려지지 않았던 에피소드들을 책을 통해 알아본다.

잘 알려진 것처럼 수원공고 졸업을 앞둔 고교 시절까지 박지성은 무명의 2류 선수였다. 초등학교 시절, 이동국 선수에 이어 제5 회 ‘차범근 어린이 축구상’까지 받았지만, 왜소한 체격의 그를 눈여겨 보는 팀은 없었다. K리그 입단을 위해 수원 삼성 2군에 테스트를 받기도 했고, 대학팀에 들어가기 위해 서울의 웬만한 대학과 지방대학과도 접촉했지만 전부 퇴짜를 받았다. 그러다 겨 우 진학한 학교가 명지대. 입학하기로 했던 10명의 신입생 가운 데 1명이 다른 팀으로 가는 바람에 빈자리를 메울 선수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대학에 입학하기로 한 해 겨울, 명지대 축구부에 합류해 울산에서 합숙훈련을 하던 중 박지성에게 행운 이찾아온다. 같은 울산에서 합숙중이던 시드니 올림픽 대표팀과 연습경기 중 허정무 감독의 눈에 든 것이다. 그 뒤 박지성은 시드 니 올림픽 대표, 일본 J리그 교토 퍼플상가 입단, 2002 한일월드컵 대표팀 등을 거치며 유럽으로 진출한다. 무명이었던 그가 불 과 몇 년만에 앞서 이름이 알려진 빼어난 선수를 제치고 한국을 대표하는 축구선수로 자란 이유는 무엇일까.적어도 책에 따르면 가장 큰 동력은 고지식할 정도로 매달린 연습에 있는 것으로 보 인다.

“학창 시절 축구하는 내내 나는 왜소한 체격 때문에 컴플렉스에 시달려야 했다. 체격이 문제가 된다면 기술로 승부하자는 생각 이 내 머릿속에 각인되었는지 한순간도 공과 떨어지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교 때까지 축구공은 내 신체의 일부분이었다. 꼭 운동장이 아니어도 상관없었다. 공 만 있으면 때로는 집주변이, 혹은 내 방이 훈련장이었다. 공 떨어 뜨리지 않고 무릎과 발등으로 트래핑하며 집 주변 돌기, 방안에 서 헤딩으로 공 컨트롤하기 등 훈련 방법은 다양했다. 무엇보다 내가 신경쓴 것은 짧은 거리의 패스, 단거리 달리기, 헤딩, 볼 컨트롤 같은 기본기였다. 어린 시절 코치 선생님에게 들은 바로 는발등 구석구석마다 적어도 3000번씩 공이 닿아야 감각이 생기고 다시 3000번이 닿아야 어느 정도 컨트롤할 수 있게 된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그대로 믿었다.”맨유 입단이 확정된 뒤 메디컬 테스트를 받으며, 심폐기능이 마 라톤 선수와 같다는 평을 들은 그의 지칠줄 모르는 체력은 이런 과정을 통해 길러졌다. 이렇게 훈련에 몰두하던 그는 고교 시절 당시 현역에서 은퇴하지 않았던 이학종 감독과 연습하며, 축구는 몸보다 머리를 많이 써야하는 운동임을 깨닫는다. 동료의 움직 임에 맞춰 패스를 하고, 찔러주는 패스를 미리 예측하고 받아내는 것을 몸에 익힌 것도 이 때부터다. 허정무 감독의 눈에 띄어 시드니 올림픽 대표팀에 발탁되고 히딩크 감독에 의해 월드컵 대표팀을 거쳐 유럽 진출에 성공한 것도 근본적으로는 그의 성실한 연습 덕이었다. 끊임없이 연습하고 준비한 덕분에 기회가 올 때 마다 피하지 않고 부딪칠 수 있었고, 도전할때마다 성공적인 마무리가 가능했던 것이다.

여기에 더해 박지성을 만든 또다른 힘은 감사하는 마음과 자신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를 배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특히 외국선 수 생활 중 약속을 어김없이 지켰다는 그는 책에서 ‘신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화려한 플레이, 수많은 골, 멋진 어시스트 다 좋다. 하지만 선수로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신뢰다. 나와 팬, 나와 동료, 나와 코칭 스태프, 그리고 언젠가 나 스스로 최선을 다했다고 인정할 수 있는 선수가 되는 것이 내 꿈이다,

 

 

2.“여친 사귀면 안돼” 곧이곧대로 믿은 고지식파

어릴 때 박지성은 고지식한 아이였다. 선배들이나 코칭스태프가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그냥 믿어버릴 정도였다. 축구에 좋 다고 하는 것은 무조건 했고, 좋지않다고 하는 것은 무조건 하지 않았다.

축구를 시작한 뒤 들은 “여자 친구 만들면 안 된다”란 말도 그 가 곧이 곧대로 듣고 지킨 말 중 하나다. 고등학생 쯤이면 한번 쯤 가능한 “어른 몰래 술 한잔 마셔보고 담배 한모금 피워보는 것”도 그는 극구 피했다. 같이 하지 않으면 친구들에게 따돌림 을 당할 수도 있다는 것 때문에 등줄기에 땀이 흐를 정도로 고민 스러웠지만, 친구들도 결국 “나는 안 할래” 라고 손사래치는 박 지성을 봐 주었다.

하지만 그도 남자인데 여자에 영 무관심할 수 만은 없을 터. 그 에게도 친구처럼 지내던 여자친구들이 몇명 있었고, 편하게 지내 던 누나들도 있었다. 하지만 해외에서 선수생활을 하느라 이들도 모두 연락이 끊긴 상태. 이래저래 여자 사귀는 재주가 없어, 해 외에서의 독수공방을 서러워하는 그에게 야구 선수 박찬호 선배 의 결혼 성공은 적잖은 희망을 준다. 그가 이상형으로 생각하는 이는 착하고 인내심 많은 여자. 외국에서 선수생활하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지금은 잘해 줄 수 없으므로 이를 잘 참고 견디어줄 여자면 좋겠단다. 물론 선수에서 은퇴하면 더없이 자상하고 속 깊은 남편이 되어주겠다는 약속도 빼놓지 않는다.

어릴 때 키가 작았던 그가 가장 많이 먹은 보양식이 ‘개구리’ 라는 것도 잘 알려지지 않은 일화 중의 하나. 그의 부모는 겨울 잠을 잔 개구리가 체력증진과 키를 자라게 하는데 좋다는 말을 듣고 해마다 개구리를 구해 먹였고, 그는 학창시절 내내 해마다 개구리 보양식을 거른 적이 없었다.

박지성의 지금 당장 목표는 사람들이 짐작하듯,성공한 프리미어 리거가 되고, 독일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우승)을 내는 것이다.

축구 선수로서 정말 닮고 싶은 선수는1994년 미국 월드컵을 우승 으로 이끈 브라질의 둥가라고 한다. 화려한 뵀?플레이어들 사 이에서 크게 주목받지는 않지만, 팀에서 없어서는 안될 전수, 팀 전체 분위기를 좌우하는 분위기와 카리스마를 지닌 둥가의 스타 일이 마음을 사로 잡았다는 것. 그렇게 선수생활을 하다 언젠가 그만두면, 그는 유소년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싶다고 고백한다.

“한국 축구가 진정한 세계 강자가 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 이 유소년 선수 육성이다. … 어린 선수들과 함께 뛰며 성장을 지켜보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 될 것 같다.

 

 

3.에인트호벤서 슬럼프 마음고생 “난 할수 있다” 믿음으로 극복

지독한 연습벌레로 승승장구하기만 하던 박지성에게도 슬럼프는 있었다. 박지성은 가장 힘들었던 때로, 히딩크 감독의 부름을 받 고 네덜란드로 처음 갔을 때를 꼽는다. 당시 그는 전 소속팀이었 던 일본 교토 퍼플상가와 2002 한일 월드컵 대표팀을 오가며 하 루도 쉬지 못한 채 몸을 혹사시켰다. 에너지는 소진되었고 몸에 는 재충전이 필요하다는 빨간불이 들어왔으며 생전 처음으로 무릎 수술을 위해 수술대에 오르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임한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벤에서의 경기는 처음 부터 잘 풀리지 않았다. 빠른 스피드와 몸싸움에 대한 대비는 부 진했고, 패스도 잘 되지 않았다. 동료 선수들은 그에게 패스하기 를 꺼렸고, 패스를 못 받는 그는 하릴없이 그라운드를 뛰어다니 는 꼴이 되었다. 홈 관중들은 그런 그가 경기장에 들어서기만 해 도 야유를 퍼부어댔다. 팬과 동료들이 ‘저 선수는 어떻게 저 실 력으로 여기까지 왔을까’는 수군거림이 들려오는 듯했다. 처음 겪는 지독한 슬럼프였다.

그 때 박지성을 지탱해준 것은 나는 해낼 수 있다는 믿음 하나뿐 이었다. 이런 믿음을 바탕으로 한 마인드 컨트롤과 이미지 훈련.

“나는 내가 가진 능력의 절반도 아직 보여주지 못했다. 만약 내 능력을 모두 보여주고, 그래도 안 되겠다 싶으면 미련없이 돌아 가겠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난 나를 믿는다.” 박지성은 끊 임없이 자신을 다독이며 독려했다. 경기장에 들어설 때마다 ‘지 금 이곳에서 내가 제일이다’라는 주문을 외우곤 했다. 그런 그 를 히딩크 감독도 배려했다. 야유를 퍼부운 홈 구장에서의 경기에 서는 그를 빼고, 원정경기에서 기용하며 자신감을 되찾을 수 있 도록 해 준 것이다. 그는 1년 가량의 시련을 거친 끝에 2004년 1 월 겨울 휴식기를 가진 뒤에야 비로소 몸과 마음의 컨디션을 되 찾는다.

영국 프리미어리그로 이적한 뒤에도 마음 고생은 많았다. 첫 골 이 터져주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터지지도 않는 골을 억지로 만들수도 없는 노릇, 그럴수록 그는 “나는 할 수 있다”는 주문 을 더 자주 외웠다. 그리고 골에 집중했고, 기어이 첫골이 터졌 다. 아무리 힘들어도 자신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그리며, 끊임없 는 노력으로 뒷받침해준 것이 슬럼프를 극복할 수 있게 한 것이다.

 

 

4.마음 따뜻한 ‘그라운드의 야생마’

(::홍명보·이영표 등 대표팀 은인…허정무·히딩크 큰 스승::) 그라운드를 야생마처럼 누비는 박지성, 하지만 그의 눈빛은 선하 고 따뜻하며, 뭔가 좀 어눌한 편이다. 이런 눈빛에 걸맞게 책에 나타난 그의 인성은 따뜻함을 바탕으로 자신을 배척하는 동료와 팬들조차도 친밀감을 느끼게 만드는 ‘조용한 사회성’으로 요약 된다.

초등학교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축구선수로 생활하며 인간관계 의 애증을 맛봤다면 일부 사람들에 대한 싫은 감정도 없지 않으 련만, 책에는 사람에 대한 원망이 보이지 않는다. 유일하게 ‘참 기 힘들었다’고 고백하는 것은 중고교 시절, 밤마다 날아드는 선배들의 이유없는 몽둥이 세례라고 밝힐 뿐이다. 이렇게 두드려 맞으면서도 그는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결코 후배들을 때리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이런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킨다.

원망스런 사람은 없어도 고마운 사람, 정다운 사람은 부지기수다 . 초·중·고·대학 시절의 감독 한사람 한사람이 하나같이 그에 게 둘도 없이 소중한 가르침을 베푼 고마운 은사이고, 이 은사들 이 없었다면 그의 축구 인생은 없었을 것이라고 털어놓는다.

국가대표에 발탁돼 한방을 쓰게 된 최고참 홍명보 선수는 그라운 드에서는 차가운 카리스마를 발휘하는 하늘같은 선배였지만 갓 태극마크를 단 햇병아리인 그에게 다양한 일들을 틈날 때마다 소 상하게 가르쳐준 자상한 형이었다. 김남일,이동국,박진섭,안효연 , 이영표 선수 등도 모두 그에게 고맙기만 한 선배들이다.

김남일, 안효연 선수와는 “은퇴 하기 전에 꼭 한팀에 모여서 뛰 자”는 도원결의를 할 정도. 그를 국가 대표팀에 발탁한 허정무 감독이나 2002 한일 월드컵 대표로 선정한 뒤, 유럽으로 부른 히 딩크 감독이 은인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허 감독 밑에서 그는 이전에는 해보지 못한 여러가지 훈련을 통 해 체력과 민첩성을 한층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었다. 그는 오늘 날 덩치큰 유럽선수들과의 몸싸움에서 쉽게 밀리지 않는 것이나, 신체 밸런스를 유지하며 빠르게 방향전환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허 감독 덕분이라고강조한다.

박지성은 특히 히딩크 감독을 자신의 잠재력을 끌어내 눈에 띄는 기술로 바꾸고, 자신을 큰 무대로 이끈 스승으로 보고 있다. 그 러니 그가 히딩크와의 만남을 ‘인생을 바꿀만한 가장 중대한 만 남’ 으로 평가하는 것은 당연하다.

히딩크는 박지성에게 “그 녀석 정신력 하나는 좋네.”, “지성 이는 충분히 잉글랜드 같은 큰 무대에서 뛸 수 있을 것이라고 생 각한다.”는 등의 말로 그를 고무했다. 2002 월드컵 경기에서 고 정 공격수로 중용하고 다독였고, 네덜란드에서 슬럼프에 빠져 퇴 출을 걱정할 지경이 되었을 때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배려로 다시 일어나는데 도움을 주었다.

프리미어리그 진출 뒤 만난 루드 반 니스텔루이를 비롯, 퍼거슨 감독, 웨인 루니, 스콜스, 페르디난드 등도 박지성에게는 고맙기 만 한 사람들이다. PSV 에인트호벤 출신이기도 한 반 니스텔루이 는 의식적으로 박지성을 배려했고, 루니는 박지성의 어시스트로 골을 넣으면서 더욱 가까워졌다.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비하 발언을 한 주인공 스콜스 선수도 박지성에게는 골을 넣을 때 마다 함께 기뻐하는 좋은 동료들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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