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작가로서 전국을 수없이 많이 다니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곳을 꼽으라면 서슴없이 강원도 정선을 추천한다. 정선은 사계절 중에서도 가을이 으뜸이다. 특히 단풍이 물드는 시점을 잘 맞추어 가면 금상첨화이다.
정선은 아름다운 곳이 너무 많아 어디를 가든 후회가 없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일정이 엄격히(?) 정해져 있으므로 일정 그대로 따라가 본다.
이곳에서 영화를 다시 볼 수 있다면
영화 ‘웰컴투 동막골’촬영지인 평창군 미탄면을 찾아 간다. 이곳은 정선이나 영월을 여행하다 지나는 길에 서너번 들러보긴 했지만 이렇게 1순위로 가는 건 처음이다. 그래서인지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장평나들목으로 나와야 하는지, 진부나들목으로 나와야 하는지 헛갈린다. 장평나들목으로 나오자 교차로의 여러 안내판 중 웰컴투 동막골 촬영지를 알리는 작은 표지판이 붙어 있다. 하지만 여간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발견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 거기서부터 평창 방면으로 가다 다시 정선 방향으로, 거기서 다시 영월 방면으로 …… 표지판이 없어 지금 옳게 길을 찾아가는 건지 알 수가 없어 불안하다.
마침내 촬영지로 들어가는 입구가 보인다. 입구에서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왜냐하면 혹시나 그새 이 비포장길을 콘크리트로 덮어버리지 않았을까 하는 기우에서다. 서편제를 찍었던 청산도의 아름다운 황톳길을 관광객들의 편의를 위해 콘크리트로 덮었다가 다시 깨부순 일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렇다, 편의성도 편의성 나름이다. 편의성만이 능사가 아니다. 이 길은 앞으로도 변함없이 먼지 풀풀 날리는 비포장길일 때 가장 잘 어울린다.
평일이고 일러서인지 관광객이 별로 없다. 입장료도 주차비도 없어 좋다. 세트장은 예나지금이나 여전하다. 야무지게 지어서인지 그리 상한 것도 없다.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높은 산들의 모습 때문에 세트장이라기보다는 전형적인 강원도 촌마을에 온 것 같다.
올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세트장 한켠에 소극장을 지어 ‘웰컴투 동막골’을 상영해 줬으면 한다. 영화를 못 본 사람도 있을 것이고, 본 사람이라도 촬영 현장에서 영화를 다시 보는 것도 의미 있지 않을까?시간이 지나면 이 영화도 서서히 잊혀질 것이기 때문이다.
꼭꼭 숨은 절경, 병방치고개
정선읍으로 갔다. 들목에서부터 차량의 혼잡이 극심하다. 주차장이 없어 교회 주차장에 몰래 차를 세워 놓고 곤드레나물밥을 먹으러 동박골식당에 갔다. 인산인해. 30분을 기다려도 밥이 안 나와 항의를 하니 그제서야 밥이 나온다. 밥맛이 좋다. 담백하고 수수한 이 맛, 이 맛이야말로 강원도 음식의 최대 매력이다.
5일장 또한 발디딜 틈 없이 사람이 많다. 주민들뿐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장터 구경 나온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여행객의 차량 중에는 저 멀리 전남 차량도 보인다. 역시 장터 구경은 흥이 난다. 볼거리도 많지만 물건을 팔러 나온 사람들, 흥정을 하는 사람들 모두 구경거리다. 먹거리 골목에 들어서니 점심 먹은 게 후회가 된다. 메밀전병을 보니 군침이 돌아 안 사먹을 수가 없다.
장터를 한 시간 넘게 돌아보니 시간이 어중간하다. 멀리 가자니 해가 질 것 같고 숙소로 들어가자니 너무 이르다.
북실리로 간다. 남들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은 숨겨진 명소인 병방치고개로 가기 위해서다. 여긴 정선 사람도 잘 모르는 곳인데 정말 기가 막히게 멋있고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좁은 길을 한참 따라 들어가니 마침내 병방치고개가 나온다. 얼마 전에도 없었는데 어느새 전망대까지 만들어놨다. 동강의 상류인 조양강이 귤암리를 조롱박처럼 휘감고 유유히 흐르는 모습이 그림 같다. 영월의 선암마을 못잖은 비경인데 왜 여태껏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까? 전망대에 앉아 해지는 조양강을 넋놓고 바라보자니 어느새 해가 기울어 간다.
슬프다, 몰운대 소나무여
아침 일찍 일어나 화암약수에 들러 약수 한 잔을 마시고 몰운대에 오른다. 정선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 중 하나. 91년인가, 처음 몰운대에 왔을 때 경치에 반해 점심도 굶은 채 소나무 곁에 앉아 반나절을 꼬박 보낸 일이 기억난다.
여기도 걱정거리가 하나 있다. 몰운대 소나무가 죽어버렸다는 것. 몰운대 절벽과 소나무의 어울림이 마치 한 폭의 동양화 같았는데 소나무가 죽어 보기 흉하게 변해가고 있어 그 모습을 보자니 마음이 아프다.
화암약수에 들러 약수를 한 잔 마신다. 위장병이나 피부병, 안질에도 효능이 있다는 이 약수는 철분이 많이 함유돼 많이 마시기는 어렵다. 나는 약수보다는 이곳의 한적함과 경치가 더 좋다. 언제가는 꼭 한번 화암약수 야영장에서 야영을 해볼 셈이다.
스치고 지나가는 아름다운 풍광들
화엄동굴을 거쳐 구절리로 간다. 레일바이크는 문경에서 처음 도입한 것으로 아는데 정선이 후발주자이면서도 문경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것 같다. 레일바이크는 워낙에 인기가 높아 예약을 하지 않으면 제 시간에 타기가 어렵다. 허탕치고 돌아가는 사람이 숱하다.
철로 옆에 있는 철구조물인 ‘여치의 꿈’은 아주 독특하게 지은 철구조물이다. 내부는 열차 식당칸을 연상시키는데 스파게티의 맛도 괜찮은 편이다.
레일바이크의 매력은 기계이지만 자전거처럼 내 두발에 힘을 주어 굴린다는 점이다. 특히 철로 옆으로 펼쳐지는 풍광이 너무나 아름다워 약 50분의 시간이 금세 가버린다.
아우라지역에서 다시 구절리역으로 되돌아 가기 위해 타는 꼬마열차도 재밌다. 레일바이크는 혼자 타기엔 너무 청승스럽다. 이번 겨울방학에는 꼭 가족들과 함께 레일바이크를 타야겠다.
정선은 역시 언제 가도 새롭다. 볼거리, 즐길거리, 먹을거리가 무궁무진하다. 10월 중순이면 민둥산 억새를 보러 다시 정선에 와야 한다. 오늘, 정선의 마지막밤은 가리왕산자연휴양림의 통나무집에서 보내기로 했다.